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246화 (246/275)

246. 느림과 빠름 그리고 선(2)

전생에 연은 '선 넘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문식이 때문이었다.

문식이의 궁금증을 해결해 주기 위해 연구소 이곳저곳 다니면서 물어봤더니.

'전공도 아니면서 뭘 그리 깊게 파고들어?'

'그냥 제가 알고 싶어서요.'

'이거 선 넘는 거 아냐?'

'그게, 무슨···?'

'그러잖아. 이렇게 깊이 파고들면 우린 어떡하라고?'

'어차피 발표할 거잖아요?'

'아직 발표하지 않은 내용까지 물어보니 그렇지.'

'아, 그랬나요? 죄송합니다.'

'죄송할 건 없지만, 위에서 알면 좋게 생각하지 않을 거야.'

그랬다.

연은 단순히 궁금해서 물어보았지만, 그들에게는 지켜야 할 선이 있었던 거다.

특히나 위로 올라갈수록 정치색이 짙은 한국 사회에서는 알면서도 모른 체해야 했다.

어차피 공개해야 할 연구 내용이지만, 위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 발표 시기가 결정됐다.

연구원들의 연구 결과는 윗사람들의 정치색에 따라 수시로 변할 수밖에 없었다.

때에 따라서는 미완성 연구도 발표해야 했고, 완성된 연구도 감춰야 했다.

연은 기분이 상했지만, 내용을 알고 나자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이 그러는 이유는 바로 연구비 때문이었다.

올해 연구 결과에 따라 다음 해 연구비가 결정되니 그럴 수밖에 없었던 거다.

그 후로 연은 무척이나 조심했다.

그들이 생각하는 선을 넘지 않으려고 항상 노력했다.

그랬기에 연구소 이곳저곳을 기웃거려도 배척당하지 않고 '요즘 젊은이 닮지 않게 예의도 바르고 눈치도 빠르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연은 그런 경험이 있기에 처음부터 계획을 단단히 세웠다.

'연구비 따위에 신경 쓰지 않게 해야 해.'

그래서 돈과 자원을 독점하는 일부터 먼저 진행했던 거다.

그 결과 조선전력공사의 모든 비용은 인건비 말고는 없었다.

그 인건비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도 직원들의 만족도는 무척이나 높았다.

좋은 주거 환경과 휴양 시설을 무료로 제공해주니 큰돈을 주지 않아도 언제나 풍족했기에 삶의 여유가 넘쳤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직무가 아닌 개인적 연구나 개발도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신청만 하면 된다.

사안에 따라 연구할 수 있는 장소와 연구에 필요한 자제가 별도로 제공되니 신기술과 신제품 개발에 미친 연구원들과 공돌이들은 모든 정력을 마음껏 쏟아부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선을 지켜야만 했다.

그 선의 첫 번째 항목은 바로 안전이었다.

연구원들과 공돌이들은 안전이라는 선을 언제나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자신과 타인의 안전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옹진반도에서는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

자잘한 사고야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지만 크게 다친 사람은 아직까지 없었다.

이렇게까지 안전이라는 선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연 때문이었다.

연은 단순하게 생각하고 '선을 지켜라'는 말을 자주 했다.

하지만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그걸 다르게 생각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연이 '선 넘네'라는 말을 한순간 대대적인 숙청이 있었다.

그랬기에 '선을 넘는다'는 의미는 '목을 내놓아야 한다'는 의미와 같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조선전력공사 직원들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관리들과 백성들도 항상 선의 한계를 생각하고 행동했다.

하지만 그 선이 어디까지인지 모두가 달랐다.

그러다 보니 개인 간 다툼도 발생했다.

서로가 생각하는 선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이때 이 선을 정리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송시열이었다.

아파치 왕국에서 정식적 지주로 추앙받는 송시열은 연이 말한 선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했다.

'황제께서 말씀하신 선의 의미는 정도(程度)이다. 정도란 오상(五常)을 말하는 것이고, 오상은 유교에서 말하는 인(仁)·의(義)·예(禮)·지(智)·신(信). 이 다섯 가지 덕목(德目)을 말하는 것이다.'

송시열은 인간이라면 갖춰야 할 다섯 가지 덕목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인(仁)은 사람이 먼저라는 어진 마음으로.

의(義)는 당연히 해야 하는 옳은 일로.

예(禮)는 서로를 존중하는 의미로.

지(知)는 사회 전반에 깔린 선의 한계를 파악할 수 있는 지혜로.

신(信)은 이 모든 것을 지키려는 마음이라고 표현했다.

'따라서 신(信)이야말로 황제께서 말씀하신 선을 지킬 수 있는 기본이자 모든 것이다.'

송시열의 말과 뜻은 유교 탈레반들에 의해 조선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왜 그러지 않겠는가.

종교를 믿는 가장 큰 이유는 행복한 삶이지 않은가.

교리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종교를 믿는 이유는 현생이든 후생이든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기에 유교는 빠르게 퍼질 수 있었다.

한때 조선의 국교(國敎, State Religion)였던 유교를 이처럼 거리낌 없이 받아들인 이유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사람들은 잘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유학을 유교로 받아들이고 행복한 삶을 꿈꾸었던 것이었다.

또한 이를 전파하는 유교 탈레반들의 영향도 컸다.

전처럼 말로만 중얼거리지 않고, 직접 실천하는 유교 탈레반들이 있었기에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졌다.

'유교야말로 지상 낙원을 이룰 수 있는 철학이지.'

'맞아. 현실을 직시하고 모두가 선을 넘지 않으면 다툼도 전쟁도 없을 거야.'

연이 습관처럼 중얼거렸던 '선'이란 말이 이제는 모든 일의 기준이 되고 척도가 되었다.

그로 인해 빠르게만 외치던 조선 백성들의 생각도 달라졌다.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는 말처럼 풍족한 생활은 여유를 주었다.

하지만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후딱 해치우자'는 '빨리빨리' 문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변해가고 있었다.

지금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도로와 철도 공사는 기간보다 무사고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조선전력공사에서 사 온 차와 배의 엔진과 기본 틀을 개조하는 작업도 성능보다는 안전에 중점을 두었다.

이제는 어느 집이나 한 대 정도는 가지고 있다는 차 또한 운행에 조심했다.

다른 차가 보이지 않는다면 속도제한 없이 무한 질주를 했지만, 한 대라도 차가 보이면 바로 속도를 줄였고, 사람이라도 나타나면 거의 서버릴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많은 도심에 차를 가지고 오는 이는 거의 없었다.

노면전차(路面電車, Tram)와 승합차가 수시로 도심 곳곳을 다녔기에 그런 거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타인이 다치면 안 된다'는 문화가 자리를 잡았기에 그런 거였다.

연이 말한 선이라는 의미가 송시열에 의해 정리되고, 유교 탈레반들에 의해 퍼져나가면서 아무리 비싼 기물이라도 사람보단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빠름만 추구하던 조선은 안전이라는 느림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아버지 조부의 말을 듣고 난 상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

"그러니까 아버지 말씀은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는 겁니까?"

"그렇지. 이곳 조선에서 살려면 제일 중요한 건 타인에 대한 예를 지키는 것이다."

"도로를 막 건너는 사람들을 보고 차가 멈추는 것도 그런 이유입니까?"

"맞다. 사람이야말로 제일 소중하다. 그래서 기물을 다루는 이는 사람이 다치지 않게 안전에 유념해야 한다."

일한 만큼 보수를 받는 사회.

그런 사회이기에 조선 백성들의 생활 수준은 갈수록 높아져 갔다.

생활 수준이 올라감에 따라 의식도 높아져 갔다.

그래서인지 선을 지키는 일은 모두의 관심사였다.

또한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는 관용을 서로가 공존할 수 있는 원리로 보았기에 타인을 간섭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무엇을 입고 다녀도, 무엇을 하고 다녀도, 개인의 감성이라 생각했기에 따지지 않았다.

하지만 가릴 건 가리고 깨끗하게 하고 다니는 것은 기본이었다.

혐오를 주는 복장이나 악취를 풍기는 것은 선을 넘는 것으로 생각했기에 그런 거였다.

17세기이지만, 20세기와 같은 문명을 건설하고 있는 조선은 미친 듯이 발전하고 있었다.

그 결과 돈이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인식도 퍼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백성들은 열심히 일했다.

일하지 않아도 주거와 먹을 것, 입을 것이 모두 제공되지만, 일할 수 있는 데도 일하지 않고 놀고먹는 것은 선을 넘는 짓이라 생각했다.

그랬기에 사지 멀쩡한 백성들은 놀지 않고 일했다.

그런데도 노는 이가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했다.

뭔가를 준비하거나 연구하거나 창작하는 것으로 봤기에 이렇게 물었다.

'언제쯤 결과를 볼 수 있어?'

'뭐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기대되는걸.'

'지금 하는 일이 뭔지는 몰라도 결과는 중요하지 않아. 그러니 최선을 다해 봐. 응원할게.'

그러다 보니 아무 생각 없이 노는 이들도 뭔가를 해야만 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노래를 만들거나, 새로운 기물을 구상하는 척이라도 해야만 했다.

사회적 분위기가 정한 선이 그랬기에 어쩔 수 없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가장 극심하게 변하고 있는 곳이 있었다.

그곳은 바로 사파비 지역과 아라비아반도였다.

* * *

조선 제국의 영토는 아직도 늘어나고 있었다.

아라비아반도는 소수의 유목민 말고는 아무도 살지 않은 곳이라 조선이 쉽게 점령했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지역과 파키스탄 지역은 원하지 않았지만, 보상으로 준다기에 받을 수밖에 없었다.

대전쟁시대에 조선을 노리고 침략했던 무굴제국.

이제는 무늬만 제국이지만, 아직도 1억이 넘는 인구 대국이었다.

아버지인 파디샤 자한 1세를 몰아내고 권력을 잡은 아우랑제브는 야심이 많은 자였다.

하지만 동쪽에서 세력을 넓혀오고 있는 준가르 왕국조차 상대하기에 버거웠다.

조선을 넘봤지만 참담한 패배를 맛봤던 무굴은 준가르와 분쟁으로 위기에 처하자 조선에 중재를 요청했다.

패전했음에도 아무런 보상도 하지 않았던 무굴은 전세가 불리해지자 훗날 파키스탄이 되는 곡창지대인 펀자브 지역을 조선에 양도했다.

'미리 보상을 했어야 했는데, 너무 늦은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운이 좋군요. 폐하께서는 타지마할에 관심을 보이셨는데 다행입니다.'

'네?! 정말입니까?'

'조선은 명분이 없으면 절대 침략하지 않지만, 당한 일은 결코 잊지 않는다는 걸 모르셨소?'

'하···, 정말 죄송합니다. 준가르 때문에 신경을 쓸 수 없었습니다. 이제라도 저희 무굴제국의 뜻을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연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지역을 얻고 싶지 않았다.

좋지 않은 전생의 기억 때문이었다.

그런데 묘한 일이 발생했다.

어찌 된 일인지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지역에서 유교가 번창하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들이 유교 탈레반의 원조라고 주장까지 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연은 조서원에 요청하여 보고서를 살펴봤다.

"뭐, 말은 되네."

"뭐가 말이 됩니까? 유교는 원래 우리 조선의 국교이지 않습니까?"

보고서를 가지고 온 쌍식이가 씩씩거렸다.

조선의 유교를 생판 다른 곳에서 원조라고 주장하니 그럴 수밖에.

하지만 연은 피식 웃었다.

"탈레반이란 말이 원래 그 지역 말이니 그렇게 우겨도 할 말은 없지 않으냐? 게다가 유교 자체가 우리 조선에서 시작된 것도 아니고, 중원에서 넘어온 것 아니냐."

"그래도 유교 탈레반은 우리 조선의 학자인 송시열 선생께서 만드신 것 아닙니까?"

"쌍식아?"

"네, 폐하."

"또 보고서를 대충 봤구나."

"네?!"

"유교 탈레반은 사파비 지역에서 자연 발생한 거다."

"하지만 송시열 선생의 가르침을 받은 아이들이 조직한 거 아닙니까?"

"물론 그렇지. 그 아이들이 조직한 건 사실이지. 유교 탈레반이란 말도 그곳에 살았던 아이가 지은 것이고.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일에 신경 쓸 순 없다."

쌍식이는 연과 평생을 같이 살아왔기에 표정만 봐도 연의 뜻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본론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이슬람교도들과 유교 탈레반들이 서로 양보하지 않겠다고 했더냐?"

"네, 폐하. 그래서 조서원에서도 신경을 바짝 쓰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지역에 살던 원주민들은 자신들이 살던 지역이 조선으로 넘어가자 열광했다.

조선이 어떻다는 걸 들어서나마 알고 있기에 희망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조선의 법이 엄하다는 건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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