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243화 (243/275)

243. 풍요와 빈곤(3)

연은 타국의 일에 관여했던 강대국들이 무슨 짓을 하고, 무슨 짓을 일으키고, 무슨 짓을 당했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타국에 관해 전혀 간섭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사건이 터졌다.

걱정했던 공산주의가 프랑스에서 태동하려고 한다는 보고였다.

'공산당은 때려잡아야 하는데···.'

전생의 기억이라면 당장에라도 관여해야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한번 발을 딛으면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난감하네···."

연은 고민 끝에 수화기를 들었다.

이런 일은 자신보다 역사를 잘 아는 문식이가 더 현명한 판단을 할 거로 생각했다.

한참 연의 말을 듣고 난 문식이가 혀를 찼다.

-역시 공산주의는 가난에서 싹이 트는 거였군.

"그런 거야?"

-생각해봐? 공산주의 사상은 플라톤의 '국가'에서도 나온 거잖아. 그런데 지금까지 그런 사상은 싹트지 않았어, 그러다가 기근과 역병으로 삶이 힘들어지니 자연 발생한 것 아냐?"그래?"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래. 물론 플라톤이 말한 것과 마르크스가 말한 것, 그리고 스탈린이 한 짓은 모두 다르지. 하지만 공동 소유를 한다는 것에서는 같다고 볼 수 있어. 또한 이상을 꿈꿨다는 것도. 그런데 이상이었을 뿐이지.

문식이는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모두 연에게 설명했다.

연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문식이의 말을 듣자 배경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결국 사회 전반에 깔린 부조리를 타파하기 위해 내놓은 사상이지만, 현실과 맞지 않다는 거네?"

-그렇지. 이상은 좋지만, 네가 항상 주장하는 인간의 욕망은 간과한 거지.

'통치자는 아내와 자식을 가지면 안 되고, 공동으로 소유해야 한다'는 플라톤의 말은 이상적으로 보인다.

그런데 인간이란 동물은 절대 실천할 수 없는 말이다.

결혼과 가족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던 마르크스의 사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도 인간의 욕망은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투쟁만 강요했다.

그로 인해 공산주의는 스탈린 같은 최악의 독재자가 이용하기 좋은 이론으로 변질됐다.

물론 플라톤 같은 이가 통치자가 된다면 이상 세계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뿐일 것이다.

최악의 인간이 정권을 잡는 건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고 죽어 나갔던 게 인간의 역사이지 않은가.

연은 그런 인간의 역사를 끊기 위해 이리 노력하고 있는 거였다.

문식이가 조선이 이렇게 급격하게 발전할 수 있는 이유를 물었을 때 연은 한마디로 정리했다.

'욕망을 자극한 거야.'

연은 인간의 욕망이야 말로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밥만 먹여줘도 되는 일에 돈까지 주면서 시킨 거였다.

"그럼, 그냥 두는 게 좋을까?"

-그게 나을 거야. 관여해봐야 좋은 소리 듣지 못할 거잖아. 그냥 지들끼리 하다가 망하면 변하겠지.

"흠···. 그게 좋겠군."

-그래도 주변국이 물들지 모르니 그건 정리해야 해.

"알았어."

답답해서 문식이에게 물어봤지만, 그도 연과 생각이 같았다.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린다'는 무협지에 자주 나오는 말처럼 당해봐야 고치려고 하는 게 인간이기에 방임(放任)하는 게 답이었다.

연은 즉시 은진이에게 연락했다.

-알겠습니다. 폐하. 주변국 관리는 제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래, 수고 좀 해줘. 그냥 방치하다가 옆 나라까지 물들면 그때는 걷잡을 수 없으니 번지지 않게 해야 해."

-네, 폐하. 명심하겠습니다.

연은 외교원과 통산부에도 연락해 프랑스와 관계를 끊어버리라고 했다.

위험할지도 모르니 조선인의 출입도 금지하라 명했다.

풍요로운 곡창지대를 보유하고 있는 프랑스라 쉽게 망하진 않겠지만, 공산화가 진행되면서 발생하고 있는 참사에 휩쓸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그들의 선택은 그들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그리 한 거였다.

* * *

'모양'으로 이름이 바뀐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안드레이는 꿈이 있었다.

성인 교육대에서 처음으로 본 영화는 그에게 엄청난 감동을 주었다.

그래서 안드레이는 영화를 만드는 제작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안드레이는 자신의 꿈을 위해 교육대에서 방송반에 가입하여 영상 장비 작동법까지 배웠지만, 영화를 제작할 순 없었다.

영화를 제작하는 일은 단순하지 않았다.

배우를 구하는 것도 문제지만, 너무나 비싼 필름 값 때문에 돈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인 티무르가 신문을 움켜쥐고 찾아왔다.

"안드레이! 안드레이! 이것 좀 보라고!"

"뭔데 그래?"

"드디어 우리도 영화를 제작할 수 있어."

"뭐? 어디 후원자라도 찾았어?"

"그건 아니고. 여기 봐봐. 조선전력공사에서 신제품이 나왔어."

"응?"

안드레이는 티무르가 펼쳐놓은 신문을 보았다.

"휴대용 녹화기? 이걸로 촬영할 수 있는 거야?"

"맞아! 이것만 있으면 우리도 영화를 제작할 수 있어."

내용을 자세히 읽어 본 안드레이는 한숨을 내쉬었다.

"만물상자 용이면 몰라도 영화 제작은 힘들 것 같은데···."

"그래?"

"응. 해상도가 너무 낮아."

"그렇구나. 어쩐지 싸다고 했다."

시무룩해진 티무르를 보자 안드레이는 마음이 좋지 않았다.

성인 교육대에서 만난 티무르는 몽골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그 누구보다 말을 잘 탔다.

예맥 기병대에서도 특채로 입대를 허락했을 정도이다.

그런데도 티무르는 입대하지 않았다.

영화를 제작하고 싶어 하는 자신을 돕고자 '모양 서커스단'에서 일하고 있었다.

말을 타고 재주를 부리는 일은 위험하긴 했지만, 기병대원보다 보수가 배나 많았다.

"미안해."

"뭐가?"

"나 때문에 고생만 하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야. 그나저나 이걸로 영화를 제작할 수 없다니 어떡하지?"

"어쩔 수 없지. 필름 살 돈을 더 모아야지."

"투자받는 건 힘들겠지?"

"대중성이 없다고 퇴짜 맞았잖아."

안드레이는 영화 제작비를 투자받기 위해 조선은행을 찾아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심사관은 고개를 저었다.

보름달이 뜰 때만 늑대로 변신한다는 '라이칸스로프( Lycanthrope)의 일대기'는 제목조차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늑대인간의 전설'이란 이름으로 다시 신청했지만, 또다시 거부당했다.

'차라리 구미호의 전설을 제작하는 게 어떤가?'

조선의 문화는 동역에서부터 퍼지고 있었다.

그래서 동역 사람들이 좋아하는 구미호가 늑대인간보다 더 상업성이 있다는 심사관의 말이었다.

하지만 안드레이는 꼭 늑대인간을 주인공으로 하고 싶었다.

어릴 때 벨라루스 출신인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 느낀 감동을 영상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제기랄! 동역에서도 늑대가 많이 산다고 하는데 왜 늑대인간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지?"

"그러게. 나도 너 이야기 듣고 너무 재밌어서 꼭 만들고 싶은데."

"그냥 다 때려치우고 늑대나 촬영할까? 늑대인간은 좋아하지 않지만, 늑대는 좋아할지도 모르잖아?"

"뭐?! 늑대를 촬영하자고?"

"응, 그냥 늑대가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야. 그 정도는 저 녹화기로 충분히 촬영할 수 있어."

"그래? 그럼 그것부터 하자. 어차피 투자를 받으려면 뭐라도 완성해 놓은 게 있어야 하니."

가능성만 보이면 뭐든 투자한다는 조선은행이지만, 그렇다고 무턱대고 투자하진 않았다.

가능성보다 더 중요한 성실성을 보고 최종 투자 결정을 하는 것이 조선은행의 방침이었다.

계획서만 보고 투자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실물이나 전에 했던 일을 높이 사줬다.

뭐라도 완성해 본 이가 중도에 포기하지 않아서였다.

"티무르, 미안하지만 돈 좀 투자해줘. 당장 이 녹화기 사서 늑대를 촬영해야겠어."

"알았어. 그리고 내가 늑대에 대해서 잘 아니 걱정하지 말고 나에게 맡겨."

녹화기를 산 둘은 관공서에서 야생지역 출입 허가증을 받고 즉시 촬영에 나섰다.

조선에서는 허가를 받지 않고는 야생지역에 들어갈 수 없었다.

무분별한 남획(濫獲)으로 자연생태계가 망가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 * *

연은 오랜만에 저녁을 먹고 황후와 함께 만물상자를 보고 있었다.

무서울지 모른다는 황후의 말에 같이 보고 있는 거였다.

영상이 끝난 후에도 연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생각보다 너무 잘 만든 작품이었기에 잔잔한 여운이 남았다.

"누가 이런 걸 다 촬영했지?"

"모양에 사는 이가 제작한 거라 들었습니다."

"그래요?"

"네, 폐하. 휴대용 녹화기 하나로 촬영했다고 하는데 내용이 너무 생생합니다."

연은 종합예술이라는 영화 제작에 관심이 없었다.

전생에 본 영화가 너무나 많았기에 그런 거였다.

하지만 영화 제작 지원만큼은 넘치도록 하고 있었다.

영화야말로 대중문화의 꽃이라고 생각해서다.

그런데 연은 '늑대의 일생'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앞으로 기록물에 투자를 많이 해야겠소."

"투자까지요?"

"이런 좋은 작품은 오랜만에 봤소."

"그렇다고 투자까지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어떻게 만든 작품인지 모르지만, 기록물 제작은 생각보다 위험하고 돈도 많이 든다오."

"그렇습니까?"

"그렇소. 또한 교육에도 도움이 되니 그대가 지원 좀 해주구려."

"알겠습니다. 폐하."

연은 누구보다 다큐멘터리를 좋아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 삶 자체가 다큐멘터리였기에 그런 거였다.

그런데 어떻게 찍었는지 궁금할 정도로 잘 만든 늑대의 일생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자 생각이 달라졌다.

현재로선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다큐멘터리 제작.

아니었다.

의욕과 열정만 있으면 가능한 거였다.

거기에 돈까지 투입한다면 어찌 되겠는가.

더 좋은 작품이 쏟아질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고 연이 나서기는 그랬다.

돈만 투자한다면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거야말로 나쁜 고양이를 만드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했다.

대신 지금도 그림을 그리고, 만화영화 제작에 투자하고 있는 황후에게 부탁했다.

그로 인해 다큐멘터리 제작은 폭발하듯 증가했다.

또한 안드레이와 티무르는 엄청난 후원금이 쏟아져 들어오자 원했던 늑대인간 영화를 제작할 수 있었다.

* * *

대기근을 넘긴 조선은 더욱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먹고 살 걱정 대신 그 기간에 엄청난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이건 조선의 우방국도 같았다.

미리 대기근을 준비한 곳은 문식이가 통치하는 아파치 왕국뿐이었다.

하지만 조선의 도움이 있었기에 다른 우방국들도 슬기롭게 대기근을 넘길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신분제를 폐지하고 조선에 우방국을 신청한 나라들이 많아졌다.

그것만이 살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 현명한 군주들이 많아서였다.

외교원 원장 조경이 연을 찾아왔다.

"폐하, 상의드릴 게 있습니다."

"그래요?"

"네, 폐하."

조경의 말을 들은 연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많은 나라에서 순과 혼인을 하고 싶다고 했단 말입니까?"

"네, 폐하. 이미 이곳에 와 있는 공주들도 많습니다."

전부터 조선에 유학 온 타국의 왕자들은 많았다.

조선말을 배우는 게 첫 번째 목적이지만, 자국의 안전과 발전을 위해서라도 조선의 문화를 배우고 조선의 태자와 인연을 맺기 위한 거였다.

하지만 공주는 없었다.

태자와 맺어질 확률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태자가 직접 고른다는 소식을 듣자.

가장 예쁜 공주를 조선에 유학 보내는 게 아닌가.

연은 순을 일반 초등학교에 보내고 싶었다.

백성들이 사는 모습을 겪게 하기 위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안전 문제로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태자가 다니는 초등학교를 별도로 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곳에 타국에서 온 공주들이 있다는 말 아닌가.

"흠···. 이건 내명부 소관이니 내명부에 맡기는 게 좋겠습니다."

"하지만 태자께서 직접 고르신다고 하셔서···."

"어쩔 수 없습니다. 태자와 약속한 것이니 태자가 알아서 선택하게 두십시오."

"그래도 되겠습니까?"

"우리 조선은 다인종 국가입니다. 어찌 보면 좋을 수도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폐하."

이런 상황인지도 모르는 순은 학교에서 다투고 있었다.

"좋아! 네가 그리 자신한다면 못 할 것도 없지. 하지만 여자라고 봐주진 않겠어."

"흥! 내가 할 소리."

순은 자기보다 더 큰 여자아이와 격투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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