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240화 (240/275)

240. 요람에서 무덤까지(2)

문식이는 연을 이해할 수 없었다.

기본 소득제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연은 조선 백성 모두에게 살 집과 먹을 것을 챙겨주고 원한다면 입을 것까지 주는 것 아닌가.

문식이는 그런 연의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너무 심하다고 봤기에 연에게 물었다.

'왜 그런 거야?'

'난 네가 말한 대로 한 건데?'

'뭐?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어?'

'네가 그랬잖아. 국민 개개인의 힘을 빼앗고 제재하는 것이 국가라고. 그래서 국민을 위해 그 힘을 사용하고 보살펴야 한다고. 그러지 않으면 생 양아치 독재자가 된다고 하지 않았어?'

'그거야···.'

문식이는 황당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정도가 심해도 너무 심했기에 물어본 말이었는데 자신이 했던 말을 곡해해서 그런 거라니.

'그러다가 전부 놀고먹으면 어떡하려고 그래?'

'그럴 일은 없을 거야.'

'뭐가 없어? 나부터도 일 안 하고 놀고먹을 텐데.'

'생각해봐. 원래부터 일하지 않고 놀고먹는 사람들은 많았어. 양반이나 귀족들이 일하는 것 봤어?'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일하는 사람들이 더 많잖아?'

'그건 그렇지. 하지만 진짜 원해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아. 대부분 마지못해서 일하는 거지. 그런 사람들에게 뭘 기대할 수 있겠어? 사고나 치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러니 원해서 일하게 만들어야 해.'

연의 말에 문식이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다녔던 학교에서도 몇몇 의욕적인 선생님들이나 열심히 수업을 준비하고 가르쳤다.

하지만 그런 선생님들은 동료 교사들로부터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괜한 짓을 한다고 교장에게 욕까지 먹었다.

'그래서 분기마다 신제품을 내놓는 거야?'

'그렇지. 너 기억 안 나? 새로운 게임기 나오면 그거 사려고 돈 모았던 거.'

'기억나지. 그때 부족한 돈 네가 보태 줬잖아.'

'맞아. 그때 게임기 사고 미친 듯이 소리 지르고 뛰어다녔지.'

문식이는 그때가 생각나는지 계면쩍은 미소를 지었다.

한동네에 살면서 같은 학교에 다녔기에 둘은 언제나 붙어 있었다.

고등학교 때 문과와 이과로 갈라졌어도 함께 공부하고, 게임하고, 놀러 다녔다.

둘의 관심사가 같았기에 다툼조차 없었다.

게임을 좋아했던 둘은 새로 나올 게임기 소식을 들으면 돈부터 모았다.

함께 아르바이트도 하고 집에서 쓰지 않는 중고 제품을 팔아 게임도 샀다.

둘이 합심하여 돈을 모았기에 풍족하게 살진 못했지만, 최신 게임기와 게임이 나오면 바로 살 수 있었다.

또한 x동도.

그때가 생각나는지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므흣하게 미소 지었다.

'흠···, 결국 중요한 건 일할 목표를 정해 준다는 것이군.'

'그렇지. 인간의 욕심을 자극해주면 돼.'

'공돌이가 그런 걸 어찌 알아?'

'공돌이니까. 공돌이니까 효율을 따지는 거지.'

연은 개미조차 열심히 일하는 개미는 3할 정도밖에 안 된다는 연구 결과를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30%의 개미들이 70%의 일을 해낸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건 사실이었다.

게다가 더 효율적이라서 자율 로봇을 개발하는 데 적용까지 한다는 것 아닌가.

'지금이야 그렇지만, 내 관점에서는 갈수록 일 안 하고 놀고먹는 사람들이 많아질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가 살았던 세상을 생각해봐? 생산성 있는 일을 하는 사람보다 건물주나 금융투자로 먹고사는 사람들이 더 잘 살았잖아.'

'그건 그렇지.'

'그래서 난 그걸 원천 봉쇄했어. 금융과 부동산이야말로 인류 발전의 적이라고 생각하거든. 생산성도 전혀 없고.'

이 말에는 문식이는 강하게 부정했다.

'너무 억지 아니야? 금융으로 인해 산업이 더 빠르게 발전할 수 있는 거잖아?'

'말장난이지. 무정부 상태라면 몰라도 나라가 있는데 굳이 자본가들만 배부르게 하는 금융 산업을 키울 필요가 있을까?'

'그래도 금융으로 돈을 모아야 더 크게 산업을 키울 수 있는 것 아냐?'

'그걸 왜 민간에 맡겨? 나라가 있는데. 금융으로 대공황이 왔을 때 그걸 해결한 건 결국 나라였잖아.'

'그건 그렇지.'

'미국만 봐도 금융으로 사고 친 것들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어. 열심히 일만하고 살았던 서민들만 고통받고 허리띠 졸라 맺지. 그것도 타국민까지.'

연은 미국발 금융 유기로 인한 피해가 항상 타국의 피와 땀으로 메꿔졌기에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후, 기축통화국이었던 미국은 자국의 실수를 언제나 타국으로부터 만회해왔다.

그것도 우방국을 상대로 금리와 환율을 가지고 장난치면서 말이다.

그러다 보니 원인을 제공한 미국은 더욱 잘살게 되고, 죄 없는 타국이 대신 고통을 받았다.

오죽하면 '양털 깎기'라는 말까지 생겼을까.

연은 이 모든 게 욕망의 집합체라는 금융 산업에 있다고 봤다.

금융 산업 말고는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금리와 환율로 타국의 경제를 망가트리고 고통을 주면서 달콤한 과실을 따 먹는 금융 산업이야말로 인류 발전의 적이라고 본 거다.

'생각해봐. 루스벨트가 뉴딜 정책으로 대공항에 빠진 미국을 다시 일으켜 세웠잖아? 그때 금융이 도와준 게 뭐가 있어? 다 나라에서 주도해 살린 것 아냐?'

'그건 맞는데. 그렇다고 금융이 없으면···.'

'대신 조선은행에서 하고 있잖아.'

1602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세계 최초로 문을 연 증권거래소.

인도와 동남아 지역을 점령하고 후추 같은 고가의 향신료를 얻기 위해 설립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

그 회사에 자금을 조달하려고 주식과 채권을 팔았다.

하지만 시작부터 문제가 있었다.

창립 이사이자 암스테르담 사무소의 최대 지분 보유자인 더르크 반 오스.

주주명부에 있지도 않은 지분을 공매도로 팔아 가격을 떨어트리고, 회사 운영에 나쁜 소문을 퍼트려 주가 조작을 한 거다.

그 후로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은 꾸준히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튤립 거품이었다.

광기와 같은 인간의 욕망을 자극한 튤립 거래는 끝내 터져버렸다.

하지만 암스테르담시 의회와 당국은 문제가 되자 모든 계약을 일괄 무효 시켰다.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피해는 고스란히 당국을 믿고 거래했던 이들에게 돌아갔다.

나라와 나라를 운영하는 정부와 관리들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거기에 '욕심 많은 플로라(로마 신화의 여신)에게 바치는 바보들'이란 조롱까지 받았다.

이런 내용을 문식이로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기에 연은 아직도 주식거래소를 만들지 않았다.

대신 조선은행에서 자금을 지원해 주고 주식을 사고팔 수 있게 연결해 주고 있었다.

'그래도 따로 시장이 있는 게 좋지 않을까?'

'언젠가는 해야겠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아직 주식이라는 게 있는지도 모르는 백성들이 대부분이거든.'

사실 조선의 부를 거의 다 가지고 있는 조선전력공사가 있기에 주식시장은 필요가 없었다.

자금이 필요하면 조선은행에 요청하면 된다.

주식을 팔고 싶을 때도 조선은행에 부탁하면 된다.

대부분 상사들은 조선은행에서 돈을 빌리거나 투자를 받았기에 조선은행은 상사들의 내부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거래에 있어서 사기 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이처럼 안정적으로 돌아가는 조선의 경제이기에 굳이 주식거래소를 만들어 금융 산업을 키울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다 관리할 수는 없었다.

인류 발전에 저해될지도 모르기에 주식거래소를 만들 필요는 있었다.

그런 대도 연이 하지 않는 이유는 아직 때가 이르다고 생각해서였다.

'하나만 더 물어보자. 도대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이게 더 효율적이라 생각했거든.'

'무슨 효율?'

'너도 알다시피 사람이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때 더 효율적이잖아. 그런데 그런 사람은 별로 없어. 그래서 생각을 해봤어. 어떻게 하면 최대한 잠재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지.'

'그게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는 거야?'

'응. 백성들의 권력을 위임받았으니 그들을 책임지는 건 당연한 거지.'

'그건 맞지만 말했다시피 너무 과한 것 같아서···.'

연은 피식 웃었다.

한때 연도 그렇게 생각했으니.

그런데 알고 보니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말도 다 사기였다.

그렇게 해준 나라는 21세기에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회보장제도에서 말하는 복지국가의 대표적인 슬로건인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말.

1942년 12월 1일 영국에서 발표한 '사회보험과 관련 서비스'라는 이름의 최종 보고서에 나온 말이다.

이 보고서가 발표되자 영국인들은 열광적으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처칠 행정부는 거부했다.

일명 '베버리지 보고서'라 불리는 이 보고서는 보편적 복지를 주장했지만, 선별적 복지와 언제나 충돌했다.

그 후 미국에서 시작된 신자유주의로 인해 빈곤과 불평등은 더욱 확대되었다.

사람들은 더 열심히 일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을 가진 자들만 혜택을 받기에 맞벌이해도 외벌이할 때보다 더 힘들게 살았다.

이런 일을 알고 있는 연이기에 처음부터 부동산과 금융을 손에 넣고 풀지 않았던 거다.

'결과는 어때?'

'흠···.'

문식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연이 만들어 놓은 조선에선 모두가 즐겁게 일을 하고 있었기에 반박할 수 있는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난 우주로 진출하지 못하면 인류는 사라질 거라 봐. 그래서 최대한 효율을 끌어올리는 방법을 생각했지.'

'그 방법이 알아서 일하게 만드는 거였어?'

'그치. 은동리 연구소만 봐도 그게 정답이야.'

연은 수시로 강연회를 열고 신기술과 이론을 발표했다.

발표한 기술과 이론을 정리해 과제로 내주고 원하는 이가 알아서 연구하게 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연구원들은 자신이 원하는 과제를 찾아 문제를 해결하고 답을 내는 게 아닌가.

백성들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냥 아무것도 안 하고 노는 사람도 있었지만, 극소수였다.

백성 대부분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찾아 움직였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퇴사하고 자신에게 맞는 일을 다시 찾았다.

게 중에는 연구에 심취해 새롭고 참신한 기물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또한 어떤 이는 글을 쓰고, 어떤 이는 그림을 그리고, 어떤 이는 노래를 만들어 부르면서 문화까지 번창하는 게 아닌가.

'모두가 금수저처럼 먹고사는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게 한 거군.'

'그치. 금수저처럼 자존감이 높기에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었던 거야. 그랬기에 지금의 조선이 있는 거고.'

사실 연은 단순히 효율을 생각해 이리 한 거였다.

격차가 심한 가정교육 대신 학교에서 예절교육을 가르친 이유도 서로 다름으로 인한 분란을 방지하고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모든 것이 달라지고 있었다.

그로 인해 조선은 몰라보게 변하고 있었고, 주변국들 또한 달라지고 있었다.

* * *

홍익 1호가 발사된 후.

둥글고 푸른 지구의 모습이 사실 그대로 공개되었지만, 이걸 믿지 않은 자들이 있었다.

우방국 왕들까지 모두 초청해 로켓 발사를 직접 보여주고, 만물상자를 통해 실시간으로 생중계했지만, 거짓이라고 떠드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로마 교황청을 중심으로 뭉친 주교들이었다.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종교개혁으로 망가져 버린 교황청의 권위를 인노첸시오 10세가 어느 정도 올려놓았다.

하지만 신성로마제국이 무너져 버렸고, 프랑스에서 혁명이 터지고, 대기근이 엄습하자 교황청의 권위는 다시 내려앉았다.

프랑스 파리 몽마르트 언덕.

파리에서 유일한 고지대인 이곳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순교자의 언덕'이라는 뜻을 가진 몽마르트르에는 압바예덴바스(Abbaye d'en bas)라는 수도원이 있었지만, 이번 혁명으로 파괴되었다.

프랑스 정부군과 시민 혁명군의 전투로 인한 거였다.

피와 먼지로 얼룩진 셔츠를 입고 있는 이가 언덕 위 단상에 올라가더니 군중들을 향해 목이 터지라 힘차게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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