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 요람에서 무덤까지(1)
만물상자로 로켓 발사 장면을 직접 볼 수 있었던 조선의 백성들.
한 달 전부터 방송을 통해 미리 홍보했는데도 차오르는 감동을 감출 수 없었다.
"우와! 조선이 최고다!"
"조선 제국 만세!"
이미 세계 최고 국가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이 있었지만, 이번 발사로 그 자부심은 더해진 자존감과 함께 하늘 높이 치솟고 있었다.
동역부터 신역까지 전 지역에 동시 생방송으로 중계된 이번 로켓 발사는 그런 조선 백성들을 하나로 묶기에 충분했다.
민족과 인종이 달라도 조선에 사는 조선인과 거주민들은 모두 하나가 되어 찬사를 보내며 축하했다.
그중에서도 열도에서 사파비 지역과 아라비아반도로 이주해온 백성들의 반응이 최고였다.
"박 씨, 이러지 말고 내가 한턱낼 터니 가십시다."
"나카무라 상, 미안하오. 낼 일 하러 일찍 나가야 해서···."
"그럼 어쩔 수 없지요. 낼 저녁에 다시 만납시다. 그리고 제 성은 나카무라가 아니라 중(中) 씨요, 중 씨. 그러니 앞으로 중 씨라 불러 주시오."
"아, 자꾸 까먹어서 미안하오. 중 씨."
연은 사파비 지역을 점령한 후 치안 관리를 위해 열도에 사는 왜인 중 어느 정도 조선 말을 할 줄 아는 이들만 선별해서 이곳으로 이주시켰다.
갑자기 너무나 넓어진 영토를 모두 관리할 수 없었다.
그냥 방치하면 나중에 큰 문제가 꼭 발생한다고 봤기에 급한 대로 그들을 투입할 수밖에 없었다.
나카무라도 그때 사파비 지역으로 온 왜인 중 한 명이었다.
처음에는 사파비 제국의 수도였던 이스파한에서 근무했던 나카무라.
사람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아라비아반도를 개발한다고 하자 발 빠르게 움직였다.
해가 뜨면 열사(熱砂)로 인해 숨조차 쉬기 힘든 지역이라고 말을 들었지만,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열병으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주변에서 말렸지만, 나카무라는 마음을 굳게 먹고 아부다비로 떠나는 함선에 몸을 실었다.
사실 나카무라는 왜소한 체구 때문에 자격지심이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당당한 체격을 가진 조선인 때문에 기가 죽었는데, 사파비 지역의 원주민들은 그보다 월등히 컸기에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나카무라는 이를 꽉 물고 당당하게 치안 대원 임무를 해냈다.
자신보다 두 배나 큰 거한에게도 육모 방망이를 들고 당당히 나서 제압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믿는 게 있어서였다.
나카무라는 언제나 자신의 뒤에는 위대한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 조선을 세운 이가 자신과 같은 피가 흐르는 예맥 민족이라는 것도.
그랬기에 나카무라는 거한을 보고도 겁이 났어도 가차 없이 돌진하여 제압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부다비에서 성공한 나카무라는 그 누구보다 한반도에서 살던 조선인처럼 행동했다.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열등감을 한반도에서 온 예맥 민족이라는 자부심으로 극복하고 있었던 거다.
'그런데 나카무라, 자네는 열도에서 오지 않았나?'
'아닙니다. 저는 부산에서 왔습니다.'
'그래?'
'여기 보십시오. 부산에서 타고 온 배표입니다.'
나카무라는 부산을 거쳐 사파비 지역으로 왔기에 언제나 한반도에서 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때 타고 온 배표를 비닐로 싸서 품 안에 넣고 다니며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말이다.
그런 나카무라였기에 성격도 바뀌었다.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남에게 베풀지 않았던 나카무라였지만, 한반도에서 온 조선인 행세를 해야 했기에 인심 좋은 사람으로 포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 신이 났다.
작다고 멸시하듯 내려보는 눈길이 이제는 없었다.
길 가다 만나는 사람마다 고개를 숙이고 인사하며 칭찬을 늘어놓는 게 아닌가.
손이 작은 만큼 손재주가 좋았기에 장비 수선에 일가견이 있어 떼돈을 번 나카무라는 번 만큼 베풀었다.
베풂만이 자신이 한반도에서 온 조선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확립시켜 줄 수 있고, 존경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나카무라 같은 사람들이 조선 전역에 넘쳐났기에 곳곳에서 잔치가 벌어져다.
"우주 진출 첫발을 위하여!"
"""위하여!"""
"위대하신 폐하를 위하여!"
"""위하여!"""
잔치에 참여한 조선 백성들.
조선이란 나라의 국뽕에 취해 건배를 하고, 풍악을 울리고,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 * *
인류 최초로 대만에서 발사된 로켓의 이름은 '홍익 1호'였다.
'널리 이롭게 하는 것'이라는 '홍익'의 뜻과 목적이 같아서 그렇게 명명한 거였다.
그런데 대만은 특이한 곳이었다.
원래는 다두 왕국의 터전이었던 대만.
지금은 조선의 영토가 되었다.
그렇다고 조선 백성들이 살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곳에는 카마찻 왕을 따라 마닐라로 떠나지 않고 남은 소수의 원주민들과 조선전력공사 직원들만 살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급격히 늘어난 조선의 영토 때문이었다.
연은 한정된 자원인 백성들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대만으로 백성들을 이주시키려 했지만, 추가로 확보한 해남도가 있었기에 계획을 변경했다.
'이대로 두다가는 중원 사람들의 차지가 될지도 모르니 해남도부터 개발하도록 하라.'
20km도 안 되는 해협을 두고 중원 본토 남쪽에 위치한 해남도.
수시로 중원인들이 몰려왔다.
강력한 대책으로 차단했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래서 연은 해남도를 먼저 개발하고, 대만은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그로 인해 대만은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 대부분이었다.
대만 남쪽 끝.
그곳에 있는 우주기지에서 '홍익 1호' 발사 성공 축하연이 열리고 있었다.
"폐하! 대체 대조선의 기술력은 어디까지입니까? 너무 놀라서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연의 추종자라 자처하는 칼 10세가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손을 비비며 연에게 물었다.
한쪽 벽면에 가득 채운 여러 개의 모니터로 이루어진 멀티비전을 보고 있던 다른 이들도 궁금한지 연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멀티비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푸른 지구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광경이 너무나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시판되고 있는 만물상자는 20인치 정도 되는 흑백 모니터다.
그런데 이곳에 설치된 멀티비전은 컬러였다.
비록 256개의 색깔밖에 표현하지 못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경이로운 지구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이번에 발사된 홍익 1호는 정지궤도인 적도 상공 35,786km 위에 안착했다.
그랬기에 실시간으로 지구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었던 거다.
지구의 원심력과 중력을 계산할 수 있는 만유인력 상숫값은 연도 알고 있었지만, 어찌 활용하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수학 천재인 야코프가 있었다.
야코프가 뚝딱하니 계산을 끝냈기에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위성을 쏘아 올릴 수 있었던 거다.
연은 모두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자 빙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모두 그대들 덕분입니다. 그대들이 있었기에 우리 조선의 기술은 나날이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황제 노릇을 하다 보니 연의 말투가 두루뭉술해졌다.
끝도 없이 찾아와서 부탁하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그리된 거였다.
"제가 해준 게 뭐가 있겠습니까?"
"맞습니다. 폐하 덕분에 전 세계가 흉작으로 어려웠는데도 우리는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이는 모두 폐하의 은덕(恩德)이 있었기에 가능한 거였습니다."
연은 이번 로켓 발사에 앞서 우방국 왕들을 모두 초청했다.
거대한 로켓이 굉음을 내며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모습을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래야만 의심하는 일이 없을 테니까.
또한 쓸데없는 논쟁을 원천부터 차단하려는 이유도 있었다.
아무튼 홍익 1호 발사는 성공했고, 축하연도 무르익었다.
이런 자리에 초대받았다고 신이 나서 거나하게 취한 호토고친이 연에게 다가와 물었다.
"폐하, 궁금한 게 있어서 여쯤 고자 합니다."
"말씀해 보세요. 무엇이 궁금합니까?"
"우리 준가르 왕국은 폐하께서 하신 것처럼 따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하는 사람이 3할까지 줄어들었습니다. 일하지 않아도 먹을 것을 챙겨주니 모두가 놀고먹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큰일 났다고 생각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전보다 더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그러자 다른 왕도들 끼어들었다.
"맞습니다. 우리 다두 왕국도 그렇습니다."
"우리 지팡구 왕국도요."
연은 들고 있던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시더니 씩 웃으며 간단히 물었다.
"지금도 그렇습니까?"
"지금은 아닙니다. 지금은 전보다 더 많은 백성들이 더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궁금합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연은 샴페인 잔을 내려놓고 주변을 둘러보더니 모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살 수 없습니다."
"네? 그게 무슨···. 아! 알겠습니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그런 거였군요."
호토고친은 고개를 끄덕이며 큰 소리로 웃었다.
"이리 단순한 거였다니, 참으로 제가 우매하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역시 폐하십니다. 깨우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폐하."
술에 취해 얼굴이 불콰한 상태인데도 호토고친은 자세를 똑바로 하고 연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제야 호토고친이 왜 이러는지 알아챈 다른 왕들도 호토고친을 따라 정중하게 연에게 감사의 예를 표했다.
왜 그러지 않겠는가.
조선에서 하는 것처럼 따라 했지만, 일하는 사람이 갈수록 적어지자 걱정이 태산 같았다.
이러다 왕국이 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을 설친 적도 많았다.
그런데 어느 기점이 지나자 백성들이 달라졌다.
놀아도 먹을 것을 준다고 하자 처음에는 믿지 않았던 우방국 백성들.
조선처럼 백성들을 위해 도입한 제도라고 하자 일을 팽개치고 노는 게 아닌가.
왕들은 걱정됐지만 참고 기다렸다.
하지만 갈수록 일하는 백성들이 줄어들었다.
'우리 백성들은 조선인과 다르구나.'
'자질이 문제야. 자질이.'
'역시 안 되겠어. 포기해야 해.'
'이대로 가다간 망할지도 몰라.'
그래서 포기하려 했는데 상황이 변했다.
나날이 발전하는 조선을 따라가기 위해 따라 했는데 문제가 생기자 포기하려 했다.
그런데 자진해서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그것도 전보다 더 열심히 일한다는 보고가.
그게 인간의 욕심 때문이라니.
그동안 고민하며 불안해했던 모든 순간들이 허망했다.
연은 그러는 그들을 보고 두 손을 활짝 폈다.
그러더니 주먹을 쥐고 오른손 손가락 3개를 펴서 과일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 세 손가락만 있으면 물건을 집을 수 있습니다."
"그거야 두 손가락만 있어도 되는 것 아닙니까?"
"하나의 예를 든 것입니다. 생각해봅시다. 이전에도 진짜 일하는 사람은 3할이 넘지 않았을 겁니다."
"예?! 그게 무슨···."
"잘 생각해보세요. 진짜 생산성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모두가 뭔가를 생각해보더니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깨달은 것이다.
마지못해서 하는 것보다 자진해서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걸.
"중요한 건 일할 목적을 만들어 주는 겁니다. 그렇다고 이룰 수 없는 목표를 주면 아니 됩니다. 중도에 포기할 수도 있으니까요."
"아, 그래서 이처럼 대단한 기술이 있는데도 공개하지 않고 하나씩 단계적으로 출시하고 있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중요한 건 단계적으로 해야 한다는 겁니다. 처음부터 어려운 목표를 정해주면 백성들은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할 겁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쉽게 이룰 수 있는 목표를 정해줘야 합니다."
"역시 폐하십니다. 그래서 제가 그렇게 요구했는데도 만물상자를 송출할 수 있는 장비를 팔지 않으셨던 겁니까?"
연은 대답 대신 빙긋 웃었다.
수도 없이 요청을 해왔기에 우방국에는 라디오 방송을 할 수 있는 장비를 판매했다.
하지만 TV 방송 장비는 판매하지 않았다.
아직 때가 이르다고 봤기에 그런 거였다.
주변국보다 잘살고 있는 우방국이지만, 조선과 비교하면 낮을 수밖에 없는 경제 수준.
그에 따라 구매력도 낮았다.
그런 상태에서 TV 방송을 시작해봐야 얼마나 보겠는가.
보고 싶어도 만물상자를 살 돈이 없어서 볼 수 없을 게 틀림없었다.
연은 이런 질문을 전에도 받았었다.
기본 소득제를 뛰어넘어 진짜 요람에서 무덤까지 책임지는 조선을 보고 문식이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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