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237화 (237/275)

237. 날아오르기(2)

조선에서는 18세가 되면 이유 여하를 따지지 않고 '성인 교육대'에 들어가야 한다.

몸이 불편해도, 정신상태가 좋지 않아도, 일단 교육대에 입소한 후 따로 분리되어 교육을 받는다.

황실 가족이어도, 백정의 자식이어도, 구분 없이 8개월 동안 함께 어울려 지내야 한다.

청바지에 남방 하나 걸친 젊은이가 선풍기 바람을 쐬면서 만물상자를 보고 있었다.

어른 손으로 두 뼘 정도 되는 작은 화면을 보고 낄낄거리며 웃고 있는 젊은이는 얼음이 담겨 있는 수박화채를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중년 여인이 혀를 차더니 한 소리했다.

"병만아! 만물상자 좀 그만 봐라. 그러다 바보 된다."

"어머니, 무슨 말씀이세요? 바보 된다니, 말도 안 됩니다. 그거 다 헛소문입니다."

"이놈이!"

병만이 어머니는 들고 있던 빗자루를 번쩍 들어 병만이의 등짝을 후려갈겼다.

'악' 소리와 함께 불에 달궈진 오징어처럼 비비 꼬는 병만이.

"어머니, 좀 봐주세요. 어차피 곧 있으면 신병 교육대에 들어갈 건데 그때까지만 이렇게 지낼게요."

성인 교육대는 조선군을 양성하기 위한 '신병 교육대'가 시초였다.

하지만 이제는 조선군을 굳이 양성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이름을 바꾸었지만, 사람들은 입에 익어서인지 아직도 신병 교육대라 불렀다.

"이놈이 하라는 공부도 안 하고, 그렇다고 기술을 배우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뭐가 되려고 이러는 거냐?"

"저는 만담가가 될 겁니다. 어머니도 아시잖아요. 만담가가 얼마나 잘나가는지."

"이놈아, 정신 좀 차려라. 너처럼 책도 읽기 싫어하는 놈이 어떻게 만담가가 된다고. 에구···."

만물상자가 출시되자 백성들의 삶이 달라졌다.

만물상자 화면은 배불뚝이 브라운관도 아니고, 무거운 유리도 아닌, 폴리카보네이트로 만들었기에 가볍고 튼튼했다.

하지만 라디오와 달리 전기를 많이 먹는 만물상자는 가지고 다니면서 볼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방송이 시작되는 초저녁부터 온 가족이 만물상자 앞에 모였다.

병만이의 동생 봉선이도 밖에서 놀다가 해가 지자 집으로 들어왔다.

"어머니, 신문 어딨어요?"

"갑자기 신문은 왜 찾는데?"

"진숙이가 그러는데 복장 공모전이 열린대요. 신문에 자세히 나왔다고 하던데···."

"신문은 너희 아버지께서 출근할 때 가지고 가셨다."

"네?! 이러면 안 되는데···."

지켜보던 병만이가 끼어들었다.

"안된다니, 무슨 말이야? 그리고 네가 언제부터 신문을 봤다고 찾는 거냐?"

"언니는 좀 빠져 주시고요. 아, 맞아! 새소식을 들으면 되겠네."

봉순이는 병만이를 밀치고 만물상자 앞에 앉았다.

하지만 채널이 한 개뿐이라 만담 방송이 끝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다음 소식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조선전력공사에서는 최근 복원한 몽촌토성에서 복장 발표회를 연다고 발표했습니다.

-······.

-이번 발표회는 황후께서 주관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황후께서 주관하신다고? 보통 큰 발표회가 아닌가 보네. 봉선아 자신 있냐?"

"해봐야죠."

봉선이는 입술을 지그시 물면서 작은 주먹을 꽉 쥐었다.

어릴 때부터 재봉질을 잘한다고 소문난 봉선이.

동네마다 잘난 사람이 꼭 있었기에 확신할 순 없었다.

하지만 어릴 때부터 말썽만 피우던 병만이의 옷을 수선하면서 쌓인 지식이 있기에 자신 있었다.

어떻게 하면 튼튼하고 활동하기 편한 모양으로 옷을 만들지 수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 * *

연은 쌍식이를 경복궁으로 불렀다.

이번 복장 발표회의 주관사가 조선전력공사였기에 사장인 그를 부른 거였다.

"폐하, 그런데 이런 것을 꼭 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알아서들 잘들 입고 다니는데요."

"너야 옹진반도에서 생활하니 잘 모르겠지만, 오면서 느낀 게 없느냐?"

"무얼 말입니까?"

"아직도 우리 조선 백성들은 흰색을 너무 선호하는구나."

"그거야 어쩔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정도가 있지 너무 심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그러긴 합니다만, 복장 발표회를 한다고 달라지겠습니까?"

"달라질 거다. 안 되면 되게 해야 하고. 그냥 이대로 둘 순 없다. 흰옷도 문제지만 너풀거리는 복장은 불편하기만 하고 실용성도 없고 위험하다."

"그래도 백성들이 원하는 것인데···."

흰옷을 너무나 사랑하는 조선 백성들.

세상은 빠르게 변화되고 있지만, 아직도 조선 백성들은 폴리프로필렌으로 만든 조선 비단을 즐겨 입었다.

이제는 다양한 색으로 된 조선 비단을 출시하고 있지만, 판매되는 제품 중 9할은 흰색이었다.

단지 흰색만 선호한다고 연이 이러는 것이 아니었다.

때가 잘 타지 않은 조선 비단이라도 흰색은 쉽게 오염된다.

거기다 너풀거리기까지 하니, 그로 인한 사고도 자주 발생하고 있었다.

그래서 연은 조선의 복장을 대대적으로 바꾸려 한 거였다.

"쌍식아, 최근에 일어난 사고 중 너풀거리는 옷 때문에 일어난 사고가 몇 건이나 되는 줄 아느냐?"

"간간이 발생한다고 들었습니다."

"간간이라···, 올해만 해도 벌써 30건이 넘게 발생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그 정도였습니까?"

비단옷은 너무나 비싸서 고관대작이 아니면 양반이라도 쉽게 입을 수 있는 옷이 아니었다.

그런데 엄청나게 싼 가격으로 조선 비단이 출시되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모두가 조선 비단으로 만든 옷을 입고 다녔다.

하지만 사람들은 차별을 두기 위해 점점 더 풍성하고 너풀거리는 모양으로 된 옷을 입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사고가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승강기에 끼어 옷이 찢어지면서 다치는 사고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게 중에는 차바퀴에 옷이 끼어 죽는 일까지 생겼다.

그래서였다.

연이 황후에게 패션쇼를 주관하라고 부탁했던 이유가.

연은 문식이를 만난 후 고고학에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대대적인 발굴을 진행하라고 명했다.

연은 문식이에게 얻은 정보를 토대로 '문화제 보존관리 지역'을 지정하고 지도를 만들었다.

그중 하나가 21세기 잠실에 있던 몽촌토성이었다.

세계 제일의 도시라 불리는 한양이다.

근세인 17세기에 20세기처럼 발달 된 한양을 한 번이라도 구경했다면 누구나 한양에서 살고 싶어 했다.

그랬기에 지금도 끊임없이 한양으로 인구가 유입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한양은 갈수록 넓어졌다.

문식이가 아니었다면 몽촌토성이 있는 곳까지 한양이 팽창했을지도 몰랐다.

다행히도 문식이 덕분에 그런 일은 없었다.

몽촌토성을 원형 그대로 복원할 수 있었고, 묻혀 있는 유물들도 손실 없이 발굴할 수 있었다.

백제 초기에 만들어졌다는 몽촌토성.

근처에 있는 풍납토성이 왕성이었다면 몽촌토성은 외침을 받았을 때 방어용 성이라고 한다.

하지만 논란이 많았기에 문식이도 궁금했다.

그래서 연에게 그곳부터 발굴해 달라고 부탁한 거였다.

연 또한 조선의 뿌리가 깊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알리기 위해 그곳에서 패션쇼를 열기로 했다.

그것도 확실히 관심을 끌기 위해 황후에게 부탁하면서까지 말이다.

연이 이러는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더 많은 여인들이 사회에 진출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고자 했기에 패션쇼를 계획한 거였다.

다행히도 지금의 조선은 남존여비란 말이 날 돌지 않았다.

부부 사이도 서로 자네(자내)라 부르며 존중하는 시대였다.

그렇다 해도 여인이 사회에 진출하여 일하기는 쉽지 않았다.

미순이처럼 어릴 때부터 천재성을 보인다면, 은동리로 바로 모셔갔겠지만, 대부분은 그러지 못했다.

여인들이 꼭 필요한 학교나 관공서, 병원 같은 곳이 아니라면, 대부분 방직 공장이나 가내수공업 형태의 소규모 공장에서 일했다.

그것도 많은 수가 아니었다.

그래서 연은 엄청난 시장인 패션 산업에 여인들이 진출하기를 바랐고, 복장 발표회란 이름으로 패션쇼를 열면서 공모전까지 개최했다.

"그러니까, 여인들도 사회에 쉽게 진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네요."

"그렇지. 여인들이 사회에 더 많이 진출하면 우리 조선은 더 빨리 발전할 거다. 그러니 이 방법 말고 더 좋은 방법이 있다면 언제든지 말해주렴."

"알겠습니다. 폐하의 뜻이 관철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쌍식이는 커다란 눈에 힘을 주며 다짐했다.

황후까지 나서서 복장 발표회를 하는 이유를 이해했기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하지만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는지 다시 입을 열어 물었다.

"그런데 꼭 여인들이 사회에 진출할 필요가 있습니까?"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 중 반이 여인인데 그냥 두면 아깝지 않으냐?"

"그래도 여인들은 아이들을 키우고 집안일 하느라 바쁘지 않습니까?"

"은진이도 그렇더냐?"

"그건 아니지만···."

"은진이 없어도 복만이는 잘 크고 있다. 그 이유가 뭔지 알 텐데···?"

연은 '가정에서 아이들을 교육해야 한다'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연이 생각하는 국가관과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이 생각하는 국가란.

국민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국가라는 이름으로 인도받았기에 그들의 삶을 안전하게 보장하고, 지키고,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유아원까지 만들어 어릴 때부터 아이들의 사회성을 기르고 있었다.

가정에서까지 아이들에게 예절을 가르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예절 교육 지침서까지 만들어 놓았다.

유아원에서부터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고, 양보하고, 이해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성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 결과 조선에선 쓸데없는 논쟁으로 싸우는 일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학교에서 배운 대로 사람이란 서로가 모두 다르다는 걸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거야 알지만. 그래도 굳이 여인들 손까지 빌릴 필요가 있겠습니까?"

"필요하면 빌려야지."

"그렇습니까?"

"그렇다. 양순이만 보더라도 남자보다 일 잘하는 여인들이 많지 않으냐? 그냥 두면 낭비다. 그러니 차질 없이 행사가 진행되도록 해주렴."

"알겠습니다. 폐하."

쌍식이에게는 이렇게 말했지만, 시대의 흐름을 알고 있는 연이기에 미래를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훗날 어찌 될지 모르기에 남녀가 똑같이 서로 존중하는 이 시대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랬기에 양성이 함께 일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자 이렇게 일을 벌이고 있는 거였다.

쌍식이가 돌아간 후, 연은 왈라키아 공국의 3 왕자인 세르반을 불렀다.

은진이로부터 준비가 끝났다는 보고를 받았기에 그를 왈라키아 공국으로 보낼 생각에서다.

"폐하를 뵙습니다."

"그래, 수고가 많다."

"아닙니다. 폐하. 폐하의 보살핌으로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폐하."

그동안 세르반은 공국의 대사인 미르체아와 공국을 다시 차지하기 위해 의견을 나누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조국인 왈라키아 공국으로 뛰어가고 싶었지만, 그건 '개죽음이 될 수도 있다'는 연의 말에 기다리고 있었다.

"일은 사람이 꾸미지만, 일을 이루게 하는 것은 하늘이라는 것을 아느냐?"

"네, 폐하. 모사재인(謀事在人) 성사재천(成事在天) 불가강야(不可强也) 아니 옵니까?"

"맞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란 말도?"

"네, 폐하."

"그래, 준비할 수 있는 일은 다 준비했으니 이젠 가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어찌 생각하느냐?"

"당장이라도 갈 수 있습니다."

단단한 의지를 보이는 세르반을 보고 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백성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을 알기에 도움을 주고 있지만, 성사될진 알 수 없기에 마음이 착잡했다.

"체르나우치에 도착하면 마중 나오는 이가 있을 거다. 그를 따라가면 너를 지지하는 백성들을 만날 수 있을 거다. 아무튼 이제부터는 모든 일이 네가 하기에 달렸다. 이말 명심하고 꼭 해내길 바란다."

"네, 폐하. 꼭 명심하겠습니다."

연은 세르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줬다.

아직 어린 나이인 그를 사지로 몰아넣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아서였다.

황제가 된 후 행정권을 행식이에게 일임한 연이지만, 그래도 매일 같이 바쁘기는 마찬가지였다.

조선 내부 문제야 행식이가 알아서 처리하고 있지만, 주변국 문제는 연이 처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느새 어두워진 연의 집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광경은 무척이나 아름다웠지만, 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일만 끝나면 한동안 시간을 낼 수 있겠네.'

연은 은동리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궁금하여 가보고 싶었지만, 쉽게 움직일 수 없기에 답답하기만 했다.

그래서 서둘러 일을 진행하고 있지만, 모르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혁명이 일어난 프랑스에서 사회주의가 싹트고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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