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236화 (236/275)

236. 날아오르기(1)

조선 제국력 12년(1671) 5월.

거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농민의 비율이 절대적이었던 조선은 이젠 없었다.

연이 도시 위주로 조선을 발전시킨 덕분에 농민의 비율이 20% 이하로 낮아졌다.

그런데도 먹을 것이 풍부하다 못해 남아돌았다.

전 지구적으로 이상 기온이 요동쳤다.

하지만 반듯하게 개간해 놓은 만주와 우크라이나 지방의 곡창지대에서 생산되는 곡식이 많았다.

수확량이 반 이하로 줄었지만, 그 양만으로도 1억 5천만 명이 넘는 조선 백성들 모두가 먹고 남을 정도였다.

정점에 달한 대기근을 슬기롭게 넘기고 있는 조선 백성들.

문학과 예술을 감상하고 운동경기를 보면서 풍요로운 삶을 즐기고 있었다.

그동안 전라도에서 가장 큰 도시는 전주였다.

전주는 조선 황실의 근본인 곳이었고, 주변에 넓은 곡창지대가 있었기에 사람이 몰릴 수밖에 없는 곳이었지만, 이제는 그러지 못했다.

전 같으면 왜구 때문에 동해, 남해, 서해와 인접해 있는 해안에는 도시를 세우지 않았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수도 없이 조선을 침략했던 왜구는 사라졌고, 왜구가 될 수 있는 왜인들조차 조선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서해에서 영산강(榮山江)을 따라 접근할 수 있는 나주가 뜨고 있었다.

이제는 전라도에서 가장 많은 백성이 사는 도시가 되었다.

전라도의 중심 도시가 된 나주.

21세기에도 논밭투성이였던 곳이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동안 곡식을 키우던 영산강 남쪽 넓은 대지는 계획에 따라 도로와 하천이 정비되고 건물과 집들이 들어서면서 살기 좋은 마을로 변해 버렸다.

경복궁 앞 '한양 중앙 공원'처럼 커다란 공원이 조성되고, 바로 옆에는 제대로 지어진 축구 경기장도 있었다.

조선에서 가장 인기 있는 운동경기인 축구는 프로팀이 생기면서 나날이 발전해 갔다.

비록 동역에 국한된 거지만, 상사의 지원을 받는 축구 프로팀은 연고지에 큰 경기장을 짓고 더 많은 관객을 유치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오늘처럼 화창한 날에는 경기장이 미어터질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곳까지 사발이 자동차를 타고 온 정 씨와 박 씨.

주차 후, 경기장으로 걸어가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야! 저거 육발이 아닌가?"

"어?! 진짜 육발이네. 누가 타고 왔을까? 한두 푼이 아니라는데."

"별장 한 채 값이란 말도 있어."

"그래? 그 정도면 좀 노력하면 나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저걸 뭐 하려고 사. 기름만 많이 먹는다는데."

"멋있잖아."

연이 없어도 옹진반도는 잘 돌아가고 있었다.

위험한 연구시설과 산업시설이 즐비한 곳이지만,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원칙을 정하고 지침서를 만들어 따르도록 했기에 지금까지 큰 사고는 없었다.

연구원들은 연구과제로.

공돌이들은 연구 결과를 토대로.

기물들을 만들거나 개선하고 있기에 자자란 사고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안전 수칙을 지키고 있기에 사람이 크게 다치는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런 옹진반도에서 이번에 새로운 자동차 원형을 출시했다.

뒷바퀴가 두 개가 아닌 네 개로 된 육발이었다.

"그러긴 하지. 그래도 난 곧 출시될 전기자동차를 살 거야."

"왜? 돈도 많으면서."

"편하잖아."

"전기자동차가 편해?"

"응. 우리 아들놈 전기자전거 사줬는데 편해 보이더라고. 시끄러운 엔진 소리도 안 나고."

"그래?"

"응. 오일도 갈 필요가 없데."

"그건 편하겠군. 나도 그럼 전기자동차나 살까?"

"그게 좋을 거야. 곧 만물상자도 출시된다고 하는데 그것도 사려면 돈을 아껴야 할 거야."

조선 백성들이 열심히 일하고 돈을 모으는 첫 번째 이유는 시 외곽 주택단지에 집을 사거나 짓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처럼 조선전력공사에서 매년 새로 출시하는 기물들을 사기 위해서였다.

개인 간 돈거래를 인정하지 않고, 사기죄는 살인죄보다 더 크게 처벌하는 조선 제국.

그래서인지 백성들 간에 다툼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잠깐만 기다려줘. 들어가기 전에 '축구복표' 한 장 사 올게."

"나도 살 거니 같이 가세."

조선에선 도박판에서 빌린 돈은 갚지 않아도 되기에 도박으로 인한 문제는 극히 드물었다.

가지고 있는 돈으로만 도박을 했기에 다 잃더라도 빚을지는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너무나 큰돈을 도박으로 탕진한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그래서 연은 쌍식이에게 도박에 관해 조사하라 했고, 문제점을 찾아냈다.

'그러니까 도박꾼은 답이 없단 말이지?'

'네, 폐하. 한번 도박에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아예 합법적으로 도박을 할 수 있게 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연도 알고 있었지만, 백성들이 도박에 빠지는 이유는 '짜릿한 쾌감' 때문이었다.

따라서 도박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도박을 끊게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연은 축구복표를 시행했다.

경기의 승패는 물론 점수까지 맞추면 몇 배에서 몇십 배까지 배당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1푼에서 1원까지 돈을 걸 수 있는 축구복표.

도박에 미친 도박꾼이 아니더라도 축구를 관람하러 경기장에 온 사람들은 축구복표를 한 장씩 구매했다.

승패도 승패지만, 승리도 하고 돈도 벌면 더 짜릿한 쾌감을 안겨줬기에 사지 않는 사람이 드물었다.

"거, 신기하네. 저렇게 실시간으로 배당금이 표시되다니···."

"다 폐하의 제자들인 연구원들과 공돌이들 때문 아닌가."

"맞아! 컴퓨터라는 것으로 저걸 계산한다고 했지."

아무리 조선이 안전하다고 하지만, 조선이란 제국은 황제인 연이 중심이었기에 연의 안전은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랬기에 연은 황제에 오른 후, 은동리를 단순한 이유로 방문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전과 달리 수행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았기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도 걱정하지 않았다.

연보다 더 뛰어난 야코프가 있었기에 믿고 맡길 수 있었다.

하지만 야코프로 인해 새로운 단어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래도 연은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조선어로 바꾸려는 시늉이라도 했지만, 야코프는 그러지 않았다.

아니, 그럴 수가 없었다.

양순이에게 조선말을 배웠지만, 완벽하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야코프가 천재라고 하지만, 모국어가 아닌 조선말로 강의하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단어를 변형하지 않고 그대로 가르쳤다.

다행히도 조선에서 고르고 고른 천재들이라 야코프가 새로운 단어로 강의해도 잘 알아먹었다.

중요한 건 용어가 아니라 원리였으니 그럴 수밖에.

아무튼 그동안 뛰어왔다면, 야코프로 인해 조선의 과학 기술은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또한 20년 넘게 한 우물만 판 논식이가 있었기에 집적회로(IC)보다 수만 배 나 더 복잡한 CPU도 만들 수 있었다.

그에 따른 운영체제(OS)도 구축할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축구 경기장의 전광판은 물론 배팅판까지 실시간으로 제어되고 있었다.

"그런데 태자비 간택을 1년 늦추기로 했다며. 이유를 알아?"

"잘은 모르는데···, 들리는 말로는 태자께서 원하시는 태자비를 찾을 수 없어서 1년 늦추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어."

"잘됐네. 아직 어리신 데 빨리 혼인하실 필요는 없지."

"그거야 맞지만, 그래도 일찍 혼인하셔서 후손을 빨리 보셨으면 좋을 텐데."

"에이, 지금 혼인하신다고 후손을 볼 수 있나? 때가 돼야지."

"그러긴 하지. 참, 맞추지 못했더라도 복표는 버리지 마. 따로 추첨해서 만물상자를 상품으로 준다고 했어."

"그래? 이거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겠네."

둘은 1전을 걸고 구매한 축구복표를 품 안에 꼭 집어넣었다.

만물상자 출시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미리 신청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랬기에 언제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상품으로 받을 수 있다니 은근히 흥분됐다.

당첨만 된다면 동네에서 제일 먼저 만물상자를 볼 수 있으니 그럴 수밖에.

돈이야 열심히 일한 만큼 벌 수 있지만, 매년 조선전력공사에서 새로 출시되는 기물들은 돈이 있어도 살 수 없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미리 구입신청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조선방송국이 설립되면서부터 지금까지 국장으로 있는 선식이는 무척이나 바빴다.

지금까지 입으로만 떠드는 라디오 방송을 해왔지만, 이제는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줘야만 하는 만물상자 방송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잘라내는 게 좋겠어. 이 부분은 보강하고."

"알겠습니다. 국장님."

"그리고 광고 경매는 어찌 돼가나?"

"곰표 상사와 백설표 상사 그리고 꼬끼오 상사가 최고 입찰가를 써내서 첫 방송에 내보내기로 했습니다."

"그래?"

"네, 저도 의아했지만, 생각보다 매출이 대단한 상사들이었습니다."

"판세가 변해도 많이 변했군."

"그러게요."

연으로 인해 조선이 급격하게 변화되면서 기존 강자였던 상사들보다 더 큰 상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고무신, 장화, 운동화를 만들어 파는 곰표 상사.

설탕, 밀가루, 조미료를 파는 백설표 상사.

튀김 닭과 맥주를 파는 연쇄점을 운영하는 꼬끼오 상사가 요즘 떠오르는 대표적인 상사였다.

이 상사들은 백성들의 삶과 직접 연결된 상품을 팔고 있었기에 첫 방송에 광고를 내보내고 싶어 했다.

그랬기에 거액을 광고비로 책정하고 입찰했던 거였다.

"난 폐하를 봬야 하니 나머진 네가 알아서 처리 좀 해줘."

"걱정마십시오. 국장님. 요즘 새로 들어온 사원들이 무척이나 일을 잘합니다. 그러니 염려하지 마시고 다녀오십시오."

"복돌이들 말인가?"

"네, 복돌이들이 말도 잘하고 일도 잘하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아무튼 믿고 갈 터이니 차질 없이 준비 잘해야 돼."

"넵!"

굶주림 없는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살았기에 복돌이라 불리는 이들.

아는 것이 무척이나 많았다.

아니 모르는 게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번에 조선방송국에도 이런 복돌이들이 많이 들어 왔다.

새로 시작하는 만물상자 방송에 필요해서다.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에 이어 신병교육대에서 성인이 되는 교육을 받고 다시 대학교까지 나온 이들이기에 말귀는 물론 행동까지 거침이 없었다.

이런 복돌이들이 사회로 진출하자 조선은 다시 한번 변혁을 맞이하고 있었다.

실학주의 사상가이자 17세기 최고의 교육자라 일컫는 코메니우스.

조선 제국의 교육부 장관으로 있으면서 조선의 교육 체계를 확실히 잡아 놓았다.

이런 환경에서 학문을 배운 복돌이들.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다.

싫으면 싫다고, 좋으면 좋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다니는 세대였기에 딱 부러지는 세대라고 '딱세대'라 부리기도 한 복돌이들.

그들이 사회에 등장하자 많은 것들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복장이었다.

아직도 조선인의 복장은 널찍했다.

하지만 복돌이들은 몸에 딱 달라붙는 옷을 좋아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는 자율복장이었지만, 대학생이 되면 교복을 입고 다녔고, 그 교복이 딱 달라붙는 현대식 복장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학으로 전향한 송시열을 따르는 유교 탈레반들이 '허례허식 타파'를 외치고 다녔기에 조선인의 복장은 급격히 변해갔다.

* * *

아침부터 바쁘게 보낸 연이 점심때가 되자 황후를 찾았다.

새로 태어난 훤(煊)이 보고 싶기도 했지만, 할 말이 있어서였다.

"얼마 만에 폐하와 함께 점심을 먹는지 모르겠습니다."

"미안하오. 순이 크기 전까지는 어쩔 수 없을 것 같소."

"아닙니다. 폐하. 그냥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이십니까? 중요한 용무가 아니면 저녁에 말씀하셔도 되는데···."

"패션(Fashion)이란 말을 들어봤소?"

"은동리에서 퍼져 나온 말 아닙니까?"

"맞소. 그래서 말인데, 그대가 주도해서 패션쇼를 열었으면 하오."

"패션쇼라니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새로 유행할 복장을 선보여주는 행사를 말하는 것이요."

"그렇습니까? 그런데···."

왜 이런 걸 자신이 해야 하는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황후를 보고 연은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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