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 대기근과 함께하는 문화(8)
지난여름 대학가요제에서 우승한 김철수는 무척이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넓은 섬'이란 뜻으로 '너섬'이라 부르는 여의도에서 처음 열린 대학가요제는 대회 전부터 대단한 관심을 끌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교는 대제국이 된 조선의 최고 교육기관 아닌가.
그런 교육기관에서 공부하는 대학생들이 나와 노래를 부른다니 당연히 흥미를 끌 수밖에 없었다.
흥이 많은 한민족이라 노래와 춤은 모두의 관심사였다.
그래서인지 참가자 또한 무척이나 많았다.
김철수는 자신이 작사 작곡한 '예맥 찬가'를 불렀다.
그가 부른 '예맥 찬가'는 젊은 패기와 진취적인 내용이 가득 담겨 있기에 조선 전역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
가사 내용 자체가 젊은이들의 가슴을 울렸기에 여기저기서 공연요청이 세도 했다.
그래서 김철수는 휴학계를 내고 조선 전역을 돌아다녔다.
물론 혼자 다닌 건 아니었다.
가요제에서 입상한 이들과 함께 다녔다.
가볍고 연주하기도 쉬운 키타라는 악기를 연주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김철수는 단번에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다.
연이 고안하여 넘겨준 설계대로 장인들이 제작한 키타라는 악기.
연주하기도 쉬웠기에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러다 보니 대량 생산에 들어간 상사들이 많았고, 짧은 시간에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는 대중 악기가 되었다.
키타와 함께 팔려나가는 악기가 또 있었다.
그건 '짤랑이'라 부르는 탬버린이었다.
이 또한 연이 고안한 것으로 21세기 탬버린과 다른 게 있다면 한쪽 면이 가죽으로 되어있어 북처럼 활용할 수도 있다는 거다.
이렇게 김철수가 이끄는 대학 가수들이 키타와 함께 짤랑이를 흔들며 노래를 부르자 따라 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그러다 보니 키타와 짤랑이를 구해 마을 광장에서 노래를 부르는 이가 많아졌고 유행이 되었다.
이처럼 대기근 동안에 조선의 문화는 번창하고 있었지만, 유럽반도는 그러지 못했다.
* * *
120년 후에나 발생할 프랑스 혁명이 벌써 일어났다.
그동안 참고 참았던 프랑스 백성들.
빵을 달라며 파리에 있는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다.
무기를 조달하기 위해서였다.
몇 년 전부터 지속된 흉작으로 프랑스는 빵 만들 밀조차 부족했다.
그런데도 루이 14세는 망해버린 스페인을 차지하려고 병사들을 모집했다.
스페인의 마지막 왕인 카를로스 2세가 외사촌이었기에 자신이 스페인의 정당한 군주라고 주장하며 선동했다.
루이 14세가 이러는 이유가 있었다.
남쪽 피레네산맥만 넘으면 프랑스만큼 큰 이베리아반도를 차지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내전으로 엉망이 되어 버린 스페인.
그런 스페인을 노리고 있던 루이 14세.
신성로마제국이 해체되자 과감히 실행에 옮겼다.
'조선은 타국의 일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고 했고, 지금까지 관섭하지 않았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이베리아반도를 차지해서 힘을 키워야 한다.'
유럽 대부분을 지배했던 합스부르크 왕가가 쓰러지자, 그 자리를 대신하고자 했던 루이 14세.
병력을 모아 스페인으로 진격했다.
루이 14세는 프랑스 북쪽과 바다 건너 브리튼 섬을 차지하고 있는 브리튼 왕국은 신경 쓰지 않았다.
칼 10세와 상호평화협정을 맺은 게 있었기에 안심하고 있었다.
'조선의 제후국들 또한 명분 없이는 타국을 침략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니 브리튼 왕국이 쳐들어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연보다 3살 더 많은 루이 14세는 나름대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인 루이 13세가 만성질환을 겪다가 폐결핵으로 사망하자 5살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지만, 허울뿐이었다.
어머니인 안 도트리슈가 선왕인 루이 13세가 죽으면서 남긴 유언을 지키지 않고 섭정에 나섰기 때문이다.
합스부르크 왕가 출신인 안 도트리슈.
아들 대신 섭정으로 권력을 잡자 이탈리아 출신 추기경 쥘 마자랭을 중용했다.
어머니와 마자랭의 꼭두각시로 살아야 했던 루이 14세.
연에게 사기 친 대가로 조서원의 요원에게 암살당한 마자랭이 죽자 직접 통치에 나섰다.
마자랭에 대해 연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연을 따르는 은진이가 그를 그냥 두지 않았다.
마자랭이 사망한 후 찾아낸 그의 부정 축재 규모는 상상을 초월했다.
루이 14세는 마자랭의 전 재산을 몰수하고 마자랭과 관련된 자들을 모두 쳐냈다.
군을 개혁하고 문학과 예술에 후원하며 프랑스의 위상을 높이는 데 신경 썼다.
이처럼 프랑스를 잘 다스리고 있던 루이 14세.
잘못된 결정, 단 한 번으로 나락으로 떨어져 내렸다.
마자랭과 붙어먹은 어머니의 간섭에서 벗어난 루이 14세.
조선처럼 강력한 중앙 집권을 노렸다.
스페인까지 먹어 치워 세를 불리려고 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에서부터 시작된 흑사병으로 유럽반도 전체가 공포에 휩싸였기에 루이 14세는 뜻을 이룰 수 없었다.
조선의 영향으로 유럽반도에 사는 사람들도 흑사병이 왜 발생하는지 아는 이가 많았다.
그래서 고양이도 다시 키우고 있지만, 소빙하기로 인한 대기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자 아무 소용이 없었다.
루이 14세가 스페인을 차지하려고 보낸 병사들.
흑사병으로 쓰러져 나갔다.
난민들이 먹을 것을 찾아 프랑스로 이동하고 있지만, 너무 많았기에 단속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흑사병이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성 위주로 발달 된 유럽의 도시들.
구조적 문제와 사람들의 안이한 인식으로 전염병이 번지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랬기에 루이 14세는 강력하게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파리로 접근하면 모두 죽여라!'
루이 14세가 전염병을 막기 위해 내린 명령이다.
이 명령 하나로 루이 14세는 군주의 자리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루이 14세가 파리를 봉쇄하는 통에 파리에 사는 백성들은 더욱 굶주려야만 했다.
그런데도 루이 14세와 귀족들은 봉쇄를 풀지 않았다.
거금을 주고 몰래 사들인 설파제까지 잘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겁이 난 귀족들이 비싸게 주고 구입한 설파제를 생각 없이 마구 처먹었기에 내성이 생긴 거였다.
그로 인해 잠시 주춤하던 흑사병은 더욱 빠르게 확산되었다.
이 사실은 즉시 조서원의 수장인 은진이에게 보고됐고, 연은 과감히 국경을 폐쇄하라 명했다.
설파제도 듣지 않은 새로운 흑사병이 조선 내에서 퍼지기라도 한다면 대책이 없기 때문이었다.
조선이 국경을 폐쇄하자 그로 인해 조선으로부터 수입하던 밀 공급이 끊어졌다.
그러면서 유럽반도는 더욱 망가져 갔다.
중원처럼 각지에서 낫과 곡괭이를 들고 민란이 일어났고,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림과 병 그리고 전쟁으로 죽어갔다.
그런데 이때 나선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한반도에 뿌리를 두고 있던 조선인들이었다.
"남쪽은 먹을 것이 없어 난리가 났다는데 괜찮을까?"
"아니겠지. 변형된 흑사병 균까지 퍼졌다는데···."
"그럼 잘 먹어야 하는 것 아니야?"
"서로 싸우느라 농지가 다 망가졌는데 어디서 먹을 것을 구해?"
"그럼 우리라도 도와주면 안 돼? 다 같은 사람인데 누군 이렇게 평온하게 살고 누군 끔찍한 곳에서 굶어 죽다니 난 못 보겠어."
"나도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어쩔 수 없어. 도와주고 싶지만, 폐하께서 국경을 차단하셔서 방법이 없어."
없을 때도 콩 한 쪽을 나눠 먹었던 정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한반도.
그곳을 떠나 서역으로 이주해 살고 있는 조선인들.
어려웠을 때 도와야 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어떡해서든 굶주린 유럽반도 사람들을 돕기 위해 알아보고 있었다.
그때 효종이 서역에 도착했다.
중역을 거쳐 사파비지역까지 살펴보고 소양에 온 효종은 바벨성에서 여독을 풀고 있었다.
"폐하, 성밖에서 백성들이 외치는 소릴 들었습니다. 우리 조선은 여유가 있으니 도와주면 아니 되겠습니까?"
"도와주고 싶어도 전염병 때문에 국경을 폐쇄하지 않았소. 그 문제는 연에게 맡겨 둡시다."
"하오나 폐하. 방법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방법이라···? 무슨 방법이오? 말해보시오."
"우방국인 체코에는 밀을 공급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양을 늘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음···."
조선은 국경에 조선군까지 투입해 막고 있었다.
그렇다 해도 우방국인 체코에는 정기적으로 대량의 밀을 보내주고 있었다.
밀이 남아돌기도 하지만, 곡식이 부족한 우방국을 지원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다.
아무리 농사를 지을 수 없을 정도로 천지가 요동을 치고 있지만, 만주와 우크라이나 지방에서 생산되는 밀을 다 소화 시킬 수 없었다.
쌀에 진심인 조선인을 따라 쌀밥을 먹는 서역인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아무튼 인선태황후의 의견을 들은 효종은 연에게 연락했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서다.
"······이렇게 된 거 도와주면 안 되겠냐?"
-알겠습니다. 아버지,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효종의 말을 듣고 연은 즉시 체코 왕국의 왕인 안톤에게 연락했다.
-폐하. 그동안 지원해주신 것도 고마운데, 이렇게 부를 쌓을 수 있도록 도움까지 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어차피 우린 제값을 받고 팔뿐이요. 남는 것은 당연히 수고한 체코 왕국이 가져가야 합니다. 그러니 바로 처리해 주세요."
-네, 폐하. 가지고 있는 밀부터 바로 수출하도록 하겠습니다.
연은 특별한 자원이 없어 제후국 중 가장 낙후된 체코 왕국에 엄청난 양의 밀을 보내기로 했다.
그 밀을 판매하여 부를 쌓고 조선의 제후국으로써 당당해질 수 있도록 운송비 정도 건질 수 있는 가격으로 말이다.
이로 인해 조선의 제후국이자 우방국인 체코 왕국은 유럽반도에서 가장 큰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프랑스가 갈가리 찢겨 나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조선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체코 왕국.
힘은 있지만, 명분이 없었기에 나설 수가 없었다.
* * *
대항해시대를 열면서 식민지를 정복하고 착취하면서 발전했던 유럽반도의 나라들.
이젠 그런 나라들은 없었다.
예맥남로를 따라 철도가 개설되자 대항해시대는 막을 내렸다.
식민지를 바탕으로 강력한 제국을 꿈꾸었던 유럽의 나라들.
한때 식민지였던 남역에서 쫓겨난 후에도 아프리카 희망봉을 거쳐 인도양까지 진출하려고 했지만,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값싸고 질 좋은 조선의 물품들이 기차에 실려 유럽반도까지 쏟아져 들어오자 포기해야만 했다.
연은 조선을 발전시키면서 하나의 원칙을 지키고 있었다.
그건 바로 철도를 따라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 이유를 문식이가 묻자 연은 이렇게 답했다.
'어차피 도시 위주로 발전할 거잖아. 그럴 바엔 처음부터 제대로 된 도시를 세우는 게 좋지.'
-그러긴 하지.
사람들이 모일만한 곳에 사람들이 모여 마을이 되고 커지면 도시가 된다.
연은 이런 과정에서 난개발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면 유럽처럼 엉망진창이 될 수 있잖아.'
-그래도 너무 강압적인 거 아냐?
'그래도 어쩔 수 없어. 너도 알다시피 난개발된 도시는 슬럼화가 되고 빈민들이 사는 소굴이 되잖아. 난 그런 꼴을 보고 싶지 않아.'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
'물론 자연을 보전하려는 이유도 있고, 백성들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려는 목적도 있지.'
연이 철도를 따라 도시를 건설한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다양한 이유가 있었고,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삶의 질이었다.
'생각해봐. 너희 왕국 백성이 몇 명이나 되는지 너도 잘 모르잖아?'
-흩어져 사는 원주민들을 모두 파악할 수 없으니 당연한 것 아니야?
'그럼, 파악되지 않은 백성들이 어떻게 사는지 모르는 거잖아?'
-어쩔 수 없는 것 아냐?
'아니지. 우리는 거의 다 파악하고 있거든.'
-어떻게?
'도시로 나와야만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홍보하고 있어.'
-그래?
사실 조선 또한 예맥 북로 위쪽인 시베리아 동토는 관리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예맥 기병대를 보내 순찰하는게 다였다.
2년 이상 토양 온도가 섭씨 0도 이하로 유지되는 땅.
사전적 의미로 '영구동토'이다.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기에 원주민의 흔적조차 발견하기 힘든 곳이다.
하지만 꾸준히 예맥 기병대를 내보내 정찰하면서 비상대피소를 만들고 그곳에 식량을 보관해 놓았다.
그러다 보니 예맥 기병대가 나타나면 원주민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 같으면 모피를 노린 사냥꾼들로 인해 무법천지가 되어 숨어 살았겠지만, 그들과 다르다는 걸 원주민들은 알아챘다.
수시로 먹을 것을 갖다주면 맹수도 길들일 수 있기에 그리한 거였는데, 예상대로 들어맞았다.
중무장한 예맥 기병대가 나타나도 적의가 없다는 걸 안 원주민들.
조심스럽게 다가와 교류를 시작했다.
그들 또한 소빙하기의 정점을 피할 순 없었기에 도움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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