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229화 (229/275)

229. 대기근과 함께하는 문화(3)

우크라이나 지방의 서남쪽에 있는 체르니우치는 예맥 기병대의 주둔지 중 하나이다.

가까운 남쪽에 왈라키아(루마니아, 몰도바) 공국이 국경을 접하고 있다.

그래서 수시로 순찰하고 점검해야 했기에 조선전력공사 경비대는 그곳에 요새를 지어 놓았다.

체르니우치 요새에서 중대장으로 근무하는 아타이는 대원들을 이끌고 국경 순찰에 나섰다.

매달 한 번씩 나서는 정기 순찰이지만, 이번 순찰은 특히나 신경 썼다.

분기마다 한 번씩 있는 수색대회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모두 정신 빠짝 차려야 한다. 알았나?"

"""멸!"""

중대원들의 힘찬 구호에 아타이는 씩 웃었다.

언제 봐도 믿음직스러운 자신의 중대원들.

뒤를 맡겨도 될 만큼 용맹하고 듬직했다.

그만큼 노련한 대원들이지만,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연대 수색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지리를 잘 몰랐기에 이 지방 출신인 일리아가 이끄는 중대에게 번번이 우승을 빼앗겼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꼭 이겨야 했다.

그래야만 명예점수 1점을 추가로 획득할 수 있는 정찰점수 10점을 채울 수 있으니.

"이번 순찰에서 우리 중대가 꼭 우승해야만 하는 이유 다 알지?"

"""멸!"""

또다시 힘차게 외치는 대원들의 구호 소리에 말들이 놀랐는지 아니면 같이 힘을 내겠다는 건지 푸드덕거렸다.

"고맙다. 다 같이 힘내서 이번 순찰에서 꼭 우승하고 명예 점수를 획득하자! 알았나?"

"""멸!"""

모두가 한마음처럼 힘차게 구호를 외치자 아타이는 말에 올라타고 손을 앞으로 내던졌다.

"자! 그럼 출발!"

아타이를 선두로 국경으로 향하는 중대원들.

살아왔던 지역은 달랐지만, 서로를 위하는 마음만은 다르지 않았다.

한번 순찰에 나서면 보름에서 한 달간은 함께 뒹굴고 살아야 했기에 서로를 보호하고 지켜주는 마음은 하나였다.

이번에는 꼭 우승하여 정찰점수 10점을 채우겠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그래야만 동료 대원인 파블로에게 장기 휴가를 안겨줄 수 있을 테니까.

"우리와 함께 뒹굴었던 파블로!"

"""파블로우! 파블로우!"""

"장가간다네!"

"""장가간다네! 에···. 장가간다네! 에···."""

"꽃처럼 아름다운 색시에게 장가간다네!"

"""부럽다네! 에···. 부럽다네! 에···.""

누군가 시작한 노래에 맞춰 단체로 후렴(後斂, Antiphona)을 부르며 따라가는 대원들.

이번만큼은 정찰 대회에서 우승할 자신이 있었다.

지금까지 지리를 잘 몰라 번번이 우승을 놓쳤지만, 이젠 이 지역에 관해 자세히 파악해 놓았기에 절대 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중대장인 아타이를 믿었기에 자신 있었다.

아타이 중대장이 누군가.

예맥 기병대가 창설될 때부터 지금까지 근무해온 전설적인 기병대원 아닌가.

청나라부터 무굴, 사파비 제국과 치렀던 전쟁에도 참전했던 아타이는 부상으로 한동안 쉰 적이 있었지만, 그는 누구나 인정하는 예맥 기병대의 역사였다.

그런 아타이였기에 소속 중대원들은 수색대회에서 우승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쉽지 않았다.

아타이 만큼 노련하고 뛰어난 중대장들이 예맥 기병대에는 넘치도록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이번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정찰점수 10점이면 명예점수 1점을 추가로 얻을 수 있다.

명예점수 1점이면 추가로 5일 유급휴가를 신청할 수 있기에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너, 나랑 같이 입대한 지 5년 됐지?"

"응."

"그럼 너도 명예점수가 5점이네."

"그런데?"

"나도 5점인데. 이번 정찰에서 우승하면 추가로 1점 더 얻을 수 있으니, 잘하면 한 달 동안 휴가를 떠날 수 있겠다. 함께 갈래?"

"어디 좋은 곳이라도 있어?"

"요즘 신역이 뜨고 있잖아. 그래서 난 신역에 가 보려고."

"한 달 가지고 되겠어?"

"비행기 타고 가면 돼. 함부르크에서 타면 퀘벡까지 단번에 갈 수 있어."

"그게 참말이야? 위험하지 않을까?"

본격적으로 여객기를 이용한 운송이 시작되었지만, 이용객들은 많지 않았다.

하늘을 난다는 말에 타고는 싶었지만, 혹시라도 고장이나 사고로 추락할까 봐 불안해서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젊은이들 말고는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위험하긴! 아직까지 사고 소식이 단 한 번도 없었잖아."

"그러긴 하지만···."

"왜? 고소공포증이라도 있어?"

"무슨 소리! 내가 놀이기구를 얼마나 잘 타는데."

"맞아! 너처럼 겁 없는 녀석도 드물지. 그런데 비행기는 왜 무서워할까?"

"무서운 게 아니라 장가는 가고 죽어야 할 것 아냐?"

"가면 되잖아? 마을 광장에만 나가도 너 좋다는 처자들 널려 있을 건데."

모두가 잘사는 동역은 물론, 아직도 지역마다 격차가 있는 중역과 서역에서도 조선전력공사 직원이라면 최고의 신랑감이었다.

"좀 더 세상을 구경한 후에 생각해 보려고. 그래서 사귀지 않았던 거야."

"그래? 잘됐네. 나도 그럴 생각이니. 그럼 이번 정찰 끝나면 함께 휴가 신청하는 거다?"

연으로 인해 세상이 한바탕 뒤집힌 후라 가문을 따지고 대를 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보기 드물었다.

대신 세상을 즐기고자 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알았어."

"좋아. 비행기표는 내가 예약해 놓을 거니 넌 돈만 준비해놔."

"쉿!"

대답 대신 손가락을 입술에 붙이고 짧게 외치는 대원의 행동에 모두 멈춰 섰다.

중대장 아타이가 대원에게 다가가자 대원은 속삭이듯 입을 열었다.

"중대장님, 우측에 덫이 있는 것 같습니다."

씩 웃는 아타이.

손짓으로 대원들에게 수색을 명했다.

"여기! 반응덫(Booby Trap)이 있습니다."

"수고했다. 잘 챙겨놔라."

"넵! 중대장님."

더는 조선에 대항할 만한 세력이 없다고 하지만, 조선전력공사 경비대의 훈련은 쉴 틈이 없었다.

특히나 국경 수비를 담당하는 예맥 기병대는 더욱 바빴다.

점수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수시로 조선으로 넘어오는 난민이 많았기 때문이다.

조선 전역이 안정되면서 경비대원들 또한 안정된 삶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나태해져 갔다.

하지만 연은 이런 꼴을 그냥 보고만 있지 않았다.

점수제를 도입하고 그 점수에 따라 상벌을 내리도록 명했다.

그래서 시작된 조선전력공사의 점수제.

직원들이나 대원들은 최종적으로 명예점수와 합산되는 각종 점수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

명예점수야말로 노력한 대가에 대한 확실한 보상이었다.

그랬기에 모두가 명예점수를 따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었다.

조선전력공사는 1년 동안 아무런 사고 없이 근무하면 명예점수 1점을 준다.

명예점수 1점당 1년에 5일 유급휴가를 신청할 수 있었고, 10점을 채우면 1년 동안 장기 유급휴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랬기에 대원들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명예점수가 소중했다.

이번에 혼인하는 파블로의 명예점수는 9점.

같이 뒹굴었던 파블로에게 1년이라는 장기 휴가를 보내기 위해서라도 이번 수색대회에서 우승할 필요가 있었다.

아무튼 이런 점수 제도로 인해 조선전력공사의 경쟁력은 유지되고 있었다.

반응덫을 제거하고 다시 출발하는 예맥 경비대원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먼저 출발한 순찰대가 숨겨 놓은 반응덫을 발견하면서 정찰점수 1점을 얻었기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갔다.

"중대장님, 아무래도 눈이 많이 내릴 것 같습니다."

"음···. 그래 보이네. 조심들 하라고 전해라. 휴가 며칠 더 얻으려다 사고라도 나면 개고생이다."

"알겠습니다. 중대장님. 그리 전하겠습니다."

대원들에게 1점이라도 더 명예점수를 챙겨주려던 아타이는 점점 쌓여가는 눈밭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정찰점수를 챙기는 것보다 대원들의 안전이 더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자! 자! 힘들 내고, 저 능선만 넘어가면 비상대피소가 있으니 그곳에서 오늘 밤을 지내도록 하자."

"넵! 중대장님. 자! 모두 힘들 내자고."

눈이 쌓이자 대원들은 말에서 내려 말을 끌고 갈 수밖에 없었다.

말을 타고 가면서도 잘 수 있는 예맥 기병대원들이지만, 눈 쌓인 깊은 산중에서 말이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위험했기에 그리한 거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능선을 넘어서 비상대피소로 향하던 대원들.

그들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넋이 나간 것처럼 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서 있었다.

"뭐해! 사주 경계하지 않고!"

아타이의 말에 정신을 차린 대원들은 빠르게 사방으로 퍼져나가 주변을 수색했다.

"중대장님. 아무래도 난민들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

"네, 중대장님. 난민이라고 보기에는 입은 옷들이 너무 고급스럽습니다."

"흠···. 일단 한쪽으로 모아 놓아라."

"알겠습니다. 그런데 추적할까요?"

"신경 쓰지 마라. 남의 나라 일인데."

"그래도 우리 국경으로 넘어 온 자들입니다. 여기까지 쫓아와서 죽였다니 아무래도 수상합니다. 그냥 둬도 되겠습니까?"

"흠···."

아타이는 고심에 빠졌다.

매번 순찰에 나설 때마다 비상대피소에 비상식량을 가득 채워 놨다.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국경으로 찾아온 난민들을 위한 것이었다.

평소라면 식량만 가지고 사라졌을 난민들이지만, 이번에는 비상대피소 주변에 시체로 널려 있었다.

그 모습은 하나같이 처참했다.

아타이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 아렸지만, 꾹 참았다.

명분 없이는 타국의 일에 일절 관여하지 말라는 조선전력공사 경비대 총사령관이자 조선 제국 황제인 연의 명이 있었기 때문이다.

-탕! 탕! 탕!

고심에 빠진 아타이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뭐야?"

"대원들의 총소리입니다."

"가자!"

가볍게 말 위에 올라탄 아타이는 총소리가 나는 곳으로 말을 몰았다.

가파른 절벽이나 다름없는 지형에 눈까지 내리고 있었지만, 여진족 출신인 아타이에게는 평지와 같았다.

"무슨 일이냐?"

"왈라키아 놈들이 먼저 활을 쐈습니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아타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에서 내렸다.

"모두 몇 명이나 되더냐?"

"흩어져서 도주 중이라 잘 모르지만, 사살된 놈들은 모두 12명입니다."

"위치는?"

"당연히 우리 조선 땅 안입니다. 너머로 도망간 놈들은 그냥 뒀습니다."

"잘했다."

조선에서는 경비대의 검문에 불응하면 무조건 총격을 가했기에 왈라키아 병사들이라고 해도 조선의 영토로 넘어오는 일은 거의 없었다.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자국의 백성들이 조선 영토로 넘어가는 일이 있더라도 기다리고 있다가 가지고 온 식량을 빼앗았지, 따라와서 죽이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국경까지 넘어와 학살하다니.

"아무래도 수상하다. 죽은 자들 중에서 옷차림이 다른 이가 있나 확인해 보라."

"넵! 중대장님."

"너는 바로 연대본부에 무전 때리고."

"넵!"

10년 가까이 예맥 기병대에서 근무했던 아타이라 사고 대체가 번개 같았다.

* * *

대기근 동안 조선의 문화를 꽃피우고자 세웠던 계획을 점검하던 연은 이 소식을 듣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비상대피소에서 살아남은 자가 한 명 있는데 그자가 왈라키아 왕자이고 도망가다 사살된 자도 왈라키아 왕자란 말이지?"

-네, 폐하. 상처를 입어 쓰러져 있던 자가 정신을 차렸는데 자신이 왈라키아 왕자라 말하고 있습니다.

"왈라키아에서는 별다른 연락은 없고?"

-네, 폐하. 아마도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알았다. 그곳을 사수하라 전하고, 도발하면 밀어버리라고 해라."

-명에 따르겠습니다. 폐하!

오스만제국이 무너지자 독립을 선언한 왈라키아 공국.

조선의 속국이 되고자 했지만, 조건에 부합되어 거절당했다.

오스만제국과 신성로마제국이 전쟁을 벌이자 그 틈을 이용해 세력을 넓혔던 트란실바니아 공국은 루마니아와 몰다비아를 통합하여 왈라키아 공국을 세웠다.

하지만 신분제를 폐지하지 않았기에 조선의 속국이 될 수 없었다.

그렇다 해도 자급자족이 가능한 흑해 연안에 인접한 곡창이 있기에 왈라키아 공국의 사정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소빙하기가 다가오자 흉작이 지속되었고, 그에 따라 굶주린 백성들이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중 일부가 조선으로 넘어가자 왈라키아 공국은 국경을 틀어 막았다.

국경 근처로 다가오는 자국의 백성들을 무참히 죽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배가 고파서 조선으로 향하는 백성들을 모두 막을 수는 없는 일.

마을마다 조사하여 사라진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가족들을 대신 처벌했다.

그러다 보니 왈라키아 공국의 백성들은 조선 국경으로 넘어가서 비상대피소에 쌓여 있는 곡식을 가져오는 게 일이었다.

병사들에게 빼앗기더라도 약간이나마 챙긴 곡식으로 삶을 연명할 수 있는 길은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학살을 자행한 적은 없었다.

그랬기에 아타이가 세심히 조사했고, 그 결과 왕자들끼리 서로 싸우다 벌어진 일로 판명 났다.

그렇다 해도 일국의 왕자를 사살했기에 그냥 모른 척할 순 없었다.

"폐하, 당장 왈라키아 공국의 대사를 부를까요?"

"흠···, 오늘은 늦었으니 낼 아침에 보자고 전해라."

"알겠습니다. 폐하."

비서관이 나가자 연은 쌍식이에게 손 짓을 했다.

"제가 할 일이 있겠습니까?"

"당장 은동리로 돌아가 은진이에게 전해라. 여차하며 왈라키아 공국을 뒤집어 버리라고."

"네, 폐하."

그러지 않아도 사방으로 몰려오는 굶주린 난민들 때문에 연은 골치가 아팠다.

이런 일을 예상하고 체코 같은 우방국을 만들어 놓았지만, 직접 국경을 맞대고 있는 왈라키아 공국 같은 곳이 몇 곳 있었다.

그중에는 청나라와 후금, 남명도 끼어 있었다.

그래서였다.

연이 왈라키아 공국을 엎어버리려고 한 이유가.

'백성들이 따르지 않는 군주는 주변국에 피해를 줄 뿐이야.'

연은 타국의 일에 관여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

또한 일부러 그냥 두었다.

그래야만 조선의 백성들이 뭐가 좋은지 판단 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왈라키아 공국처럼 소란스러운 주변국은 달갑지 않았다.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