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228화 (228/275)

228. 대기근과 함께하는 문화(2)

조선 제국력 11년(1670) 1월 1일.

경술년(庚戌年) 새해를 맞이하여 연은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오늘 폐하께서 발표하신 담화문 내용을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따라서 폐하께서는 지나가는 일이니, 백성들은 안심하라하셨습니다.

-또한 자주 발생하는 천재지변으로 사고가 날 수 있으니 안전에 주의하라 하셨습니다.

새해 첫날부터 햇무리가 졌다.

그것도 양이(兩珥)라 말하는 두 개의 햇무리가.

하지만 백성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곡간에 먹을 식량이 가득했고, 상점에 가더라도 생필품이 쌓여 있었기에 걱정은커녕 들떠 있었다.

남양주 두메골에 사는 김 기사도 생각보다 많은 상여금에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었다.

근처 공단에서 가구 만드는 일을 하는 김 기사는 같은 처지에 있던 어릴 때 동무와 혼인을 했다.

친한 동무 중에는 서역에서 온 백설보다 하얀 처자와 혼인하는 이도 있고, 남역에서 온 까무잡잡하고 체구가 작은 여인과 혼인한 이도 있다.

하지만 김 기사는 배고플 때 콩 반쪽을 나눠준 순심이를 잊지 못하고 여생을 함께 하기로 했다.

"이 돈으로 사고 싶은 것 사시오."

"어머나! 뭔 돈을 이리 많이 주십니까?"

"작년에 내가 도안한 의자가 대박 났잖소. 그래서 상여금을 두둑이 받았다오."

"아이구야~! 우리 코흘리개 서방님께서 고생이 많았네요. 저녁에 맛있는 것 해 먹읍시다."

"에헷! 누가 보면 어쩌려고, 말을···."

어릴 때부터 한동네에서 피죽도 못 먹고 함께 자란 사이라 둘은 부부지만 허물이 없었다.

"서방님, 이 돈은 모아 놓았다가 나중에 별장 지읍시다."

"아니 당장 필요하다고 사 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돈을 모은단 말이오?"

"기철이네 별장을 보니 탐이 납디다. 우리라고 그런 집 못 가질 이유가 없잖아요. 그러니 모아야지요."

집이건 건물이건 도심지는 전부 조선전력공사에서 관리하기에 땅을 임대받는다고 해도 마음대로 집을 지을 수 없지만, 시 외곽 주택단지는 원하는 대로 지을 수 있었다.

물론 주택조합의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멋진 집이 들어서는 걸 좋아했기에 될 수 있으면 많은 돈을 모아야 했다.

"적당히 짓고 살면 안 되겠소?"

"그럴 수는 없습니다. 서방님. 제가 알아서 할 터이니 서방님께서는 신경 쓰지 마십시오."

잘나가는 양반 가문에서는 부부라도 돈 관리를 따로 했지만, 일반 백성들은 대부분 안 사람이 재산을 관리했다.

평범한 백성들의 인생 목표는 시 외곽에 별장을 짓고 여행을 다니면서 사는 거였다.

그래서 돈만 생기면 바로 쓰고 마는 남자들보다 집 욕심이 많은 여자들이 돈 관리하는 집들이 많았다.

아무튼 김 기사는 오랜만에 본 큰아들에게도 세뱃돈을 많이 줬다.

마을에서 똑똑하다고 소문난 큰아들은 어렵지 않게 대학까지 진학했다.

동네의 자랑이자 가문의 영광이었다.

그렇다고 자주 볼 순 없었다.

대학생은 모두 학교 기숙사에서 생활했기에 잘해야 일 년에 서너 번 정도 보는 게 다였다.

그랬기에 두둑이 준 것이지만, 묻고 싶은 게 있었다.

"세뱃돈 받은 걸로 뭘 산다고?"

"키타 산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뭐?! 키타! 이놈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노래질을 한다고? 이런···!"

"아버지! 아버지! 제 말 좀 듣고 나서 화를 내셔도 내십시오."

"이놈이 뭘 잘했다고 큰소리야! 큰소리는. 당장 세뱃돈 네 어미에게 줘라. 그러지 않아도 전기밥솥 산다고 돈이 필요하단다. 냉장고도 사야 하는데···."

해마다 쏟아져 나오는 수많은 기물들.

전부 다 살 순 없어도 조금만 노력하면 필요한 건 하나씩 마련할 수 있었다.

그래도 최종 목표가 있기에 아껴 쓰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믿었던 아들놈이 놀기 좋아하는 이들이나 가지고 다닌다는 키타를 산다고 하자 한숨이 나왔다.

"아버지, 이번에 열리는 '대학가요제' 아세요?"

"그거야 알지. 매일 같이 라디오에서 홍보하잖아."

"제가 거길 나갈 겁니다."

"뭐?"

"아버지도 아시잖아요. 제가 어머니 닮아서 노래 잘 부르지 않습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냐. 네 어미보다 내가 훨씬 노랠 잘 부르는데. 넌 나 닮아서 똑똑하고 노래도 잘 부르는 거다. 알았냐?"

동네에서 소문나 음치인 아버지의 말에 김철수는 피식 웃었다.

"네, 네. 아버지 말씀이 맞습니다. 제가 아버지 닮아서 노랠 잘 부르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대학가요제에 나가려고 합니다. 상금이 얼마나 되는 줄 아세요?"

"얼마나 되는데?"

김철수는 검지를 들어 치켜세웠다.

"일 원? 그거 받아서 어디다 쓴다고. 그 돈으로 전기자전거나 사면 되겠네."

실망하는 아버지의 말에 김철수는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더니 두 손을 들어 손가락을 쫙 폈다.

"십 원?"

다시 고개를 흔드는 김철수.

"백 원?"

그제야 김철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백 원이나 준다고? 그게 말이 돼?"

"라디오에서 들으셨다면서요?"

"그거야 흘러나오니까 들었던 거지. 근데 백 원을 준다는 게 참말이냐?"

"네, 아버지. 그래서 부탁이 있어요."

"뭔데? 말만 하렴."

"달걀 좀 많이 챙겨주세요. 그래야 수탉처럼 노랠 잘 부를 것 아닙니까?"

"알았다. 내, 네 어미에게 말해 두겠다."

다행히도 김철수의 아버지는 더는 화를 내지 않았다.

되려 잘하라고 그가 원하던 달걀까지 챙겨주었다.

대학을 다니는 아들이 조선전력공사에 입사하길 바랐지만,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상에는 자기 아들만큼 똑똑한 이들이 많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단지 희망 사항이었다.

하지만 조선전력공사에서 주최하는 대회에서 우승하면 특채로 조선전력공사에 입사할 수 있다.

그랬기에 김 기사가 태세 전환을 한 거였다.

아무튼 관공서에 들어가든 상사에 들어가든 활발하고 잘 노는 이가 인기가 많았고 대우도 좋았기에 아들이 키타를 산다는 걸 더는 말리지 않았다.

또한 큰 상금도 탐이 났다.

아직도 쌀과 밀 같은 필수 곡식의 가격은 10년 전과 똑같았다.

하지만 소득이 급속도로 올라갔기에 돈의 가치는 그만큼 떨어졌다.

그렇다 해도 21세기와 비교하면 1원은 백만 원의 가치가 있기에 백 원이면 1억 원이나 되는 큰돈이었다.

작년부터 더욱 심해진 기상이변이 곳곳에서 벌어졌지만, 추운 날씨를 피해 이처럼 집안에서 새해를 보내는 가정이 많았다.

가정마다 사정이 다르기에 다 같을 수는 없지만, 대부분 가정에서는 이번 '예절 대회' 이야기가 화제의 중심이었다.

조선 방송을 중심으로 모든 라디오와 신문에서 홍보하고 있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 손주들도 예절 대회에 나가나?"

"그럼요 할아버지. 저는 바이올린 연주대회에 나갈 거여요."

"저는 피아노요."

"저는 가야금이요."

"저는 태평소입니다."

"아이구! 그렇구나. 우리 손주들 못 하는 게 없네. 다들 이리 모여봐라. 우리 손주들이 연주하는 걸 들어보고 싶구나."

예절교육에서는 1인 1악기를 이수해야만 통과할 수 있었기에 악기 하나는 연주할 줄 알아야 했다.

그래서 이처럼 가족이 많은 곳에서는 자체적으로 소규모 연주회도 열렸다.

아무튼 이러다 보니 예절교육만 따로 가르치는 사설 학원들이 생겨났다.

서역이나 유럽반도에서 사는 음악가들도 일자리를 찾아 대거(大擧) 동역으로 넘어왔다.

이처럼 연이 막대한 상금을 걸고 다양한 예절 대회를 개최하는 이유는 화합이었다.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는 조선이기에 모두가 하나가 될 수 있는 예절 대회로 모두를 하나로 묶고 싶었다.

-한류에는 국경이 없었잖아.

'그치. 예술에는 국경이 없었지.'

-그러니까 대회를 열어서 스타를 발굴해 키워. 그러면 그게 바로 한류 아니냐?

'그런가?'

연은 문식이와 대화에서 조선 백성들이 화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그건 바로 음악이었다.

-잘 생각해봐? 너나 나나 한잔하고 노래방 가서 노래 부르는 게 낙이었잖아.

아무리 통신과 교통이 발달했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그리 많이 움직이지 않았다.

먹고 살 만해지만, 안주하며 정착했다.

그럴수록 지역 간 격차가 더욱 심해졌다.

연은 조선 전역이 고루 발전하길 바랐지만, 동역과 중역, 서역, 신역의 생활 수준은 모두 달랐고, 그에 따른 생각도 차이가 났다.

그래서 예절 대회를 열었고, 가장 인기가 많은 음악을 먼저 열기로 했다.

그것도 대학가요제부터 일반 가요제까지.

전역에서 예선을 치르고 본선까지 올라온 재능이 뛰어난 학생들과 백성들을 발굴하여 키우기 위함이었다.

자세한 이유를 듣지 못한 쌍식이가 궁금한지 연에게 물었다.

"폐하, 굳이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대학생부터 대회를 열 필요가 있습니까?""있지. 생각해봐라. 너도 대학생은 공부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그런데 그런 대학생들이 노래 대회에 나온다면 어찌 되겠느냐?"

"관심이 많겠죠."

"바로 그거다. 아무리 좋은 것도 관심이 없다면 쓸모없는 거다. 그러니 관심이 많은 것부터 시작하는 게 맞다."

"그렇습니까?"

쌍식이는 이해가 되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더니 말을 꺼냈다.

"폐하, 그것보다 영화제가 더 인기가 많지 않습니까? 영화제부터 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은데요."

"올해 말에 영화제를 개최하기로 한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인기가 많으니 나중에 한다고 해도 기다릴 거 아니냐?"

"그렇습니까?"

"그렇다."

예절 대회는 조선전력공사가 주최하는 행사이기에 사장이 된 쌍식이가 나설 수밖에 없었지만, 왜 이런 대회를 하는지 쌍식이는 알지 못했다.

연이 수도 없이 대기근이 온다고 말했지만, 미래를 알지 못한 쌍식이는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랬기에 수시로 찾아와서 예절 대회를 상의하고 있지만, 의문이 많았다.

"폐하, 그런데 왜 야외에서 하는 대회가 없습니까?"

"말했지 않느냐? 천둥 치고 비가 오면 어찌하려고."

"참말입니까?"

"왜? 거짓말 같으냐?"

"아, 아닙니다. 그건 아닌데···. 기상청에 발표하라고 준 자료는 폐하께서 만드신 자료 아닙니까?"

"그래서 믿을 수 없다?"

"그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믿기가 좀···."

"쌍식이 많이 컸구나. 내 말을 믿지 않다니."

"아닙니다! 아닙니다요! 제 뜻은 그게 아닙니다요."

깜짝 놀란 쌍식이가 손을 내져었다.

그걸 본 연이 씩 웃었다.

장난친 거였다.

지구에서 가장 큰 제국의 황제가 된 연이지만, 지금까지 생을 함께 했던 쌍식이야말로 가장 편한 상대라 가끔 이렇게 장난을 치며 놀려 먹곤 했다.

쌍식이 또한 그런 걸 알고 있었지만, 항상 조심했다.

절대 선을 넘지 않았다.

은진이의 당부가 있어서였다.

"너도 알지 않느냐? 아파치 왕국 백성 중에는 자연과 동화되어 자연의 뜻을 아는 이가 많다는 걸."

"그럼, 기상청에 준 자료는 제로니모 전하께서···."

"맞다. 제로니모 왕이 보내 준 자료를 참조한 것이다. 이걸 보렴. 이 자료에 따르면 태백(금성)이 수시로 나타나고 태양계를 돌고 있는 다른 행성들도 움직임이 수상하지 않느냐?"

연은 미래를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없기에 문식이 핑계를 대며 만들어 논 근거 자료를 보여줬다.

"아무튼 올해와 내년 농사는 망했다고 생각하고 차질 없이 지원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폐하."

연은 이처럼 소빙하기의 끝인 경신 대기근 동안 조선의 문화를 꽃피우려고 계획했지만,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효종이 물러나고 연이 즉위하면서 내시부를 폐지하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남아 있는 내시들을 그냥 내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내시 중에서 어릴 때부터 연을 돌봤던 상선이 급히 연을 찾아왔다.

"폐하, 대붕에서 급한 연락이 왔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렇소?"

"직접 정용식 사령관과 통화해 보십시오. 지금 대기 중이라고 합니다."

"알겠소."

연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수화기를 들었다.

옆에 있던 쌍식이도 눈을 끔벅였다.

이처럼 한겨울이면 가끔 국경을 넘어와 어지럽히고 도망가는 도적 떼들도 활동하지 않기에 무슨 일인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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