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226화 (226/275)

226. 사법 정리(2)

문식이가 조선을 방문했을 때.

연이 만든 초등학교를 보고 놀랐다.

21세기 대한민국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초등학교 맞아? 무슨 초등학교가 이리 호화스럽냐?'

'호화스럽긴, 기본이지.'

철근 콘크리트를 이용해 3층 높이로 단단하게 지어진 초등학교는 무척이나 고급스러웠다.

벽면은 화강암으로 되어 있었고, 교실 복도는 대리석이 깔려있었다.

그것뿐만 아니었다.

잔디가 깔린 운동장.

소금을 뿌려 비가 와도 질퍽거리지 않은 달리기 길.

전교생은 아니지만 한 학년은 모두 모일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실내체육관.

겨울에도 수영을 할 수 있는 수영장.

구내식당의 모든 식기는 무녹쇠로 되어 있었고, 급수시설은 황동으로 설치되어 있었다.

'그래도 너무 심한 것 같은데···, 우리 아파치 왕국도 따라 하기 힘들 정도야.'

'엄살은, 그래서 안 하려고?'

'하고는 싶은데 돈이···.'

'얼마 안 들어. 그러니 너네도 이렇게 짓는 게 좋을 거야.'

'그래도, 만만치 않게 들어갔을 것 같은데···.'

처음 시작은 급했기에 거친 통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합판으로 마감했던 초등학교.

이제는 마을에서 가장 좋은 건물이었다.

조선의 모든 광산이 황실 기업인 조선전력공사 소유였기에 원자재 값이라곤 인건비밖에 들지 않았기에 가능한 것이었지만, 그래도 심하긴 심했다.

하지만 연이 이렇게 한 이유가 있었다.

'문식아, 좋은 것을 보고 자라야 좋은 것이 좋은지 아는 거야. 그러니 돈 생각 말고 학교는 잘 지어야 해.'

연은 말로만 교육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위생! 위생!' 말로만 교육하는 것보다 깔끔하고 깨끗한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짜 위생교육이라 생각했다.

'잘 봐봐. 아이들이 휴지 하나 함부로 버리는지.'

어린 학생들은 학교가 너무나 깨끗하고 반듯했기에 코딱지조차 함부로 버리지 않았다.

아니, 버릴 수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거였다.

깨끗한 새 옷을 더럽히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그나저나 뭔 돈을 이렇게나 쏟아부었냐?'

'교육이 미래잖아.'

'그건 맞지만, 가르치는 것도 별로 없는 초등학교에 너무한 거 아니냐?'

'왜 가르치는 것이 없어?'

'예절 교육 빼면 배우는 게 없는 것 같은데?'

'예절 교육이 제일 중요한 거 아냐?'

'그러긴 하지만, 다른 과목도 가르쳐야 하는 것 아냐?'

9살부터 다닐 수 있는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이라곤 예절 교육, 조선어와 한글, 사칙연산과 알파벳이 다였다.

물론 과학이나 다른 언어를 가르치는 과목이 있지만, 이건 원하는 아이들만 배우도록 했다.

그들 중에서 뛰어난 아이들을 골라 은동리로 보내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학문이야 뜻이 있는 아이들만 가르치면 돼. 그보다 예절 교육이 더 중요하지. 생각해 봐. 집에서 예절 교육을 하라고 하면 그게 되겠냐고?'

'힘들겠지···.'

그제야 연이 원하는 바를 알아챈 문식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연은 가정교육을 따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국가라는 건 개개인의 힘을 양도받아 권력을 행사하는 기관이다.

따라서 모든 교육은 국가가 운영하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게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선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가 그럴 만한 능력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연이 나섰다.

연이 세운 조선전력공사는 시대를 뛰어넘는 기술로 세상의 모든 돈을 빨아들이고 있다.

그 돈을 그대로 두면 썩은 거나 다름없기에 연은 들어오는 돈을 사회기반 시설 확충에 쏟아붓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초등학교 같은 교육시설에는 아낌없이 지원하고 있었다.

사교육비 때문에 망국론까지 등장한 것을 봤기에 모든 교육을 국가 또는 황실에서 담당하기로 마음먹었다.

더는 가정교육을 문제 삼지 않도록 예절 교육을 중시했다.

그랬기에 초등학교에서 주로 가르치는 것은 서로 상대의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예절 교육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문제를 일으키는 문제아는 있었다.

부모 잘 둔 덕에 호의호식하던 한승진.

세상에 무서운 건 단 하나뿐이었다.

그건 바로 경찰이라 부르는 포졸이었다.

재판관인 아버지와 황실 출신인 어머니를 두었기에 그렇지 않아도 망나니 기질이 있었던 한승진은 포악한 그의 성질을 감추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도 수도 없이 말썽을 일으켰던 한승진은 고등학생이 되자 눈에 뵈는 게 없어졌다.

동급생은 물론 상급생까지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각목으로 내려치고 의자를 집어 던졌다.

술에 취해 박살 낸 주막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삼발이를 타고 다니면서 폭주를 일삼았고, 끝내는 행인까지 다치게 했다.

그럴 때마다 경찰에 의해 바로 구속되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출소했다.

조선에서는 경찰의 검문에 불응하면 절대 봐주지 않았다.

덤비기라도 하면 신분 여하를 막론하고 물리적 진압 맛을 보아야 했다.

그랬기에 개망나니였던 한승진도 경찰이 나타나면 바로 꼬리를 내렸다.

하지만 빠른 재판으로 유죄가 확정되고 탄광으로 끌려가면, 그곳에서 바로 풀려났다.

탄광에서 열리는 형량 재판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개선의 의지가 확실히 보인다'란 판결을 받았기에 즉시 석방될 수 있었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한승진은 간덩이가 부어버렸다.

경찰에 의해 잡혀가더라도.

끽해야 한 달.

길어야 두 달만 참으면 풀려날 수 있었으니, 부은 간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폭행죄와 교통법 위반으로 구속된 한승진은 석방되자마자 부모를 졸라 사발이를 구입했다.

엔진에 부착된 속도 제한 장치를 풀고 출력까지 높여 미친 듯이 돌아다녔다.

그러다 끝내 인사사고를 내고 경찰에 의해 다시 구속됐다.

연은 고속 주행 시에도 견딜 수 있는 타이어를 아직 만들 수 없었기에 속도에 제한을 두고 차를 판매하라고 했다.

그래서 정해진 조선의 교통법.

삼발이와 화물차의 경우에는 최고 시속 60km로 제한되어 있었고.

사발이와 버스는 최고 시속이 80km로 설정되어 있었다.

엔진 성능을 따라가지 못한 조선의 타이어 제조 기술 때문에 사고를 미리 방지하기 위한 거였다.

하지만 한승진이 개조한 사발이는 제한 장치가 제거되었기에 100km가 넘는 속도로 질주할 수 있었고, 이는 사고로 직결되었다.

고속 주행 시 견디지 못한 타이어가 터지면서 인도로 돌진한 한승진의 사발이가 행인들을 치고 사망사고를 내 버렸다.

하지만 이 사건은 처음부터 무죄를 받았다.

'타이어가 터져 발생한 사건이라 운전자가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이다'라는 이유였다.

유가족들은 한승진이 술을 마시고 개조한 차를 과속으로 몰았다고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람까지 죽였지만, 바로 풀려난 한승진.

탄광조차 끌려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환호를 지렀다.

그런 그가 거들먹거리며 재판장을 나오고 있는데.

"한승진!"

누군가 그를 불렀다.

같이 사고 치며 노는 동무들의 축하를 받으며 걸어 나오던 한승진.

고개를 돌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바라보았다.

"댁은 누신 데 귀한 남의 자식 이름을 함부로 부르오?"

"한승진! 너를 사기 혐의로 체포하겠다."

체포라는 말에 한승진은 깜짝 놀랐지만, 바로 뒤에 재판관인 아버지가 있는지라 자신만만했다.

"어디서 나오신 분인지 모르지만, 난 죄가 없소. 그런데 날 체포하겠다니 이게 무슨 망발이오?"

아직 고등학생이지만, 아버지로부터 공무원을 어찌 상대해야 하는지 배운 한승진은 고상한 체하며 지껄였다.

그러자 그자는 씩 웃으며 신분증을 내밀었다.

내민 신분증을 자세히 살펴본 한승진.

그대로 쓰러지듯 주저앉으며 벌벌 떨었다.

"아, 아버지! 어머니! 저 좀 살려주세요!"

그자가 내민 신분증에는 삼족오(三足烏)가 황금색 번개를 잡고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조선 황실을 상징하는 표시였다.

다른 재판관들과 말을 나누고 있던 한승진의 아버지 한동복은 아들이 외치는 소리에 놀라서 뛰어왔다.

바닥에 쓰러져 벌벌 떨고 있는 아들을 본 한동복.

오줌까지 지렸는지 쓰러진 자식의 주변에 물기가 흥건하자 화를 내며 호통을 쳤다.

"이놈! 내 아들에게 무슨 짓을 한 거냐?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이리 겁도 없이 대낮에 만행을 저지른단 말이냐?"

한동복이 난리를 치자.

다른 재판관들도 뛰어와서 한동복의 편을 들며 그자에게 윽박질렀다.

"이놈! 감히 이곳이 어딘 줄 알고 난동을 부리느냐?"

"내 이놈! 겁도 없이 재판장에서 사고를 치다니, 죽지 못해 환장을 한 놈이구나!"

"당장 저놈을 체포하라!"

같은 일법회 회원들인 재판관들은 서로 간에 봐주고 봐줬던 끈끈한 비리로 얽혀있었기에 한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재판장의 치안을 관리하던 경찰들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되려 한쪽으로 물러나 상황을 치켜만 보고 있었다.

황실을 상징하는 신분증을 보았기에 나설 수 없었던 거다.

"그대가 한동복인가?"

"그렇다! 그러는 너는 누구나?"

그러자 그자는 신분증을 꺼내 보이며 또박또박 외쳤다.

"나는 법무원 수사대에서 나왔다. 한동복 너를 사기 혐의로 체포한다."

"뭐, 뭐라고? 법무원? 방금 법무원이라고 했느냐?"

"그렇다. 난 법무원에서 널 체포하기 위해 나왔다."

"이놈! 감히 법무부 소속 재판관인 내 앞에서 사기를 치려고 하다니. 네놈은 사기죄가 얼마나 무서운 범죄인지 모르느냐? 황실을 상징하는 표시까지 위조하다니. 간땡이가 부었나 보다."

연이 대신들을 급히 불러들여 발표한 내용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그랬기에 재판관들은 그자가 보여준 신분증이 위조된 것이라고 믿었다.

"내 법무부 소속이라 법무부는 잘 알지만, 법무원이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감히 누구 앞이라고 거짓을 고하느냐?"

"감히 누굴 체포한다는 말이냐? 체포당할 놈은 바로 네놈이다."

"이놈! 하늘이 무섭지도 않은가 보구나. 뭣들 하느냐? 당장 이놈들을 체포하지 않고?"

삿대질하며 소리치는 한동복과 재판관들.

하나, 그들의 말에 따르는 경찰들은 없었다.

그때 버스와 함께 나타난 사발이에서 내린 이가 있었다.

바로 성이성이었다.

"원장님 오셨습니까?

"그래 수고했다. 빨리 와야 하는데 너만 보내서 미안하구나."

"아닙니다. 원장님. 사안이 급한데 빨리빨리 처리해야죠."

성이성이 나타나자 상황이 급변했다.

"아니, 대감은···?"

"날 아시겠소?"

"알다뿐입니다. 형조판서를 지내신 성이성 대감 아니옵니까?"

"맞소. 내가 바로 성이성이오."

"그런데···, 무슨 일로···?"

"이번에 내가 법무원 원장을 맡게 됐소. 그래서 업무 수행차 온 것이오."

"아, 그러십니까? 감축드립니다."

판서에서 물러나 쉬고 있던 성이성이 다시 요직에 올랐다고 하자 재판관들은 환한 미소로 다가왔다.

"그런데 법무원이라니 그게···?"

"이번에 비리가 많은 법무부를 해체하고 법무원으로 개편했소."

"아,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그렇소."

"그런데 저자가 들고 있는 신분증이···?"

"맞소. 법무원은 법무부와 달리 황실의원회 직속 기관이오. 그래서 황실을 표방하는 신분증을 쓰고 있소."

"예에?!"

재판장 앞에서 소란을 피운 자가 황실 소속이란 말에 깜짝 놀란 재판관들은 한동복에게서 거리를 두고 멀어져 갔다.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한 거였다.

하지만 성이성의 한마디에 그들은 모두 무릎을 꿇어야 했다.

"뭣들 하느냐? 이놈들을 당장 체포하지 않고!"

"""명! 받들겠습니다."""

버스에서 내린 대원들이 한동복과 재판관들에게 다가가자.

사색이 된 이들은 손을 내저으며 항변했다.

"대, 대감!"

"이게 무슨 짓입니까? 대감?"

"우린 법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무슨 죄가 있다고 이리 체포하신단 말씀입니까?"

"맞소! 아무리 대감이라고 하지만, 죄 없는 우릴 체포할 순 없습니다. 이 나라 조선은 법치국가 아닙니까?"

조금 전까지 당당하던 재판관들.

대원들에 의해 오라로 묶여 땅에 처박히면서도 입은 떠들고 있었다.

그러자 성이성이 버럭 화를 냈다.

"내 이놈들! 황실과 백성들을 속이고 이득을 취한 것도 모자라 감히 폐하의 어명까지 거부하려 드느냐? 당장 저놈들의 못된 주둥이를 뭉개버려라!"

"""명! 받들겠습니다."""

육모 방망이를 꺼내든 대원들.

가차 없이 재판관들의 주둥이를 후려쳤다.

눈치를 보다가 슬금슬금 달아나려던 한승진과 동무들.

그들 또한 사정없이 몰매질을 당했다.

조선의 법은 체포에 불응하고 도망가면 사살해도 되기에 대원들은 조금도 봐주지 않았다.

이런 일은 조선 전역에서 일어났다.

그만큼 일법회 회원들이 조선 전역 재판장에 포진해 있었던 거다.

-방금 들어 온 소식입니다.

-폐하께서는 이 나라 조선의 앞날을 위해 법무부를 폐지하고 황실위원회 소속인 법무원으로 개편하기로 하셨습니다.

-이는 법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폐하의 철학이십니다.

-따라서 그동안 재판관으로 있으면서 일법회를 조직하고 서로 비리를 눈감아준 자들과 이들에게 뇌물을 건네며 청탁한 자들을 모두 잡아 사형시키기로 하셨습니다.

방송이 나간 후 백성들이 동요할까 걱정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되려 공개 처형하자는 상소가 빗발쳤다.

효종이 황제에 오른 후.

단 한 번도 없었던 사형제도가 다시 부활했지만, 백성들은 환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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