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225화 (225/275)

225. 사법 정리(1)

전생에서 공돌이로 살아왔던 연은 욕심 많지 않았다.

원하는 것도 그리 크지 않았다.

연이 원하는 것은 '그냥 다 같이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거였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지구를 지배하고 사는 인간이란 동물은 너무나 다양했고, 그 누구도 같지 않았다.

속마음 또한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발생했다.

길어야 한백년인데도 수많은 악행을 저지르며 자기 욕심만 채우려는 쓰레기 같은 인간들.

때로는 근엄한 척 행동하지만, 그 누구보다 저질스러웠다.

또한 이런 망종들이 주도권을 잡으면 언제나 세상이 시끄러웠다.

망종들이 서로 속고 속이는 가운데 지구 전체를 좀먹으면서 지구를 지옥으로 만들고 있었지만, 인류는 살아남았다.

다행히 극소수였기 망정이지 다수였다면 인류는 진작 멸망했을 거다.

바꿔 말하자면 예를 아는 인류가 더 많았기에 멸망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거다.

하지만 사람이란 지능을 가진 동물이라 이익이 된다면 나쁜 짓도 바로 따라 배운다.

그러다 보니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언제 멸망할지도 모르는 인류는 끊임없이 서로 다투고 싸웠다.

그래서 연은 더 큰 꿈을 꾸었다.

'기억을 가지고 환생했는데, 그냥 이대로 살 수는 없어!'

자신이 조선의 왕손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알았지만, 연은 호의호식하며 다시 얻은 생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끊임없이 생각했고, 끊임없이 노력했다.

세상을 완전히 바꿔버리기 위해서!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연은 마음을 굳게 다졌다.

'어쩔 수 없지! 다시 피를 묻혀야지. 내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서야 어찌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겠나?'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한 인조로 인해 청나라에 국치를 당한 조선.

그런 조선에서 아버지 효종은 볼모가 되어 심양으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태어난 연이 아담 샬을 만나 조선전력공사를 세우고 사업을 시작한 지 어언 25년.

세상은 변해도 너무나 변했다.

유럽반도는 냉병기에서 열병기로 전환 중이지만, 아직도 석기시대에 머물러 있는 곳도 널려있었다.

그에 비해 연이 만들어가는 조선은 화석연료가 중심이 되는 20세기를 뛰어넘어 전기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21세기 전기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었다.

아날로그가 아니라 디지털로 바로 건너뛰고 있었다.

또한 연이 믿는 게 있었다.

백지나 다름없었던 조선의 백성들.

문자를 읽고 쓸 수 있게 되면서 세상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저 착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었다.

거기다 유교 탈레반들이 세력을 확장하며 모범을 보이면서 조선 백성들의 의식은 갈수록 높아졌다.

개인주의가 팽배하는 21세기완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조선 백성들의 의식 수준은 매우 높았다.

그랬기에 연이 과감하게 의회민주주의를 시도한 거였다.

'운이 좋았지···.'

양난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어버렸다.

전쟁으로 인해 농지가 파괴되어 먹을 것조차 없었다.

그런데도 조선의 주인인 인조는 미쳐 갔다.

다행이라면 조선 후기와 달리 아직 참선비들이 많이 있었다는 것.

또한 조선 백성들의 두뇌가 어마어마하게 우수하다는 것.

바로 이것을 믿었기에 연은 말도 안 되는 미친 듯한 계획을 세우고 추진해왔다.

그리고 오늘.

그 계획의 반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당당하게 걸어들어온 행식이는 단정하게 고개를 숙여 연에게 예를 올렸다.

"폐하를 뵙습니다."

"그래, 준비된 것은 가져왔소?"

"네, 폐하."

"그럼 준비하도록 하시오."

"네, 폐하."

행식가 손짓을 하자 대전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관리 두 명이 무언가를 들고 대전으로 들어왔다.

대신들은 궁금했는지 서로를 바라보며 의문을 표했다.

"저게 뭔진 아시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어디 보자. 아, 저건 환등기(幻燈機)라는 것이오. 우리 국토부에서는 쓰고 있는데 아직 모르시오?"

"처음 봤소이다. 그런데 저 기물은 어디에 쓰는 겁니까?"

"아, 저 환등기는 사진을 크게 확대해 보여주는 것입니다."

""""아···, 아···."""

이제야 뭔지 알았다는 듯 대신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 보고드리겠습니다."

"시작하시오."

"네, 폐하."

'찰크락' 소리와 함께 슬라이드 필름이 한 장씩 넘어갈 때마다 다양한 표정으로 고민하는 대신들.

그와 함께 행식이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환등기가 멈추고 불이 켜지자 대신들은 하나같이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그러더니 동시에 행식이를 바라보았다.

"폐, 폐하!"

"폐하. 경, 경행식 장관이 총리(總理, Prime Minister)가 되는 겁니까?"

너무나 놀란 대신들이 말까지 더듬으며 연에게 물었다.

아마도 심한 충격을 받았나 보다.

그도 그럴 것이 총리의 권한이 황제의 권한과 별로 다를 게 없었다.

행식이가 소개한 총리는 거의 대통령과 같았다.

그런데 그런 자리를 아직 어린 행식이에게 맡기다니 믿을 수 없었다.

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니오. 벌써 총리가 되었소. 경행식 총리! 대신들에게 정식으로 인사하시오."

"네, 폐하."

행식이는 옷매무새를 다시 점검한 후 대신들에게 예를 올렸다.

앞으로 조선이란 대제국을 통치하는 총리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건 백성들을 대신하는 것이라 연으로부터 배웠다.

그랬기에 백성의 한 사람인 대신들에게 정중하게 예를 올린 거였다.

"앞으로 이 나라 조선을 이끌어갈 총리 경행식. 나라를 위해 힘써주신 여러분께 인사 올립니다."

행정의 달인이자 행정의 천재인 행식이.

그래서인지 그의 소개말과 앞으로 해나갈 일들을 듣고 있는 대신들의 머리는 연신 방아를 찍었다.

그러더니 일순간 대신들의 낯빛이 사색이 되었다.

"······따라서 이 자들은 모두 처형하겠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점 양해해 주시고, 백성들에게도 잘 설명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행식이가 환등기로 보여준 내용도 그렇지만, 방금 인사말 내용도 살벌했다.

무려 천여 명이 넘는 자들을 동시에 사형시킨다니.

대신들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적막이 감도는 대전.

가끔 한숨 소리만 나왔다.

연이 옥좌를 두드리자 그제야 고개를 들고 연을 바라보는 대신들.

그들은 해당하지 않았지만, 가까운 친인척 중에 그에 해당하는 자들이 있었기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잘 들으시오. 이는 짐이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행하기로 결정한 거요. 알다시피 우리 조선은 그런 짓을 하지 않아도 노력만 하면 잘 살 수 있소. 그런데도 법을 다루는 자들이 법의 미비한 점을 이용해 악행을 저지르다니. 짐은 그런 자들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소."

"하오나 폐하! 그들은 재판관들이옵니다. 그들이 없다면 당장 재판은 어떻게 합니까?"

법무부 장관이 걱정되는지 울먹이며 나섰다.

"우리 조선은 모든 재판을 한 달 안에 끝내고 있소. 그래야만 죄 없는 사람이 빨리 풀려날 수 있기 때문이오. 허나, 지금은 죄 없는 사람을 찾기 힘드오. 그 이유는 알 것이오. 무고하게 백성을 모함하여 잡아 온 관리는 그 죄를 배로 돌려받기 때문이오. 또한 우리 조선에는 재판관이 많소. 그들이 아니라도 재판에 차질은 없을 거요."

"폐하! 그래도 한 번만 선처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법을 어긴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럴 순 없소!"

연은 단호하게 법무부 장관의 부탁을 거절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법을 집행하는 자들이 법을 어겨도 그냥 두면 나라 꼴이 어떻게 되는지 잘 알기에 절대 선처할 수 없었다.

"생각해 보시오. 그들을 그냥 두면 나라 꼴이 어찌 될지. 짐은 절대 그 꼴을 볼 수 없소."

"하오나 폐하. 그들 중에는 단순 가담자도 있습니다."

"그걸 어찌 단정하시오? 가담했다는 것! 그 자체가 이득을 노리고 한 것 아니오?"

연에 의해 급격하게 변해가는 조선에서 빠르게 적응한 자들이 있었다.

그들 중에는 일반 백성도 많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양반과 사대부들도 많았다.

일반 백성들과 달리 한자를 알고 있는 양반과 사대부들은 자신들이 쉽게 출세할 곳을 찾아냈다.

그건 바로 재판관이 되는 거였다.

단순히 한글만 알아서는 대대로 내려오는 법전을 해석할 수 없기에 재판관 대부분은 한자를 아는 양반과 사대부 출신들이었다.

"단체로 일법회(一法會)란 조직을 만들어 서로 봐줬소. 뒷돈까지 챙긴 자들도 있소. 그 수가 무려 500이나 되오. 너무 많아서 짐도 놀랐소."

재판관이 된 그들 중 일부는 세상을 다시 찾은 것 같았다.

신분제가 전면 폐지되면서 굽신거리기는커녕 째려보기까지 했지만,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도움을 요청하는 백성들을 보자 살맛이 났다.

그런 맛에 취한 이들은 따로 그들끼리만 자주 모였고, 자주 모이다 보니.

'우리 이러지 말고 회를 하나 조직하세.'

'무슨 회를 말인가?'

'우리 같은 고귀한 재판관들만 모인 회 말일세.'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우리가 가면 어디서나 굽신거리는데. 회까지 조직할 필요가 있을까?'

'아니지. 지금은 우리 몇 명이지만, 그 수가 늘어나면 어찌 되겠나?'

'오···!'

나름대로 똑똑한 자들이라 조직의 힘이 무엇인지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조선의 법에 재판관들이 조직을 만들면 안 된다는 내용이 없다는 걸 확인 했기에 걱정 따윈 하지 않았다.

그렇게 결성된 일법회는 갈수록 회원이 늘어갔다.

아무리 살기 좋은 조선이라고 해도 범죄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 비율이 극단적으로 낮았을 뿐.

그래도 억이 넘는 인구라 범죄인의 수는 적지 않았다.

게다가 연이 효종을 설득하여 만든 조선의 형벌 제도에 허점이 있었다.

조선에서는 개인의 돈거래를 인정하지 않기에 민사 재판은 거의 열리지 않는다.

형사 재판도 한 달 안에 끝내야 하기에 죄의 유무만 따지고 바로 탄광으로 보낸다.

그러다 보니 이걸 악용하는 재판관들이 있었다.

바로 일법회 회원들이었다.

탄광으로 보내진 죄인들.

노역하면서 다시 재판을 받았다.

죄의 경중에 따라 형기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형기가 끝났다고 바로 풀려나는 건 아니었다.

개선의 의지를 인정받아야지만 석방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일법회 재판관들에게 청탁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처음에는 단호하게 청탁을 거절했던 재판관들.

한 놈이 뒷돈을 받고 수작을 부리자 따라 하기 시작했다.

청탁이 아니라 민의(民意)를 받아들인다며 자신과 주변을 속였다.

탄광이란 고립된 지역에서 일법회를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수작을 부렸기에 탄로 날 염려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걸.

그들의 수작은 조선과 조선전력공사를 숨어서 지탱하고 있는 조서원의 요원들에게 탐지됐고, 증거까지 확보됐다.

연은 옥좌에서 일어나 행식이 곁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행식이에게 환등기 작동 스위치를 넘겨받은 연은 한 장씩 뒤로 넘겼다.

"잘 보시오! 일법회 재판관 500여 명. 그들에게 뇌물을 주고 청탁했던 이들 중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된 자들만 500여 명이오. 나는 이 자들을 본보기로 처형할 거요."

"""폐하···!"""

대신들의 외침에도 연은 눈 하나 꿈쩍 않고 법무부 장관 앞으로 걸어갔다.

"김시번(金始蕃) 장관!"

"네, 폐하."

"그대는 그 누구보다 청렴하다고 들었소. 그래서 미안하오. 하지만 해야만 할 일이오. 그대의 동무들과 제자들을 이대로 두다가는 이 나라 조선의 기틀이 무너질 게 틀림없소. 그러니 이해해 주시오."

연의 말에 법무부 장관 김시번이 그대로 주저앉아 엎드려 울먹였다.

"폐하! 저 또한 죄인입니다. 제 동료와 제자들이 이런 짓을 하고 있었는데도 알지도 못한 저야말로 죄인입니다. 저를 벌하여 주시옵소서."

임진왜란 때 아우가 적병에게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의병을 모집하여 왜구와 싸웠던 참선비 김신국의 아들 김시번(金始蕃) 또한 참선비였다.

그래서 효종이 등용했던 건데, 그와 함께 수학했던 동료와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일법회를 조직하다니.

김시번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비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연은 주저앉아 자신을 바라보며 울먹이는 김시번을 일으켜 주며 그를 다독였다.

"마음의 상처가 클 것이오. 그러니 당분간 요양하면서 쉬길 바라오."

"폐하! 어찌 저같이 못난 놈을 처벌하지 않으십니까? 저같이 못난 놈은 일벌백계하여 이 나라 조선의 기강을 바로 세우셔야 합니다."

"아니오. 그대를 속이고 악행을 저지른 자들이 문제지, 속은 그대의 잘못이 아니오. 그리니 좀 쉬길 바라오."

"폐하···!"

김시번이 흐느끼며 대전을 나가자 연은 다시 옥좌로 돌아가 입을 열었다.

"오늘 그대들을 긴급히 부른 이유는 다름 아니라 우리 조선의 근간을 흔든 사법 문제를 정리하기 위해서요."

연은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대신들과 하나하나 눈을 마주쳤다.

눈을 마주칠 때마다 움찔거리는 대신들.

비록 잘못이 없다고 하지만, 안심할 수 없었다.

연은 효종과 전혀 다르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무부를 해체하겠소. 법무부를 해체하고 황실 위원회에서 직접 관리하는 법무원으로 개편하겠소."

"폐하···!"

대신 중 한 명이 소리쳐 불렀지만, 연은 손을 내 졌고 이어 말했다.

"그리고 법무원의 원장으로 성이성을 앉히겠소. 총리!"

"네, 폐하!"

"성이성을 들라 이르시오."

"네, 폐하!"

암행어사로 이름을 드높였던 성이성이 노년의 몸을 이끌고 대전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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