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3. 아들 순과 함께하는 여정(6)
연은 시카고에서 배를 타고 호수와 수로를 따라 퀘벡으로 향했다.
완공되었다는 수로를 시찰도 하고, 가는 길에 태자비와 순에게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출발할 때만 해도 잔잔했던 호수의 물결은 어느덧 넘실거렸다.
겨울이 다가오면서 북풍이 불기 시작하자 거칠어진 거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배를 타고 지나갈 수 없기에 연이 탄 배는 폭포 서쪽에 뚫어 놓은 수로로 들어갔다.
"아바마마, 해수욕장도 있습니다."
"오, 그렇구나."
바다처럼 넓은 호수라 그런지 수로 양옆으로 노란 모래사장이 쭉 이어져 있었다.
그런데 수로에 들어서자 신역 원주민들이 내는 특유의 환호성이 들렸다.
수로 양옆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원주민들로 구성된 환영인파가 모여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안전을 위해 신맥 기병대원들이 원주민들과 함께 있었기에 연은 객실 밖으로 나가 손을 흔들어 주었다.
쪼르륵 따라 나온 순.
"아바마마, 저 백성들도 아바마마를 환영하러 나온 것 같습니다. 이곳에 사는 백성들은 모두 아바마마를 좋아합니다."
"왜 그런지 아느냐?"
"소자는 모릅니다. 가르침을 주십시오."
연은 배를 두드리며 말했다.
"사람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느냐? 바로 먹을 것이란다."
"왜 그렇습니까?"
"먹어야 살 수 있지 않겠느냐?"
"맞습니다. 먹지 않으면 힘이 없습니다."
"그러니 순아, 무슨 일이 있더라도 먹는 것으로 장난치는 사람이 있으면 엄하게 벌해야 한다. 꼭 명심하거라."
"네, 아바마마. 명심하겠습니다. 그런데 아바마마께서도 저 백성들에게 먹을 것을 주셨습니까? 그래서 좋아하는 것입니까?"
"어디 먹을 것뿐이겠느냐? 먹을 것 다음으로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집이다."
영토를 얻고 난 연이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곳에 사는 원주민들에게 먹을 식량을 공급해 주는 거였다.
다음으로 집을 지어 주었다.
그랬기에 이곳에 터를 잡고 살다 프랑스와 영국으로부터 쫓겨났던 이로쿼이 연맹 다섯 부족은 다시 돌아왔다.
"집이라면, 집 주(宙)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다. 살 주(住)를 말하는 것이다."
"그렇습니까?"
연은 원주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면서 물어보는 순의 안아 들었다.
"순아, 주의 의미는 단순히 모양만 있는 집을 뜻하는 게 아니다. 저 백성들이 함께 모여서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뜻하는 거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아···, 이제야 알겠습니다.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려면 도로도 수도도 전기도 관공서도 필요합니다. 맞습니까?"
"그래, 장하구나."
연이 장하다고 말하자 신이 난 순이 바로 또 물었다.
"집 다음에는 옷입니까?"
"그렇지. 옷이야 아무거나 입어도 살아가는 데 지장이 없지만, 먹을 것과 집은 아주 중요하니 꼭 챙기거라."
"네, 아바마마."
인류 역사에서 '의식주'는 생존의 기본이 되는 가장 중요한 3가지이다.
그런데 인류의 역사를 보면 거의 모든 지도자는 그 중요성을 너무 등한시했다.
보살피기는커녕 각자도생하라고 방치해 놓고 착취만 일삼고 있었다.
하지만 연은 달랐다.
태어난 후, 눈도 뜨기 전부터 머릿속으로 수도 없이 개발 시뮬레이션을 돌려 봤던 연에게는 먹고 사는 문제만큼은 일도 아니었다.
그랬기에 지금의 조선이 있는 거다.
"순아, 저 백성들이 있어야 조선이라는 나라도 있는 거다. 그러니 백성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아바마마."
"그렇다고 그 모든 일을 너 혼자서 할 필요는 없다. 그런 일을 잘하는 사람에게 맡기면 되는 거다."
"행식이 삼촌 같은 사람에게요?"
"그렇지. 하지만 항상 주의 깊게 보고 있어야 한다. 행식이처럼 이 나라 조선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러지 않는 사람도 반드시 나타날 거다. 그러니 그 누구도 믿지 말고, 일을 맡아 하는 사람이 잘하고 있는지 보고 있어야 한다."
"복민이 어머니처럼요?"
"으응?!"
연은 순간 놀랐다.
그렇다고 어떻게 알았냐고 물어볼 수는 없기에 급히 말을 돌렸다.
"순아, 너 혼자 하기 힘들면 고민하지 말고 언니들에게 부탁하렴. 너 혼자 모든 것을 처리할 필요는 없단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바마마."
순과 이런저런 말을 나누다 보니 나이아가라 폭포로 가는 선착장에 도착했다.
"""전하를 뵙습니다."""
수많은 원주민들이 외치는 인사말에 연은 밝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 응답하고 준비된 마차에 올랐다.
이곳에도 삼발이와 사발이 자동차가 돌아다니고 있지만, 태자비와 순을 위해 마차를 준비했다.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며 구경하면서 가기에는 차보다 마차가 훨씬 좋았기 때문이다.
마차에서 내린 태자비와 순.
쩍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와···!"
더 가까이에서 폭포를 보고 싶었는지 순이 달려 나갔다.
태자비 또한 발걸음을 재촉했다.
"전하, 정말이지 너무 아름답습니다. 잠시 시간을 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림으로 남겨 두고 싶습니다."
"그러시오. 난 순과 함께 있겠소."
"고맙습니다. 전하."
태자비는 사진기로 찍어도 되지만, 그리하지 않고 가는 곳마다 그림을 그려 남겨 놓았다.
이렇게 그려 놓은 그림을 모아 만화로 된 여행기를 출판했다.
태자비가 집필한 여행기 '80일간의 세계 일주'는 당연히 큰 인기를 끌었다.
그로 인해 조선 전역은 여행객들로 가득 찼다.
소득의 10%도 안 되는 임대료만 내면 집수리까지 다 해주는 조선이다.
저축하지 않아도 노후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조선이다.
아파도 무료로 치료해주는 조선이다.
그랬기에 백성들은 버는 대로 펑펑 써댔다.
그로 인해 경제는 더욱 빠르게 돌아갔고, 백성들의 소득은 갈수록 높아져 갔다.
삶에 여유를 찾은 백성들은 당연히 여행으로 눈을 돌렸다.
에메랄드빛 바다를 배경으로 하얀색과 파란색으로 조성된 아파치 왕국의 일식시.
예맥대륙에서 건너온 관광객들로 거리가 북적거렸다.
또한 신비롭게 표현된 그림을 보고 신역으로 이주해 오는 백성들도 많아졌다.
온갖 혜택을 준다고 홍보해도 움직이지 않던 백성들.
태자비의 여행기를 보더니, 자진해서 신역으로 건너오는 게 아닌가.
그로 인해 신역의 인구는 빠르게 늘어나게 된다.
"아바마마, 무지개가 어마어마하게 큽니다. 마치 선녀들이 다니는 다리 같습니다."
엄청난 양의 물이 낙하하면서 생긴 물보라로 인해 만들어진 거대한 무지개는 나이아가라 폭포 양쪽을 이어주었다.
그걸 보고 선녀를 떠올리다니.
연은 하나뿐인 아들의 심성이 고운 것 같아 밝게 미소 지었다.
* * *
80일 동안 지구를 한 바퀴 돈 연이 한양에 도착하자 첫눈이 내렸다.
효종은 오랜만에 본 연과 함께 경복궁을 거닐었다.
"그래 잘 보고 왔느냐?"
"네, 아버지."
"그럼, 이제 네가 맡아야 하지 않겠느냐? 곧 있으면 천재지변이 일어난다며? 그러니 잘 아는 네가 맡아서 준비해야 하지 않겠느냐?"
"알겠습니다. 아버지.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연이 시찰을 한다는 명목으로 태자비를 데리고 떠난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효종으로부터 황위를 이어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황위에 오르면 더는 자유로울 수 없기에 연은 태자비를 데리고 조선 전역을 돌아보고 온 거였다.
효종은 수시로 연에게 황위를 물려받으라고 했다.
하지만 연이 양해를 구했다.
해야 할 일이 많아서였다.
그러나 이젠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
조선 전역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고, 감히 조선을 침략한 세력도 없기에 더는 거부할 수 없었다.
효종이 연에게 선위(禪位)한다는 소식이 퍼지자 조선과 제후국은 물론, 조선을 아는 곳에서는 큰 화제가 되었다.
일을 마치고 저잣거리에서 한잔하던 두 사람.
처음에는 유럽반도에서 수입해온 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역시 포도주는 불란서 산이 최고야! 이 향기 좀 맡아봐."
"에이, 난 별론데. 난 이처럼 묵직한 이태리 산이 좋아."
백성들의 소득이 올라가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비싼 술도 수입되었다.
그래봐야 몇 년 전 막걸리 서너 병값이라 술을 좋아하는 조선 백성들은 부담 없이 세계적인 명주를 즐겼다.
그것도 유럽반도에서는 집 한 채를 살 수 있다는 크리스탈 잔을 돌리면서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뭔 말을 하려고 그러나?"
"아니, 폐하의 보령(寶齡)이 이제 지천명(知天命)이신데 선위하신다니 어찌 된 일인지 아는가?"
"그걸 내가 어찌 아나?"
"자네가 모르면 누가 아나? 자네 아들은 국토부 관리 아닌가?"
"말도 안 되는 소린 하지도 말게. 국토부 관리가 어찌 폐하의 뜻을 헤아릴 수 있다고. 그리고 우리 아들놈뿐만 아니라 관리들은 입이 무거운 걸 모르나?"
"아들인데 자네에게까지 입을 다물 던가?"
"당연하지. 이놈이 지 안해에게도 일에 관련된 말은 전혀 꺼내지 않는다네. 여차하면 탄광으로 끌려간다나."
듣던 이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포도주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니, 너무하는 것 아닌가. 관리들 하는 일이 뭐가 있다고 그리 입단속을 시킨단 말인가?"
"나도 처음에는 그리 생각했지. 그런데 아들놈 말을 들으니 이해되더군. 생각해보게 정부 일은 돈에 관련된 일이 많지 않은가. 그걸 듣고 발 빠르게 움직인다면 돈이 될 거 아닌가?"
"돈이 되긴 뭐가 돈이 된다고 그래? 어차피 공개 입찰 아닌가?"
"바로 그거네. 입찰 시 가격만 높다고 낙찰되는 게 아니라 적정가와 가장 비슷한 가격을 써내야 낙찰된다고 하네."
"그래?"
"그렇다고 하더군."
나라의 영토가 넓어지고 백성들이 많아질수록 관리도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정부에서 하는 일이 밖으로 새 나가는 일도 늘어났다.
주로 입찰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래서 효종은 관리들에게 엄명을 내렸다.
발각되는 순간 사기죄로 적용한다는 내용이었다.
조선에서 가장 무서운 죄목이 사기죄라 관리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가족에게라도 말했다가 이용된다면 망하는 지름길이기에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폐하께선 대단하신 분이야. 이제 지천명이신데 내려놓다니. 욕심이 너무 없으셔."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잘 사는 것 아닌가."
"그렇지. 참 세상이 달라졌어. 피죽도 못 먹던 시절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효종이 선위한다는 말에 백성들은 궁금해했지만, 단지 그것뿐이었다.
한편으로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럼 태자께서 황위에 오르시겠지?"
"그걸 말이라고 하는가. 난 기대 된다네. 폐하께서도 이리 백성들을 잘 보살펴 주셨는데, 태자께서 황위에 오르시면 어떻게 될지."
듣고 있던 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또한 이런 세상이 올 줄을 꿈조차 꿔본 적이 없었다.
"폐하의 만수무강을 위해 한잔하세."
"좋치!"
두 사람은 술잔을 부딪친 후 단숨에 술을 넘겼다.
그러더니 국토부에 다니는 아들을 둔 사람이 주위를 살피더니 소곤거리듯 말했다.
"어쩌면 칼바람이 불지도 모른다네."
"그게 무슨 말인가? 칼바람이 불다니?"
"폐하께서는 역적들도 봐주시지 않으셨는가? 그런데 태자께서는 다르시지 않은가?"
"그치!"
"우리 아들놈이 그러는데 앞으로 갑질하거나 차별하다 걸리면 혼나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탄광으로 끌려갈지도 모른다고 하네."
"그래?!"
"잘 된 거지. 돈 좀 있다고 갑질하고, 서역에서 왔다고 무시하는 놈들은 다 잡아갔으면 좋겠네."
"그건 나도 동감이네."
아주 극히 일부지만, 이런 조선에서도 갑질과 차별을 하는 자는 존재했다.
적발될 때마다 사과하게 하고 벌금까지 물리고 있지만, 그때뿐이었다.
그러다보니 점점 그런 자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왜 그러지 않겠는가.
나쁜 짓일수록 더 빨리 배우는 게 사람이니.
연은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관여하지 않았다.
대외적인 문제라면 연이 알아서 처리했겠지만, 조선 내부의 일이라 나서지 않은 거였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절차를 무시하고 나선다면 하극상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황제가 된다면 다를 수밖에.
그걸 아는 조선의 관리들은 가족들부터 단단히 주의 시켰다.
연이 황위에 오른다는 소식에 백성들은 들떠 있었지만, 관리들과 가족들은 숨을 죽이고 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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