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222화 (222/275)

222. 아들 순과 함께하는 여정(5)

말을 타고 따라오는 원주민들을 보기 위해 순이 차창에 딱 달라붙었다.

연은 방탄유리라도 위험할 수 있기에 제지하려고 했지만, 그만두었다.

원주민들이 들고 있던 깃발에 써진 글을 봤기 때문이다.

순은 깃발에 써진 글을 천천히 읽었다.

"전, 하, 를, 뵙습니다? 아바마마를 환영하는 거 아닙니까?"

순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자 연은 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씩 웃었다.

그러면서 육갑이에게 물었다.

"저들에게 내가 온다고 통보했느냐?"

"아닙니다. 전하. 어찌 된 건지 모르지만,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 신기하구나."

"연유를 알아볼까요?"

"아니다. 됐다."

약탈하러 온 거라면 몰라도 환영하러 마중 나왔는데 그 이유까지 따질 필요는 없어 보였다.

문제가 있다면 조서원에서 벌써 연락이 왔을 테니까.

"잠시 들렀다 가자."

"네, 사장님."

연은 일정에도 없는 역에 정차하여 원주민들을 만났다.

"""전하를 뵙습니다."""

말에서 내려 공손히 고개를 숙이는 원주민들.

그들의 얼굴에서는 하나같이 감동의 빛이 어른거렸다.

철도 공사가 끝나면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고민에 빠진 원주민들.

걱정은 기우였다.

신맥 대륙 횡단 철도 공사가 끝난 후.

연은 역마다 원주민들을 위한 마을을 조성하라고 했다.

마을 주위로 농장과 목장을 만들어 부족 단위로 분배하라고 했다.

그로 인해 원주민들의 삶은 윤택해졌다.

그래서였는지 원주민들은 연이 기차를 타고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말을 타고 나타난 거였다.

"모두 전하 덕분입니다. 이처럼 좋은 마을을 우리 부족에게 주시다니 전하는 하늘이 내리신 분이 틀림없습니다."

횡단 철도를 건설하는 동안 조선어와 한글을 배운 원주민들.

조선말과 어순이 같아서 그런지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조선말을 했다.

"이렇게 환영해 줘서 고맙소. 그리고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은 하늘에서 내린 거요. 그러니 앞으로는 싸우지 말고 함께 잘 삽시다."

"네, 전하. 명심하겠습니다."

그동안 서로 반목하며 싸우기만 했던 원주민 부족들.

이유는 먹을 것이 부족해서였다.

그런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수렵과 채집으로 삶을 이어가던 원주민들에게 농장과 목장을 조성하고 관리하는 법을 가르쳐 주자 먹을 것이 남아돌았다.

그러니 그들의 눈에는 연이 하늘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 해도 신이라 주장하면 총부터 쏘고 보라는 경비대의 철칙을 들었기에 더는 하늘을 빗대어 연을 찬양하지 않았다.

연이 막대한 돈을 들여 마을을 조성하고 원주민들에게 무상으로 살라고 넘겨준 이유가 있었다.

그들의 삶이 빠르게 정착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가 더 있었다.

자연스럽게 모든 땅을 조선전력공사 소유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었다.

대충 씨앗만 던져놓아도 알아서 잘 클 정도로 풍요로운 신맥 대륙의 땅.

단지 역 주변에 농장과 목장을 조금 조성해 놓았을 뿐인데 먹을 것이 쏟아져 나왔다.

연은 만주를 얻은 후에 바로 농지 개간부터 시작한 것처럼 철도를 따라 들어선 마을에도 그렇게 했다.

'한반도라면 몰라도 널리고 널린 게 기름진 땅인데 그걸 그냥 방치하다니.'

그래서였다.

모든 영토를 조선전력공사의 소유로 하려는 이유가.

연과 문식이가 살았던 21세기.

땅은 투기의 가장 좋은 수단이었다.

인구수와 비교해 국토가 좁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땅 넓은 나라에서도 땅을 이용한 투기는 기승을 부렸고, 그로 인해 인류의 삶은 갈수록 힘들어져만 갔다.

소득의 1/3을 거주하는 데 쓰는 것이 양호한 삶이라니.

문식이와 공식이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냥 그렇게 세상은 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부동산 발 경제 위기는 쉬지 않고 반복됐다.

그래서 연은 그런 악순환을 처음부터 차단하려고 모든 토지를 조선전력공사 소유로 한 거다.

그런 연을 보고 문식이가 물었다.

'왜 나라 소유로 하지 않고?'

'나라 소유로 하면 언놈이 팔아먹을지 모르잖아.'

'바른 일을 한다'는 정치(政治)지만, 그런 정치를 추구하는 사람은 가뭄에 싹이 트는 것만큼 드물었다.

정치는 사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변질되었을 뿐만 아니라 집단 이기주의를 대변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런 정치를 하면서 사욕을 챙겼던 수많은 비리 정치인들.

숨거나 감추기는커녕 큰소리치며 당당했다.

연이 공식이었을 때.

연구소 보고서를 제출하러 국회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연은 황당한 장면을 보았다.

여의도 국회 앞 호텔 커피숍에서 당당하게 '청탁이 아니라 민원을 들어준다'고 떠드는 정치인들.

차라리 그들은 양반이었다.

그보다 더한 놈들이 무수히 많았다.

보고 싶지 않아도 너무나 떳떳하게 행동하고 다녔기에 피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런 정치인들을 찍어 주는 국민들.

나라 자체를 팔아먹어도 찍어 준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연은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백성들도 믿을 수 없었다.

또한 그런 정치인들과 융합해 부를 일군 기업들의 행태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조선전력공사를 만든 거였고, 모든 토지를 조선전력공사 소유로 바꾸고 있는 거다.

'생각해봐? 어차피 세월이 지나면 국가를 초월한 거대 기업들이 생겨날 거잖아?'

'그건 그렇지.'

'그때 그런 기업을 국가 차원에서 제재할 수 있겠어? 난 없다고 봐.'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이기에 선의를 베풀라고 강요할 수도 없고, 강요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연은 다른 방법을 생각해 냈다.

'나라 대신 그런 기업들이 세상을 지배하게 되면 암울한 미래만 있을 뿐이지.'

'강력한 법을 만들어 통제하면 되지 않을까?'

'그게 되겠냐?'

'미국만 봐도···.'

'미국? 미국도 마찬가지야. 중학생이 술 처먹고 운전하다가 사고를 내서 사람이 죽었는데도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어.'

'뭐? 정말 그런 일이 있었어?'

'부모가 부자라 잘나가는 변호사를 고용해서지. 미국이라고 다르지 않아.'

'미국도 촉법소년이 있었네.'

연이 만들어 가고 있는 조선에는 예절교육을 무척이나 중요시한다.

그랬기에 촉법소년같이 막 나가는 일은 없었지만, 그와 유사한 일은 심심치 않게 나타났다.

아무튼 연은 공익은 제쳐놓고 이익만 추구하더라도 뭐라 할 수 없는 기업 대신 조선전력공사가 그 역할을 하게 만들고 있다.

황실 기업인 조선전력공사라면, 대의를 위해 이익을 포기하고 백성들의 삶을 돌볼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물론 후세에 미친놈이 나타나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기에 그에 대한 방지책도 구상해 놓았다.

'나라를 운영하는 정치인도, 나라를 구성하는 백성도, 나라의 부를 만들어내는 기업도 모두 믿을 수 없으니 대신 그 역할을 조선전력공사에 맡기겠다는 거야?'

'맞아. 너도 알다시피 지금 조선은 너무나 커. 이대로 간다면 조선은 분열의 위기를 맞이할지도 몰라. 하지만 조선전력공사가 부를 옮겨 쥐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어?'

'반항할 수 없겠지.'

'그렇지. 지금은 아니지만, 점점 돈의 중요성을 깨닫게 될 거야. 그때도 조선전력공사가 이처럼 유지된다면 그 누구도 분열을 획책하거나 독립할 생각은 못 할 거야.'

연은 시대의 흐름을 거역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다고 뻔히 보이는 암울한 미래를 원치도 않았다.

'너 독과점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지?'

'그거 모르는 사람도 있나?'

'잘 알겠지만,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 봐야 아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

'그러긴 하지···.'

'그런데 더 문제는 한번 맛을 보면 알아야 하는데 똑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하는 게 사람이란 동물이야. 그런 동물 같은 사람들이 더는 설칠 수 없게 만들고 싶어.'

'돈으로 잡겠다는 거네.'

'맞아. 남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욕심만 챙기는 사람이 더 돈을 밝히니까.'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예절교육을 하고 있지만, 자신의 이득만 여시는 사람은 지속해서 나타나고 있었다.

'나중에 권력은 백성들에게 돌려준다고 해도 부는 꽉 움켜주고 있을 거야. 그것만이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희망적으로 만들 수 있을 테니.'

'결국 네가 생각하는 세상도 돈이 우선이구나.'

'그렇지.'

그때 문식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신이 관리하는 아파치 왕국을 어떻게 만들어 갈까 고민하다가 연에게 물어봤는데 결국은 돈이었다.

모두는 아니더라도 조선 백성들만큼은 잘 먹고 잘살게 만들고 싶었던 연이지만, 그보다 나은 답은 찾지 못했다.

아무튼 연은 일정이 빠듯했기에 이렇게 환영해 준 원주민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시 출발했다.

대신 서부에서 유행하는 청바지를 하사품으로 전해줬다.

원주민들 또한 사람이기에 기차역과 함께 조성된 마을에서 사는 것을 더 선호했다.

편리한 것도 있지만, 역 바로 옆에 지어진 관공서 빼고는 모든 집들이 자연 친화적으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연은 자연을 숭상하는 원주민들을 위해 지붕 위에 사람이 앉아서 쉴 수 있는 평평한 평상을 만들라고 했다.

생각 같아서는 옥상 전체를 평평하게 하고 싶었지만, 눈이 많이 내리면 무너질 수도 있기에 그리 한 거였다.

그러자 신기한 현상이 생겼다.

원주민들은 옥상 위 편상에 천막을 치고 살면서 아래 집안에는 곡식을 보관하고 말과 개와 고양이를 키우는 것 아닌가.

말은 그렇다 쳐도 개와 고양이를 키우는 게 신기해서 조사해봤다.

개와 고양이는 동역에서 신역으로 온 이주민들이 데리고 온 거였고, 철도 공사 과정에서 널리 퍼진 거였다.

한반도뿐만 아니라 조선 전역에서 먹을 것이 부족할 때는 천덕꾸러기나 다름없었던 개와 고양이.

이젠 백성들과 함께 사는 반려동물이 되었다.

특히 자연 속에서 살아왔던 신역의 원주민들은 그 현상이 더욱 두드려졌다.

기차가 출발하자 원주민들과 함께 뛰어오는 개를 보고 순이 물었다.

"아바마마, 저건 진돗개 아닙니까?"

"그렇구나. 여기서 진돗개를 보다니···."

생각지도 못한 진돗개를 보고 연이 의아해하자 육갑이가 말을 꺼냈다.

"사장님, 진돗개는 여기서도 영물로 취급받고 있습니다."

"그래?"

"네, 사장님."

늑대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믿는 신역의 원주민들.

늑대처럼 생긴 진돗개를 무적이나 좋아했다.

진돗개는 특성상 가둬놓고 키우면 절대 안 되는 동물이다.

하지만 넓은 곳에 풀어 놓으면 영역 하나는 확실히 지키는 동물 아닌가.

거기다 똑똑하기까지 했으니 원주민들이 반 할 수밖에.

가을이 끝날 때쯤 연이 탄 기차가 시카고에 도착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들려야 했던 마을들이 많았기에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아바마마, 바람이 무척이나 차갑습니다."

"저 바다같이 보이는 호수 때문이란다. 그러니 옷을 단단히 여미거라."

"바다가 아니라 호수라고요?"

순은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왔기에 물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미시간호를 보고 바다인 줄 알았다.

그런데 호수라니.

깜짝 놀란 표정으로 눈이 커진 순을 보고 연은 씩 웃으며 말했다.

"순아, 여기까지 오면서 보았느냐?"

"무얼 말입니까?"

"끝도 없는 평원 말이다."

"초록으로 된 바다인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라도 이곳은 꼭 개발해야 한다. 이곳만 개발해도 조선 백성들이 모두 먹고살 수 있단다."

"참말입니까?"

"그럼! 저기 보이는 바다처럼 넓은 호수가 있어서 이곳은 농사짓기에 정말 좋은 곳이란다. 그러니 백성들이 늘어나 곡식이 부족하기 전에 이곳은 꼭 개발하거라."

"아바마마가 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아직은 백성들이 너무 부족해서 개발해도 소용이 없단다. 그러니 네가 할바마마처럼 황제가 되고 나서 개발하렴. 그때 해도 늦지 않을 거다."

신역 인구는 원주민들을 다 포함해도 500만 명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신역은 풍요로운 곳이기에 이곳으로 이주하라고 홍보하고 있지만,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젊은 백성들 말고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강제할 수도 없는 일.

연은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가 아주 빠르게 다가왔다.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닌 태자비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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