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221화 (221/275)

221. 아들 순과 함께하는 여정(4)

연은 하서(LA)까지 가는 길에 길이가 10m가 넘는 대왕오징어 떼를 만났다.

"아바마마, 저 오징어도 먹을 수 있습니까?"

"이가 강해서 씹을 수 있다면 가능하겠지. 그런데 맛이 고약해서 아무도 먹지 않는단다."

순은 궁녀들이 오징어를 서로 더 먹으려고 다투는 걸 가끔 보았다.

동해안에서 잡아 말린 오징어는 동역에 사는 조선 백성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별미였으니 그럴 수밖에.

"아쉽습니다. 저 큰 걸 먹을 수 있다면 다투지 않아도 되는데요."

"그러게 말이다. 저 오징어는 바다 깊숙한 곳에서 살아서 그런지 몸에 염화암모늄이 가득해서 맛이 고약하단다."

"아, 그럼 냄새가···."

순은 자기 코를 손가락으로 잡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암모니아가 어떤 냄새를 풍기는지 알기 때문이다.

순은 행식이와 미순이의 아들인 순식이와 주로 놀았다.

누나들과 노는 것보다 척척 박사급인 순식이와 노는 게 더 재밌어서였다.

그러다 보니 순도 주워들은 게 많았다.

연은 생각보다 많이 알고 있는 순이 기특해 보여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무튼 연이 탄 기함이 하서와 가까워지자 전함 한 척이 마중 나왔다.

신역 서해안은 해적질을 할 만한 섬이 없었고, 쳐들어올 만한 적대 세력도 없었기에 함대를 운영하진 않았지만, 전함은 배치해 놓았다.

혹시 모를 위험을 대비하기 위한 거였다.

"멸! 조선전력공사 해양 경비대 신역 서해안을 맡고 있는 진육갑! 사장님을 뵙습니다."

"수고가 많다. 문제는 없고?"

"네, 사장님. 저희 해경은 문제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육경에서 좀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 무슨 문제인지 말해 보거라."

"가면서 보고드리겠습니다."

조경 1호의 함장이었던 육갑이는 어느덧 한 지역을 담당하는 지역 사령관이 되었다.

육갑이의 안내로 '남서'라 불리는 샌디에고에 기함을 정박하고 기차에 올라탄 연은 보고를 받았다.

"사장님께서도 아시겠지만, 신역의 서해안은 이곳처럼 큰 배를 정박시킬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항구를 건설하고 있는데 원주민들의 습격이 있었습니다."

신역 서해안 대부분은 절벽이다.

그래서 항구를 조성할 만한 곳이 별로 없었다.

특히 연이 타고 온 기함을 정박할 수 있는 곳은 남서 또는 중서(SF)뿐이었다.

21세기에는 LA 남쪽에 엄청나게 거대한 롱비치(Long Beach) 항구가 있지만, 지금 기술론 그런 항구를 지으려면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천연 항만인 샌디에고에 기함이 정박할 수 있는 항구를 짓고 있었다.

"뭐라고? 그런 일이 있었는데 왜 보고 하지 않았느냐?"

"진압은 되었고, 사장님께서 아파치 왕국으로 떠난 후에 발생한 일이라 이곳까지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음···. 대붕에는?"

"당연히 연락했습니다. 정용식 사령관님께서 그리 지시하신 겁니다."

"잘했다."

조선전력공사 경비대는 '선보고 후 조치'가 기본이지만, 때에 따라서는 '선조치 후보고'를 할 수도 있다.

무선 통신이 발달했지만, 상황에 따라선 급히 조치할 필요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고를 하지 않았다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중 징계가 내려진다.

사건을 덮거나 감추는 일도 있을 수 없었다.

그런 짓은 사기죄에 해당하기에 사형을 당할 수 있었다.

아무튼 육갑이의 말은 이랬다.

급하게 항만 공사를 하는 통에 조선말을 하지 못하는 원주민들을 고용했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물건이나 음식을 함께 나누어 쓰는 공동체 생활을 해왔던 원주민들.

물어보지도 않고 공사장에 있는 물건들을 가져갔다.

그래서 그러지 말라고 했다.

그건 나쁜 짓이라고 경고했는데, 반감을 품은 거였다.

원주민들은 밤에 몰래 습격해왔고, 이를 발견한 경비대원들에 의해 몰살을 당했다.

공사장에서 일하면서 알게 된 지식으로 보초탑에 연결된 전선을 끊고 공격해 왔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몰랐다.

어두운 밤을 대낮처럼 밝히는 야광탄이 있다는 걸.

"그래서 어떻게 됐느냐?"

"우리는 가벼운 찰과상 정도지만, 이 지역 원주민 전사들은 씨가 말라버렸습니다."

"이런···!"

신석기와 청동기의 경계선에 있는 원주민들과 20세기 무기를 들고 있는 경비대원들과의 전쟁은 너무나 쉽게 끝났다.

겁도 없이 공격해 왔던 원주민들은 보초탑 몇 곳에서 쏴 갈긴 기관총탄에 의해 전멸해 버렸다.

"그래서 항만 공사가 중단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흐음···."

연은 신역을 개척하면서 이런 일이 한 번쯤 벌어질지 알았다.

중남미뿐만 아니라 북미 대륙에 사는 원주민들 또한 무척이나 호전적인 부족이 많았기에 예상은 하고 있었다.

그래서 준비하고 있었지만, 이처럼 일할 수 있는 젊은 원주민들이 몰살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남은 원주민들은?"

"일단 부족이 거주하는 지역을 포위하고 먹을 것을 공급해 주고 있습니다."

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다. 잘했구나. 일단 대기하고 있거라. 결정되는 대로 통보하마."

"알겠습니다. 사장님."

연은 하서에 도착하자마자 문식이에게 연락했다.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웃고 난 문식이가 말했다.

-미안, 웃을 일이 아닌데. 아무튼 우리 부족도 그들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왔잖아. 그 이유가 뭐겠어? 말이 안 통한다는 거지.

"같은 원주민인데도 말이 안 통해?"

-오죽했으면 내가 일일이 조선말을 가르쳤겠어.

21세기에도 지역에 따라 방언을 그대로 쓰는 지역이 있다.

그런데 곳곳에 흩어져 부족 생활을 하는 곳은 어떻겠는가.

거래 하나 하는데 서너 명이나 되는 통역이 필요할 정도였다.

그래서 문식이가 전사들에게 조선말을 가르쳤던 거였다.

"아무튼 언제 보내 줄래?"

"송 선생에게 말해서 바로 보내도록 할게."

"고맙다."

-고맙긴, 송 선생은 너희 나라 사람이잖아. 그런데도 우리 왕국의 기틀을 다져주고 있으니 내가 고맙지.

연이 원주민들을 교화시키기 위해 떠올린 것은 다름 아닌 유교 탈레반들이었다.

아파치 왕국의 유교 탈레반이라면 같은 신맥 대륙 사람이라 위화감도 적을 것 같았고, 예의범절과 서로 돕고 사는 것은 확실히 가르칠 것 같았다.

아무튼 하서에 오자마자 터진 사건을 수습하느라 환영 행사도 제대로 받지 못한 연은 다음날 바로 중서(SF)로 떠났다.

일정이 빠듯했기 때문이다.

다시 기차에 몸을 실은 연에게 순이 물었다.

"아바마마, 이곳 백성들은 입고 있는 옷이 특이합니다. 이렇게 더운데도 두꺼운 바지를 입고 있습니다."

"저, 청바지 말이냐?"

"네, 아바마마."

"이곳은 덥긴 하지만 그늘로 가면 시원하지 않더냐. 그리고 밤은 춥고."

"그렇다고 저렇게 두꺼운 바지를 입을 필요가 있습니까?"

"또한 말을 타고 다니잖느냐. 그러니 튼튼한 청바지가 좋겠지."

"아···, 이제 이해가 됐습니다. 아바마마."

연은 문식이로부터 청바지의 원단이 무엇이고 어디서 생산되는지 알아냈다.

신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필요할 것 같아서였다.

청바지를 만들 때 쓰는 천은 인도 뭄바이 지역에서 나는 '덩거리(Dungaree)'를 원료로 만든 원단이다.

주로 빈민들이 이 원단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는데, 무척이나 질기고 튼튼했다.

원역사에서는 이탈리아 제노바(Genova)에서 청바지를 처음 만들어 입었다고 한다.

그래서 청바지를 ’진(Jeans)'이라고 부른다는 설이있다.

연은 준가르 왕국의 호토고친에게 덩거리 원단을 부탁했고, 호토고친은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아예 청바지를 만들어서 납품했다.

그래서 판매하게 된 청바지.

서핑을 즐기고 자유롭게 사는 젊은 영혼들이 모여 있는 신역 서해안에서 대유행했다.

한번 구입하면 아주 오랫동안 입을 수 있고, 때도 잘 타지 않고, 멋도 있어서였다.

물론 21세기처럼 꽉 끼는 것이 아니라 펑퍼짐한 거였다.

그랬기에 더워도 입고 다니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순아?"

"네, 아바마마."

"사람이란 모두 다르단다."

"그렇습니까?"

"그렇단다. 단 한 사람도 똑같은 사람은 없단다. 그러니 항상 명심하거라. 사람이 각기 다르니 생각도 제각각이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손가락을 입술에 붙이고 눈을 감았다 뜬 순.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연이 생각하기에는 순이 나이에 비해 무척이나 똑똑한 아이였지만, 그건 부모로서 희망 사항이었다.

"음···, 한양과 이곳은 날씨가 다르지 않더냐?"

"그건 그렇습니다. 아바마마. 해만 보더라도 무척이나 강합니다."

"그렇듯 사람도 제각각이란다. 그러니 모든 걸 하나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아, 이제야 알겠습니다. 복만이 언니는 힘은 좋지만, 순식이만큼 머리를 쓸 줄 모릅니다."

"맞다. 복만이와 순식이는 서로 다르지만, 둘이 합하며 어찌 되겠느냐?"

"음···, 당할 사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각기 다른 사람이 떨어져 있을 때는 부족한 게 있지만, 뭉치면 강해진단다. 그러니 사람들이 서로 돕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좋단다."

"아, 1 더하기 1은 2가 아니라 3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순식이가 순에게 한 말을 순이 응용한 거지만, 연은 그런 순이 너무나 기특해 보였다.

연은 순과 함께 중서에 들려 상서까지 가는 동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혹시라도 잘못된 생각에 빠져버린다면 걷잡을 수 없기에 그런 거지만, 아들과 나누는 대화가 즐거웠다.

아무튼 가는 곳마다 큰 환영을 받은 연은 상서에서 다시 신역 동부로 떠났다.

남서에서 이곳까지 안내를 자처하며 따라온 육갑이에게 연이 물었다.

"아주 철도를 잘 깔아 놓았구나. 일하는 사람들 먹을 것은 어떻게 했느냐?"

"사장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했습니다. 바다에 널린 게 진짜 커다란 전복이었습니다."

6년간 공사 끝에 1869년에 완공된 미대륙 횡단 철도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중 하나가 단백질이었다.

힘든 노동이었던 철도 공사장.

그곳에서 일하는 인부들은 매일 지속되는 공사에서 힘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동부 같으면 소를 많이 키웠기에 단백질 공급에 문제가 없었지만, 서부는 아니었다.

그러던 중 중국인 노동자들이 바다에서 전복을 잡아먹는 걸 보고 전복이 단백질 덩어리라는 걸 알게 되었다.

고순도 양질의 단백질인 전복을 공급하자 서부에서 시작된 공사도 차질없이 진행되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던 연은 바닷가에서 전복을 잡아 일하는 사람들에게 공급하라고 했다.

신역 서부는 목축할 만한 땅이 있는 곳에는 물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기에 목축을 할 수 없었다.

수로가 완공되고 나서야 목축을 할 수 있기에 그리하라고 한 거였다.

"크기는 잘 관리하고 있지?"

"네, 사장님. 18cm 이하는 잡더라도 바로 바다로 다시 돌려보내라고 했습니다."

신역 서해안도 조수간만의 차이가 있기에 물이 빠지면 그냥 가서 줍기만 하면 된다.

그러다 보니 관리하지 않으면 언제 전복이 멸종될지 몰랐다.

"그래 수고가 많구나."

"아닙니다. 사장님.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수고라 할 수 없습니다."

은동리의 연구원들뿐만 아니라 조선전력공사 직원과 대원들은 연이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한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그랬기에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티를 내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연이 육갑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순은 차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아바마마 저것 좀 보십시오. 와···!"

순이 환호를 지르자 연과 육갑이는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서 넓은 들판을 지나가는 기차를 보고 말을 타고 따라오는 이들.

원주민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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