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219화 (219/275)

219. 아들 순과 함께하는 여정(2)

연이 한눈에 유교 탈레반이라고 알 수 있었던 이유는 선비 복을 입은 사람들 앞에 송시열이 서 있는 걸 보아서였다.

성리학의 대가라는 의미로 송자(宋子)라 불렸던 송시열.

조선의 유학이 잘 못 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먹고 사는 것이 먼저거늘, 그 간단한 이치도 모르면서 무엇을 추구하려 했던가···?'

역모죄로 탄광에 끌려간 후 힘든 육체노동을 하면서 백성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할 수 있었다.

'죄를 짓고 끌려 온 백성들이지만, 그 누구도 먹고살 걱정은 하지 않는구나···. 그러니 저리 밝게 웃을 수 있구나.'

송시열이 배우고 지키려 했던 성리학에서는 인간의 감정은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 일곱 가지로 분류한다.

기쁨·분노·슬픔·즐거움·사랑·미움·욕망.

이 일곱 가지 감정은 다시 좋음(好)과 싫음(惡)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그런데 탄광촌에 끌려와 노역하는 백성들의 모습에서 싫음보다 좋음이 더 많아 보였다.

어찌 된 일인지 궁금한 송시열은 수시로 백성들에게 물어봤다.

'뭐가 그리 좋아서 항상 웃고 다니시오?'

'아, 좋다 말다 요. 내 비록 사기를 치다 잡혀 왔지만, 사형당하지도 않았고, 이리 배불리 먹고 편히 지낼 수 있으니 이곳이야말로 극락정토 아니겠소?'

'힘들지 않소?'

'에이, 이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요. 보아하니 지체 높은 선비 같은데 우리 같은 백성들이 어찌 살았는지나 아시오?'

송시열은 알지 못했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불평불만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며 반항하는 백성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곳으로 끌려갔다.

알아보니 그런 자들만 사는 세상으로 보낸다고 했다.

그런 곳에서 지내다가 개과천선한 것을 인정받아 다시 탄광으로 온 이에게 물었다.

'그곳은 어떤 곳이요?'

'섬이었소. 아주 넓은. 항상 여름이었고, 무척이나 아름다운 곳이었소.'

'그래요?'

그런데 그곳에 갔다 온 이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표정이었다.

'가보시면 알겠지만, 사람이 살 곳이 아니요. 그곳은 마귀들만 사는 곳이요.'

'마귀라 했소?'

'그렇소. 사람의 탈을 쓴 마귀들이 득실거리는 곳이요.'

연의 명에 따라 체제에 순응하지 못하는 죄인들은 한 곳으로 보내졌다.

그곳은 대만에서 동쪽으로 300km 떨어진 곳에 있는 궁고도(宮古島)였다.

대만과 오키나와 중간쯤에 위치해 있는 궁고도.

도저히 관리할 수 없다고 판단된 죄인들을 남역으로 가는 길에 그곳에 풀어 놓고 있었다.

'앞으로 이곳에서 마음껏 살도록 하라'는 말만 하고 그 어떤 관섭도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참말로 좋았다오.'

그때 일이 생각나는지 그자의 눈빛은 아득해졌다.

그러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섬 서쪽, 관리소가 있는 지역은 먹을 것도 주고 안전해 보였소. 그래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아니었소.'

'그게 무슨 말이요?'

'관리소 지역은 휴일에만 열렸다오.'

일명 무법도(無法島)라 불리는 그곳은 말 그대로 무법천지였다.

5일마다 돌아오는 휴일에만 먹을 것을 배급하고 그 무엇도 관섭하지 않았다.

섬 내부에서 서로 싸우고, 죽고 죽여도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살려면 관리소가 있는 지역에서 숨죽이고 있어야만 했소.'

죄를 짓고 탄광에 끌려와서도 안하무인으로 행동했던 이는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때 일이 끔찍했는지 눈동자만 세차게 돌아가며 불안해했다.

그 후 송시열은 태자 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았다.

그리고 깨달을 수 있었다.

'말로써 가르치는 것은 한계가 있구나.'

또한 '사람이란 고쳐 쓸 수 있는 게 아니다'는 것도 깨달았다.

'자신이 깨우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안 것이다.

탄광에서 성실히 지낸 덕에 풀려난 송시열은 예절 교육 선생을 모집한다는 사파비 지역으로 갔다.

그곳에서 자신이 깨달은 것을 가르쳤다.

그러자 송시열을 따르는 이들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연이 기차에서 내리자 유교 탈레반들과 함께 서 있던 송시열이 예를 올렸다.

"전하를 뵙습니다."

"""전하를 뵙습니다."""

송시열을 선두로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리는 유교 탈레반들.

하얀 옷에 하얀 두건을 쓴 그들의 복장은 무척이나 실용적이었다.

겉에 입은 하얀 도포는 단추가 달려 쉽게 입고 벗을 수 있었고, 무릎을 덮지 않아 활동하기 편해 보였다.

"이게 무슨 짓이요? 어서 일어나시오."

허례허식을 싫어하는 연이 인상을 쓰며 화를 냈다.

그러자 송시열이 극진한 표정으로 일어서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전하. 이런 예의는 오직 폐하에게만 하는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 학생들이 저러는 것은 실용 유학을 몸소 보여주신 전하께 감동하여 존경하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너무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그렇다 해도 이러는 건 아니 되오. 이러는 건 실용에 반대되는 행위 아니오?"

"맞습니다. 전하."

송시열이 바로 인정하자 연은 더는 따지지 않았다.

대신 덩치가 작은 탈레반에게 물었다.

"네가 로닌이더냐?"

"네, 전하. 제 이름을 알고 계십니까?"

"어찌 모를까? 너와 동무들은 동역에서도 유명하지 않으냐?"

"그렇습니까?"

유교 탈레반을 조직한 로닌, 밀라드, 마한, 하미드 이 네 학생이 송시열과 함께 추구하는 실용 유학을 이제는 모르는 이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 이슬람을 믿는 사파비 지역에서 실용 유학이란 이름으로 유학이 꽃을 피우고 있었으니.

연은 송시열의 안내를 받으며 왕궁으로 가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나저나 지내기는 어떠시오?"

"제로니모 대왕께서 보살펴주셔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제 환갑잔치까지 열어 주셨습니다.""

"그래요? 잘 지내고 있다니 좋군요."

"다, 전하 덕분입니다. 전하께서 이루신 덕분에 제가 호강을 합니다."

송시열이 아파치 왕국에 온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어느새 아파치 왕국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그를 따르는 유교 탈레반들이 하나같이 예의가 바르고 남을 돕길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아파치 왕국은 어느새 유교 국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 * *

왕궁에 도착한 연은 문식이와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숙소에서 여독을 풀었다.

혼자였다면 술부터 펐을 건데 태자비와 아들 순이 있었기에 그럴 수는 없었다.

"아바마마, 궁금한 게 있습니다."

"어, 그래? 무엇이 궁금하더냐?"

"왜 대왕께서는 부인이 저렇게나 많나요? 셀 수조차 없었습니다."

양손으로 손가락을 넘기며 눈을 깜빡이는 순을 보고 연은 귀여워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부럽더냐?"

"아니옵니다. 불쌍해 보였습니다."

"그래?"

"네, 아바마마. 저는 호랑이가 되고 싶지, 사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

"네, 아바마마."

한양은 물론 전역 대도시에는 동물원이 있다.

다양한 동물들을 잡아서 가두어 놓는 것은 내키지 않았지만, 자라나는 어린아이들을 위해 그리한 것이다.

또한 백성들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4일 일하고 하루 쉬는 조선이다.

게다가 도시 위주로 개발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휴일만 되면 도시 밖으로 나가 휴일을 즐기려는 백성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도 한때였다.

시간이 지나자 백성들은 이제 도시 안에서도 놀거리를 찾고 있었다.

그래서 다양한 문화시설과 놀이시설을 도시 안에 지었고, 그러다 보니 동물원까지 짓게 된 것이다.

동물원에서 순은 수많은 암사자에게 둘러싸여 잠만 자고 있는 수사자가 불쌍해 보였다.

그와 달리 혼자서 수영을 하고 바위를 타고 노는 호랑이가 멋져 보였다.

"왜 그리 생각하느냐?"

"사자는 식구가 너무 많습니다. 그 많은 식구를 먹여 살리려면 놀지도 못합니다."

순의 눈에는 퍼질러 있는 수사자가 피곤해서 놀지도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거다.

다시 입을 연 순이 연을 보며 일침을 가했다.

"할바마마도 부인이 여러 명이라 궁궐에만 있지만, 아바마마께서는 부인이 한 명이라 자유롭게 돌아다니시잖아요."

"어, 어. 그렇지."

"소자도 그럴 겁니다."

벙찐 표정의 연은 민망한지 고개를 돌려 태자비를 바라보았다.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는 태자비는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연은 순을 들어 올려 꼭 안아주었다.

자주 놀아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기에 항상 미안했는데.

'잘 컸구나. 걱정 안해도 되겠어.'

역사를 잘아는 문식이는 순에 대해서 걱정을 놓지 않았다.

'명성왕후 김씨조차 자신이 난 아이지만 성질이 아침 다르고, 점심 다르고, 저녁 다르다고 감당할 수 없다고 했는데 괜찮겠냐?'

'괜찮을 거야. 엄마가 다르니 괜찮아야지.'

그렇게 말했지만, 불안함은 가시지 않았다.

여차하면 황위를 큰딸 명화에게 물려줄 생각까지 했다.

그만큼 한번 떼를 쓰면 순을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그런데 이곳까지 오면서 순은 단 한 번도 떼를 쓰지 않았다.

마치 효자인 것처럼 태자비를 보호하고 다녔다.

그 모습에 연은 가슴이 아렸지만, 든든했다.

아무튼 여자 문제로 나라를 혼란에 빠트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 * *

연이 아파치 왕국으로 간다는 말에 제후국 왕들은 서둘러 함부르크로 향했다.

그곳에서 배를 타고 일식시까지 오는 동안 준가르 왕국의 호토고친 왕과 체코의 안톤 왕은 흥분을 가라 앉히지 못했다.

다두 왕국의 카마찻 왕과 지팡구 왕국의 나카토 왕은 수시로 조선의 전함을 타고 한양을 오갔고, 브리튼 왕국의 칼 10세는 연과 함께 기함까지 타 본 적이 있기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지만, 두 나라의 왕은 처음 타 보았기에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구경하기 바빴다.

"조선 전함이 크다고 말은 들었는데, 이리 거대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엄청나게 큽니다."

"기함은 더 크다고 하는데 혹시 보셨습니까?"

"아닙니다. 본적은 없지만 말은 많이 들었습니다."

"일식시에 가면 볼 수 있을까요?"

"그건 힘들 겁니다. 조선의 태자께선 반대편인 태평양을 건너온다고 했으니까요."

"아, 그렇군요."

제후국에서도 조선에서 송출하는 라디오 방송을 들을 수 있기에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게다가 전파를 이용한 삼각 측정법으로 정밀 지도를 제작해서 배포하고 있기에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도 알고 있었다.

* * *

제후국 왕들이 곧 일식시에 도착한다는 말을 들은 문식이는 연을 찾았다.

"꼭 마중 나갈 필요 있어?"

"알잖아?"

목에 힘을 주고 으스대는 문식이.

그 모습을 보고 연은 기가 막힌 지 피식 웃었다.

"그렇게 자랑하고 싶어?"

"당연하지. 날 얼마나 무시했는데. 혹시라도 돈은 절대 빌려주지 마. 빌려주더라도 이자는 비싸게 부르고."

"왜 네가 대신 빌려주려고?"

"응, 이번 기회에 코를 꿰놓아야지."

"알았어."

제후국 왕들이 아파치 왕국을 방문하는 이유는 연이 온다고 해서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건 바로 아파치 왕국에 철도가 완공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제후국 왕들은 철도를 놓고 싶었지만, 그럴만한 여력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아파치 왕국에 철도가 완공됐다고 하자, 이번 기회에 아파치 왕국에 놓인 철도도 보고 여차하면 연에게 돈을 빌려 자국에도 철도를 놓을 생각이었다.

일식시까지 마중 나간 문식이와 연은 배에서 내리는 제후국 왕들을 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연에게 인사를 하고 난 제후국 왕들.

전과 다르게 문식이에게 다가가 말했다.

"아니, 이리 멋지게 지어 놓고 왜 한 번도 초청하지 않았습니까?"

"서운합니다."

"정말 천국 같은 곳이군요. 부럽습니다."

"얼마나 들었습니까? 우리 왕국도 이처럼 멋진 항구 도시를 짓고 싶습니다."

에메랄드빛 바다에 온통 하얀색과 파란색으로 이루어진 항구 도시는 문식이의 작품이었다.

지중해 산토리니를 참고하여 만든 일식시.

다시 와서 본 연도 놀랄 정도였다.

다들 부러움에 한마디씩 하는데 거구의 칼 10세가 내뱉은 말에 모두가 그를 바라보고 열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스페인의 식민지였다고 들었는데, 내가 대신 복수해 주겠습니다. 그러니 우리 왕국에도 이런 항구를 지을 돈을 빌려주실 수 있습니까? 아파치 왕국에 있는 건 돈 뿐이라 들었습니다."

누가 바이킹 아니랄까 봐, 칼 10세는 여과 없이 돌직구처럼 말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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