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8. 아들 순과 함께하는 여정(1)
연이 새로운 선별 과제를 발표한 다음 날.
야코프가 주도하는 강연회가 열렸다.
연은 조선말이 서툰 야코프의 말을 통역해야 했기에 함께 참석해야만 했다.
러시아어나 브리튼어(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21세기에서도 최첨단이라 부를 정도로 어려운 강연 내용이라 연이 통역할 수밖에 없었다.
강연회 장으로 가는 길에 연이 야코프에게 물었다.
"미순이는 어때?"
"퀴리 부인이 생각 나더군."
"그 정도야?"
"그 이상이지. 좋겠어. 저런 천재를 발굴해 내서."
"운이 좋았던 거지."
"잘해봐. 강 부인뿐만 아니라 강 부인을 따르는 사람 중에서도 대단한 이가 많더라."
"그래?"
"응. 조선의 앞날이 밝겠어."
이무기에 머물렀던 강미순이 드디어 야코프라는 여의주를 얻었다.
수재였던 연과 달리 진짜 천재였던 야코프.
그가 하는 말을 강미순은 막힘없이 잘 이해했다.
그런 강미순을 보고 야코프는 대충하려던 생각을 버렸다.
그만큼 강미순의 수학적 재능은 넘사벽이었던 것이다.
연과 아코프가 함께 강연장에 들어오자 기다리고 있던 연구원들이 당황했다.
대부분 은동리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연구원들이라 '사장님'이라 불러도 괜찮을지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미순은 평소대로 행동했다.
"사장님을 뵙습니다."
그러자 신입연구원들도 따라 외쳤다.
"""사장님을 뵙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야코프가 미소를 지으며 연을 바라보았다.
"좋겠어?"
"뭐가?"
"저렇게 좋아하니."
연은 들떠 있는 연구원들을 보고 야코프가 뭘 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오늘 강연장에 참석한 신입연구원들.
수학적 재능이 탁월한 이들만 새로 뽑아온 이들이다.
그랬기에 멀리서 연을 본 적은 있어도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은 처음이다.
그래서인지 무척이나 들떠 있었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을 본 것처럼 말이다.
연은 손을 들어 흥분한 신입연구원들을 진정시킨 후에 말을 꺼냈다.
"여기 야코프는 서역에서 온 수학자이다. 우리가 모르는 수학적 재능이 탁월한 자이니 잘 듣고 배우길 바란다."
"""네, 사장님."""
가까이에서 연을 보고 흥분했던 연구원들은 야코프의 강연이 시작되자 극도로 긴장했다.
침조차 넘기지 못할 정도로 야코프의 강연 내용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세상은 원자라는 가장 작은 물질이 있다는 걸. 그런데 이런 원자가 변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나?"
눈알만 굴리며 서로를 바라보는 신입연구원들.
빠르게 자동연필을 움켜쥐었다.
정밀 가공 기술의 집합체인 샤프펜슬은 이제 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2mm 황동 심에 1mm 구멍을 뚫을 정도로 정밀 가공 기술이 보편화된 조선이기에 가능한 거였다.
아무튼 야코프의 강연은 계속되었다.
"원자 안에 들어 있는 원자핵은 구조적으로 불안정하다. 그 이유는 양성자가 서로 밀어내기 때문이다. 이런데도 원자가 그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중성자가 양성자에 붙어서 서로 잡아 주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자연 붕괴를 막을 순 없다. 우린 그걸 '반감기'라 부른다."
토목과 건축도 그렇지만, 물리학에서 수학은 절대적이다.
이론을 바탕으로 현상을 예측하려면 수학적 해석이 필수였다.
야코프는 이를 기초부터 자세히 설명하고 있었다.
통역하고 있는 연이 놀랄 정도로 참신한 내용이었다.
다양한 공식이 칠판에 쓰여지고, 이를 연구원들이 받아 적었다.
"알파 붕괴를 이용하면 우라늄(92)을 토륨(90)과 헬륨(2)으로 만들 수 있다. 또한 베타 붕괴를 이용하면 탄소(6)를 질소(7) 변환시킬 수 있다."
야코프는 1919년 어니스트 러더포드가 실험했던 알파입자 충돌 실험부터 자세히 설명했다.
앞으로 여기 모인 신입연구원들이 소형모듈원자로(SMR)를 만들어야 했기에 핵분열과 핵융합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했다.
"······이처럼 입자가속기만 있다면 우린 새로운 원자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야코프가 주도하는 강연회는 한 달 동안 계속되었다.
게 중에는 따라가지 못하고 포기하는 연구원도 있었지만, 대부분 온 힘을 다해 강연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만큼 강연 내용이 어려웠다.
하지만 너무나 신비롭고 흥미로운 내용이라 연구원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또한 강연 내용 중 유용한 물질을 만드는 방법도 있었기에 새로운 선별 과제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 하나가 영화에서 나왔던 팔라듐이었다.
21세기에서 히트 쳤던 영화 '강철맨'이 사용하는 핵융합 아크 원자로는 팔라듐을 에너지원으로 쓴다.
영화에서는 팔라듐이 독성이 있다고 설정했지만, 사실 팔라듐(46)은 핵융합 촉매제도 아니고 독성 또한 없다.
팔라듐은 독성은커녕 인체에 해가 없기에 은을 대신하는 장신구로 쓰거나, 차량의 매연 저감장치로 쓰고 있다.
아마도 수소를 저장하는 능력이 탁월한 팔라듐이라 핵융합 촉매제로 쓰인다는 설정을 한 것 같다.
아무튼 팔라듐뿐만 아니라, 화제 감시에 사용되는 아메리슘(95)을 만드는 방법도 공개됐다.
"이상으로 강연을 마치겠다. 연구 중 궁금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나를 찾아와라."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모든 강연이 끝난 후 연이 야코프에게 물었다.
"어때?"
"뭐 결과를 봐야 알겠지만, 희망적인데."
"그래?"
"응, 생각보다 빨리 만들 수 있겠어."
"좋은 소식이군. 고맙다."
"고맙긴. 주고받는 거지."
자신을 따르는 이들로부터 안전하게 뉴질랜드에 정착했다는 말을 들은 야코프는 연을 믿기 시작했다.
식인종 원주민들이 득실거리는 뉴질랜드라 걱정했지만, 그들을 모두 복속시켜 놓았던 거다.
강연회를 끝낸 야코프는 자신이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고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어떻게 한 거야?"
"뭘?"
"뉴질랜드 원주민들 말이야?"
"아, 오래전부터 작업하고 있었어. 전부 죽일 수는 없잖아."
슬픈 이야기지만, 연이 태어나기 전 조선 또한 기근으로 식인을 했다는 기록이 있기에 연은 그들을 식인 풍습에서 건져 내려고 했다.
연은 뉴질랜드로 떠나는 박문식에게 당부했다.
'힘을 보여주고 먹을 것을 원하는 만큼 주도록 해라.'
'그런데도 식인 풍습을 버리지 못하면 어떡합니까?'
'별수 있나. 죽여야지.'
연은 무예가 뛰어난 대원들을 박문식에게 딸려보냈다.
뉴질랜드는 강한 자를 잡아먹으면 강한 힘을 얻을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식인 풍습이 있는 곳이다.
그런 곳이기에 무력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덩치가 큰 뉴질랜드 원주민들 중 식인 풍습을 버리지 못하고 덤벼드는 식인종들을 단칼에 썰어버리고 나서야 그들을 모두 굴복시킬 수 있었다.
그 후로 그들을 교화시키는 작업에 들어갔다.
식인을 하지 않더라도 강한 무력을 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식인을 하면 뇌가 썩어들어간다고 교육했다.
그 결과 야코프의 추종자들은 어렵지 않게 뉴질랜드에 정착할 수 있었다.
"떠난다고?"
"같이 갈래?"
"아니, 난 뉴질랜드나 갔다 오려고."
"그래? 알았어. 갔다 와서 보자."
이제 야코프가 없더라도 SMR 개발은 연구원들이 알아서 진행할 수 있다고 본 연은 그가 원하는 대로 하라고 했다.
연은 효종에게 인사를 드리고 아파치 왕국으로 떠났다.
문식이에게 간다고 약속한 것도 있지만, 신역 개발 진행 상황도 점검해 봐야 했기 때문이다.
* * *
이번 여정에서 연은 태자비와 아들 이순을 함께 데리고 갔다.
경복궁에 갇혀 지내는 태자비만 데리고 가려 했지만, 이제 7살이 된 이순이 떼를 써서 함께 가기로 했다.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는 동안 이순은 신이 났다.
"아바마마, 어엄청 큰 고래를 봤습니다."
"그래? 엄마도 보여줬느냐?"
"네, 아바마마. 어마마마와 함께 보았습니다."
"잘했다."
"이것 보십시오. 어마마마께서 그린 고래 가족입니다."
"오···, 멋지구나."
태자비가 출판한 그림책은 지금도 엄청나게 팔리고 있기에 그녀의 그림 솜씨가 어떤지 알 수 있다.
그런 그녀가 그린 고래 가족 그림은 포근하고 행복해 보였다.
"순아?"
"네, 아바마마."
"이 그림처럼 고래도 해치지 않으면 사람을 좋아한단다."
16세기부터 상업적 포경이 시작되면서 고래는 사람이 타고 다니는 배를 피해 다녔다.
하지만 조선전력공사 해경들이 타고 다니는 철갑선을 보면 따라다녔다.
해치기는커녕 보호해준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무튼 연은 아들 순과 함께 항해하면서 함께 어울려 사는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
조선과 조선 제후국들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가운데, 오스만제국은 끝내 분열되어 갈가리 찢겨나가고 있었다.
신성로마제국이 망해버린 통에 유럽반도에 작은 왕국들이 수도 없이 세워진 것처럼 오스만제국 또한 분열되면서 독립을 선포하는 곳이 많았다.
그 때문에 연에게 수시로 연락이 왔다.
"메흐메트 4세가 살해당했다고 했느냐?"
-네, 사장님.
"이런! 그래서 어떻게 했느냐?"
-일단, 콘스탄티노폴리스(이스탄불)를 점령했습니다.
"그래 잘했다."
친동생처럼 따랐던 메흐메트 4세.
할머니 쾨셈 술탄의 암수로부터 도움을 요청했기에 조선전력공사 경비대가 임라르 섬에 주둔하고 있었다.
경비대는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폭동이 일어났다는 메흐메트 4세의 연락을 받고 급히 출발했다.
그런데도 죽었다는 것은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일어난 폭동에서 우발적으로 살해당한 것 같았다.
메흐메트 4세와 보호 조약을 맺었다는 걸을 알고 있는 임라르 섬 주둔군 사령관 병수는 내친김에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해버렸다.
주민들의 열화와 같은 호응과 요구가 있어서였다.
-어떻게 할까요?
"상황을 보고 철수할 수 있으면 철수, 아니다. 그냥 그곳에 주둔하면서 치안을 안정시켜라. 인구 파악도 하고."
-넵, 알겠습니다.
연은 명분이 확실했기에 굳이 철수할 필요는 없다고 봤다.
그렇다고 들어내 놓고 그곳을 먹을 생각도 없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전략적 요충지가 확실하지만, 얻어봐야 골치만 아플 것 같았다.
연은 선실 벽에 걸려 있는 지도를 보고 생각에 잠겼다.
태자비와 순이 들어온 줄도 몰랐다.
한참 고민 끝에 정신을 차린 연은 자신의 옆에 서서 지도를 보고 있는 순을 발견하고 씩 웃었다.
"뭘 보고 있느냐?"
"아바마마, 세상이 정말 넓습니다."
"왜 그리 생각하느냐?"
"아바마마, 저길 보십시오. 우리 조선의 수도인 한양이 점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한양만 해도 소자가 가보지 못한 곳이 얼마나 많은데요."
순의 말에 연은 기쁜지 활짝 미소를 지었다.
미운 일곱 살이라 그런지 한번 떼를 쓰면 장난이 아니었던 순이지만, 이처럼 세상을 볼 줄 알다니 기특했다.
"순아, 이런 세상도 저 우주에 비하면 티끌조차 되지 않는단다."
"참말입니까? 아바마마."
"그럼! 참말이고 말고. 저 밤하늘을 보거라. 무수히 빛나는 별빛 하나하나가 태양이란다."
"와···!"
순은 손을 활짝 들고 소리쳤다.
무엇을 보고 저러는지 모르지만, 태평양 한가운데서 밤하늘을 바라보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장관이었다.
"순아, 잘 들어라. 우리 사람들은 백 년도 살지 못하는데 저 광활한 우주로 나갈 생각은 하지 않고 이 좁은 곳에서 아웅다웅 다투며 산단다."
"참말요?"
"그렇단다."
"사람들은 바보네요. 소자는 그리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 꼭 명심하고, 나중에 자식이 생기면 꼭 알려주도록 해라."
"네, 아바마마. 바보가 되게 할 순 없으니까 꼭 말할게요."
연은 순은 번쩍 안아 들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날 있었던 일로 훗날 이순은 '태양계를 정복한 군주'가 된다.
* * *
조선 제국력 9년(1667) 9월.
조선과 아파치 왕국을 이어주는 도시라는 뜻으로 '아조 시'로 명명된 푸에르토 바야르타.
그곳에 도착한 연은 그곳까지 연결된 기차를 타고 서울(과달라하라)로 향했다.
신맥 대륙에서 가장 더운 9월이었지만, 기차 안은 시원했다.
황금의 나라 아파치 왕국답게 문식이는 최고 좋은 사양으로 기관차와 객차를 주문했다.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서였지만, 넘치는 금은보화를 굳이 쌓아놓을 필요가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광식이의 조사 결과 아파치 왕국은 자원만 팔아도 모든 백성이 편하게 먹고살 수 있었다.
그랬기에 문식이는 들어오는 금은보화를 펑펑 써댔다.
그렇다고 사치하고 낭비한 건 전혀 아니었다.
훗날을 기약하며 도로와 철도, 항만과 공장을 짓는 데에 과감히 투자하고 있었다.
연이 탄 기차가 서울에 도착하자 엄청난 함성과 함께 웅장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전하, 저들은 누구입니까? 복장이···."
태자비의 말에 고개를 들고 차창 밖을 내다본 연은 깜짝 놀랐다.
"뭐야! 유교 탈레반들이잖아."
조선 선비 복장을 하고 환영 행사에 나온 이들은 송시열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유교 탈레반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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