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217화 (217/275)

217. 시장 선거(2)

양순이가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와 고개를 숙이더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사장님, 저는 이만 퇴근하겠습니다. 몸 생각하셔서 이만 쉬시지요."

"어? 아직 퇴근 안 했어? 시간 되면 알아서 퇴근하라고 했잖아."

"네, 그래서 이제 퇴근 하려고 합니다. 아침에 일찍 오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대도 그러네. 아무튼 수고 했어. 얼른 들어가 쉬어."

"네, 사장님."

양순이는 아무래도 사장님이 밤을 새울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걱정이 되는지 은진이에게 연락했다.

양순이가 나간 후에도 생각에 빠진 연은 움직이지 않았다.

'도대체 뭘 줘야 반응이 올까?'

이제 시장 후보 등록 마감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니 날이 밝기 전에 결정해서 발표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훅 할만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에잇! 짜증 나네. 매운 거나 먹고 와야겠다."

연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밤에도 식당 문을 여는 연구동으로 걸어갔다.

심한 압박감을 받을 때, 매운 것을 먹으면 효과가 있다.

뇌에서 통증을 줄이기 위해 진통 효과를 지닌 엔도르핀을 분비하기 때문이다.

봄날 향긋한 꽃향기를 맡으며 연이 걸어가는 누가 다가와 옆에 섰다.

은쌍식이었다.

"응? 웬일이냐?"

"사장님, 식당에 가는 겁니까? 저도 추출해서 뭘 좀 먹으려고 합니다."

"그래? 잘 됐다. 같이 가자."

연은 잘 지어진 밥에 불고기, 싱그러운 봄나물, 채소를 넣고 고추장을 듬뿍 떠서 집어넣었다.

거기에 밥알이 굴러다닐 정도로 참기름을 듬뿍 부어 넣고 비볐다.

"카아! 이 맛이야."

무슨 고추로 만든 고추장인지 모르지만, 혀가 알싸할 정도로 얼얼해지며 구수한 참기름과 어울려진 향긋한 봄나물 맛이 기가 막혔다.

지켜보던 은쌍식이 입맛을 다시더니.

"사장님, 저, 한 입만 해도 되겠습니까?"

"응? 그래."

실수였다.

잘 비벼진 비빔밥이 1/3이나 사라졌다.

"우와, 정말 맛있습니다. 한 입 더 먹어도 되겠습니까?"

감탄하는 은쌍식을 보고 연은 인상을 찌푸리더니 그릇째 넘겨줬다.

"됐다. 너 다 먹어라."

"헤헤, 고맙습니다. 사장님."

연은 은쌍식이 왜 이러는지 알기에 숙수를 불렀다.

다시 봄나물 불고기 비빔밥을 만들면서 은쌍식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뭐 좋은 방법 없을까?"

"포인트를 주면 어떻겠습니까?"

"응? 포인트를 줘? 어떻게 말이냐?"

"직원들에게 주는 포인트처럼 하면 안 됩니까? 응용하면 될 것 같은데요."

"흠···."

조선 전역에 조선전력공사 분점이 세워지면서 분점 근처에 직원들 숙소도 조성했다.

또한 분점 가까운 곳에 경치 좋은 곳이 있다면 멋진 휴양소도 세웠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새로 휴양소가 생기면 궁금했기에 너무 많은 직원들이 예약 신청을 하고 있어서였다.

그래서 포인트 제도를 시행했다.

업무 성과로 획득한 포인트를 사용하여 예약하게 한 것이다.

같은 휴양소라도 포인트가 많다면 더 좋은 숙소를 신청할 수 있기에 직원들은 더 많은 포인트를 얻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그만큼 조선전력공사 휴양소는 휴양하기에 좋았다.

한참 머리를 굴리던 연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안될 것 같다. 대신 황실 휴양소를 쓸 수 있게 하자."

"예에?!"

은쌍식의 큰 눈이 더욱 커다래질 정도로 커졌지만, 연은 신경 쓰지 않고 이어 말했다.

"시장인데 그에 맞는 보상을 해줘야 하지 않겠느냐?"

"그래도 황실 휴양소는···."

"어차피 이용하는 종친도 별로 없으니 그리하는 게 좋겠다."

"괜찮겠습니까?"

"뭐라 하면 공직자들을 위한 휴양소를 별도로 지으면 되지. 예맥 북로 횡단 철도도 거의 완성되어 가지 않느냐."

"그렇다면 바로 시행해도 될 것 같습니다."

연은 은쌍식과 함께 바로 한양으로 달려갔다.

* * *

연이 찾아왔다는 말에 효종은 아침 운동을 하지 않고 바로 만났다.

"무슨 일이냐? 몰골을 보아하니 밤을 꼬박 새운 것 같구나."

"상의드릴 일이 있습니다."

"그래 말해 보거라."

연의 말을 다 듣고 난 효종이 걱정된다는 듯 물었다.

"꼭 민주주의라는 걸 해야 하느냐?"

"이제 글을 모르는 백성이 거의 없습니다. 또한 아버지 같은 성군이 계속 나온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러니 시행해야만 합니다. 그게 조선의 앞날에 득이 될 겁니다."

"크흠···."

깊은 침음을 흘리고 난 효종.

연이 수시로 했던 말을 떠올렸다.

'아버지, 백성도 믿을 수 없지만, 황실도 믿을 수 없습니다.'

'왜 그리 생각하느냐?'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불안전한 존재인 동시에 다양합니다.'

그러면서 연은 태어날 때부터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여러 가지 예를 들어서 설명했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고 거짓말을 일삼는 자가 그리 많다는 말이냐?'

'네, 아버지. 그들을 가리켜 소시오패스(Sociopath)라 부릅니다. 이들은 어찌 보면 임해군이나 순화군 같은 사이코패스(Psychopath)보다 더 위험합니다. 눈에 띄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 한양에도 서역에서 온 사람들과 제후국에서 온 유학생들이 많았기에 서양말을 써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민족이란 개념이 없기도 하지만, 화합의 중요성을 수시로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강조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무튼 인간의 다양성을 받아들인 효종은 연과 함께 그 누구도 절대권력을 휘두를 수 없게 체재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흠···, 소시오패스가 시장이 되더라도 명예를 탐내 올바르게 일을 하게 만들겠다는 말이지?"

"네, 아버지."

반사회적 인격장애인 소시오패스와 사이코패스.

절대 고칠 수 없다는 걸 인지한 효종은 연이 내놓은 의견을 허락했다.

"죄를 범하고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자들을 모두 찾아내어 죽일 수 없다니···, 그리하도록 해라."

* * *

-여기는 조선 라디오 방송국입니다.

-정오를 알려드립니다.

-방금 들어온 소식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폐하께서는 이번 시장 선거에서 명예를 아는 백성들이 많이 참가하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공직자 명예 제도'를 발표하셨습니다.

시장 선거 후보 등록을 5일 앞에 두고 발표된 내용은 조선 전역을 활발하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시장 임기가 끝나면 평가를 하고 그 평가 점수로 명예 훈장을 준다는 말이야?"

"맞아. 70점이 넘으면 동 훈장, 80점 이상은 은 훈장, 90점이 넘으면 황금 훈장을 준다고 하네."

"훈장만 줘서 뭐 해. 쓸 때도 없는데?"

"쓸 때가 없기는 동 훈장 하나만 받아도 조선전력공사 휴양소를 그것도 귀빈관을 이용할 수 있는데."

"그게 참말이야?"

"그럼! 궁금하면 석간신문을 사봐. 신문에 자세히 나온다고 했으니."

굳이 석간신문을 사볼 필요가 없었다.

인쇄술의 발달로 라디오 방송이 끝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호외요! 호외!"

공직자 명예 제도에 관해 자세히 설명되어있는 호외가 뿌려졌다.

"우와! 이거 대단한데. 동 훈장만 하나만 받아도 대만은 물론 해남도에 있는 휴양지까지 무료로 사용할 수 있대."

"참말이야?"

"그뿐만 아니야. 훈장 종류에 상관없이 3개 이상이면, 평생 지낼 수 있는 집도 원하는 곳에 지워준 대. 거기에 연금까지 준다는데, 이거 시장 당선되고 잘만 하면 평생 팔자 피겠는데."

"그래?"

"어! 황금 훈장 3개를 얻으면 황실 휴양소도 사용할 수 있데."

"참말이여?"

명예에 따른 두둑한 보상까지 준다는 말에 다시 후보 등록을 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연이 이렇게 과감히 큰 보상을 책정한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반사회적 인격장애자 때문이었다.

겉으로는 표가 나지 않기에 알 수 없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라도 보상이 탐나 올바르게 일할 수 있게 만들 생각이었기에 그들이 혹할 만한 보상을 내 걸었던 거다.

연이 알기로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이코패스는 1%, 소시오패스는 4% 비율로 태어나기에 그리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이 발표로 시장 선거는 다시 불타올랐다.

* * *

문식이의 도움으로 시장 선거를 성황리에 마친 연은 고마움을 표하고자 문식이에게 연락했다.

그런데 문식이는 나름대로 고민이 있었다.

"너희 백성들에게 자부심을 품게 해주고 싶단 말이지?"

-응,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이번 기회에 박람회를 여는 건 어때?"

-우리가 무슨 기술이 있다고?

"왜, 특산품 있잖아."

-특산품?

"우리에게 수출하는 것 말이야."

-아···, 그것 가지고 되겠어?

"우리 백성들이 환장하는 것 보면 틀림없이 성공할 거야."

-그래?

"응, 그러니 특산품 팔 준비나 하셔. 나머지 반은 조선전력공사에서 책임질 테니."

-그래, 고맙다. 바로 준비할게.

제식 축구 협상장에서 다른 제후국들에게 무시를 당했다는 말에 문식이는 기분이 아주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에게 보여주려고 연까지 오라고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몰라보게 변해버린 아파치 왕국이다.

하지만 그것은 조선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것이었기에 자랑할 만한 것이 아니라고 봤다.

그래서 문식이는 다른 해결책을 찾았다.

조선에서 철도와 도로, 수로, 발전소까지 지워준 대신에 넘겨주었던 금덩이와 은덩이.

이제는 다양한 형태로 가공되어 아파치 왕국의 특산품이란 이름으로 비싸게 팔고 있다.

중남미 특유의 강렬한 색채로 만들어진 특산품들은 황금과 은은 물론 보석까지 포함하고 있었기에 누구나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뿐만 아니었다.

남미에만 사는 라마(Lama) 가죽으로 만든 다양한 수공예품들은 질기지만 부드러웠기에 명품으로 통할 정도였다.

아무튼 조선에 이어 아파치 왕국에서 박람회가 열린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 * *

연은 소형모듈원전(SMR)을 만들기 위해서는 더 정밀하고 빠른 기반 기술을 확보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선별 과제를 만들어 발표회를 가졌다.

-지금까지 말했다시피 이 SMR를 만들 수만 있다면 우리 인류는 한 차원 더 진화할 수 있다.

-그러니 만사를 체쳐놓고 노력하길 바란다.

-그렇다고 무리하지는 말고.

-뭐가 가장 중요하지?

"""안전입니다!"""

세월이 무수히 지났지만, 연의 강연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강연을 듣는 연구원들의 태도 또한 그대로였다.

-맞다.

-우리 조선전력공사의 장점은 뭔지 다들 알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무리하지 말 거라.

-한번 사고로 바로 옆에 있는 동료와 생이별을 할 수도 있으니 언제나 안전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알겠나?

"""네! 사장님!"""

은동리에는 수많은 연구소가 있지만, 연구소를 운영하기 위한 예산이란 없었다.

청구하면 타당성 검토 후, 바로 지급하기에 연구원들이 시간을 소비하며 예산을 짜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만큼 연구자금을 무한 지원했기에 새로운 기술과 기물이 끊임없이 계속 탄생했다.

합금만 하더라도 동시에 100개 이상 다양한 비율로 시제품을 만들어서 실험했기에 개발 속도는 엄청나게 빨랐다.

아무튼 발표를 마친 연이 집무실로 돌아가려는 데 은쌍식이 말했다.

"사장님, 저기 보십시오. 야코프가 누구에게 손을 흔드는지."

"어, 양순이 아니냐?"

"혹시···."

"설마···, 아니겠지. 야코프가 양순이에게 조선말을 배우고 있지 않느냐."

"눈빛을 보십시오. 꿀이 뚝뚝 떨어집니다."

"그래?"

다시 보니 정말 그런 것 같았다.

오늘 발표회에 참석했던 야코프는 연의 발표가 끝나자 제일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것이 양순이를 만나기 위해서였다니.

"잘 됐으면 좋겠다."

"그러게요."

연과 은쌍식은 항상 양순이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순하디순한 양순이를 모두가 무서워하는 양순이로 만든 것은 바로 자신들이었으니.

그래서 시집도 못 간 양순이가 안타까웠다.

"얼른 가자."

"네, 사장님."

둘은 못 본 체하며 자리를 벗어났다.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