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216화 (216/275)

216. 시장 선거(1)

"역시, 어쩔 수 없는 건가···?"

거의 유일하다시피 운동을 하지 않으면 근육이 줄어드는 사람이라는 동물.

사회적 길들이기 또는 집단생활화로 뇌 용량까지 줄어들고 있었다.

현대 인류의 뇌 용량은 선사시대 인류보다 테니스공 크기인 15%나 줄어들었다고 한다.

'미개인'이라 비하해 말하는 원시인들이 현 인류보다 더 머리가 좋았던 거였다.

과거로 갈수록 인간의 뇌 용량이 컸기에 연은 기대했지만,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시장 선거가 시작되자마자 무수히 많은 후보들이 탄광으로 끌려갔다.

허위 경력, 금품수수, 거짓말 등등 비리 때문이었다.

과거를 보지 않고도 출세할 수 있다는 생각에 시장 후보에 등록했던 많은 사람들.

겁을 상실했는지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기 시작했다.

'자네 남쪽에서 왔다고? 그럼 우린 남이 아니지. 잘 부탁하네.'

'같은 종씨 아닌가. 그러니 날 찍어야 하네.'

'날 도와주면 한자리 줌세.'

'지나가다 들렸네. 이거 동네 사람들에게 나눠주게. 꼭 내가 줬다고 말하고.'

이 정도는 양반이었다.

연이 청나라를 물리치고 만주를 영토로 편입하자, 발 빠르게 이주하여 떼돈을 번 조경훈은 아예 잔치를 벌였다.

시 외곽에 대궐보다 큰 집을 짓고 떵떵거리며 사는 조경훈은 장사할 때처럼 금품을 건네며 선거 운동을 했다.

호화찬란한 자신의 집에 사람들을 초대하여 대접하면서 지지를 부탁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큰아들이 불법이라고 말했지만, 조경훈은 듣지 않았다.

'좋은 게 좋은 거니 걱정하지 말아라. 이 아비가 다 알아서 할 터이니.'

하지만 그는 몰랐다.

시장 선거를 계획하면서 연이 '공직감시단'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남산 탑 공사 책임자였던 방석이를 공직감시단 단장으로 임명한 연은 단호하게 명 했다.

'증거가 확보되면 절대 봐주지 말라고 단원들에게 단단히 주지시켜라.'

'명심하겠습니다. 전하.'

강직하다고 소문난 이들을 추천받아 모집한 단원들이었기에 믿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모를 일이다.

'비리를 적발하고도 봐준 사실이 확인되면 탄광이 아니라 저승으로 끌려간다는 사실을 꼭 말하고.'

'네, 전하.'

이렇게 준비했는데도 인간의 욕망은 잠재울 수 없었다.

'공직감시단에서 나왔다. 조경훈은 당장 나와 오라를 받아라!'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조경훈은 뭉칫돈을 단원에게 건네며 봐달라고 사정했다.

너무나 큰 거금이었다.

눈이 돌아갈 정도로 엄청난 거금이었다.

단원은 조경훈의 돈을 받고 증거를 불태우고 사직서를 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연은 몰라도 은진이는 절대 사람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조서원의 요원들은 공직감시단 단원들을 감시했고, 조경훈과 단원이 돈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적발했다.

도주하다 잡힌 단원과 조경훈은 빠르게 판결을 받고 바로 저승으로 끌려갔다.

'제 잘못을 알고 있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재판관님.'

펑펑 눈물을 흘리며 간곡히 호소하는 조경훈을 보고 재판관이 말했다.

'백성들에게 금품을 뿌린 혐의는 그렇다 쳐도, 나라를 업신여기고 기만한 행위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죄목 중 '사기' 항목이 있었기에 선처는 있을 수 없었다.

선거를 한 달 앞두고 터진 조경훈과 공직감시단 단원의 사형 소식은 전역을 들끓게 했다.

'조경훈이가 엄청난 갑부라며? 아까워서 어떡해.'

'아깝긴 뭐가 아까워.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감히!'

'그래도···.'

'어허! 큰일 낼 사람이네. 조경훈에게 돈 받았던 마을 사람들이 단체로 탄광으로 끌려간 것도 모르나?'

'그래도···.'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이러다 우리 마을도 결딴나는 거 아냐? 당장 꺼져라. 이놈아!'

엄청난 부를 남기고 저승행 열차에 올라탄 조경훈에게 동조를 보였던 마을 사람은 다음날 마을에서 쫓겨났다.

마을 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추방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연은 도시 외곽에 주택단지를 조성하고 땅을 임대해 줄 때, 미국의 '주택 소유자 협회(HOA)'를 참고했다.

마을 주민들끼리 자체 규정을 만들어서 운영하도록 한 것이다.

그랬기에 이상한 짓을 한 마을 사람을 합법적으로 마을에서 쫓아낼 수 있었다.

관리하지 않아 집 주변이 엉망이거나, 주차를 개판으로 하거나, 주택단지에서 과속하는 것도 추방대상이었다.

추방당한 이는 자기 돈으로 공들여 지은 집이라 해도 살 수 없으니 팔아야 했다.

정해진 기한 내에 팔지 않으면 허물어 버리니 싼값에라도 급하게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이런 일이 발생하자 절반이 넘는 시장 후보자들이 사퇴했다.

탄광에 끌려가는 것도 무서운데 저승으로 끌려갈 수도 있으니 겁에 질린 거였다.

'젠장! 가문의 영광을 위해 시장 한번 해보려 했는데···.'

'잘했어. 그러지 않아도 좀 걱정됐거든.'

'뭐가?'

'자네가 내세운 공약은 말도 안 되는 허무맹랑한 것 아닌가.'

'그러긴 하지.'

'참나! 겁도 없어. 마을 사람은 물론 나라를 상대로 사기 칠 생각을 하다니.'

'그게 사기야?'

'상대를 기만해서 이득을 얻는 것이 사기잖아!'

'그래도 공약은 다르지 않나?'

'시장에 당선되는 것 자체가 이득을 보는 것인데, 지키지도 않을 공약으로 시장에 당선되는 것이 사기 아니고 뭐야?'

'이런! 그 생각은 못 했네. 고맙네. 고마워. 자넨 내 생명의, 아니 우리 가문의 은인일세.'

사람이란, 자신이 잘못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체 죄를 범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가벼운 죄를 범할 때는 한 번은 용서해 준다.

모르고 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걸리면, 엄청난 금융치료나 탄광으로 끌려간다.

생계 따위를 들먹이며 선처를 호소할 수도 없다.

집이 없다면, 조선전력공사에서 살 집을 제공해 주고, 먹을 것이 없다면, 나라에서 먹을 것을 챙겨주기 때문이다.

탄광에서는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빌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다시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인정을 받아야만 탄광에서 풀려날 수 있다.

말뿐인 사죄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연은 탄광에 끌려온 시장 후보자 수를 보더니, 기가 막혔다.

무려 1천 명이 넘었기 때문이다.

"후보자 수가 몇 명이나 되는데 이리 많은 후보들이 탄광으로 끌려갔단 말이냐?"

"백 명이 넘는 곳도 있지만, 평균적으로 30명 정도 됩니다."

연은 동역에 있는 도시 중 100곳을 선정해서 시장 선거를 치르기로 했다.

그런데 1/3이 넘는 시장 후보들이 탄광으로 끌려간 것이다.

"이것들이 도대체 뭔 생각을 가지고 이런 짓을 한 거지?"

"아마도 먹고 살 걱정이 없어서 그런 짓을 한 것이 아닌지 생각해 봤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은쌍식의 말에 연이 물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서 였다.

"그냥 놀아도 먹고 살게 해주니 아예 시장까지 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뭐라고?"

"후보 등록자 중 7할이 넘는 사람이 세금 한 푼 내지 않는 무직자입니다."

"뭐라고?!"

연은 뒤통수가 절여 오는 것을 느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진 거였으니 그럴 수밖에.

"당장 행식이에게 연락해서 법을 바꾸라고 해라."

"네, 사장님."

선거를 한 달 앞에 두고 발표된 새로운 선거법으로 무수히 많은 후보가 탈락됐다.

-여기는 조선방송국입니다.

-정오 새소식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행정부 경행식장관께서 새로운 선거법을 발표하셨습니다.

-세금을 내지 않는 자는 공직자가 될 수 없다는 취지에서 만든 법이라고 합니다.

법이 발표되자 단 한 명의 후보도 남아있지 않는 곳도 있었다.

가문의 영광을 운운하며 시장 후보에 등록한 사람 중 대부분이 일하지 않고 놀면서 먹고살던 사람이었던 거다.

조선을 제국으로 선포할 때부터 준비해 왔던 시장 선거가 이렇게 엉망으로 변해버리자 연은 너무나 기가 막혀서 화조차 나지 않았다.

"역시, 어쩔 수 없는 건가···?"

뇌용량이 크다고 현명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었다.

되려 못된 짓을 더 잘하는 것 같았다.

실망감에 잠을 이루지 못한 연은 문식이에게 연락했다.

-내가 몇 번이나 말했냐? 연예인이나 정치인같이 남 앞에 나서길 좋아하는 사람은 일반인이 아니라고.

"그거와 무슨 상관이야?"

-상관이 있지. 생각해봐? 아니지, 네가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부터 고쳐야 해.

"으응?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니 그게 뭐야?"

-너와 내가 살았던 세상은 돈이면 다였지만, 지금 여긴 아니야. 시장 후보들이 한 말을 생각해봐. 돈도 중요하지만, 명예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틀림없어.

문식이의 지적에 연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21세기 정치인들과 달리 지금 시장 선거에 후보로 나선 이들이 하는 말은 하나같이 '가문의 영광'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작위를 준다고 해.

"뭐라고?!"

-흥분하지 말고 잘 들어. 조선이나 우리 왕국이나 신분제는 없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래?"

-응. 그러니 명예 작위를 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봐.

"아···, 고맙다."

-고맙기는. 그나저나 언제 올래?

"내가 꼭 가야 해?"

-당연하지. 네가 조선전력공사 수장이잖아. 그래서 너 일정에 맞춰 행사를 진행할 거야.

"알았어. 선거 끝나면 갈게."

드디어 서울 북쪽에 짓고 있던 수력발전소가 완공됐다.

그런데 문식이는 완공 기념행사를 하지 않고 있었다.

연이 오면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조선과 아파치 왕국이 함께 만든 발전소라고 알리고 싶었고, 그만큼 두 나라가 친밀하다는 것을 만방에 퍼트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연은 알고 있었지만, 문식이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게 여러모로 이득이라고 생각해서였다.

조선의 제후국은 다두, 준가르, 브리튼, 체코, 아파치 이렇게 다섯 나라였는데 최근에 한 나라 추가되었다.

그 나라는 바로 '지팡구 왕국'이었다.

지팡구 왕국을 세운 고마 나가토는 뻔질나게 조선을 들락거렸다.

'폐하, 우리 지팡구 왕국의 백성들은 예로부터 대조선을 섬겨왔습니다. 비록 미친 것들이 대조선을 침략한 적이 있지만, 그 미친놈들은 모두 죽고 없습니다. 그러니 조선을 섬기고 따르게 해 주십시오.'

분기마다 특산물을 잔뜩 들고 찾아온 나가토는 조선의 제후국이 되길 간절히 요청했다.

조선에 붙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보다 못한 효종은 연에게 물었고, 연은 조서원에 조사를 맡겼다.

그리고 나가토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제후국에 포함시켰다.

'뭐라고? 지팡구 왕국 곳곳에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세워져 있다고?'

고마 나가토가 이끄는 지팡구 왕국의 백성들.

미친것들에게서 자신들을 해방 시킨 분은 다름 아니라 위대한 이순신 장군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었던 거다.

물론 나가토가 조선의 제후국이 되고 싶어 벌인 일이다.

이로써 조선의 제후국은 모두 여섯 나라가 되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최근 제후국이 된 지팡구 왕국은 그러지 않았지만, 다른 제후국들은 아파치 왕국을 무시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아파치 왕국이 미개하다고 생각하고 모임에 잘 끼워주지 않았다.

'제식 축구' 대회를 열기 위해 규칙을 정하는 모임에서도 아파치 왕국에서 참석한 대표의 말은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문식이가 제후국 왕들을 초대하여 아파치 왕국의 발전 모습을 보여 주려 했지만, 그 누구도 초대에 응 하지 않았다.

하지만 연이 온다고 하면 상황이 달라질 거로 봤다.

그랬기에 연에게 참석해 달라고 문식이가 요청했던 거다.

아무튼 연은 고심에 빠졌다.

'명예라···.'

얼마 남지 않는 시장 선거가 흥행하려면 문식이 말대로 진짜 명예만 추구하는 이들이 후보로 등록하게 만들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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