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215화 (215/275)

215. 아버지와 아들(2)

'내 힘이 닿는 한 너를 돕도록 하겠다'는 효종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효종은 신하들의 반대에도 연이 하는 일을 힘껏 도왔다.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이란 예가 있기에 연의 꿈 이야기를 무시할 수 없었던 효종.

뭔가 이상했지만, 따져 묻지 않았다.

지금까지 보아온 아들의 성품은 나쁘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보다 조선과 조선 백성들을 더 사랑하는 것 같았기에 좋은 쪽으로만 생각했다.

'하늘이 이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너에게 호접지몽(胡蝶之夢)을 겪게 했나 보다.'

되려 나비가 된 장자의 꿈 이야기처럼 연을 이해했다.

아무튼 이런 일이 있었기에 연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자가 요구한 게 뭐라고?"

"자기들끼리 살 수 있는 땅을 달라고 합니다."

"그래? 몇 명이나 되더냐?"

"10만 명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줘도 상관없지 않느냐? 10만 명으로 뭘 할 수 있겠느냐?"

"그러긴 하지만, 야코프란 자는 세계를 단숨에 멸망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뭐, 뭐라고? 방금 뭐라고 하였느냐? 이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다니 그게 말이 되느냐?"

다른 이가 말했다면 효종은 무시하고 말았을 거다.

하지만 조선을 이만큼 발전시킨 연이 하는 말 아닌가.

입이 마른 지 효종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런 효종을 보고 연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버지, 세상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보다 볼 수 없는 것이 더 많습니다."

"눈으로 볼 수 없다니 전파(電波, Radio Waves)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냐?"

"네, 아버지. 세상에서 가장 작은 물질을 원자(原子, Atom)라고 합니다. 그 원자 중에서도 가장 작은 것이 수소입니다."

"나도 주기율표라는 것을 봐서 알고 있다."

조선에서 초등학교를 나왔다면 원소주기율표를 모를 수가 없었다.

처음엔 단순히 조선말과 한글, 사칙연산을 가르쳤던 초등학교.

시간이 지나면서 체계가 잡혀가자 하나씩 과목이 추가됐다.

겉핥기 수준이지만, 흥미를 느끼는 아이들을 발굴하기 위해 다양한 과목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랬기에 효종도 알고 있었던 거다.

연은 고개를 돌려 햇볕이 내리쬐는 창 쪽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 햇빛이 태양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태양이 어떻게 저런 강렬한 빛을 품어내는지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야코프와 저 둘뿐일 겁니다."

"그래?"

"네, 아버지. 태양이 저런 힘을 낼 수 있는 건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물질인 수소 원자가 결합하면서 엄청난 힘을 발산하기 때문입니다."

"놀랍구나.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것이 저리 큰 힘을 만들어 내다니···."

효종은 하나를 설명하면 최소 2~3가지를 이해했다.

연은 이런 아버지가 정말 좋았다.

알려주는 맛이 너무나 달콤했기 때문이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수소가 결합할 때와 가장 무거운 우라늄이 붕괴될 때, 엄청난 힘이 발생합니다."

"흠···, 야코프란 자가 그런 힘을 만들어 낼 수 있단 말이냐?"

"네, 아버지. 그 힘을 이용하면 한양을 지워 버릴 수 있는 폭탄을 만들 수 있고, 반대로 엄청난 전기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효종은 눈을 감고 잠시 생각하더니 읊조리듯 말했다.

"양날의 검이구나. 잘하면 이득이 되겠지만, 아니라면 멸망할 수도 있겠구나."

"그렇습니다. 그래서 야코프에게 저 아래 남쪽에 있는 땅을 주려고 합니다. 그곳이라면 나중에 수작을 부리더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와 계절이 반대라는 곳 말이냐?"

"네, 아버지."

또다시 생각에 잠긴 효종.

말없이 찻잔을 들어 차를 마시더니 연에게 물었다.

"꼭 그자가 있어야만 엄청난 전기를 얻을 수 있느냐?"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야코프의 도움이 없다면 몇십 년이 더 걸릴지 알 수 없습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세상을 제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사실 효종은 너무 놀랐다.

한양을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효종은 위험천만한 야코프란 자를 죽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전기의 중요성을 알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연아?"

"네, 아버지."

"네가 그자를 관리할 수 있겠느냐?"

"항상 준비는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네 뜻대로 하려무나."

"고맙습니다. 아버지."

효종의 허락을 받은 연은 은동리로 돌아갔다.

* * *

은동리에서 연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야코프.

양순이의 안내로 곳곳을 돌아다니며 구경했다.

은동리 연구소와 옹진반도 산업시설 관리는 양순이가 했기에 연이 그리 시킨 거였다.

루스어와 조선말을 할 줄 아는 고려인 통역을 두고 안내하던 양순이.

"이곳은 생화학연구소입니다. 위험한 곳이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연은 양순이에게 모든 시설을 야코프에게 보여 주라고 했다.

그래야만 야코프가 SMR 개발 시간을 계산할 수 있고, 허튼 생각을 하지 못할 거로 봤기 때문이다.

야코프는 3중으로 된 방역 시설을 보고 놀랐는지 양순이를 보며 말했다.

"철저하군요."

"당연한 것 아닙니까?"

"당연한 것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요?"

양순이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똥그랗게 뜨고 야코프를 쳐다봤다.

야코프는 그런 양순이가 귀여워 보였다.

옹진반도에 사는 연구원들과 공돌이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양순이인데 말이다.

아무튼 반도체 공장까지 견학을 마친 야코프는 연이 도착했다는 말에 은동리로 돌아갔다.

"어때? 이 정도면 얼마나 걸리겠어?"

"센서 개발은 어느 정도지?"

"온도 센서 말이야?"

"응."

"접촉식에서 비접촉식으로 넘어가는 중이야."

"전자현미경(Electron Microscope)은?"

"열방사형(SEM)은 거의 완성 단계고, 전계방사형(FE-SEM)은 이제 개발을 시작했어."

"대단하다 못해 놀랍군."

야코프가 본 은동리는 20세기를 넘어 21세기라 봐도 될 정도였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그래서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서 이렇게 빨리 발전할 수 있었던 거야?"

"한국에는 '공밀레'라는 말과 월화수목금금금이란 말이 있어."

"그거야 나도 알지."

야코프가 테일러였을 때 근무했던 연구소에는 한국 출신 연구원들도 있었다.

그들은 '적은 비용으로 목표치를 초과 달성하길 원하는 한국의 기업문화'가 싫어 미국으로 취업 이민 온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오랜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는지 들어서 알고 있었다.

"설마, 너도 갈아 넣은 거야?"

"그건 맞는데, 내용은 틀려. 봐서 알겠지만, 여긴 강요하거나 그러지 않아. 대신 연구원 수를 늘렸어."

"물량 공세로 해결했단 말이야?"

"그런 셈이지."

"감당이 돼?"

"못 할 게 뭐야? 집 지어주고 월급만 주면 되는데."

연에게 조선전력공사 운영 방식을 듣고 난 야코프는 기가 차는지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니까 선별 과제를 올려놓고 알아서 연구하라고 했더니 진짜 알아서 연구했단 말이야? 그게 말이 돼?"

"안 될 게 뭐야? 너도 알잖아.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똑똑한지."

"그거야 알지만, 그래도 기초지식이 없을 거 아냐?"

"왜 없다고 생각해?"

연은 자신의 머리를 두드리며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한번 봤던 것이 새겨진 것처럼 잊혀지지 않아."

"지금도 그래?"

"그건 아닌데, 넘어오기 전 기억이···."

"그건 아마도 기억을 파동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각인됐기 때문일 거야."

야코프는 기억도 전기적 신호로 봤다.

인간의 뇌에서 기억을 담당하는 기관은 해마이다.

기억의 제조공장이자 단기기억의 저장고인 해마는 좌우로 두 개가 있는데 다른 역할을 한다.

좌측은 최근 일을 기억하고,

우측은 태어난 이후 모든 일을 기억한다.

뇌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해마.

바다에 사는 해마(Hippocampus)처럼 생겼다고 해서 해마라 부른다.

해마는 눈과 코, 귀 같은 감각기관을 통해 뇌로 들어온 정보를 조합하여 하나의 기억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기에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데 정말 중요하다.

그런 해마를 자극해서 얻어낸 기억정보를 파동으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무언가 알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 게 틀림없었다.

"아무튼 그 때문에 알고 있던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 놓았지."

"오호! 뭘 했는지 몰라도 이 정도로 빨리 발전시켰다면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은데···?"

"그냥 한국에 있는 조그만 연구소에서 일했어."

"그 말을 믿으라고? 날 너무 무시하는 것 아냐?"

"사실인데? 다른게 있다면 책을 좀 많이 봤지."

"뭐, 그렇다면야···."

연의 말을 믿을 순 없지만, 적당히 넘어가는 야코프였다.

중요한 것도 아닌데 따질 필요가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알아주는 연구소에서 근무했다고 모든 것을 알순 없다.

하지만 문식이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연구소 곳곳을 돌아다녔기에 연은 다방면으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연은 그 기억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세히 기록을 남겨 놓았다.

야코프는 그 밖에 여러 가지 많은 것을 물어보더니 말했다.

"우라늄이야 저농축만 있어도 되니 문제 될 건 없지만, 센서와 제어장치는 아직 멀었어."

"그래서 얼마나 걸리겠어? 네가 원하는 수준으로 센서와 제어장치가 개발되었다고 가정하고."

"길어야 5년? 뭐, 빠르면 1년 안에도 가능하겠지."

"그래?"

고개를 끄덕이는 야코프.

개발해서 실용화까지 했기에 야코프는 자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이 요구한 일이 어찌 되었는지 물어보려고 입을 때려고 했는데, 연이 먼저 물었다.

"호주는 어때? 그곳이라면 만족하겠어?"

고개를 도리도리 흔드는 야코프.

"뉴질랜드면 충분해."

"응?!"

"뉴질랜드면 충분하다고."

순간 당황한 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야심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생각해봐, 어차피 나는 이곳에 있을 건데, 날 따라온 사람들만 남아서 뭘 하겠어? 네가 도와준다면 몰라도."

야코프는 연이 절대 도와주지 않을 거로 생각했다.

자신같이도 그럴 거니까.

하지만 연은 달랐다.

야코프가 수작을 부린다는 가정하에 모든 것을 준비하고 있었으니 발전소 정도는 지어줄 생각이었다.

"좋아! 북섬과 남섬에 각각 발전소를 지어주지."

"보니까 풍력발전기도 있던데···?"

"풍력을 원해? 난 수력발전소를 지워 주려고 했는데."

"풍력이면 충분해. 뉴질랜드는 바람의 도시니까."

"뭐, 네가 그렇다면 그리하지. 그럼 딜(Deal)?"

고개를 흔드는 야코프.

"보호도 해주고 내가 이곳에 있는 동안은 식량도 책임져 줘."

"좋아! 그럼 성사된 거다?"

"Okey!"

야코프와 협상은 생각 이상으로 빠르게 끝났다.

둘 다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쓸데없는 협상 질이나 논쟁은 하지 않았다.

* * *

조선 제국력 9년(1667).

한겨울에도 따뜻한 집안에서 보낼 수 있었던 조선의 백성들.

봄이 되자 마을 광장으로 몰려나왔다.

"저게 시방 무슨 말이당가? 시장을 뽑는다니."

"아따 자네는 라디오 방송을 듣지도 않았는가?"

"듣기야 들었지. 음악 방송만 들어서 그렇지만."

광고 수입으로 운영되는 라디오 방송국이 돈을 잘 번다는 소문이 퍼지자, 다양한 방송사가 많이 생겼다.

그중에 음악만 틀어주거나 축구 중계를 해주는 방송사가 가장 인기 있었다.

"그러지 말고 조선방송국 새소식은 꼭 들어봐. 그래야 세상 돌아가는 걸 알지."

"그래서 저게 뭔 말이당가?"

"우리 손으로 우리 시의 시장을 뽑는다고 하네."

"그게 참말이여?"

"저기 방이 붙어있는 것 보면 모르나?"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시장 선거가 드디어 시작됐다.

조선 전역이 아니라 동역부터 시작하는 것이지만, 전역에서 백성들의 관심은 뜨거웠다.

왜 그러지 않겠는가.

인기만 많으면 시장이 될 수 있는데.

연은 의회부터 만들 생각은 없었다.

'정치가 뭔지도 모르는데 의회부터 만들 순 없지.'

아직 민족개념도 없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정치가 뭔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괜히 잘못하다간 비열한 정치인만 양성하게 될지도 모르지 않는가.

그래서 연은 시장 선거부터 시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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