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214화 (214/275)

214. 아버지와 아들(1)

조선 왕조 제17대 왕인 효종.

21세기 대한민국 기준으로 따지면 '엄친아' 중의 엄친아였다.

잘생긴 건 기본이었다.

몸은 말도 못 하게 좋았고, 무력은 웬만한 무장을 능가했다.

명필에 글까지 잘 지었고, 집안은 왕가이다.

거기다 효종은 무척이나 총기(聰氣)가 있고, 총명(聰明)한 사람 아닌가.

그런 효종인데.

하나뿐인 아들의 수상한 행동을 모를 수 있을까.

아니었다.

알면서도 모른 체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러던 어느 날 효종이 물었다.

'신대륙에 있다는 아파치 왕국의 왕이 너를 보자고 한다는데, 알고 있던 자더냐?'

'아닙니다. 아버지. 모르는 사이입니다.'

'흐음···. 연아, 너는 어찌 생각할지 모르지만, 너는 단 하나뿐인 내 아들이다. 아비가 자식을 모를 수 없지 않으냐?'

'죄송합니다. 아버지.'

연은 효종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고마웠다.

그렇다고 자신도 모르는 일을 다 말해 줄 순 없었다.

'아버지, 제가 어릴 때부터 남달랐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그거야, 조선 백성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게다.'

'그 연유(緣由)가 있습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 넌 내 아들이 틀림없고, 난 널 믿는다.'

'고맙습니다. 아버지.'

효종의 말에 연은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자식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효종이 자식들을 얼마나 끔찍이 사랑했는지, 연은 문식이에게 들어서 잘 알고 있었다.

'운도 좋아.'

'뭐가?'

'부모 잘 만났잖아? 어머니는 보살이지, 아버지는 자식 바보잖아.'

'그건 그렇지.'

자식을 향한 효종의 사랑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잘 나와 있었다.

효종은 수시로 딸들에게 언문으로 된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묻고, 책상 없이 바닥에 책을 놓고 공부하는 아들을 안쓰러워했던 자식 바보 아빠였다.

그런 아버지를 둔 연이었기에 연은 뜻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연은 효종에게 느낀 강렬한 부정(父情)에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제가 어릴 때 아주 긴 꿈을 꾸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평범한 백성이었습니다.'

연의 꿈 이야기를 듣는 동안 효종은 탄식하며 눈물까지 흘렸다.

'우리 조선이 그렇게 망한다고? 하아···! 하늘도 무심하구나. 어찌···.'

'꿈일 뿐입니다.'

'그래도 믿지 않을 수가 없구나.'

연이 지금까지 이룩해 놓은 결과가 확실했기에 효종은 연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물었다.

'어찌하다 이 나라 조선이 그 지경까지 되었다 더냐?'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제로니모의 의견에 따르면 조선에서 전쟁이 없는 평화 시기가 너무 길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평화로운 시기가 길어서 망했다니, 제로니모 그자가 뭘 알기에 그리 말한단 말이냐?'

'제로니모는 역사학자였다고 합니다.'

'크흠···.'

역사학자라는 말에 효종은 침음을 흘렸다.

조선이 어떤 나라인가.

왕조차 볼 수 없는 기록을 수도 없이 남겼던 기록의 나라 아닌가.

그러니 역사학자의 말이라면 틀리지 않을 거라 봤다.

'평화가 길어 망했다···, 도대체 뭘 했기에···.'

양난을 겪어도 살아남은 조선이다.

그래서 효종은 더욱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부터 조선이 망할 때까지 그 기간이 무려 200년이 넘습니다. 그 시기에 힘을 모았다면 세계를 호령할 나라가 되었겠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외세의 침략이 없어서 그런지 내부부터 썩어들어갔습니다. 전쟁이 없어 문화는 꽃을 피우지만, 당쟁으로 인해 수많은 지식층이 옥사하고 왕실까지 피를 보면서 직계 혈통도 단절되어 버렸습니다.'

'이런!'

'하지만 그게 조선을 망하게 한 건 아닙니다. 진짜 조선을 망하게 한 건 세도정치와 왕비를 잘못 들여서 발생합니다.'

연은 민비와 민씨 일가의 만행을 일일이 알려줬다.

동학운동 때 민비가 일본군을 끌어들여 백성들을 죽인 이야기를 들을 때에는 효종은 화를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책상을 내려쳤다.

'감히! 왜놈들을 끌어들여 우리 백성들을 죽이다니! 민비라는 천하에 몹쓸 계집이 민유중의 후손이라 하였느냐?'

'네, 아버지.'

'세도정치를 일삼으면서 조선의 부를 8할 이상 챙기고도 그것도 모자라 왜놈들을 시켜 백성들을 학살하다니 절대 그냥 둘 순 없다. 여봐라!'

효종이 연과 대화할 때는 사관들도 자리를 비웠다.

사관들이 목숨을 걸고 반대했지만, 효종은 '아비로서 아들과 하는 이야기니, 기록할 필요 없다'며 내쳤다.

그렇다고 물러설 사관들이 아니었다.

하지만 거듭된 효종의 말에 사관들은 겁을 집어먹고 근처에도 오지 않았다.

'만약 잠꼬대라도 하다가 말이 새어 나간다면 너희들을 모두 참할 것이다. 죽을 때까지 그 입을 다물 자신이 있으면 알아서 하라!'

무엇보다도 입의 무거움이 중요한 사관들이지만, 잠꼬대까지 안 할 자신이 없었기에 사관들은 효종의 뜻에 따랐다.

그러더라도 내관은 효종의 시중을 들어야 했기에 근처에 대기하고 있었다.

'폐하 부르셨습니까?'

'당장 민광훈의 자식 민유중을 잡아들여라!'

연은 급발진하는 효종을 보고 당황했다.

급히 말을 꺼내 수습에 나섰다.

'아버지, 그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방법이라도 있느냐?'

'네, 아버지.'

태자가 폐하에게 '아버지'라 부른다는 말은 알게 모르게 퍼져 있었다.

그래서인지 내관은 연이 효종에게 '아버지'라 불렀지만,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

효종은 손을 내저어 내관을 물러나게 했다.

'말해 보거라. 어떤 방법인지.'

'우리 조선은 연좌제를 폐지했습니다. 또한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일로 벌을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신 체제(體制)를 변경하면 이런 일은 더는 발생하지 않을 겁니다.'

'흠···, 지금 행식이가 하고 있는 일 말이냐?'

'그렇습니다. 입헌군주제(立憲君主制, Constitutional Monarchy)를 시행하면 더는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연과 효종은 오래전부터 입헌군주제를 추진하고 있었다.

너무 넓은 조선의 강역을 제대로 통치하기에는 군주제로는 답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이 생각한 입헌군주제는 달랐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보살피되 관여하지 않고, 통치하지 않지만, 감시한다'였다.

그런 생각을 한 이유는 문식이 때문이었다.

문식이는 항상 주장했다.

'나라에 돈이 없는 것은 사기꾼과 도둑놈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야.'

'그게 무슨 말이야? 나라에 돈이 없는 것이 사기꾼과 도둑놈들이 무슨 상관이라고?'

'생각해봐. 세계에서 3번째라잖아?'

'뭐가?'

'조세회피처에 빼돌린 돈 말이야.'

'정말이야?'

'인터넷에서 찾아봐. 자세히 나와 있으니.'

'그래?'

'그 돈이 다 기업들이 숨겨놓은 돈이겠어? 정치하면서 빼돌린 돈이겠지.'

찾아봤는데 정말이었다.

2016년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파나마 페이퍼스 또는 파라다이스 페이퍼스(Paradise Papers)라 부르는 사건에서 한국은 3위를 했다.

1등 안 한 게 천만다행이었다.

파나마에 있는 로펌 '모색 폰세카(Mossack Fonseca & Company)의 기밀문서에 따르면, 한국은 전직 대통령 아들을 포함하여 무려 880조 원이나 되는 돈을 숨겨놓고 있었다.

2016년 대한민국 예산인 391조 원보다 두 배가 넘는 엄청난 거액이 지구 반대편 파나마의 한 법률회사에 보관되어 있었던 거다.

그런데도 나라에 돈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른 조세회피처까지 조사한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그래서였다.

연이 입헌군주제로 조선의 체제를 바꾸고 있지만, 감시만큼은 황실에서 하려는 이유가.

'그 후로 어찌 되느냐?'

'경술(庚戌)년에 조선의 후신인 대한제국까지 사라지는 국치까지 당합니다. 그 후 백성들은 일제의 압박 속에 착취를 당하며 비참하게 살아갑니다.'

'하···!'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인 효종은 미칠 듯한 슬픔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 뒤로! 그 뒤로! 어찌 되느냐? 우리 백성들은, 가여운 우리 백성들은 어찌 된단 말이냐?'

울먹이는 목소리로 망해버린 왕실보다 백성의 안위를 먼저 묻는 효종.

그런 효종을 보고 있자니 연 또한 가슴이 미어졌다.

'서역에 있는 나라들이 둘로 갈라져 서로 싸웁니다. 싸움은 전 세계로 번져 수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이를 가리켜 사람들은 제1차 세계대전이라 불렀습니다.'

'1차라? 그럼 또 전쟁이 일어난단 말이냐?'

'네, 아버지.'

지금까지 오지게도 싸웠던 신성로마제국(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과 오스만제국이 손을 잡고 일으킨 1차 세계대전.

영국, 프랑스, 러시아, 벨기에, 미국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과도한 피해 보상금 때문에 독일은 다시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이래죽나 저래죽나 선택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치게 된 독일 국민들.

참담한 상황에서 오판을 했다.

희대의 학살자 히틀러를 따른 것이다.

히틀러가 히틀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주변국에서 만들어 줬으니 미쳐 날뛰었다.

'그 과정에서 세계의 주도권은 신맥 대륙 북쪽을 차지한 미국이란 나라로 넘어갑니다.'

'들었다. 신역은 무척이나 풍요로운 곳이라 하더구나.'

'그렇습니다. 그런 곳에 터를 잡았기에 미국은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고 세계를 호령할 수 있었습니다.'

'그 미국이란 나라가 백성들의 뜻을 모아 정치를 한다는 곳이 맞느냐?'

'네, 아버지. 미국 또한 지금 브리튼 왕국이 된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래?'

'하지만 독립 후 공화제를 시행하면서 노예제도를 폐지했기에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맞다. 노비제도는 나라를 좀먹는 제도이니 폐지가 당연하다.'

효종은 노예제도의 폐단을 잘 알고 있었다.

왜 모르겠는가.

군역도 지지 않고 세금도 내지 않은 노비들은 나라 살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으니.

'아무튼 그 미국이란 나라 덕에 우리 백성들은 일제의 강제 점령에서 해방하고 독립을 합니다. 하지만 둘로 갈라지고 맙니다.'

'뭐라고? 둘로 갈라졌다고 하였느냐?'

'네, 아버지. 세상에는 아주 위험한 두 가지 이념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더냐?'

'하나는 종교이념이고 다른 하나는 사상이념입니다. 이 두 이념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는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조선은 종교의 자유를 표명했기에 아직까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효종은 신성로마제국과 오스만제국이 왜 싸우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종교이념의 무서움을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 사상이념이란 말은 처음 들어보았기에 효종이 물었다.

'종교이념이야 그렇다 치고, 사상이념이라···, 그게 무엇이길래 그리 많은 사람들을 죽었단 말이냐?'

'별거 아닙니다. 둘 다 공화제인데 하나는 자기가 번 것을 자기가 가지는 자유민주주의고, 다른 하나는 다 같이 나눠 가지는 공산주의입니다. 하지만 이념에 신념이 들어가면서 광신도처럼 미쳐 날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끝내는 이념 갈등으로 세계가 둘로 나눠집니다. 그 결과 우리 민족도 둘로 갈라지고 동족상잔의 비극을 보게 됩니다.'

'동족상잔이라고 했느냐?'

'네, 아버지.'

'얼마나 죽었느냐?'

'300만 명 정도 추정하고 있습니다.'

'뭐, 뭐라고? 300만 명이라고 했느냐?'

'네, 아버지.'

효종의 움켜쥔 두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지금이야 1억이 넘는 백성들이 있지만, 얼마 전만 해도 조선의 인구는 천만 명이 약간 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3할이나 되는 백성이 서로 싸우다 죽었다니 그 끔찍함에 효종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참으로 무서운 이념이구나.'

'그렇습니다. 그래서 전 사람은 믿어도 사람들은 믿지 않습니다. 설사 그들이 우리 조선의 백성들이라고 해도 믿을 수 없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사람은 믿어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니?'

'제 주변에는 믿을 만한 사람이 무척이나 많습니다. 개개인을 따져보면 참 좋은 사람들이 정말 많더군요. 하지만 사람이 모여서 집단이 되면 달라집니다.'

'무엇이 달라진단 말이냐?'

'이념이 같은 사람끼리 모여 집단이 되면 그건 사람이 모여있는 게 아니라 이념 덩어리가 있는 겁니다. 거기에 신념을 가진 자가 나타나면 재앙이 올 수 있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자신의 신념만이 옳다고 믿고 설치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렇구나···, 그래···.'

효종도 그런 상황을 겪어 봤기에 알 수 있었다.

별거 아닌 말 한마디로 당쟁을 일으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갔던가.

그게 국가 단위로 확대되었다니 그 끔찍함을 보지 않고도 느낄 수 있었다.

연은 공식이로 살았던 21세기 중반까지 효종에게 자세히 알려줬다.

'그래도 다행이구나. 남과 북으로 갈라졌다지만, 우리 민족이 세계 속에서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니, 정말 장하구나.'

'맞습니다. 우리 민족은 저력이 있는 민족입니다. 하지만 몇몇 비열한 놈들 때문에 사기꾼과 도둑놈들이 넘치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뭐라고?'

'저는 그런 놈들이 이 세상에서 다시는 설칠 수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연의 단호한 말에 효종은 이제야 연이 왜 그리 서둘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내 힘이 닿는 한 너를 돕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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