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208화 (208/275)

208. 예맥기 축구 대회(4)

한 달 동안 열린 제1회 예맥기 축구 대회.

마지막 결승전을 앞두고 발표한 내용은 모든 이들의 관심을 모았다.

-안녕하십니까? 청취자 여러분.

-방금 들어 온 소식입니다.

-조금 전 행정부 부장관이신 경행식님께서 발표하신 내용입니다.

-전역에 계신 축구광 여러분께서 좋아하실 내용이라 빠르게 전달해 드립니다.

-직접 들어 보시겠습니다.

조선전력공사의 핵심 시설이 모여 있는 옹진반도에서는 오래전부터 녹음기를 사용하고 있었다.

사과 상자만큼 크지만, 자기테이프를 이용한 녹음기는 그 원리가 간단하기에 개발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들고 다닐 수 있을 만큼 작게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 연구원들과 공돌이들이 연구하고 개발했던 기물들이 모두 대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정 진동자를 이용한 전자시계를 만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손목에 찰 수 있도록 가볍고 작게 만들어야 했기에 초정밀 기술이 발전해 갔다.

또한 대량 생산 시설을 구축하면서 효율적인 생산 기술에 관한 연구도 별도로 하고 있었다.

그 결과 저전력 소형 모터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지을 수 있었다.

은동리 집무실에서 새로 개발된 소형 모터를 살펴보고 있는 연에게 은쌍식이 물었다.

"사장님, 이제 녹음기를 시중에 팔아도 될 것 같습니다."

"하루 생산량이 얼마나 되지?"

"지금 시험 생산이라 한 설비만 돌리고 있는데도 500개 정도 생산됩니다."

"생산설비가 몇 개나 있지?"

"지금 30개가 넘었습니다. 올해 안에 100개를 채울 예정입니다."

"그 정도면 내년부터 판매해도 되겠구나."

지금까지 만들어 왔던 녹음기는 크기도 크기지만, 손으로 일일이 하나씩 만들었기에 연구용으로 쓰거나 방송국에서만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량 생산 시설이 갖추어졌으니 마구 찍어내어 팔 수 있다.

그것도 싼 가격으로.

"동작 시간은?"

"네오디뮴 영구자석(NdFeB)으로 만든 모터와 스피커라 그런지 건전지 두 개로 이틀은 간다고 합니다."

"그래? 대단하네."

새로 개발된 녹음기는 1979년에 개발된 워크맨보다 몇 배나 큰 벽돌만 한 크기지만, 작동시간은 워크맨보다 몇 배나 길었다.

연이 공식이로 살았던 21세기에도 가장 강력한 영구자석이라 불렸던 네오디뮴을 사용하여 모터와 스피커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네오디뮴 영구자석은 가루를 압축하여 제작하기에 가공성이 좋아 다양한 형태는 물론 1mm까지 작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강력한 자력을 발휘하는 네오디뮴도 문제는 있었다.

그건 바로 열에 약하다는 거였다.

60도가 넘어가면 사용이 어려울 정도였다.

"발열은 어때?"

"작더라도 모터가 강해서 그런지 열은 심하지 않습니다."

연이 없을 때는 은쌍식이 은동리 연구소를 관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은쌍식의 지식은 웬만한 연구원 수준이었다.

"라디오 수신도 잘되나?"

"한번 틀어 보십시오."

측음기와 유명 가수들의 음반을 제작해서 팔고 있지만, 그 수요는 많지 않았다.

가격이 비싼 것도 문제지만, 가장 중요한 음반 가격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고, 라디오 기능이 없다는 이유로 측음기 구매를 망설이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형 녹음기를 개발할 때, 라디오 기능을 넣어 두었다.

연이 녹음기의 스위치를 라디오에 맞춰놓고 전원을 켜자.

'치직!' 소리와 함께 바로 소리가 흘러나왔다.

-행정부 부장관을 맡고 있는 경행식입니다.

-폐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백성들이 좋아하는 축구를 모두가 즐길 수 있게 이원화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모두가 알다시피 규칙이 달라서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잠시만!"

-조선 프로 축구 협회의 규칙과 제후국의 규칙이 다르다는 건 모두 알고 계실 겁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일반 백성들이 즐길 수 있는 축구와 규칙을 완화한 축구로 나누기로 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관공서 게시판이나 신문 기사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시행 하시는 겁니까?"

"그러기로 했다."

"그럼 앞으로 전쟁 대신 축구로···?"

"그건 협상해서 결정하기로 했다."

모든 사안을 축구 경기로 판가름할 순 없기에 제후국 왕들은 사안에 따라 결정하기로 최종 합의했다.

또한 선수들의 안전을 위해서 보호장구를 착용하기로 했다.

전사나 병사로 이루어진 선수들이라고 해도 죽거나 크게 다치면 문제 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둘 다 축구라고 부르면 혼란스러울 것 같은데요."

"그래서 '제식 축구'라 부르기로 했다."

"제식 축구요? 설마 제후국 방식 축구란 뜻은 아니겠죠?"

"맞는데!"

"예? 너무 그렇지 않습니까?"

"뭐가? 제후국의 규칙을 따르는 방식이라 제식 축구라 하기로 했는데 문제 될 것 있나?"

"너무 시골스럽습니다."

연은 '미식축구'란 말을 알기에 거부감이 없었지만, 은쌍식은 그러지 않은 듯 보였다.

"뭐가 시골스러운데?"

"시골스럽기도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제식이란 말은 남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지 않습니까?"

"응? ···그러기도 하겠네. 하지만 이미 정해버렸으니 그냥 써라."

"네, 사장님."

말도 안 되는 비대칭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조선이기에 전쟁 위험은 사라졌지만, 제식훈련의 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제식훈련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따라서 전투가 없더라도 제식훈련만큼은 조건 반사적으로 명령을 따를 때까지 강행하라.'

제국이 무너지는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 군기 문란이 가장 크다고 생각하는 연이었다.

그래서 연은 제식훈련을 무척이나 강조했다.

'군대란 집단적 통일성이 중요하다.'

절도와 규율을 익히며 명령에 조건 반사적으로 따르게 하는 제식훈련이야말로 기본 중의 기본이라며 부대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 * *

경행식의 발표를 들은 민근이는 관공서로 뛰어갔다.

축구광이라 무슨 내용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무슨 사람이···."

민근이는 관공서 앞 게시판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많아도 너무 많았다.

그런데도 궁금함을 참지 못한 민근이는 게시판을 보려고 사람들 사이를 끼어들었다.

"어허! 젊은 사람이 그러면 되나? 우리같이 못 배운 사람도 그런 행동은 하지 않네."

"죄, 죄송합니다."

이제는 유치원에서도 예절 교육을 하고 있다.

혼잡한 곳에서는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은 상식이 되었다.

'젠장!, 신문이나 사서 봐야겠네.'

민근이는 게시판 보는 것을 포기하고 돌아섰다.

그런데 누군가 민근이에게 물었다.

"어이 젊은이, 뭣 좀 물어보세. 프라하가 어딘지 아나? 체코에 있다는데···."

"체코 프라하요? 소양 바로 옆에 있습니다. 그런데 무슨···?"

"아, 그곳에서 2년 후에 제식 축구 대회가 정식으로 열린다고 해서 그러네."

"제식 축구요?"

"제후국 규칙으로 경기한다고 해서 제식 축구라고 이름 붙였다는데, 뭐 상관없지, 재밌으면 되니까. 그나저나 보호장구를 착용한다는데 어떨지 모르겠네."

"보호장구요?"

"피가 난무하지 않았는가."

"그러긴 했죠."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그렇다고 보호장구를 쓰는 건 좀··· 그렇지 않나?"

"선수들이 다치면 경기를 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그런가?"

리그 방식으로 열린 제후국 축구 대회에서 제일 먼저 떨어져 나간 팀은 체코였다.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급하게 모집한 선수들은 많지 않았고, 그마저도 전부 부상을 입어 출전조차 할 수 없었다.

그만큼 격렬한 경기였기에 제식 축구는 인기를 끌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선수가 부상을 입었고, 그로 인해 출전조차 하지 못하게 되자 보호장구 착용 문제는 바로 합의 되었다.

모든 것을 알게 된 민근이는 바로 친구들을 찾았다.

"2년 후에 프라하까지 가려면 돈을 모아야 하는데 어떻게 할래? 각자? 아니면 함께?"

"당연히 함께해야지. 내가 잘 아는 은행 있으니 그곳에 함께 적금을 들자고."

개인 간 돈거래는 인정하지도 않고 관여하지도 않은 조선이지만, 상거래에서는 지나칠 정도로 엄격했다.

개인의 은행 거래도 상거래로 봤기에 조선의 모든 은행은 믿을 수 있었다.

조선에선 누구나 민간 은행을 설립할 수 있지만, 조선은행의 허가와 관리 감독을 받아야 한다.

'은행원들을 믿지 말고 철저히 조사해라. 비리가 발견되면 즉시 탄광으로 보내고.'

'전부 말입니까?'

'몇 명이나 되는데?'

'그게, 그 은행원들 전부입니다.'

'뭐? 이런! 나쁜 놈들이 있나. 당장 놈들을 모두 잡아들여라!'

민간 은행이 지급준비금조차 없다며 긴급 지원요청이 왔다.

조사 결과 은행직원들 모두가 짜고 고객의 돈을 실사는커녕 검토조차 하지 않고 지인들의 사업체에 빌려준 사실이 발각됐다.

이 사실은 효종에게까지 알려졌다.

효종은 단호하게 명했다.

'백성들을 상대로 집단으로 모의해 사기 친 죄는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된다.'

효종의 명에 한 민간 은행이 문을 닫았다.

모든 직원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버렸기에 영업을 지속할 수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조선에서 사기를 치는 행위는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상대를 기만하여 이익을 얻는 행위'는 개인은 물론 가족과 사회를 붕괴시키고 나라를 혼란에 빠트리는 가장 나쁜 짓으로 봤기에 결코 용서가 없었다.

'아버지, 재산을 자손 대대로 증식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업을 하는 것 아니냐?'

'그것보다 은행을 차리는 겁니다.'

'그게 왜? 은행은 예대 차액 말고는 수입이 없는데···?'

연은 미국 유학 시절에 들었던 이야기를 효종에게 해줬다.

'아버지, 만약 아버지께서 은행장이신데, 제가 상사를 차리면 대출 해주겠습니까?'

'조사해보고 타당하면 해주겠지.'

'그런데 그러지 않고 대출해주다 부실이 나면요?'

'그럼 안 되지.'

'맞습니다. 조사도 하지 않고 대출해주거나, 엉터리로 조사하고선 대출해주면 자손 대대로 빠르게 재산을 증식할 수 있습니다.'

'그게 어찌···?'

은행장이 아들이 운영하는 회사에 거액을 대출해주고 아들은 회사를 고의로 부도를 낸다.

대출해준 은행은 파산하고, 돈을 맡긴 고객들은 돈을 찾지 못한다.

하지만 아들은 빼돌린 돈으로 부자가 되고, 아버지는 여생을 즐기며 산다.

'이런 식으로 반복하다 보면 대를 이어 빠르게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참말이냐?'

'서역에서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고 합니다.'

'이런! 대책은 세웠느냐?'

'네, 아버지. 하지만 처벌이 문제입니다.'

'따질 것 있느냐? 그런 자들은 바로 목을 베야 한다.'

백성들을 너무나 사랑하는 효종이기에 백성들의 삶에 악영향을 끼치는 자는 절대 그냥 두지 않았다.

세상과 영원히 단절시켜 버렸다.

아무튼 민근이와 친구들은 매달 돈을 모아 적금을 들기로 했다.

조선에서는 먹고 사는 문제뿐만 아니라 아파도 공짜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일하지 않아도 돈을 모으지 않아도 노후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사고 싶은 것,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이 많았기에 백성들은 열심히 일했고 돈을 모았다.

* * *

성황리에 예맥기 대회가 끝나고 제후국 왕들은 돌아갔지만, 문식이는 남았다.

연이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였다.

"앞으로도 신용카드는 안 만들 거냐?"

"응. 개인 대출도 하지 않는데 그딴 게 왜 필요해? 잘해야 불량자만 양성하지."

"그러긴 해. 그래도 소비를 촉진하려면 하는 게 좋지 않냐?"

"뒷감당은 누가하고?"

"무슨 뒷감당?"

"연체해도 추심을 못 하는데."

"뭐?"

문식이가 놀라 되물었지만, 연은 담담하게 말했다.

"조선의 법이 그래. 개인 간 돈거래도 인정하지 않지만, 은행에서 개인에게 빌려준 돈도 인정하지 않거든."

"그래···? 그런데 길거리에 차가 무척이나 많던데, 그럼 모두 자기 돈 주고 산 거야?"

"그건 자동차 회사에서 대출받아 처리해준 거야."

"아···, 소유권이 자동차 회사에 있는 거구나."

"그렇지. 완납하기 전까지는 자동차 회사 소유야."

"잘했네."

개인 간 돈거래를 막아 놓았지만, 빈틈을 찾아 비집고 들어오는 기발한 사람들은 항상 있었다.

자동차 회사들은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은행과 합의하여 차를 팔기 시작했다.

돈 한 푼 없어도 차를 살 수 있게 상품을 내놓은 것이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야?"

"야코프의 흔적을 발견했다는 보고를 받았어."

"진짜야? 어디서?"

"이곳이야."

연은 손가락으로 신역이 표시된 지도 한 곳을 툭툭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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