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206화 (206/275)

206. 예맥기 축구 대회(2)

평양과 심양처럼 연은 각 지역을 고루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한양으로 몰려들었다.

어느새 인구 100만 명이 넘어버린 한양.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꿈의 도시였고, 모두가 선망하는 멋진 도시가 되었다.

사방팔방으로 이어진 경전철 노선.

왕복 4차선부터 12차선까지 넓게 다져 놓은 도로.

주거지역과 상업지역의 확실한 분리.

여기에 커다란 인공호수까지.

다행히도 연이 강남을 미리 개발해 놓았기에 밀려드는 백성들을 수용할 수 있었다.

'이곳은 다른 곳보다 지대가 낮으니 인공호수로 만들고, 홍수가 나도 물이 잘 빠질 수 있게 경강까지 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물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21세기에도 자주 침수되었던 강남역 주변.

연은 이곳에 인공으로 커다란 호수를 만들어 놓았다.

경강 남쪽 강남은 평지가 아니었고, 여기저기 구릉으로 이어진 곳이었기에 장마철이면 항상 침수되었기 때문이었다.

한양 호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정릉과 선릉이 있는 언덕 위 정자.

그곳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열심히 뭔가를 설명하는 사람이 있었다.

"어제 경기 진짜 끝내줬는데 나만 봐서 정말 아쉽네. 같이 갔어야 하는데."

"그게 축구 경기야? 라디오에서 그러는데 반칙이 기본이라는데?"

"반칙? 반칙 맞지! 하지만 양 팀이 합의해서 규칙을 정했으니 반칙이라 볼 수 없지."

"정말이야?"

"그럼! 정말이지. 심판도 인정했거든."

하루 전.

연은 효종과 함께 강남에 새로 지어진 축구 전용 경기장에 있었다.

'대조선 제국이 이처럼 막강한 무력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있었군요. 폐하의 용안을 보니 알겠습니다.'

'오, 그래요?'

'네, 폐하. 폐하의 강인한 몸은 대조선을 상징하는 그 자체입니다.'

'그리 봐주니 고맙소.'

경기가 시작되기 전만 해도 분위기는 화기애애하니 좋았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자 상황이 급변했다.

-전역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조선의 수도 한양입니다.

-오늘 이곳에서 제1회 조선 제후국 친선 축구 대회가 개회식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잠시 후 준가르 대표팀의 선공으로 경기가 시작되겠습니다.

-예맥기 대회에 관심이 많으신 줄 압니다.

-그래도 제후국 대표팀 경기를 즐겁게 청취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조선방송국에서 송출되는 단파 라디오는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제후국 백성들을 위해 이번 경기를 생중계하기로 했다.

그런데.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황당한 상황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아···, 저게 뭡니까?

-상대 선수를 머리로 받아버리네요.

-심판에게 항의도 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죄송합니다.

-확인되는 대로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한효석 주심이 축구를 처음 접한 곳은 신병교육대였다.

그전에도 축구라는 새로운 놀이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조선전력공사 경비대 대원들이 즐겨한다는 축구.

교육대에서도 인기가 대단했다.

정해진 공간 안에서 정해진 인원으로 상대 골문을 향해 질주한 후 공을 넣는 축구 경구는 긴장감과 박진감이 넘쳤기에 직접 뛰는 사람은 물론 보는 사람까지 열광하게 만들었다.

가만히 앉아 책을 읽는 것보다 몸 움직이는 것을 좋아했던 한효석은 바로 축구의 매력에 빠져 버렸다.

하지만 불행이 찾아왔다.

한효석은 열심히 노력한 끝에 주전 선수로 발탁까지 되었지만, 상대 선수의 거친 몸짓에 그만 무릎이 결딴나 버렸다.

다행히 교육대에 상주하는 의사와 한의사들의 도움으로 병신이 되는 것은 면했지만, 축구 선수로 뛰는 것은 포기해야만 했다.

그런데도 한효석은 축구에 미련을 두고 있었다.

경기가 열리는 곳이면 만사를 제쳐놓고 찾아가 구경했다.

그러다 심판을 맡게 됐다.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다투는 선수들을 중재한 일 때문이었다.

축구 규칙을 잘 알고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한효석은 경기마다 심판으로 초대되었다.

정확히 규칙을 설명하고 판정을 내렸기에 그의 명성은 갈수록 높아졌다.

명성을 얻은 한효석은 프로축구팀이 생기자 정식으로 프로축구 심판이 되었다.

그동안 심판을 보면서 단 한 번도 잘못 판단하지 않았던 한효석은 심판들 사이에서도 존경받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제후국 친선 경기에 주심으로 선정되었는데.

첫 경기를 시작하면서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준가르 팀 11번 선수 공을 뻥 차고 전력 질주합니다.

-어! 어! 저거 뭡니까?

브리튼 대표팀 선수가 공을 몰고 가는 준가르 팀 선수를 머리로 그대로 받아버리는 것 아닌가.

-삑! 삑!

한효석은 호각(胡角)을 불어 경기 진행을 중단시킨 후, 반칙을 범한 선수에게 뛰어가 노란 종이를 꺼내 들었다.

'이런 행위는 반칙입니다. 다시 반복한다면 퇴장당할 수 있으니 조심하세요.'

'아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게 반칙이라니요? 축구는 손만 쓰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맞아요? 우리나라에서도 손만 쓰지 않으면 반칙 아닙니다.'

아직 조선 말고는 통신 수단이 변변치 않은 세상이다.

축구를 하는 방법은 말 또는 책을 통해서 배운 게 다였다.

조선에서 발행하는 신문에 축구하는 모습이 사진으로 실렸지만, 알고 있던 규칙과 다르지 않았다.

'축구란 손만 조심하면 돼.'

'하나 더 있지. 선공격 반칙(오프사이드)도 조심해야 해.'

조선이 아닌 나라에서도 축구 규칙은 별다른 게 없었다.

21세기 축구 경기와 다르지 않았다.

단,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손만 쓰지 않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잠시 오해가 있어 경기가 중단되었습니다.

-중계하는 입장에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이해는 합니다만 좋은 모습은 아닙니다.

경기가 중단되고 선수들과 심판이 다투고 있자 중계자와 해설자는 상황을 설명하면서도 좋게 말하지 않았다.

-아,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심판의 중재로 경기 규칙이 변경되었다고 합니다.

-경기중에 규칙을 변경하다니 이해할 수가 없군요.

한효석 주심은 양 팀이 격렬히 항의 하자 당황했지만,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머리로 상대를 받는 행위가 반칙이 아니라며 항의하는 선수들을 이해시킬 방법이 없었고, 효종뿐만 아니라 제후국 왕들까지 지켜보고 있기에 빨리 경기를 속행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이 있었기 때문이다.

'양 팀이 그렇게 주장한다면 규칙을 바꿔 속행하겠습니다. 양 팀 모두 동의 하십니까?"

'네!'

"예, 예. 조선에서는 축구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지만, 우린 이렇게 했으니 그냥 진행하시죠.'

경기를 관전하던 효종은 황당해서 혀를 찼다.

아파치 왕국에서 온 문식이도 당황스러운지 연을 보더니 입을 쭉 내밀며 손바닥을 펼치며 작게 입을 열었다.

'저건 군대에서도 하지 않는 건데 말입니다.'

'그러게 말이에요. 저건 소림에서나 하는 건데···.'

한효석 주심은 손에 들고 있는 호각을 몇 번이나 불려고 했지만, 하지 않았다.

몸으로 진로를 막아도, 다리를 걸어도, 머리에 받쳐 코피가 흘러도 선수들이 멈추지 않고 뛰고 있어서였다.

선수들이 자진해서 경기를 중단할 때도 있었다.

공이 축구장 밖으로 나가 거나.

공을 잡으려는 수문장의 몸을 건들 거나.

선공격 반칙이라는 오프사이드를 범하거나.

손으로 공을 건들면 다투지 않고 경기를 중단하고 상대에게 공을 넘겨주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박진감은 넘쳐 보입니다.'

'저러다 다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주변에 다른 이들이 있기에 문식이와 공식이는 서로 존대하며 말을 조심했다.

하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연은 단순히 '이래도 되나' 싶었지만, 문식이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우리 팀은 조선과 같은 규칙인데 이거 상대가 될지 모르겠습니다.'

공이 아닌 상대 선수에게 거침없이 몸을 날리는 선수들의 모습은 군대축구와 소림축구의 딱 중간이었다.

'아무래도 아파치 팀은 이번 대회에서 우승을 포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길 보니 우리 조선과 아파치 말고는 규칙이 다른 것 같습니다.'

'그러게요.'

연과 문식이는 피가 난무하는 축구 경기를 보며 열광하는 왕들을 보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직접 경기를 뛰는 준가르와 브리튼뿐만 아니라 다른 왕국에서 온 왕들도 똑같은 모습이었기에 원래 규칙을 적용하기에는 힘들어 보였다.

효종이 있기에 큰 소리를 내진 않았지만, 모두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어쩔 수 없지요. 우리도 같은 규칙으로 경기에 임해야겠지요.'

"선전을 빕니다.'

* * *

다음날 열린 다두 왕국과 아파치 왕국의 경기.

소문을 듣고 찾아온 축구광들로 경기장은 꽉 찼다.

-새로운 규칙이 적용된 브리튼 왕국과 준가르 왕국의 축구 경기가 대단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어제는 텅 비다시피한 이곳 잠실 경기장이 오늘은 벌써 만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박진감이 넘친다고 소문이 난 건가요?

-네, 어제 경기 이후 축구광 사이에서 나도는 소문이 널리 퍼진 것 같습니다.

엄격한 규칙이 적용된 조선의 축구는 심심하면 경기가 중단됐다.

하지만 손만 쓰지 않으면 반칙이 아니라는 제후국들의 경기는 중단이란 없었다.

머리로 들이받다가 발에 찍혀 피가 흘러도 경기가 중단되는 일은 없었다.

그랬기에 축구 하나만 보고 사는 축구광들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

연과 문식이는 어제와 달리 작은 귀빈실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둘만 있는 것이 아무래도 편했기 때문이다.

"제후국들이 프로축구를 도입한다는 데 들었어?"

"그래?"

"못 들었구나. 어제 만찬 때 호토고친이 그러던데, 자국에도 프로축구를 도입하겠다고."

"그랬어?"

"응, 칼 10세와 카마찻도 동의했어. 돈이 될 것 같다고 그러던데···. 진짜 돈이 돼?"

"뭐, 운영하기 나름이겠지. 이처럼 관객이 많으면 흑자겠지만, 아니면 힘들 건데."

"그래?"

"왜, 너도 프로축구 시작하게?"

"그럴까 하고. 사람들이 이렇게 축구를 좋아할지 몰랐는데 대단하네."

"아무리 관심 없어도 A매치는 항상 인기 있었잖아."

"어, 그러고 보니 국가 대항전이네."

"그것도 피가 난무하는 대항전이지."

감정의 동물인 사람은 피를 보면 흥분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자기가 응원하는 선수가 피를 흘리면서도 멋진 경기를 보여주니 열광하는 건 당연했다.

제후국들의 축구 경기는 처음 백령도에서 시작했던 축구 경기처럼 전쟁이나 다름없는 거친 경기였지만, 관중들은 흥분하며 환호했다.

"이러다 예맥기 대회보다 더 인기를 끄는 거 아니야?"

"그럴 것 같은데."

문식이는 오늘 경기에 호위로 데리고 온 아파치 전사들을 투입했다.

손만 빼고 온몸을 쓰는 축구 경기이기에 조선처럼 하는 축구로는 당해낼 재간이 보이지 않아서였다.

"저건 너무 심한 거 아냐?"

"까불다가 당한 건데 뭐가 심해?"

어제만 해도 황당하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던 문식이.

오늘 아파치 전사가 선전하자 말을 바꾸었다.

다두 왕국의 전사로 보이는 선수가 머리를 디밀자 그대로 받아 버린 아파치 전사.

-뻑!

"""우우···!"""

다두 왕국 전사는 머리가 깨졌는지 피를 흘리며 들것에 실려 나갔다.

"아무래도 이원화시켜야겠다."

"왜 재밌구만?"

"선수들 다치는 건 생각 안 하냐?"

"조심하라고 그렇게 말해도 다쳐서 오는 게 전사라 괜찮아."

"뭐가 괜찮아?"

"저 정도면 다친 것도 아니야."

"에후, 진짜 아파치족 추장이 다 됐네."

연의 말에 문식이가 정색했다.

"추장 그만둔 지가 언제인데 그래? 그나저나 좋은 생각이 났는데 들어 볼래?"

"무슨 생각?"

"네가 방금 말했잖아, 이원화하자고. 어떻게 할 생각인데?"

"우리가 규칙을 바꿀 수 없으니 제후국 규칙을 적용한 축구 대회를 별도로 열 생각이야."

"공식아?"

"응?"

"너야 꿈이 커서 다르겠지만, 나는 전쟁만 없어도 좋겠거든."

"그래서?"

"이번 기회에 국제대회를 여는 건 어때?"

문식이는 아파치 대표팀이 2골이나 앞서 있어서인지 연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니까? 국가 대항전을 하자는 말이야?"

"그래, 진짜 전쟁 대신 축구로 가짜 전쟁을 치르자는 거지."

"그런다고 전쟁이 없어질까?"

문식이의 말이 일리가 있었지만, 연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인간의 다양성을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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