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205화 (205/275)

205. 예맥기 축구 대회(1)

조선 제국력 6년(1664) 9월.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한반도뿐만 아니라 만반도 전체가 화장하고 선선했다.

이때면 신병교육대에서 교육을 마친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여행을 떠나거나 계획을 짜는 시기였다.

전 같으면 추수한다고 고향으로 바로 달려갔겠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다양한 농기계 덕분에 백 명이 온종일 할 일을 한 사람이 서너 시간이면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서역에 안 갈 거야?"

"지금 서역이 문제야?"

"작년부터 가기로 한 거잖아?"

"예맥기 대회는 어떡하고?"

"서역으로 가는 길에 들리면 되잖아."

"돈이 부족할 건데."

"그래서 내가 너희들까지 자원봉사자로 등록해 놓았어. 그러니 심양에 들려서 축구 경기 보고 서역으로 넘어가자."

심양에서 열리는 제1회 예맥기 축구 대회는 조선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았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게 거대한 제국이 된 조선.

그 조선에서 가장 즐겨한다는 공을 차며 노는 축구는 어느 곳에서나 인기를 끌었다.

공 하나만 있으면 수십 명이 뛰어놀 수 있기에 아직 중세에 머물고 있는 지역에서도 축구의 인기는 대단했다.

"와! 심양! 심양! 하더니 대단하네."

"그러게. 평양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것 같아."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연은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심양에 1개의 종합경기장과 2개의 축구전용 경기장을 짓고, 무수히 많은 숙박시설도 함께 건설해 놓았다.

이번 기회에 평양에 이어 만주의 중심이 되는 심양을 대도시로 발전시키기 위해서였다.

"자네들 그리 서성이지 말고 이리 와서 일정부터 점검하게나."

"""네, 조장님."""

신병교육대에서 8개월간 교육이 끝나면 교육대에서 교육 수료 기념으로 1원이나 되는 큰돈을 보상으로 지급했다.

언제부터인가 교육생들은 그 돈으로 여행을 떠나는 게 유행이었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아껴 쓰면 1년 동안 여행할 수 있었다.

어느 집안이나 빚이 아니라 저축을 하고 있을 정도로 사정이 좋아졌기에 집안에서 돈을 받아도 되지만, 교육생들은 그리하지 않았다.

성인이 되었는데 집안에 손을 벌리는 것은 '바보' 같은 '멍청이'나 하는 짓이란 관념이 생겨서였다.

"조장님, 우리 4명 모두 경기장 밖에서 안내하는 일정인데 좀 바꿔 주시면 안 되나요? 경기 보고 싶어 자원봉사자에 등록했는데 말입니다."

"그래? 어디 보자···. 정말 그렇네. 잠시만."

축구협회에서 나온 조장은 자원봉사자들의 사정을 알기에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일정을 조정해 왔다.

"고맙습니다. 조장님. 만수무강하세요."

"만년까지 살 자신은 없으니 그런 말은 하지 말고, 그나저나 이를 어찌하나···? 개회식은 볼 수 없으니···."

"괜찮습니다. 대신 폐회식은 우리 모두 함께 볼 수 있으니까요."

"그리 생각해 주니 고맙네. 잘 구경하고 여행도 잘하길 바라네."

조장 또한 신병교육대를 마치고 여행 다녔던 시절이 있어서인지 자원봉사자로 지원한 젊은이들에게 알고 있는 여행 정보까지 공유해줬다.

"조선 사람은 밥심이니 굶지 말고 배고프면 관청을 찾아가게."

"관청 옆에 있는 급식소에서 끼니를 해결하라는 말씀입니까?"

"그렇지! 그러니 돈 없다고 굶지 말고 끼니는 꼭 챙겨 먹게나."

"그냥 여행자 숙소에서 해결해도 되는 것 아닙니까?"

"응? 그런 게 있었어?"

"아, 모르셨구나. 조선전력공사 분점 옆에는 우리 같이 가난한 여행자를 위한 숙소가 어디에나 있습니다. 우린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할 생각이었습니다."

조장은 자신이 여행 다닐 때는 없었던 여행자 숙소 이야기가 나오자 흥미를 보였다.

여행을 좋아했지만, 현실에 부닥쳐서 포기하고 취직했다.

"그게 정말인가? 나 때는 그런 게 없어서 노숙하거나 민박을 했는데. 세상 많이 좋아졌네. 그려."

"정말 많이 좋아졌죠. 그래서 우리 같이 아무것도 모르는 허접들도 여행을 다닐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허접이라니! 돌도 씹어먹고 소화할 나이 아닌가?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으니 여행 많이 다니게. 여행을 많이 다녀야 세상 보는 눈도 커지는 것이네."

"""명심하겠습니다."""

교육생들은 조장의 말에 감사를 표했다.

이것저것 알고 있는 여행 정보를 아낌없이 알려주니 고마웠다.

"그런데 조장님?"

"왜 그러나?"

"조장님께서는 많은 곳을 다니셨고 아는 것도 많으시니, 여행 관련 책자를 쓰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저희 같은 여행 초짜들을 위해 필요한 책을 써보시는 건 어떠세요?"

"에이···, 나 같은 사람이 어찌 책을 쓴단 말인가?"

"조장님이 어때서요? 제가 만나 본 사람 중 조장님만큼 여행에 관해 많이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정말이에요. 책 한번 써보세요. 틀림없이 엄청나게 팔릴 겁니다."

"맞아요. 저희 같은 이들이 한 권씩만 사도 '으뜸 도서'로 선정될 거예요."

자원봉사자로 지원한 젊은이들의 말에 조장은 가슴이 뛰는 걸 느꼈다.

축구를 좋아해 축구협회에 취직했다.

하지만 새로운 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멈춘 적은 없었다.

'한 번 써볼까? 여행자 숙소라는 곳도 있으니 경비도 얼마 들지 않을 것 같고···.'

사주에 객사한다는 말이 있어 여행을 자제했지만, 젊은이들의 말을 들으니 목표가 생긴 것 같았다.

'그래! 책 한 번 써보자!'

대단한 명문가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잘나갔던 선비 집안에서 태어난 정진구.

세상이 바뀌어 양반 쌍놈 구별이 없어졌고, 과거도 사라졌기에 더는 어려운 한자를 익힐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한자를 아는 것은 여행 시 커다란 힘이 됐다.

예맥 대륙 어느 곳엘 가더라도 조선말과 한글만 알면 말이 통한다고 하지만, 그건 조선 영토나 사람이 많이 사는 도시지역에 한정된 거였다.

조선 영토가 아닌 곳에서는 도심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조선말과 한글이 통하지 않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이때 한자를 알면 큰 도움이 되었다.

조선과 달리 주변국들은 수천 년 동안 이어진 한자 문화권에 있었기에 한자로 말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또한 한자를 아는 사람은 대부분 그 지역의 기득권이었기에 그 지역에서 잘나가는 사람과 연을 맺기도 쉬웠다.

아무튼 정진구 조장은 여행안내 책자들 써보기로 했다.

'조선 영토만 아니라 주변국까지 전부 조사해서 기록해야지.'

이날 결심으로 정진구의 인생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이들의 인생 또한 크게 변해버렸다.

정진구가 쓴 '배낭 하나 메고 세상 속으로'란 여행안내 전집은 으뜸 도서 목록에서 빠지지 않을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이를 보고 배낭 하나 메고 무작정 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무척이나 많았다.

각 지역의 축제일까지 기록되어 있기에 축제가 열리는 곳이면 배낭을 메고 찾아오는 젊은이들로 바글거렸다.

* * *

-전국에 계신 청취자 여러분.

-여기는 조선 동역 심양입니다.

-잠시 후, 제1회 예맥기 축구 대회의 개회식이 거행되겠습니다.

평양에서 열렸던 박람회와 달리, 심양에서 열리는 축구 대회는 개회식부터 달랐다.

심양의 초등학생들과 고등학생들이 집단으로 행하는 율동은 눈을 즐겁게 해줬다.

예맥 기병대가 준비한 마상격구는 박진감이 넘쳤다.

이번에도 개회식에 참가한 효종이 개회를 선언했다.

그러자 하늘에서 등장한 비행기들.

이번에는 창공이 혼자가 아니었다.

4대의 복엽기가 서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묘기를 선보이며 개회식 마지막을 멋지게 마무리했다.

-이제 개회식 첫날 경기가 바로 시작되겠습니다.

-전국에 계신 축구광 여러분!

-백호와 흑룡의 첫 경기를 안내 방송 후 바로 중계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선에서 축구가 시작된 지 어느덧 15년이 넘었다.

그래서인지 축구 경기는 21세기와 비교해도 차이점을 느낄 수 없었다.

여기저기서 '와! 와!'거리며 지지하는 팀을 응원하고, '우! 우!'거리며 상대팀에게 야유를 보내는 것도 똑같았다.

폴리카보네이트로 전면을 막은 귀빈석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던 효종은 한양 상사의 백호 팀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주먹을 꽉 쥐었다.

-골! 골입니다.

-밀리기만 하던 백호 팀이 먼저 골을 넣었습니다.

벌떡 일어나 주먹을 꽉 쥐고 흔드는 효종.

소리를 지르지 않았지만, 얼굴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정말 재밌구나! 재밌어!"

"다행입니다. 이리 좋아하실 줄 알았으면 대회를 빨리 열 것 그랬습니다."

"아니다. 그동안 몇 번 경기를 봤단다. 하지만 이처럼 멋지진 않았다."

"그래요?"

대답조차 없이 경기장을 바라보는 효종.

조선의 황제인 효종은 축구광이 틀림없었다.

"할바마마!"

"오, 우리 순이 이리 온 나."

효종은 첫 손자인 이순을 무릎에 앉히고 다시 축구 경기관람에 여념 없었다.

이제 4살이 된 이순도 과자를 까먹으면서 효종과 함께 경기를 보았다.

"할바마마, 저도 크면 저 선수들같이 뛰고 싶어요."

"우리 순이는 이 할아버지를 닮아 최고의 선수가 될 거야."

가만히 있어도 울긋불긋한 근육투성인데 팔을 오그리자 툭 불거져 나왔다.

"우와! 알통이 남산만 하다!"

이순은 신났는지 효종의 굵은 팔에 매달려 흔들거렸다.

"순아, 할바마마 힘드시니, 그만 내려오거라."

연의 말에 이순은 효종을 바라보았다.

연보다 효종이 더 높다는 걸 알고 있는 거였다.

"이놈! 그만하고 이리 오거라!"

"할바마마. 아바마마가 절 무섭게 합니다."

"으응? 누가 감히! 누구냐!"

효종은 다시 이순을 품에 안고 연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일부러 크게 소리쳤다.

첫 손자 이순이 너무 귀여웠기에 이런 일은 자주 있었다.

"아버지, 순이 버릇 나빠집니다."

"아니다. 이게 정상이지. 그러지 않느냐?"

"그러긴 하지만, 너무 오냐오냐하면 나중에 문제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정도는 괜찮으니 너무 뭐라 하지 말 거라."

어릴 때부터 너무 어른스러웠던 연과 달리 안기며 재롱을 떠는 손자가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기에 효종의 말은 항상 같았지만, 연은 그게 불만이었다.

그것을 알았는지 효종은 딴 이야기를 넌지시 꺼냈다.

"낼 꼭 내가 가봐야 하냐? 너만 가면 안 되냐?"

"그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제후국의 왕들도 모두 참석한다고 했습니다."

"크흠···."

불편한 듯 침음을 내뱉은 효종.

연을 지긋이 바라보더니 뜻밖의 말을 꺼냈다.

"연아, 아무래도 난 좀 쉬어야겠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제 시작해도 될 듯싶다만···?"

"벌써요?"

"이제 제국이 안정되지 않았느냐?"

"그러긴 하지만···. 시기상조입니다."

오래전부터 효종과 연이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정치였다.

'아버지, 조선의 영토는 너무 넓고 거대합니다. 도시 위주로 개발하고 있지만, 전부 직접 관리할 수는 없습니다. 지역 단위로 나눠 권한을 분배해 관리하도록 해야 합니다.'

무선과 유선 같은 통신의 발달로 조선 전역을 장악하고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조선전력공사 경비대가 막강한 무력으로 누르고 있는 거였다.

어느 사회나 불만을 가진 자들이 있고, 이들은 자기 뜻대로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한다.

하지만 조선의 법은 너무 무섭고 단호하게 처리하고 있기에 이들은 숨을 감추고 있었다.

"네가 그러지 않았느냐? 그런 자들은 그냥 방치하면 안 된다고."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서 뜻을 펼쳐도 되지만, 그러지 않고 꼼수를 쓰려는 자들은 꼭 있었다.

적발되는 즉시 관련된 자들을 모두 탄광으로 보내버렸기에 이제 꼼수라 말하는 비리를 대 놓고 저지르는 자들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을 그냥 내버려 두기에는 아까웠다.

나름대로 뜻을 품고 있기에 사회의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그들을 활용해야 했다.

"그럼, 시장 선거부터 시작할까요?"

"그러는 게 좋겠다. 나도 이만 쉬고 싶구나."

조선의 왕이란 단명하기 딱 좋았다.

기본만 알아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는 세상인데도 조선에서는 왕자가 태어나기 전부터 훈련을 받았다.

아이를 가진 왕비는 가야금과 거문고 연주를 들어야 했고, 임신 5개월부터는 '사서삼경'도 함께 들어야 했다.

세자에 책봉이 되면 그때부턴 더욱 심했다.

왕이란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로 인해 나라가 혼란에 빠질 수 있기에 어릴 때부터 철저히 교육을 시키고 있었다.

조선의 왕 중 쓸만한 자가 몇이나 되던가.

지식교육보다는 인성교육을 더 중요시 했다는 조선의 왕실이지만, 문제가 끊이질 않았다.

"너와 나는 그렇다 쳐도 순이부터는 다른 세상일 것 아니냐? 그리니 빨리 시작하자. 그래야 나도 너에게 물려주고 쉴 수 있지 않겠느냐?"

연은 '안 된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나라가 커진 만큼 일이 많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하는 연과 달리 효종은 싫어도 해야만 하는 일이 태산처럼 많았다.

행식이가 만들어 놓은 안내서가 있기에 행정은 잘 돌아가고 있었지만, 사람 간의 대립은 효종이 나서서 해결해줘야만 했다.

연은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효종이 선위(禪位)를 한다는 말을 꺼내도 반대할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아버지. 이번 대회가 끝나면 쉬실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고맙구나! 어, 어! 이런!"

-아, 흑룡의 정기찬! 대단합니다.

-저 먼 곳에서 찬 공이 그대로 골대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왕이 되고 싶어서 왕좌에 오른 것이 아니라 형의 죽음으로 어쩔 수 없이 왕위에 올랐던 효종은 축구에 더 관심이 많았다.

몸 쓰는 것을 좋아하는 효종은 매일 같이 서로 자신의 의견이 맞다며 상대를 헐뜯고 목청을 높이는 대전이 지긋지긋했다.

효종은 타국을 침략할 필요도 없고, 침략당할 일도 없기에 연에게 선위하고 쉬고 싶었다.

하지만 연과 약속한 것이 있기에 지금까지 참고 있었던 거였다.

다음날.

한양으로 돌아온 효종은 다시 한번 개회식을 선언했다.

제1회 조선 제후국 축구 대전에 참가한 나라는 아파치 왕국, 다두 왕국, 준가르 왕국, 브리튼 왕국, 체코 왕국 이렇게 5개국이었다.

그래서인지 관람객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첫날 열린 준가르 왕국과 브리튼 왕국의 경기를 보고 소문이 퍼져나간 후. 입장권은 바로 매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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