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204화 (204/275)

204. 신역 개발(2)

저잣거리 빈터에서 아이들이 손에 손을 잡고 빙빙 돌면서 노래를 부르며 놀고 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면 기차."""

"기차는?"

"빨라!"

"강해!"

"많이 실을 수 있어!"

"우리 조선을 상징해!"

"어···어, 어···어, 으앙! 내가 말하려고 한 건데, 언니들이 전부 다 말해버렸어!"

연이 자신의 아기들에게 불러주었던 노래가 어찌 된 일인지 모르지만, 아이들이 변형해서 부르고 있었다.

아마도 첫째 명화 공주가 즐겨 불렀기에 퍼진 것 같았다.

조선 아이들은 조선에만 있는 기차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래서 함께 노래를 부르다가 기차에 관해 물으면 기차의 장점을 나열하는 놀이가 유행하고 있었다.

이처럼 이제 기차는 조선인들의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기본 이동 수단이 되었다.

이런 기차가 다닐 수 있는 철도가 동역은 물론 중역과 서역 곳곳으로 연결되면서 조선 전역은 더욱 가까워졌다.

하지만 신역은 아니었다.

온통 숲으로 덮여 있는 미지의 대륙 신역.

너무 넓고 광활하기에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꼈는지 황금이 널려 있다는 말에도 이주하기를 꺼렸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었다.

새로운 것에 흥미를 느낀 사람이거나, 사세 확장을 하려는 상사들은 기회를 잡고자 모험을 시도했다.

"장인어른, 아무래도 신역으로 진출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음···, 나도 그럴까 생각 중이었는데···, 자네도 그리 생각한다니 추진 한 번 해보세."

"고맙습니다. 장인어른."

"고맙긴, 자네 덕분에 우리가 이만큼 잘 사는 것 아닌가."

"어디 제 덕분이겠습니까? 잘난 처남을 둔 덕이지요."

제1회 조선 제국 박람회에서 비행기를 선보였던 창공이.

세계 최초 비행사의 영광과 함께 유명인이 되었다.

창공이를 처남으로 둔 만득이는 그 덕을 톡톡히 봤다.

일자무식 만득이는 동네 이장이었던 장인어른과 건설과 토목 상사를 운영하면서 떼돈을 벌었다.

성실하고 꼼꼼한 뒤처리를 인정받았기 때문이지만, 창공이가 인기를 얻는 통에 요즘도 만득 상사에는 일거리가 끊이지 않고 들어왔다.

하지만 경쟁은 날로 치열해져 갔다.

전과 다르게 기술자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참신하고 똑똑했다.

만득이처럼 공사장을 전전하면서 배우고 익힌 기술로 독립한 창업자도 있었고, 기발한 생각으로 특수 장비를 개발하여 엄청난 보상금을 받은 이도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교육받을 기회를 제공했기에 이처럼 많은 젊은이가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만득이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젊은 기술자들은 초등학교와 신병교육대에서 기본 지식을 쌓았다.

일부는 대학교에서 신기술까지 배웠다.

대학교에서 이론과 실습을 통해 신기술을 학습해 본 적이 있기에 젊은 기술자들은 새로운 공법 도입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만득 상사에도 이런 젊은 기술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수시로 사장인 만득이에게 신역 진출을 건의했다.

'태자께서 본격적으로 신역을 개발한다고 합니다. 지금이 기회입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우리 만득 상사는 커나갈 수 없습니다.'

'사장님, 태자께서 저러시는 걸 보면 신역은 정말 좋은 곳일 겁니다.'

'날씨 하나는 끝내주게 좋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틀림없이 많이들 몰려갈 겁니다.'

신역 강가에 사금이 널려 있다는 소식이 연일 라디오에서 방송되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신역으로 이주하지 않았다.

살기 편한 동역을 두고 미개척지인 신역으로 가봐야 고생만 한다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역으로 떠난 사람들을 통해 날씨가 좋다는 말이 자주 들려 왔다.

한양보다 훨씬 북쪽인데도 겨울에도 춥지 않고,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는 여름 한낮에도 그늘로만 가면 시원하다고 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소빙하기가 점점 정점에 가까워지면서 동역 날씨가 미쳐 날뛰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날씨가 좋다는 신역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황금에도 움직이지 않았던 조선의 백성들.

날씨가 천국 같다는 말에 하나둘씩 삶의 터전을 신역으로 옮겨갔다.

하지만 문제가 또 있었다.

부산에서 배를 타면 15일이면 도착할 수 있는 신역 서부지역이지만, 서부지역 안에서는 지역 간 이동이 쉽지 않았다.

철도는커녕 도로조차 깔려 있지 않아서였다.

'아무래도 서해안 종단철도부터 건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연은 신역 개발 계획을 세우면서 서두르지 않았다.

신대륙에 진출해 있던 유럽인들 중 조선을 따르기로 한 사람만 남겨놓고 모두 쫓아 버렸기에 급할 이유가 없었다.

연은 일부 개발된 동부지역부터 철도를 놓으면서 서부로 진출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신역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계획 일부를 수정했다.

황금을 미끼로 신역 이주를 홍보하려 했기에 사금이 널려 있다고 알고 있는 서부지역부터 개발하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그런데 효과가 별로 없었다.

극히 일부 모험을 좋아하는 젊은이들 말고는 신역으로 이주해 오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먹고 사는데 걱정이 없는 세상으로 변해버렸기에 굳이 모험하려 하지 않았다.

연은 서부지역에 놓으려고 했던 철도 건설 계획을 나중으로 미뤘다.

황금에도 움직이지 않은 사람들을 강제로 이주시킬 순 없어서였다.

그런데 상황이 급변했다.

신역 강가에 널려 있던 사금이 '바보의 금' 중 하나라는 황철석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이 알려졌지만, 날씨가 좋다는 말에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기 시작한 거였다.

특히 젊은이들이 열광했다.

점점 신역으로 몰려드는 이주민들.

상서(시애틀), 중서(샌프란시스코), 하서(로스앤젤레스) 이렇게 이미 지어진 3곳의 요새 중 하나를 선택해서 정착하기 시작했다.

이 중 중서가 가장 인기가 많았다.

부산에서 하와이를 거쳐 운항하는 정기선의 이동 시간이 가장 짧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한 장의 그림엽서 때문에 큰 인기를 끌었다.

한 젊은이가 나무판자를 타고 해안에서 파도를 타고 노는 장면이 찍힌 엽서가 신문에 공개되자 그곳이 어디인지 관심이 쏠렸다.

중서라는 곳을 안 젊은이들.

신병교육대를 퇴소하자마자 부산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배를 타고 바로 중서로 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이곳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이나 다름없습니다. 강렬한 햇살이 내리 쪼지만, 살이 타지 않아서 아프지 않고 늘 선선한 바람이 부는 해안가에서 파도를 타고 놀다 보면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릅니다. 참, 여기 바닷가에는 머리만 한 전복이 널려 있습니다. 전복은 아시다시피 단백질 덩어리입니다. 한바탕 놀고 난 후 전복을 썰어 기름소금에 찍어 먹으면 그야말로 맛이 끝내줍니다.'

무작정 신역으로 간 한 젊은이의 신역 생활이 라디오에 소개되자, 신역 이주는 불이 붙었다.

'굳이 일하지 않고 바닷가에 널려 있는 고단백 전복만 집어 먹고 살아도 된다'는 말에 한창 놀 나이인 젊은이들이 떼로 몰려갔다.

황금에도 움직이지 않았던 조선의 백성들이지만, 좋은 날씨에 즐기면서 살 수 있다는 말에 가족 단위로 이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래서 연은 다시 서부지역 철도 건설을 시작했다.

대신 건설 공사를 민간 업체에 맡기기로 했다.

이미 동역 두 곳에서 철도 건설을 시작했기에 여유 인력이 없기도 하지만, 사람들을 더 끌어들이기 위해서였다.

'일자리가 있어야 도시가 잘 발전할 수 있다. 그러니 특혜를 주더라도 상사들이 올 수 있게 하라.'

황금으로 유인하려는 계획은 실패했지만, 날씨가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몰려오는 이주민들.

연은 이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일이 신역 개발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봤다.

'중서를 기점으로 동, 남, 북 이렇게 3곳으로 철도 공사를 시행한다.'

동으로는 시카고와 연결하고.

북으로는 상서로.

남으로는 하서를 지나 아파치 왕국의 수도인 서울까지 연결하는 철도 건설 계획을 다시 짰다.

그러면서 건설에 참여할 민간 업체를 모집했다.

그런데 재밌는 일이 일어났다.

"뭐? 신역으로 이주해 온 사람 중 한반도에서 살던 조선인이 9할이 넘는다고?"

"네, 사장님."

"이유를 분석해 봤느냐?"

"네,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신역을 오가는 정기선이 부산에만 있는 게 가장 컸습니다."

"응? 함부르크에서도 출발하지 않느냐?"

"그게 이용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조선에 합병되어 조선인이 된 서역 사람들.

그들의 꿈은 소박했다.

'그냥 이대로만, 이대로만 살아도 원이 없겠어.'

'천국이 따로 있나, 여기가 천국이지.'

나라를 지키라는 병사들은 약탈과 폭행을 자행했고, 귀족들은 자신들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조선에 합병되고 조선인이 되자 달라졌다.

너무 많이 달라져서 다 말할 순 없지만, 그중에 가장 좋은 것은 일하지 않아도 잠잘 곳과 먹을 것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었다.

곳곳에 들어선 관청에 신청만 하면 살 집도 주는데 웬만한 영주가 사는 곳보다 좋았다.

또한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넉넉히 먹을 식량도 챙겨줬다.

그러자 사람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냥 이렇게 받아만 먹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

'그러게···, 이러다 끊기면 어떡하지? 나가라고 쫓아내면 어떻게 해?'

'다시 전으로 돌아가야지, 별수 있겠어?'

'설마···! 그래도 모르니 빨리 조선말을 익혀서 주민증을 따자고.'

'그래야겠지? 어차피 좋은 일자릴 얻으려면 조선말은 필수니까.'

벽돌만큼 딱딱한 빵도 없어서 못 먹고 살았던 이들은 열심히 조선말과 한글을 배웠다.

그래야만 거주증이 아니라 주민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두 증명서의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막상 일자리를 구하려 할 때 그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오, 자네는 주민증이 있군. 그럼 오늘부터 일당을 1전으로 계산해 주겠네. 조선사람인데 그 정도는 받아야지.'

거주증을 내밀 때와 주민증을 보여 줄 때, 대우 자체가 아주 극명했다.

주민증이 있는 서역 사람들은 아쉬운 것이 없기에.

거주증만 있는 서역 사람들은 빨리 주민증을 얻기 위해.

아무것도 개발되지 않은 미지의 신세계인 신역으로 이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또한 원주민들이 귀와 코를 베간다는 소문이 나돌았기에 무서운지 신역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와 달리 동역에 살던 조선인들은 달랐다.

매일 같이 누가 성공했다는 말이 돌고 있는 동역에서는 늦었지만, 기회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은 서역 진출을 포기하고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신역을 목표로 정했다.

복 많은 세대라 복돌이로 불리는 젊은이들.

권총을 차고 조3 소총을 들고 거침없이 미지의 신세계로 뛰어들었다.

두려움은커녕 겁조차 없었다.

"사장님, 저들에게 조3 소총을 줘도 되겠습니까?"

"어쩔 수 없지 않느냐? 곰과 늑대들 천지인데."

"그래도 사고 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그래서 6연발로 줄였지 않느냐."

신역에는 호랑이도 없고, 사자라고 있어 봐야 푸마(Puma) 또는 쿠거(Cougar)라 부르는 작은 산사자뿐이었다.

하지만 맹수인 회색곰과 회색늑대들이 사람을 헤칠 수 있기에 연은 신역 주민들에게는 조3 소총 소지를 허가했다.

비록 수동이지만, 6발을 연사할 수 있기에 미지의 신세계에서 자신의 몸을 지키기에 충분했다.

"차라리 예맥 기병대를 투입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이곳은 예맥 대륙이 아닌데 어찌 예맥 기병대를 투입한단 말이냐?"

"그럼, 이곳 치안은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새로 기병대를 창설할 생각이다. 그러니 염려 말고 대여해준 총기 관리나 잘하도록 해라."

연은 예맥 기병대원 중 신역에서 살 대원들을 별도로 모집해 '신역 기병대'를 창설했다.

3개의 새로운 기병연대를 상서, 중서, 하서에 배치하고 요새와 주변을 순찰하며 치안을 담당하게 했다.

아무튼 신기하게도 신역 서부에 진출한 사람들은 대부분 한반도에서 태어난 조선인들이었다.

* * *

조선 제국력 6년(1664) 5월.

신역 서해안을 따라 상서에서 하서까지 시찰을 마친 연은 급히 한양으로 돌아갔다.

"문식아, 너도 와야 하는 거 아냐?"

"가고는 싶지만, 갑작스러운 일이라···. 그래도 원래보다 오래 사셨네."

조선의 참선비였던 김육이 향년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조선 동역뿐만 서역을 넘어 유럽반도까지 높은 학식과 인품이 널리 퍼져서인지 문상객들이 넘치도록 몰려왔다.

"그러지 말고 오지 그래? 곧 있으면 예맥기 대회도 열리잖아."

-그러니까! 우리 대표팀도 참석하게 해주지. 그럼 나도 핑계 삼아 갔을 건데. 아쉽네.

"축구 협회에서 대회를 개최하는 거여서 안 된다니까."

-네가 스폰하는 거 아냐?

"물론 조선전력공사에서 지원하지만, 그렇다고 관여해서는 안 돼. 네가 말했잖아. 지원만 하고 알아서 살게 하겠다고."

-그거야 그렇지만···. 아쉽네.

진짜 아쉬운지 한 참 쩝쩝거리던 문식이가 급히 말을 꺼냈다.

-참 그러지 말고 조선 제후국끼리 대회를 따로 하면 안 될까?

"어! 그거 괜찮은 생각인데. 기다려 봐."

휴일이면 축구 열기가 동내마다 가득했다.

미친 듯이 달리며 뻥뻥 차대는 축구는 보는 사람도 신나게 했기에 조선에서 가장 인기 있는 운동 경기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체적으로 프로 축구 협회가 생겼고 드디어 조선 전역에서 참여하는 큰 대회를 열기로 했다.

예맥 대륙에서 시행하는 가장 큰 대회이기에 '예맥기' 대회라 부르기로 한 이번 대회는 각 지역에서 뽑은 32개 팀이 승자전(勝者戰, Tournament)을 치루기로 했다.

조선전력공사에서 지원하기로 한 우승 상금이 무려 1천 원이나 됐기에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았다.

"오래 기다렸지? 다들 참가하겠데. 그럼 너도 오는 거지?"

-바로 갈게. 갈 명분이 없어서 그랬거든.

"눈치 안 본다며?"

-말이 그렇지 그게 쉽냐. 다 너 때문이다.

"왜 나 때문이야?"

-우리 백성들이 조선의 라디오 방송을 즐겨 듣는 거 알잖아?

"그게 영향을 미쳤어?"

-당연하지!

"뭐 잘됐네. 삼천궁녀 거느린 독재 왕을 이번 기회에 몰아내면 좋겠네."

-말이 씨가 될 수 있으니 그런 말은 하지 말고.

"알았어. 그럼 너 오는 거로 알고 준비할게."

하지만 연은 몰랐다.

조선 축구 협회 경기보다 제후국들끼리 하는 경기가 더 높은 관심과 인기를 얻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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