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 신역 개발(1)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방석이는 사고 싶은 것이 있어 시간제 부업을 시작했다.
14세 이하 아이들은 부업이라도 하루 3시간 이상 일하지 못하기에 신문 배달을 하기로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6시까지 신문 배달소에 가야 하기에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어차피 운동 삼아 배달일을 하고 있다.
"방석이 왔냐?"
"소장님 안녕하세요?"
"그래, 어서 와라. 방석이 오늘 꽁돈 좀 벌겠네."
"공돈이요? 호외(號外) 나왔어요?"
"그래, 간밤에 황손께서 태어나셨단다."
"그래요? 빨리 주세요."
"무거우니 먼저 배달부터 하고 와라. 네 것은 여기 챙겨 놓을 거니 빨리 와서 꽁돈 좀 두둑이 챙기거라."
"고맙습니다. 소장님."
방석이는 보급소에서 지급해준 전기자전거를 타고 빠르게 배달을 마친 후, 호외를 들고 높은 건물들이 즐비한 사무 지역으로 갔다.
"호외요! 호외요! 간밤에 황손께서 탄생하셨답니다!"
호외는 신문사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무료로 배급되지만, 사람들은 수고한다며 한 푼씩 던져줬다.
'황손께서 나에게 행운을 몰아주시는구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황손 탄생 소식에 사람들은 무척이나 기분이 좋은지 어떨 때는 1전을 주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방석이는 호외를 나눠주고 받은 돈을 세어보더니 '와!'하고 크게 소리 질렀다.
'이 돈이면 충분해!'
방석이는 측음기를 사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었다.
노래를 좋아하는 방석이라 측음기를 갖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너무 비싸다고 사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측음기가 저렴한 가격에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돈을 모으고 있었다.
태엽을 감아 작동시키는 것은 5원이나 했지만, 이번 박람회에 새로 나온 전기로 돌아가는 측음기는 1원이면 살 수 있기에 시간제 부업으로 신문 배달을 하고 있었다.
-간밤에 기분 소식이 있어 알려드립니다.
-온 백성이 그토록 기다리던 황손께서 탄생하셨습니다.
-잘 자라셔서 우리 조선 제국을 이끄는 훌륭한 군주가 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라디오에서 소식을 알리자 조선 전역은 축제 분위기로 변했다.
왜 그러지 않겠는가.
국민이 있어야 국가가 있는 게 아니라 왕이 있어야 나라가 존재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연이 연속해서 딸을 낳는 통에 백성들은 훗날 군주가 될 황손을 애타도록 기다렸다.
일자무식이라도 황실이 든든해야 나라가 지속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연은 부기가 빠지지 않은 태자비를 바라보며 두 손을 꼭 감싸 쥐었다.
"수고했소. 정말 수고 많았소."
"아닙니다. 전하. 폐하께서 원하시던 황손이라 정말 다행입니다."
"아니요. 나는 딸이라도 상관없소. 서역은 여자도 왕이 되지 않소? 그러니 아들이 없으면 딸을 시키면 되오."
"그리 생각해주시니 정말 고맙습니다. 전하."
연은 부끄러운 듯 슬며시 고개를 숙이는 태자비가 안쓰러웠다.
한참 꿈을 꿀 나이인 19살 태자비가 벌써 3명이나 되는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으니 가혹한 일이라 생각이 들었다.
'콘돔이나 피임약을 만들어 팔아야 하나?'
태자비뿐만 아니라 이 시대 여인들은 아이가 생기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또한 전처럼 유아 사망률이 높지 않기에 조선의 인구는 곧 있으면 1억 명이 넘어간다는 보고를 받았다.
'1억 명이면 자체 내수로 돌려도 나라 경제를 유지하기에 충분하지.'
연은 삶의 질을 높이는 쪽으로 계획을 잡고 있기에 이쯤에서 피임할 수 있는 제품을 출시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태자비가 문제였다.
일반 백성들도 그렇지만, 대를 잇는 일은 무척이나 중요하기에 계속 출산할 수밖에 없었다.
황손이 태어났다고 하지만, 한 명뿐이라 더 많은 황손 탄생을 기다리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연은 태자비가 안쓰러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전하, 보는 눈이 많습니다."
"누가 본단 말이오? 또 보면 어떻소."
"전하···."
그날 이후 연은 경복궁에서 기거했다.
수많은 나라에서 온 사신들의 축하를 받아야 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도 틈틈이 시간을 내서 강연회를 열었다.
반도체야말로 연이 생각하는 미래를 앞당길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했기에 앞으로 태손(太孫)이 될지도 모를 아이를 보면서 강연회에 발표할 내용을 정리하고 있었다.
* * *
앞으로 황실의 대를 이을 황손의 탄생 소식으로 조선은 축제 분위기였지만, 청나라는 순치제의 붕어로 혼란스러웠다.
그러는 가운데 순치제의 후궁인 강비 동가씨의 아들인 현엽이 8살의 나이로 청나라의 황제로 즉위했다.
연 때문에 쪼그라들어버린 청나라는 제국을 자처할 수 없는데도 황제 즉위식을 거행했다.
그런데도 조선은 강희제가 되는 현엽의 즉위식에 축하 사절을 보냈다.
어린 황제의 즉위로 어수선한 청나라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느냐?"
"아버지께서 생각하시는 뜻은 알겠지만, 청나라가 존재하는 것이 여러모로 조선에 유리합니다."
"그건 알겠다만, 굳이···."
효종은 마음에 안 드는지 혀를 차며 인상을 찌푸렸다.
청나라에 유린당한 일을 결코 잊을 수 없기에 이번 일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군권과 외교권을 연에게 주었기에 더는 뭐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예맥 북로 공사를 시작하겠다고?"
"네, 아버지. 예맥 남로 복선화 공사가 끝났으니 이제 북로를 개발할까 합니다."
"그런데 왜 신역으로 가려고 하느냐?"
"이곳이야 행식이가 알아서 잘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긴 하지만, 태자비 몸이 성치 않은데 벌써 떠나려 하느냐?"
"그래서 6개월 후에 떠나려고 합니다."
"흠···, 황실의 대를 이어준 귀인이니 잘 대해주거라."
"네, 아버지."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 했던가.
효종은 태자비를 끔찍이도 생각했다.
멀대같이 키가 크고 눈이 큰 태자비가 쌍꺼풀까지 있어 걱정했지만, 태자비는 그런 걱정을 날려버릴 정도로 조신하게 행동했다.
게다가 후손까지 순풍 순풍 낳지 않았는가.
그러니 예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 * *
조선 제국력 5년(1663) 10월.
연은 아들 순(焞)이 두 돌을 맞이했을 때, 시카고에 있었다.
그사이 연은 한양을 뻔질나게 들락거리더니 넷째 명혜 공주를 얻었다.
쉬지 않고 아이를 안겨주는 태자비가 안쓰러웠지만, 또다시 예쁜 딸을 얻은 연의 입은 귀에 걸려있었다.
시카고는 '냄새나는 양파'를 뜻하는 shikaakwa에서 유래했다고 하지만, 일부에서는 바람을 뜻한다고 했다.
연이 시카고에 온 이유는 북미 원주민들과 협상이 있어서였다.
"전하, 부족장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그래? 조금만 기다리 거라."
"네, 전하."
연은 태자비에게 보낼 사랑이 담긴 전문을 작성한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칼 10세 덕분에 신역이라 말하는 북미대륙을 냉큼 삼켰지만, 5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시카고까지 진출할 수 있었다.
그만큼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연은 신중을 기했다.
'훗날 원주민 학살자로 불릴 순 없지.'
그래도 먼저 진출했던 유럽인들이 만들어 놓은 수로가 일부 있었기에 시카고까지 진출은 어렵지 않았다.
"어때? 받아 들일 것 같으냐?"
"대체로 분위기는 호의적입니다. 하지만 체로키족이 문제입니다."
연은 민삼이의 말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래? 예상했다만, 도대체 왜 그러는지 짐작 가는 거라도 있느냐?"
"천연두 예방 접종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쯔쯔, 천연두로 부족민이 반으로 줄었거늘 아직도 저러니···. 그런데 그건 핑계일 거다. 원주민들도 사람이니 이익을 따지는 걸 거야."
그동안 막무가내로 철도 건설을 반대하는 체로키족 추장 때문에 신역 횡단 철도를 건설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체로키족을 무시하고 철도 건설을 강행하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체로키족은 북미 원주민 중 유일하게 고유 문자를 가졌기에 보존하고 싶은 이유도 있었고, 체로키족과 같은 언어를 쓰는 부족들의 눈치도 봐야 했기 때문이다.
호의를 권리로 받아들이는 체로키족 추장의 반대는 심해도 너무 심했다.
오죽하면 추장을 제거하자는 말이 나왔겠는가.
그 정도로 체로키족 추장은 막무가내였다.
연은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고 그래도 반대한다면 제거하기로 마음 먹었다.
회의장에 연이 나타나자 부족의 추장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올렸다.
먼저 진출한 유럽인들을 단숨에 쫓아낼 정도로 막강한 무력을 가진 대제국의 태자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추장들은 무척이나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전하를 뵙습니다."""
"다시 보게 되어 반갑습니다. 일이 있어 좀 늦었습니다. 회의를 바로 시작할 테니 모두 자리에 앉아 주세요."
"""네, 전하."""
겉으로는 모두 연을 따르는 듯 보였다.
하지만 원주민들도 사람이었다.
이익 앞에서는 물러서지 않는.
시골 인심이라고 다 좋지 않듯, 북미 원주민들도 다 순박하진 않았다.
"그대들이 요구한 대로 원주민이 아니라면 버팔로 사냥뿐만 아니라 늑대 같은 맹수가 아니면 모든 동물 사냥을 하지 못하게 법으로 정했습니다. 또한 철도 공사장에서 일을 하면 하루 일당으로 1전 20푼을 지급할까 합니다. 이 정도면 만족하십니까?"
연의 물음에 원주민 추장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원주민들은 체로키족 추장 지프의 입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동안 지프 추장의 반대로 50푼인 일당이 1전 20푼까지 올랐다.
그랬기에 지프 추장의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게 이득이 된다는 걸 누구나 판단할 수 있었다.
연은 또 같은 상황이 벌어지자 지프 추장을 보고 입을 열어 강하게 말했다.
"지프 추장. 잘 생각해야 합니다. 이번에도 반대한다면 포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잘 판단 해서 결정하셔야 합니다."
"철도 건설을 하지 않겠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대신 이곳 말고 남쪽에 철도를 놓을 겁니다."
원래 계획했던 일이지만, 연은 새로 추진 한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지프 추장이 탁자를 내리쳤다.
"이것 보시오! 냄새나는 이로쿼이 놈들과 손을 잡는단 말이오? 그러려면 당장 이곳에서 꺼지시오! 난 냄새 나는 놈들과 손을 잡은 이와는 상종하고 싶지 않소."
원래 오대호 주변에 살았던 체로키족은 델라웨어족과 이로쿼이족에게 패한 후 남쪽으로 밀려났다.
그래서인지 연이 이로쿼이족과 손을 잡고 남쪽에 철도를 건설한다고 하자 지프 추장이 불같이 화를 냈다.
"추장! 그 말 진심이오? 다시 묻겠소?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까?"
"진심이고 뭐고 필요 없으니 당장 꺼지시오!"
연은 지프 추장을 매섭게 노려본 후 단호하게 물었다.
"다른 분들도 같은 생각이오?"
어쩔 줄 모르며 연과 지프를 번갈아 쳐다보는 추장들.
그들의 연에게 대답하지 않았다.
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들의 의견이 그렇다면 내 물러나리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 조선은 그대들에게 쌀 한 톨도 지원하지 않을 거요. 또한 도둑질하다 걸리면 바로 총살이니 그리 아시오."
"뭐라고요!"
체로키족 지프 추장이 따라 일어나며 소리쳤지만, 연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회의장을 벗어났다.
수군거리는 추장들.
당황한 모습이었다.
그로부터 보름 후.
조서원의 신역 담당 요원 은석이가 조심스레 연을 찾았다.
"사장님, 제거되었습니다."
"크흠···. 수고했다."
체로키족 추장 지프가 화살을 맞고 죽었다는 소문과 함께 부족의 추장들이 연을 찾아왔다.
"그대들의 짓이요?"
"아, 아닙니다. 어찌 우리들이 그런 짓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절대 아닙니다. 전하. 우린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마 굶주림을 참지 못한 부족민이 저지른 짓일 겁니다."
신역에 진출한 조선은 제일 먼저 항구와 요새를 지었다.
유럽 놈들처럼 원주민들을 죽일 생각이 없었기에 농지를 개간하고 쌀과 밀을 거둬 겨울만 되면 찾아오는 원주민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런데 협상이 결렬되자 원주민들은 먹을 것을 더는 공급받지 못했고 떨어져 갔다.
요새를 찾아가 사정했지만, 조선군은 총을 쏘면 위협했기에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굶주릴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사는 원주민들은 자연을 숭상하고 인명을 소중히 생각한다고 들었는데···, 아니겠지요?"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전하, 그동안 지프 추장이 너무 독선적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지프 추장의 주장은 터무니없었습니다."
"죽어 마땅한 자입니다."
원래부터 이랬는지 아니면 유럽인과 접촉하며 살았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추장들의 태세 전환은 확실했다.
결국 지프 추장은 굶주림을 참지 못한 부족민에게 살해된 것으로 결론 지었다.
"전하, 80푼이라뇨? 너무 적습니다."
"1전 20푼은 서역의 두 배나 되는 돈이요. 동역의 일당이 1전 정도이니 80푼이라면 괜찮은 보수라 생각하는데···. 왜 싫소?"
"그, 그건 아니지만, 전에 1전 20푼을 준다고 해서···."
"그때 분명히 말하지 않았소. 최종 협상이라고. 이곳에서 철수하고 남쪽을 개발할 계획을 다 세워 놓았기에 어쩔 수 없소."
"""전하!"""
"싫으면 관두시오. 아무리 조선에 금은보화가 넘쳐난다고 하지만 형평에 어긋난 일당까지 주면서까지 이곳을 개발할 생각이 없소. 미안하오."
"""전하!"""
추장들이 소리쳐 연을 불렀지만, 연은 눈 하나 깜박이지 않았다.
그동안 얼마나 참고 기다려줬던가.
하지만 호의를 권리로 알고 철도 건설을 지연시켰으니 응당한 대가를 줘야 했다.
"전하! 1전은 안 되겠습니까?"
"그럴 순 없소. 동역이라면 조선말과 한글에 능통하고 샘도 밝은 이들이기에 그만큼 줘도 효율이 있지만, 이곳은 아니지 않소."
"그럼 우리도 한글과 조선말을 배우겠습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조선어 시험에 합격한 원주민들에게는 1전을 일당으로 주도록 하겠소."
"전하! 바로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건 형평성에 어긋나서 안 된다고 하지 않았소."
결국 신역 횡단 철도 임금은 80푼으로 확정됐다.
또한 공사장 근처에 조선어학당을 세워 조선말과 한글을 가르치기로 협의했다.
이로써 자연스럽게 북미 원주민들도 조선말을 배우게 됐다.
시카고 요새에서 바다처럼 넓은 미시간호를 바라보던 연은 생각에 빠졌다.
'사람들이 이곳으로 오게 할 좋은 방법이 없을까?'
이제 본격적으로 서역을 개발할 생각이기에 연은 효율적인 조선인 이주 계획을 구상하고 있었다.
"답은 그것뿐이 없나?"
고대부터 사람이라면 환장했던 노란 금속.
그 금속으로 조선인들을 유인하는 방법이 최고일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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