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202화 (202/275)

202. 유교 탈레반(2)

며칠 동안 고민 끝에 연은 효종을 찾아갔다.

군사와 외교 문제는 상의 없이 처리해도 되지만, 조선인의 거취에 관한 일이기에 효종의 허락이 필요했다.

"아버지, 아무래도 송시열 선생을 다시 사파비 지역으로 돌려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유교 탈레반이라는 아이들 때문에 그러는 것이냐?"

"네, 아버지. 송시열 선생을 보내지 않고서는 해결할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음···."

연의 말에 효종은 고양이가 먹고 배설한 커피콩으로 만든 커피를 마시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풀냄새 비슷한 나무껍질 향과 커피 특유의 쓴맛과 신맛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풍미가 일품인 루왁 커피를 음미하던 효종은 찻잔을 내려놓고 물었다.

"그러지 말고 아이들을 송시열 선생에게 보내는 건 어떻냐?"

"아···, 그 방법은 생각지 못했습니다. 바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다행히도 이스파한에서 시작된 시위는 그리 멀리 퍼지지 않았다.

아직 철도가 완공되지 않았기에 조선의 다른 지역과 달리 지역 간 교류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 * *

효종에게 조언을 얻은 연은 송시열에게 의향을 물었다.

"일이 이렇게 됐습니다. 그러니 송 선생이 이스파한으로 다시 돌아오시든지 아니면 유교 탈레반이라 자처하는 학생들을 그리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전하, 제가 이스파한으로 다시 가면 이곳은 어찌합니까? 황제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아이들을 이곳으로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아이들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그래요? 송 선생 뜻이 그렇다면 아이들을 선발해 그곳으로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제로니모의 요청으로 아파치 왕국의 수도인 서울로 간 송시열은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평생 학문을 연구했던 자신보다 더 명확하고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박식한 제로니모에게 반 해 버린 거였다.

그래서였는지 송시열은 제로니모와 합심해서 새로운 교육제도를 구상하고 있었다.

유학당 학생들이 돌아오라며 시위를 해도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아이들이 있다면 이곳 교육제도를 빠르게 정착시킬 수 있을 겁니다.

"그래요? 잘 됐군요. 서둘러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전하.

송시열과 통화를 마친 연은 바로 명을 내려 아파치 왕국으로 갈 학생들을 선발하게 했다.

* * *

아버지의 만류에도 로닌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

되려 집에도 들어오지 않고 이스파한 시청 앞 광장에서 친구들과 노숙하며 시위하며 있었다.

"로닌! 로닌!"

"어! 밀라드! 어디 갔었어. 한 참 찾았잖아. 설마 포기한 건 아니겠지."

"그, 그건 아니고, 너, 너무 배가 고파서 바, 밥 좀 먹고 왔어."

밥 대신 밀로 만든 빵과 고기를 주로 먹는 사파비인들이지만, 조선말을 배우면서 '식사하는 행위'를 '밥 먹는다'고 표현했다.

'밥집'이란 간판을 달고 영업하는 식당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치안을 담당하는 일본인 대원들이 '밥집! 밥집!'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밥집은 식당을 뜻하게 되었다.

한양에서 쓰는 조선말을 표준으로 삼고자 정기적으로 라디오에서 조선어 교육을 하고 있지만, 이처럼 새로운 말은 끊임없이 생겨났다.

그러면서 조선말은 더욱 풍성해져 갔다.

"그런데 무슨 일이 있길래?"

로닌은 헐떡거리는 밀라드를 보며 의문을 표했다.

"그게···, 그게···, 아, 뛰어왔더니 숨이···."

"그니까 왜 뛰어왔냐고?"

항상 꿈지럭거리던 밀라드가 뛰어왔다니.

로닌은 순간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뭐야? 우릴 잡아가기라도 한데? 시위한다고 신고까지 했는데?"

"그, 그게 아니라. 잠시만."

밀라드는 크게 숨을 내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집에까지 가기 싫어서 급식소에서 밥을 먹고 왔거든. 그런데 거기에 방(榜)이 붙어 있었어."

"무슨 방이? 무슨 내용인데? 빨리 말해봐! 답답해 죽겠네."

송시열에게 학문을 배워서인지 로닌과 친구들은 공고문을 방이라 했다.

이들뿐만 아니라 이스파한에 사는 주민이라면 누구나 공공고문을 방이라 불렀다.

유교 탈레반을 자처하는 학생들이 쓰는 말이라 왠지 좋아 보였기 때문이다.

"아파치 왕국 알지?"

"당연하지. 그곳에 선생님께서 계시잖아."

"선생님께서 그곳에서 새로운 교육제도를 만들고 계신 데. 그래서 원하는 사람을 선발해서 선생님께 보낸다고 하네."

"뭐? 선생님께서 오시는 게 아니라 우리가 가야 한다고?"

"응. 하지만 선발 시험에 합격한 사람만 보내겠데."

"그러는 법이 어디 있어?"

"선생님께서 그리 원하셨다는데?"

"그래? 그럼 당연히 가야지."

한참 피가 들끓는 사춘기 청소년기인 로닌과 친구들은 맹목적으로 송시열을 따랐다.

근엄한 모습과 박식한 말투.

세상의 이치를 알기 쉽게 풀이해 줬기에.

송시열은 세상에 눈을 뜨기 시작한 청소년기 소년들의 우상이 되기에 최적이었다.

또한 조선의 공고문은 그 내용을 자세히 적어 놓았기에 로닌과 친구들은 아파치 왕국의 유학생이 되는 일이 대단한 특혜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이 불만을 느끼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속이려 한다는 생각이 들 때 가장 크다. 그러니 공고문은 항상 오해가 없도록 작성해야 한다.'

많지 않은 나이에 조선의 내무부 차관이 된 행식이.

연의 말에 따라 공고문 작성 방침을 내놓았고, 이 방침에 따라 공고문을 작성하는 것은 공무원 시험의 중요한 관문이 되었다.

'공고문 하나 작성할 줄 모르면 공무원이 될 수 없다'는 말은 이제 정설이 되었다.

"그런데 몇 명이나 뽑는데?"

"1차로 백 명을 뽑는다고 방에 나와 있었어."

"그럼 어떻게 해. 우리 다 모여봐야 50명도 안 되는데."

"모집해야지."

시위는 홍보로 바뀌었다.

로닌와 친구들은 시위대신 아파치 왕국으로 갈 유학생들을 모집했다.

"위대한 스승이신 송시열 선생님께 배우고자 하는 학생은 유교 탈레반에 가입하세요."

"유교 탈레반에 가입하면 아파치 왕국 유학생 선발 시험에 합격할 수 있도록 무료로 가르쳐드립니다."

"진정한 학자가 되려면 이번이 기회입니다."

유학생에 선발되면 송시열에게 배우면서 돈도 벌 수 있다는 말에 수많은 학생들이 유교 탈레반에 가입했다.

사파비 지역은 아니지만, 동역이나 서역에는 일자리가 널려 있다.

그래서 취직 걱정을 하진 않았지만, 새로운 학문을 배우고 보수도 받는다고 하니 학생들은 마음이 동할 수밖에 없었다.

* * *

유교 탈레반이 단순한 우발 사건으로 끝나자 연은 안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동안 문식이의 농담을 들어야 했다.

"웃을 일은 아니잖아? 내가 얼마나 놀랐는데."

-아직 네 정신이 21세기에 머물러 있어서 그래. 너와 내가 만들어가는 세상에서 탈레반이 생길 리가 없잖아?

"그러긴 하지. 그래도 놀랄 만하잖아."

불타는 금요일 저녁이면 만나서 술을 즐겼던 공식이와 문식이.

둘의 대화 끝은 언제나 '내가 왕이 된다면'이었다.

문식이가 쌓인 학교 일을 터놓고.

공식이가 쌓인 연구소 일을 터놓다 보면.

이야기는 이상세계로 넘어갔고, 대체역사 소설은 그 이야기의 중심이 되었다.

결혼도 못 하고, 연애도 안 되는 답답한 현실을 피하려고 둘은 꿈을 꾸었던 거였다.

'왕이면 이렇게 생겨도 장가 갈 수 있겠지?'

'미친 새끼! 그걸 말이라고 하냐? 난 3천 궁녀를 거느릴 거다.'

'그거 사실이 아니라며?'

'그러니까 내가 10배나 많은 궁녀를 두겠다는 거지.'

문식이는 '삼천궁녀 때문에 백제가 망했다'는 말은 날조라고 했다.

그 시절 인구가 얼마나 된다고 궁녀를 3천 명이나 둘 수 있냐면서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 했다.

삼천궁녀란 말은 일제강점기에 윤승한(尹昇漢)이 쓴 소설 '김유신(야담사, 1941)'에서 유래 되었고.

당사(唐史)와 삼국유사에 '의자왕은 당나라에서 죽었다'는 내용이 있는데 왜 그런 말도 안 되는 헛소리가 퍼졌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무튼 유교 탈레반 사건이 좋게 끝났지만, 연은 궁금한 것이 있었기에 문식이에게 연락한 거였다.

그런데.

-나도 모르겠다. 네가 인과율(因果律, Causality)을 너무 많이 바뀌어 버려서···, 온전한 건 프랑스뿐이잖아.

"그치! 하지만 어쩌겠어. 이미 다 바뀌어 버렸는데."

-음···, 이건 어떨까?

"무슨 좋은 생각 있어?"

-그냥 다 독립시켜버려.

"그러다 프랑스가 설치면?"

-칼 10세가 있잖아. 너만 따른다면서. 칼 10세가 견제하면 프랑스가 설치지 못할 거 아냐?

"오···, 그 방법이 있었군. 그럼 독립하고 싶으면 다 독립하라고 할게."

-유럽에 나라만 수백 개가 되는 건가?

"그치!"

보헤미안 형제단을 중심으로 뭉친 독립전쟁이 끝난 후.

신성로마제국을 구성했던 수많은 소국의 수장들이 비엔나에 모였다.

원래는 소양에서 연을 만나려고 했지만, 연이 유교 탈레반 사건으로 움직일 수 없다고 하자 비엔나에서 모임을 가진 거였다.

처음에는 이전처럼 독일, 이탈리아, 부르군트, 보헤미아 이렇게 4개의 왕국으로 나누려고 했다.

하지만 뜻하지 않은 반발이 거세었기에 연에게 조언을 요청했다.

연은 알아서 하라고 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사공이 많으면 배는 산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3백 개가 넘는 소공국들의 수장들.

대부분 공작 이상 귀족이었지만, 아닌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단 4개의 왕국으로 나누어지는 걸 반대했다.

단순히 생각해도 자신들의 입지가 너무 낮아지기 때문이었다.

용 꼬리보다는 뱀 대가리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은 인지상정.

협상은 결렬됐다.

원치 않았지만, 주사위는 연의 손에 쥐어졌다.

때문에 연은 역사를 잘 아는 문식이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런데 공식아. 틀림없이 제후국이 되겠다고 할 텐데 다 받아 줄 거야?

"남 밑에 들어가기 싫다고 저리 나라를 나눴는데 그럴까?"

-그럴 거야.

"받아들여야 하나?"

-당연히 받아들여야지. 그래야 그곳도 사람 사는 세상이 될 테니까.

"싫은데."

-싫으면 니 알아서 하고. 송 선생과 약속이 있어서 난 이만.

"좋겠다. 맘에 맞는 술친구 생겨서."

-너도 오던지. 난 언제든 환영이야.

결국 신성로마제국은 15개의 왕국으로 나누어졌다.

처음에는 100개가 넘는 나라가 독립을 원했다.

하지만 조선 때문에 나라 간의 무역이 활발해지자, 너무 작으면 외교조차 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야 한다고 뜻이 모였고, 최종적으로 15개 왕국이 선정됐다.

체코 왕국으로 이름을 바꾼 보헤미아는 발 빠르게 조선에 제후국을 신청했다.

'국왕 말고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조건에 부합(符合)하기에 신청은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다른 독립국들은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귀족들의 욕심이 문식이의 예상을 틀리게 만들었다.

자신의 지위를 내려놓기 싫었던 귀족들의 반대가 심했기에 다른 독립국들은 어정쩡한 상태로 머물고 있었다.

* * *

조선 제국력 3년(1661) 10월.

반도체 공장이 완공되고, 생산을 시작하면서 수많은 문제점에 봉착(逢着)했다.

하지만 천재급 연구원들의 도움으로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나가자 집적회로의 밀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20세기, 세계에서 가장 큰 반도체 제조사인 인텔의 창업자 고든 무어(Gordon Moore) 박사는 4년마다 반도체의 용량이 두 배가 된다고 했다.

하지만 변화의 속도는 무척이나 빨라서 4년이 아니라 18개월마다 두 배씩 용량이 늘어났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기간은 단축됐고, 용량은 몇 배씩 늘어났기에 무어의 3가지 법칙은 의미 없게 되었다.

은동리에 있는 반도체 연구소.

그곳에서는 1년 전만 해도 트랜지스터 수천 개로 이루어진 집적회로를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수만 개를 넘어 수십만 개에 도전하고 있었다.

반도체를 만드는 일은 전기, 전자, 물리, 화학뿐만 아니라 초정밀 가공기술이 반드시 필요한 종합 예술이기에 은동리 연구원들은 모두 동원되다시피 했다.

"고해상도 화상센서를 만드는 일은 화소 수를 늘려 공간 해상도를 높이는 일이다. 하지만 화소만 늘린다고 좋은 품질의 화상을 얻을 순 없다. 어떻게 하면 좋은 품질의 화상을 얻을 수 있을까? 누가 아는 이 없나?"

이때 논식이의 제자 중 한 명인 순명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연이 손짓을 하자.

"화소 간의 간섭현상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어떻게 할 수 있지?"

"웨이퍼 내부를 파낸 후 그 공간에 화소를 배치하여 집적도를 높이는 방법을 쓰면 됩니다."

"순명이 말이 맞다. 웨이퍼 표면을 가공할 때 순도 높은 불산 가스를 쓰면 높은 해상도를 가진 반도체 칩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린 아직 높은 순도를 가진 불산 가스를 만들지 못 하고 있다. 따라서 우린 다양한 방법을 연구하고 적용해야 한다."

순도 높은 잉곳을 이용해 만든 웨이퍼를 가공하는 방법은 습식과 건식 두 가지 방식이 있지만, 장단점이 있기에 두 가지 모두 연구하고 있었다.

원하는 부분만 빠르고 저렴하게 식각할 수 있는 습식 방법은 정확성이 떨어지고 웨이퍼에 오염 위험이 있다.

반면, 건식 방식은 비용이 많이 들고, 생산 속도가 떨어지지만, 미세 공정과 수율을 높일 수 있기에 함께 연구 중이다.

이처럼 반도체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연은 자주 강연회를 열었고, 그대마다 연구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연의 지도로 논식이가 제어용 반도체 칩을 만들어냈고, 연구원들은 그 유용성을 알았기에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한참 연이 연구원들과 질의 문답을 하고 있는데.

"전하! 급히 가보셔야겠습니다."

"응? 무슨 일이지?"

"한양에서···."

"알았다. 빨리 채비하거라."

"네, 전하."

연은 연구원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서둘러 한양으로 출발했다.

"무슨 일 때문에 사장님께서 저리 급히 가시는 거지?"

"몰라서 물어?"

"응. 무슨 일이야?"

"태자비께서 남산만 해지셨잖아."

"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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