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201화 (201/275)

201. 유교 탈레반(1)

로닌과 밀라드, 마한, 하미드는 어릴 때부터 이스파한에서 함께 자란 친한 친구 사이였다.

부유층이었던 이들은 세상 걱정 없이 나름대로 행복하게 살았다.

그런데 압바스 2세가 느닷없이 조선을 치겠다고 징집 명령을 내렸다.

다행히도 어렸기에 이들은 징집에서 빠질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선을 치겠다고 떠난 사파비 제국군은 허망하게 무너져 버렸다.

조선의 중요한 요새인 서맥을 거의 다 점령했다는 소문이 퍼졌을 땐 축제까지 열렸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전부 포로로 잡혔다는 소문이 다시 나돌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군이 쳐들어왔다.

압바스 2세는 제국민을 버리고 도망쳤지만, 광야에서 허망하게 유명(幽明)을 달리했다.

'이제 우린 노예가 되는 거야?'

'그러겠지. 제국이 망해버렸는데···.'

'그럼 우리 어떻게 해야 해?'

'별수 있나. 눈치 보다가 도망가야지.'

'어디로?'

'마슈하드에 우리 삼촌이 살고 있으니 그곳으로 가자.'

'그곳이라고 괜찮겠어?'

'그럴까?'

이제 막 몸 곳곳에서 털이 자라나기 시작한 12살 소년들.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할지 생각을 짜냈지만, 세상 물정 모르고 자란 소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노예가 되면 결혼이나 할 수 있을까?'

'할 수는 있겠지. 누구랑 하느냐가 문제지만···.'

'더는 너희들과 놀 수 없겠지?'

'같이 일할 수만 있어도 좋겠다.'

패전만 했다면 몰라도 망해버렸기에 소년들은 틀림없이 노예가 될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조선군은 일절 주민들의 삶에 관여하지 않았다.

되려 세금을 10년 동안 면제해 준다고 하지 않는가.

'로닌?'

'왜요? 아버지.'

'우리 사파비제국은 망해버렸다.'

'알고 있어요. 아버지.'

'너는 아직 어려서 괜찮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항상 조심하거라. 특히 긴 칼 찬 놈들을 조심하고.'

'치안대원들을 조심하라고요? 저보다 작은 사람도 있던데···?'

'작다고 무시하면 안 된다. 그들이야말로 정말 조심해야 한다.'

'조선군은 우리 주민들을 해치지 않는다고 했는데요?'

'그들은 조선인이 아니다. 50년 전 조선을 침략했다가 벌을 받아 망해버린 일본인들이다.'

'그래요?'

로닌의 아버지는 로닌에게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던 일부터 자세히 설명해줬다.

'이제 너도 알겠지만, 앞잡이들이 더 무섭다. 그러니 항상 조심하거라.'

'네, 아버지.'

로닌의 아버지는 무역상이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무굴제국과 교류하면서 큰돈을 벌었다.

그 후 로닌의 아버지는 가족을 이끌고 이스파한으로 이주해 왔다.

오래전부터 큰돈을 벌면 사파비제국의 수도인 이스파한에 정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로닌의 이스파한 생활은 처음부터 벽에 막혔다.

이스파한에서 쓰는 언어와 마슈하드에서 썼던 언어가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로닌이 마슈하드에서 썼던 언어는 파슈토어였는데 이스파한에서는 페르시아어 말고는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렸기에 말이 통하지 않아도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다.

그 친구들이 바로 밀라드, 마한, 하미드였다.

사파비제국이 망해버린 후.

조선군은 일본인들을 앞세워 빠르게 치안을 안정시켰다.

흙먼지가 풀풀 날리던 길을 돌처럼 단단하게 바꿔버렸다.

쇠로 된 긴 통을 이용해 도시 곳곳에서 물을 편하게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관공서를 세워 주민들을 등록하고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무상으로 나눠줬다.

초등학교를 지어 조선글과 조선말을 무료로 가르쳐줬다.

상인이었던 로닌의 아버지는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그는 즉시 로닌을 초등학교로 보냈다.

'앞으로 네가 잘살 수 있는 길은 조선말을 조선인보다 잘하는 것뿐이다. 그러니 딴짓하지 말고 조선말부터 배우거라.'

로닌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친구들은 함께 초등학교에 갔다.

그곳에는 아랫동네 빈민가에서 살던 아이들도 있었다.

'큭! 냄새. 미치겠네.'

'저런 노예 같은 애들이랑 같이 공부를 해야 해?'

'그럴 순 없지. 저렇게 지저분한 애들이랑 어떻게 같이 공부해.'

'저 애 좀 봐. 왼쪽 코에 고리가 달렸어.'

'뭐라고? 설마 노예는 아니겠지?'

'코에 고리를 달았으니 노예가 아니라도 시종이지 않겠어?'

친구들은 불만을 표했지만, 로닌은 그러지 않았다.

되려 로닌은 그런 친구들을 말렸다.

'너희들! 그런 말 하면 안 돼. 그런 말 하면 큰일 나.'

'왜?'

'조선은 황제 말고는 모두가 평등하데.'

로닌은 아버지에게 들은 조선에 관한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해주었다.

로닌은 조선말을 빠르게 익힐 수 있었다.

마슈하드에서 썼던 파슈토어와 조선말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파슈토어는 페르시아어와 가까운 말이었지만, 문법과 어순이 조선말처럼 주어-목적어-동사로 되어 있었다.

조선의 영토가 되어버린 이스파한에서 로닌의 초등학교 생활은 무척이나 즐거웠다.

처음엔 냄새난다고 근처에 오지도 못 하게 했던 빈민가 아이들과도 친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가면 맛있는 음식을 주었는데 집에서 먹는 것보다 배는 맛있었다.

'아침을 든든히 먹어야 하루를 버딜 수 있다'고 수시로 교장 선생님이 말씀하셔서 그런지 원하는 만큼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은 무척이나 특이했다.

조선말과 조선글, 사칙연산을 배우는 건 이해 할 수 있지만, 예절 교육은 힘들고 짜증 났다.

냄새나는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도 싫었는데 역할까지 바꿔 상대를 이해 해야 한다니.

맛있는 음식만 아니라면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 예절 교육은 정말 싫어요. 이런 교육을 받아서 어디 쓸 곳도 없을 것 같은데 왜 배우는지 모르겠어요.'

'알라께서 가장 훌륭한 사람은 정의롭고 평등한 사람이라고 하셨다. 그러니 예절 교육이야말로 알라의 말씀을 따르는 참된 교육이다.'

'하지만 말뿐이잖아요?'

'조선은 다르다. 그러니 딴생각하지 말고 학교에서 가르친 대로 따르도록 해라.'

답답함에 아버지에게 물어봤지만, 소용없었다.

눈치 빠른 아버지는 이미 조선 사람처럼 조선말이 유창했다.

그 덕분에 조선전력공사 분점에 취직할 수 있었고, 조선이라면 뭐든 좋게 봤다.

그러던 어느 날.

조선에서 새로운 예절 교육 선생님이 부임해 왔다.

풍채부터 남달랐던 선생님의 이름은 송시열이었다.

송시열의 가르침은 전과 달랐다.

책에 나온 대로 예절 교육을 진행했지만, 사이사이 옛 선인들의 말씀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설명했다.

'너와 나의 관계를 통해서 모든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 그게 바로 인(仁)이고, 인은 곧 사랑이다. 다시 말해 서로를 이해해야만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사랑을 한다면 모든 문제는 해결될 거다.'

송시열 선생님은 묻는 대로 자세히 가르쳐 주었기에 왜 역할을 바꿔 상대를 이해 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송시열 선생님이 오신 후 로닌의 학교생활은 더욱 즐거워졌다.

황제께서 학교에 목욕탕을 지어주셨고, 태자께서는 교복과 운동복, 속옷을 보내주셨기에 더는 냄새나는 아이들은 없었다.

모두가 깨끗한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녔기에 이젠 겉모습만 보고는 아이들의 집안 사정을 파악할 수 없었다.

게다가 빈민가 아이들도 잘 먹어서인지 전과 다르게 표정이 밝았다.

시비를 걸지도 않았고, 먼저 '안녕'이라고 인사도 했다.

로닌은 이 모든 게 송시열 선생님 덕분이라 생각했다.

로닌뿐만 아니었다.

어렵고 짜증 나고 지루하기만 했던 예절 교육이었지만, 송시열 선생님은 언제나 다정하게 가르쳐 주셨다.

'선생님께서는 항상 즐거워 보이십니다. 그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너희와 같은 인재를 가르칠 수 있다니 이보다 즐거운 일은 없을 것 같구나.'

조선에서 매우 유명한 학자였다는 송시열 선생님이 역적이었다는 말이 있지만, 아무리 봐도 그런 짓을 할 분은 아닌 것 같았다.

아무튼 아이들뿐만 아니라 이스파한에 사는 많은 주민들은 송시열 선생님을 따랐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칼로 백성을 위협하다니. 당장 그만두시오!'

'이자는 물건을 훔친 자입니다. 그러니 선생께서는 관여하지 마십시오.'

'그렇다고 칼로 때릴 필요는 없잖소. 저리 떨고 있는데.'

송시열은 산책을 나왔다가 일본인 치안대에게 칼등으로 얻어맞고 있는 주민을 보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피골이 상접한 모습을 보니 며칠은 굶은 것으로 보여서였다.

'이자는 무슨 잘못을 했기에 그리 혹하게 다루는 거요?'

'무전취식 후 도망을 쳤습니다.'

'아니, 왜?'

'거주증도 없는 자입니다. 그러니 선생께서는 볼일 보십시오.'

주민증이 아니라 거주증만 있어도 잘 곳과 먹을 것을 제공해주는 조선이다.

하지만 신분을 알 수 없는 사람은 무조건 체포 후, 죄가 없다면 추방하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조선 영토는 너무 넓었고, 모든 곳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도시 위주로 개발하고 있다.

도시만큼은 완벽하게 치안을 유지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곳곳에서 숨어 살던 사람들이 문제였다.

주민증과 거주증 등록이 끝난 후에 나타난 이들은 도시를 방황했고, 때로는 범죄를 저질렀다.

사파비제국에서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화려한 사치품을 좋아한다.

어디서나 여인들보다 더 화려하게 치장한 남자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반지를 주렁주렁 끼고 다녔고, 단검이나 망토에도 커다란 보석을 매달고 다녔다.

그래서인지 심심하면 강도 사건이 일어났다.

일본인으로 구성된 치안대는 수시로 일어나는 강도 사건 때문에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2등 백성이라 말하는 일본인들.

3등 백성으로 보는 사파비인들을 가혹하게 대했다.

사파비 지역의 총독으로 임명된 신수는 일본인 치안대원들이 그런 짓을 한다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체했다.

사파비인들의 모든 비난이 일본인들에게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송시열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내막을 알게 된 송시열은 사재(私財)를 털어 유학당을 지었다.

그곳에서 신분증이 없는 이들에게 조선말과 한글을 가르쳐 조선인이 될 수 있게 교육했다.

이때 따라나선 이들이 있었는데 로닌과 친구들이었다.

송시열의 가르침에 깊은 감명을 로닌과 친구들은 자진해서 유학당에 나가 송시열을 도왔다.

그러면서 점점 유학에 빠져들었다.

뜬구름 잡는 것 같은 꾸란보다는 명확한 뜻풀이까지 있는 유학이 왠지 모르게 더 끌렸다.

송시열은 태자 연에게 큰 감명을 받았다.

친구 따라 서원에 갔다가 역모죄를 뒤집어쓴 송시열은 변할 수밖에 없었다.

'근검하고 절약하라'는 성리학의 가르침보다 '소비가 미덕이다'는 태자의 말이 옳다는 것을 보고 느꼈기 때문이다.

송시열은 이황이 배척한 왕양명(王陽明)의 심학(心學)을 다시 살펴보고 분석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황권과 왕권 강화 수단으로 변질해버린 주자학이야말로 도덕적으로 엉망이라는 걸.

대신 사람의 욕구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생각하는 양명학에 빠져들었다.

'소비가 미덕이라는 태자께서 하신 말씀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욕구를 누르지 말고 당당하게 표출하라는 것과 같다.'

'인간의 욕구야말로 삶의 원동력이다.'

'욕망이 있기에 발전이 있다.'

송시열의 유학은 공리(功利)와 실용을 중시하는 원래 성리학으로 다시 돌아섰다.

오직 군주를 위해서만 뜻을 담았던 주자학을 배척하고 인간의 욕구와 욕망을 다스리는 양명학을 기본으로 삼았다.

송시열을 따르다가 송시열의 제자가 된 로닌.

이름처럼 체구는 작았지만, 야무지고 똑똑했다.

로닌은 자기처럼 송시열을 따르는 학생들을 모아 단체를 결성했다.

'앞으로 우리는 유학 탈레반이다.'

'탈레반? 무슨 뜻이야?'

'파슈토어로 학생이란 뜻인데, 유학 학생이라 부르는 것보다 유학 탈레반이 더 멋지잖아.'

'그러긴 하네. 말하기도 쉽고.'

자발적으로 모여 송시열이 만든 유학당에서 공부하던 학생들.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생각도 변해갔다.

'로닌, 우리가 공부하는 유학이 이슬람이나 불교보다 못하진 않잖아.'

'그치!'

'그래서 말인데 유학을 유교로 하면 어떨까?'

'응? 무슨 소리야? 유학을 종교로 만들자는 말이야?'

'맞아, 그래야 더 결속력이 있을 것 같아.'

로닌과 다르게 덩치가 큰 마한은 종교 때문에 자주 다투는 부모님을 보고 크게 실망했다.

오직 이슬람만 믿는 아버지.

조선에서 들어온 불교에 심취한 어머니.

서로 자신의 종교가 최고라고 우겼지만, 마한이 보기에는 그게 그거였다.

'우리가 배우는 건 성리학이란 학문이지 종교가 아니잖아?'

'공자를 모시면 그게 종교 아니야?'

'우린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는 거지 모시는 건 아니니 종굔 아니야.'

로닌이 반대했지만, 다른 친구들은 마한의 말에 동조했다.

어린 치기에 남과 다르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컸던 거였다.

이렇게 시작한 '유교 탈레반'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 갔다.

사파비에서 유교 탈레반이라 말하면 존경하기까지 했기에 그 영향력도 대단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 * *

"이게 송시열을 아파치 제국으로 보낸 것 때문에 생긴 일이라고?"

"네, 사장님. 송시열을 따르던 학생들이 송시열을 다시 보내달라고 시위하고 있다고 합니다."

"알았다. 일단 주시하고 있거라."

상황을 파악한 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탈레반인 줄 알고 놀랐잖아.'

탈레반이 학생을 뜻하는 파슈토어란 걸 알았기에 연은 안심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걸 어떻게 처리하지?'

석유만 아니라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사파비 지역이지만, 이젠 조선의 영토가 되었다.

그랬기에 그곳에 사는 조선 백성들이 원하는 것을 어찌 처리해야 할지 연은 고민에 빠졌다.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