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200화 (200/275)

200. 하와이(2)

"멈춰라! 일식아!"

너무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지만, 연은 상황을 파악하고 목청이 터져라 외쳤다.

이대로 두다가는 원주민들과 전쟁을 치러야만 했기에 급히 몸을 움직여 일식이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대원들은 방패를 열어주지 않았다.

마음이 급한 연은 방패를 주먹으로 내리치며 빠져나가려 했다.

그러나 대원들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다시 한번 소리쳐 말리려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일식이는 찔러 들어오는 죽창들을 단칼에 베어 버리고 공격하던 원주민들을 썰어버렸다.

그러자 놀란 원주민들.

도망가는 자가 있었지만, 대부분 땅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는 게 아닌가.

땅에 엎드린 원주민들을 향해 수인검을 높이 쳐든 일식이.

하나, 더는 움직일 수 없었다.

어느새 검수의 칼이 일식이의 목젖을 지그시 누르고 있었다.

"됐다. 물러나거라."

연의 말에 검수는 칼을 거두고 연 옆으로 물러났다.

"왜 이랬느냐?"

"이놈들이 감히 전하께···."

"알았다. 알았어. 그러니 잠시 물러나 있거라."

"네, 전하."

연은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선 듯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멀리 떨어진 숲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이곳저곳에서.

검수는 재빠르게 연의 앞을 막고 다시 칼을 꺼내 들었다.

상륙함들은 긴급 기동으로 숲을 가로막았다.

하나둘씩 나타나는 원주민들.

그들은 들고 있던 조잡한 무기를 내려놓고 그대로 땅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예상했던 것과 다른 상황이 벌어지자 연은 손바닥을 펴 높이 들었다.

"모두 멈춰라! 보아하니 공격할 뜻이 없어 보인다."

"""멸!"""

연의 명령은 절대적이라 대원들은 총구를 내렸지만, 긴장은 풀지 않았다.

적막이 흐르는 가운데 신선한 바닷바람이 지나갔다.

그러자 땅에 엎드린 자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더니 그대로 일어났다.

하얀 손바닥과 회오리 문양을 구릿빛 피부에 잔득 그려 놓은 이였다.

커다랗게 떠진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글썽거리는 눈으로 한 걸음씩 다가오는 원주민.

일식이 앞으로 다가갔다.

"일식아, 흥분하지 말고 그냥 있거라. 너에게 뭔가 있어 그러는 것 같으니."

"네, 전하."

원주민은 떨리는 손을 내밀더니 일식이의 왼쪽 가슴에 깊이 새겨진 상처를 쓰다듬었다.

그러면서 '마칼리'란 말을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 * *

연이 태평양 한가운데에서 제주도보다 훨씬 큰 섬들을 발견했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아직도 박람회 출품작이 화제의 중심이었다.

그런데 낙원 같은 거대한 섬을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 발견했다고 하자 화제의 중심은 새로 발견된 섬들로 옮겨갔다.

"거···, 날씨가 그렇게 좋다고 하던데 참말일까?"

"허허! 이 사람 좀 보소. 감히 태자께서 발견하셨다는데 의문을 품다니. 아무래도···?"

"아무래도 뭐?"

"아니, 그렇다고."

"어릴 때부터 나랑 함께 지내왔는데 뭔 소릴 하려고? 설마 중원의 속옷···?"

"흠흠···. 아직도 싸다고 입고 있는 건 아니지?"

"크흠···. 이젠 그러지 않아."

다른 건 몰라도 면제품은 중원에서 수입한 것이 아주 쌌다.

아직 입고 다니는 옷으로 신분을 표현하는 세상이라 사람들은 옷에 신경을 쓰고 살았다.

하지만 속옷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옷은 저렴한 중원산을 애용했다.

조선의 면제품처럼 하얗진 않았지만, 순면으로 된 속옷이라 착용감이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돈도 많이 벌면서 좀 쓰고 살지 그래?"

"이번에 사발이만 사면 그럴 생각이야."

"그런 거였어?"

"미안해. 꼭 갖고 싶었거든. 앞으론 술은 내가 살 터이니 너무 그러지 말게."

"말을 하지 그랬어? 난 내 친한 동무가 구두쇠가 될 줄 알고···."

"왜 관계를 끊으려고 했어?"

"크흠···, 좀 그랬지."

일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는 조선이지만, 자기 돈을 쓰지 않고 얻어먹기만 하는 얌체 같은 구두쇠가 있었다.

어딜 가도 그런 자들은 꼭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그런 자들이 설 자리가 없었다.

'소비가 미덕이다'며 라디오와 신문에서 소비를 홍보하고 있다.

또한 '사치와 소비는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며 무분별한 소비는 자제하라는 조언도 같이했다.

하지만 이를 곡해해 자기 돈은 일절 쓰지 않고 얻어먹기만 한 자들이 있었다.

고가의 사치품을 사려고 돈을 모으는 행위였지만, 사람들은 뭐라 하지 않았다.

단지 그런 자들과 놀지 않고 배척했을 뿐.

"그나저나 축하해. 사발이를 사면 나 좀 태워줘."

"당연하지."

"근데, 주차는 조심해야 하는 거 알지?"

"무슨 일 있었어?"

주변을 쓱 살피던 이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거, 있잖아?"

"뭐가?"

"제물포 이야기 몰라?"

"무슨 일 있었어?"

"시장이 주차 개판으로 했다가 탄광으로 끌려갔잖아."

"아···, 그거. 그 시장이 제물포 시장이었어?"

삼발이에 이어 출시된 사발이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럴 만도 한 게 삼발이의 속도는 제아무리 손을 봐도 시속 50km가 넘지 못했다.

또한 급회전을 하면 뒤집히기도 했다.

그와 달리 사발이는 시속 80km까지 속도를 낼 수 있었고, 급회전 시에도 안전했다.

제물포 시장 김판술도 그동안 타고 다녔던 삼발이를 팔고 사발이를 구입했다.

거기에 차 구입비 만큼 돈을 들여 화려하게 꾸몄다.

그래서였는지 시청 앞 주차장에 자신의 차를 대각선으로 세워 놓고 다른 차가 근처에 주차하지 못하도록 주차 방지판까지 설치해 놓았다.

하지만 그 짓은 오래가지 못했다.

급한 일로 시청에 온 백성이 주차 방지판을 치우고 그곳에 차를 세워 버렸는데 그 일이 커져 버렸다.

지역 상인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시청으로 돌아온 김판술이 그 차를 그냥 두지 않고 견인시켜 버렸다.

평소 같으면 아무 문제 없이 지나갈 일이었다.

감히 제물포 시장에게 따질 만한 지역 백성은 없었다.

하지만 차를 견인 당한 백성이 문제였다.

해경에서 저격수 중의 저격수로 통하는 포삼이에게 좋아하는 여인이 생겼다.

그 여인은 제물포 시청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었다.

남역 일대를 순찰하고 오는 길에 포삼이는 홍콩에서 옥으로 된 노리개를 돈을 탈탈 털어 사 가지고 왔다.

그걸 전해 주려고 제물포 시청에 들렀는데 차가 견인 당해버린 거였다.

차 안에는 포삼이에게 긴급 연락할 수 있는 무전기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연락이 닿지 않자 해경에서 난리가 났다.

즉시 긴급 명령이 떨어지고 해경 대원들은 포삼이를 찾아다녔다.

포삼이가 누군가.

1개 사단 병력과도 바뀌지 않는다는 저격수 중의 최고 저격수 아닌가.

게다가 그의 누나는 조서원의 수장인 은진이다.

포삼이가 하선한 제물포항부터 수색에 들어간 대원들.

불법 주차 견인 보관소에서 포삼이의 차를 발견하고 역으로 추적에 들어갔다.

"아니! 아자비가 무슨 권한으로 제 차를 견인시켜요?"

"어허! 아자비라니! 이분은 이곳 제물포 시의 시장님이시네. 그러니 말을 조심하게나."

"아자비에게 아자비라고 하는데 그게 잘못됐습니까?"

"크흠,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한 도시의 장 아니신가?"

"장이면 남의 차를 함부로 견인시켜도 되는 겁니까?"

"자네가 불법으로 주차해 놓았기 때문 아닌가?"

"불법이라고요? 불법은 이 시장 아자비가 한 거죠!"

은동리는 물론 옹진반도에서 포삼이를 모르는 이가 없었다.

포삼이는 호랑이가 없는 옹진반도에서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말썽꾸러기, 사고뭉치였기에 악명이 드높았다.

그랬던 포삼이가 해경에 입대한 후 해경 최고의 저격수로 인정받고 있었다.

하지만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자신의 차가 견인 당하자 포삼이는 제물포 시청 앞 주차장에서 깽판을 치고 있었다.

마음에 둔 여인이 말렸지만, 한번 발동한 포삼이의 꼴통 기질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결국 경찰이 출동했다.

그런데 포삼이를 찾아다니던 해경 대원들 또한 제물포 시청 앞에 당도했다.

"이자를 당장 연행해가게."

김판술이 경찰에게 말했지만.

"이 아자비 좀 보게.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연행해!"

수많은 경찰들이 달려들었지만, 흔들리는 배 위에서도 돛에서 돛으로 뛰어다니던 포삼이를 잡을 순 없었다.

차들 사이로 이리저리 도망치는 포삼이.

그를 본 대원들이 동시에 소리쳤다.

"""특경님!"""

"뭐하십니까? 함장님이 찾고 계시는데!"

아직도 경비대에서 일반 대원들은 계급이 없다.

하지만 포삼이 같은 핵심 대원은 '특경'이라 칭하고 있었다.

'특별한 경비대원'을 뜻하는 특경이란 말에 김판술과 그를 따르던 상인들은 기겁했다.

"자네, 특경이었나? 진작 말하지 그랬어!"

엄청난 공을 세운 대원이라도 정식으로 공훈을 인정받고 훈장을 받아야만 된다는 특경대원은 모든 젊은이들의 우상 아닌가.

"언제 물어보기나 했습니까?"

그 일이 있고 난 뒤 김판술은 정식으로 조사를 받았고, 지역 상인들과 야합하여 비리를 저지른 정황까지 포착되자 바로 탄광으로 직행했다.

전 재산 또한 모두 압수됐다.

조선의 법은 살인보다 사기에 더 엄격했다.

그랬기에 김판술은 비리로 얻은 재산은 물론 본인 명으로 된 모든 것을 압수당했다.

명문 양반가에서 태어난 김판술이지만, 소용이 없었다.

죄를 범하면 황족도 탄광으로 끌려가는 세상 아닌가.

'사기란 상대를 기만해서 이득을 얻는 행위이다. 피고 김판술은 백성을 상대로 사기를 쳤다. 개인 간 사기를 쳐도 중벌을 받는데 감히 백성을 상대로 사기를 치다니, 이 죄는 절대 용서해서는 안 된다.'

재판장의 단호한 판결에 김판술과 함께 비리를 저질렀던 상인들 또한 모두 탄광으로 끌려갔다.

새로 구입한 차를 너무 아낀 나머지 김판술은 패가망신했고, 이 소식은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한양과 평양 같은 대도시에 국한된 일이지만, 차가 많아지자 주차 문제가 대두됐다.

연은 도시를 개발하면서 미래에 발생할 주차 문제까지 염두에 두었다.

관청 앞과 뒤에 넓은 공터를 두고 누구나 주차를 할 수 있게 장소를 마련해 놓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주로 관청 앞에 차를 주차했다.

관청 뒤에 주차해도 되지만, 많이 걸어야 했고, 과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지상 낙원 같다는 하와이제도 발견 소식에 조선 전역이 떠들썩했다.

1년 12달 여름인데도 습도가 높지 않아 쾌적하고 수십 미터나 되는 바닷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는 말에 여유가 있는 백성들은 관심을 보였다.

* * *

"그러니까 일식이 네 가슴에 난 이 상처를 보고 원주민들이 저런 반응을 보인다는 말이지?"

"네, 삼촌. 정확히는 이 빨간 점 때문입니다. 이 점이 바닷길을 안내하는 붉은 별과 닮았다고 합니다."

"그래?"

"네, 삼촌. 그래서 그들이 오해하고 저를 따르는 겁니다."

고대 하와이 전설에 따르면 처음으로 하와이를 발견하고 정착한 사람은 '하와이로아'였다.

우연히 하와이를 발견한 하와이로아는 자식들의 이름을 따서 섬을 불렀다.

어부였던 하와이로아는 항해술도 뛰어났는데, 종종 큰 카누를 타고 바다를 배회하곤 했다.

이때 방향의 지표로 삼은 별이 있었다.

그 별은 염소자리의 무릎에 있는 붉은 별이었다.

말이 잘 통하지 않기에 어찌 된 일인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원주민들은 자신들과 복장이 비슷한 일식이를 보고 붉은 별을 따라 항해했던 '마칼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카누를 호쿠 히키나 키우 오 나 마칼리.'

'후누이 아 마칼리아!'

원주민들이 춤을 추며 외치는 말은 '마칼리를 따라 땅을 발견하러 떠난 마칼리이 무리들'에게 축복을 주라는 뜻이었다.

"이거 참! 어찌하겠느냐? 이곳에 남아 이들과 함께하겠느냐?"

"그래도 되겠습니까?"

"한 달이면 충분하겠지?"

"넉넉합니다."

"좋다. 그럼 한 달 기한을 줄 터이니 이곳을 정리하도록 해라."

"명 받들겠습니다."

뜻하지 않게 하와이제도를 발견한 연은 그곳을 조선의 영토로 확정했다.

사람들이 살고 있었지만, 나라나 왕은 없었다.

수백 명 단위 모여 원시 부족 형태로 삶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또한 나름대로 그들만의 전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연은 이번 기회에 일식이를 따르는 부족을 앞세워 하와이를 통합하기로 했다.

매일 같이 잡혀 들어오는 원주민 포로들.

연은 그들을 이용해 진주만에 항만시설과 요새를 짓도록 했다.

처음에는 반항했지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자, 시키지 않은 일까지 자처해서 하는 원주민 포로들.

그중에는 인육을 먹는 습관을 버리지 못한 자도 있었지만, 일식이의 힘과 무력을 보고 식인 습관을 버렸다.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으면 나와 같이 강인한 힘을 낼 수 없고 약해져 죽는다.'

이야기로 전해 내려온 전설의 항해사 마칼리의 화신이라 생각한 일식이의 말이었기에 원주민들은 의심하지 않고 따랐다.

일식이 덕분에 하와이를 날름 삼킨 연이 한양으로 돌아온 날은 그로부터 석 달이나 지난 후였다.

상상 이상으로 원주민들의 항해술은 뛰어났다.

카누를 타고 노를 저어서 남쪽으로 4,400km나 떨어져 있는 타히티섬까지 이동할 수 있었다.

원주민의 안내로 타히티섬까지 접수한 후에 연은 은동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연을 반긴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뭐라고? 유교 탈레반들이 시위를 한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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