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198화 (198/275)

198. 유럽 분열

유럽 반도에 봄이 찾아왔다.

대항해 시대를 열었던 이베리아반도의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몰락하면서 내란이 일어났다.

보헤미안 형제단을 중심으로 보헤미아, 모라비아, 슐레지엔, 루지체, 브라반트 공국에서 독립을 원하며 무장 봉기했다.

신성로마제국의 종교적 탄압으로 억압과 착취와 수탈에서 시달리던 사람들이 견디지 못하고 들고일어난 거였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페르디난트 3세는 불안함을 느꼈는지 오스만제국과 휴전을 원했다.

하지만 오스만제국은 답이 없었다.

전쟁을 지속하고 싶었지만, 오스만제국 또한 내부사정이 좋지 않았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망설이고 있었다.

달조차 뜨지 않은 어두운 밤.

바벨성 동쪽 소양강 변에 조그만 나룻배가 정박했다.

"꼼짝 마! 손들어!"

"야간 간식을 가지고 왔습니다."

"생맥주는?"

"체코가 최고죠."

강변을 지키던 대원들은 나룻배를 향해 겨냥하고 있던 총구를 내려놓았다.

"어서 오시오.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번 무장봉기의 수장인 보헤미안 형제단의 단장 안톤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곤 대원을 따라 바벨성 안으로 들어갔다.

연이 왔다는 소식에 소양을 방문한 안톤은 걸음을 옮기는 도중 섬뜩섬뜩 놀랐다.

회랑을 따라 이동하는데 어둡고 컴컴한 통로에 자동을 불이 들어오는 것 아닌가.

연은 논식이와 합심해서 제어용 IC칩을 만들었다.

수천 개나 되는 트랜지스터를 조합해 만든 IC칩은 입력 신호를 감지하면 논리에 따라 출력 신호를 내보낸다.

아직 열 감지 센서를 만들지 못했기에 발광다이오드와 포토트랜지스터로 접근 감지기를 만들었는데 그런대로 쓸만했다.

"이건 무슨 기물입니까? 자동으로 불이 켜지다니. 혹시 누가 보고 있다가 켜는 건 아닙니까?"

"그건 아닙니다. 사람이 접근하면 자동으로 감지하고 불을 밝히는 겁니다."

"세상에···!"

박람회를 계기로 한양과 평양을 보고 온 안톤이지만, 사람을 자동으로 감지한다는 새로운 기물은 놀랍기만 했다.

아무리 둘러봐도 기물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동으로 전구가 켜지며 환하게 통로를 밝히자 벌어진 입은 닫히지 않았다.

대원은 가볍게 피식 웃으며 계단 위를 가리켰다.

"위로 올라가시면 됩니다."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벨성에서 가장 높은 망루.

그곳에서 소양시를 내려다보고 있던 연은 안톤이 오자 반갑게 맞아 주었다.

"오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아닙니다. 전하. 지원해 주신 것만 해도 갚을 길이 없는데, 이곳까지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연은 뜨거운 차를 안톤에게 권하면서 물었다.

"그런데 밀떡 폭탄이 필요하다고요?"

"네, 전하. 조선에서는 산을 뚫을 때 쓰는 폭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 폭탄을 지원해 주셨으면 합니다."

"어디에 쓰려고 합니까?"

"놈들을 쓸어 버릴 생각입니다."

"그래요?"

안톤은 가지고 온 지도를 펴 보여주며 설명했다.

"여기 브르노(Brno)에서 집결한 후 비엔나로 진격할 계획입니다."

"그래요? 음···, 이곳 미쿨로프(Mikulov)에서 결판이 나겠군요."

"맞습니다. 전하. 그래서 폭탄이 필요합니다."

브르노와 비엔나의 중간인 미쿨로프 주변은 평지였다.

"기병 때문에 그러는 겁니까?"

"네, 전하. 놈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주변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산이 있다고 하지만 작은 구릉 정도이기에 기병이 날뛰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알겠소. 하지만 밀떡 폭탄은 반출 금지 품목입니다."

"전하! 제발···, 대포로는 기병을 막을 수 없습니다."

"흠···."

청나라와 첫 접전에서 엄청난 활약을 했던 밀떡 폭탄이지만, 지금은 토목 공사장이나 광산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위력이 너무 강했기에 민수용 밀떡 폭탄은 폭발력을 낮춘 제품만 공급하고 있다.

그렇다 해도 사람을 죽이는 데 충분한 폭발력을 가지고 있기에 선뜻 줄 순 없었다.

유출되어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 있으니.

하지만 이번 독립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대전을 앞두고 있기에 모른 체할 수도 없으니.

"약조해 주세요. 폭탄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제 명예를 걸고 약속하겠습니다. 전하."

"좋아요. 밀떡 폭탄 천 개를 줄 터이니 꼭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전하."

안톤이 떠나자 민삼이가 물었다.

"전하, 아무리 조선을 따른다고 하지만 저 자를 믿을 수 있습니까?"

"믿지 않을 수도 없지 않으냐?

"그러긴 하지만···."

"걱정 말거라. 천 개 정도면 한 번에 모두 소비해야 할 거야.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안톤은 밀떡 폭탄을 전부 기병을 상대로 사용하겠다고 했지만, 전투가 벌어지면 어찌 될지 알 수 없다.

신성로마제국군보다 3배나 많은 10만 명이나 되는 무장봉기 세력이 있지만, 전쟁을 경험해 본 적 없는 농노가 대부분이기에 기병을 상대할 순 없어 보였다.

"밀떡 폭탄을 전부 쓰지 않고서는 이번 전쟁에서 이기기 힘들 거야. 지금까지 지원해 줬는데 여기서 무너지면 아쉽지 않겠느냐?"

"그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바로 밀떡 폭탄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알프레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와 젤리그나이트를 팔아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지만, 연은 그리하지 않았다.

다른 제품으로도 돈은 넘치도록 벌고 있었기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신성로마제국을 무너트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에 밀떡 폭탄을 보헤미안 형제단에게 주기로 했다.

* * *

한 달 후.

벌어진 대 접전.

한때 10만 대군을 모아 십자군 원정을 시도했던 신성로마제국은 병력의 약세를 기병으로 돌파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화살에 매달린 밀떡 폭탄이 터지면서 놀란 말들이 날뛰는 통에 대열이 무너져 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총병까지 진격 도중 땅속에 설치해 놓은 밀떡 폭탄이 터지자 놀라 도망쳤다.

농사 말고는 할 것이 없는 작은 마을 미쿨로프.

그곳을 중심으로 벌어진 독립전쟁.

보헤미안 형제단을 중심으로 모인 독립군이 대승을 거뒀다는 소식은 멀리 오스만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빠르게 퍼져나갔다.

하지만 오스만제국군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 또한 각지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보헤미안 형제단의 무장봉기 계획을 들은 연이 미리 손을 써 놓았기 때문이다.

초창기 오스만제국군은 유목민들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튀르크족 출신의 유목민들은 대부분 경기병이었기에 공성전을 할 수 없었다.

니케아와 니코메디아를 함락하는 데에만 무려 30년 가까이 걸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래서 '새로운 군대'를 뜻하는 예니체리를 창설했다.

처음 예니체리는 전쟁 포로나 노예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오스만제국의 점령지가 늘어나자 기독교 가정의 아이들을 납치해 강제로 예니체리로 만들었다.

납치당한 소년들은 명목상 '술탄의 노예'가 되었고, 궁술을 비롯한 각종 무기를 능숙하게 다루도록 훈련과 교육을 받았다.

이처럼 예니체리는 전쟁을 위한 군인으로 육성되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변질해버렸다.

머리만 좋다면 기술자나 예술가, 관료가 될 수 있었다.

어릴 때 살았던 고향에서 총독으로 부임할 수도 있었다.

결혼까지 할 수 있게 된 예니체리는 세습되었고, 기득권이 되었다.

기득권이 된 예니체리의 만행을 볼 수 없었던 오스만 2세가 개혁을 시도하려 했지만, 되려 예니체리들은 오스만 2세를 죽여버렸다.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오스만제국 내정까지 간섭하는 강력한 정치집단으로 변신해 버렸다.

하지만 부패한 예니체리는 오합지졸로 변해갔다.

1621년 폴란드 호틴에서 12만 명이나 되는 대군을 가지고도 승리하지 못했다.

술탄의 노예로서 술탄의 적들에게 공포를 안겨주었던 예니체리.

이젠 술탄에게 공포를 안겨주는 존재가 되었다.

조서원의 수장인 은진이는 바로 이점을 파고들었다.

'신성로마제국과 전쟁은 종교전쟁입니다.'

'종교전쟁은 모두가 죽지 않으면 끝나지 않습니다.'

'이겨봐야 득이 없습니다.'

'결국 우리 같은 예니체리만 죽어 나갈 겁니다.'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데 쥐꼬리만큼 받으면서 충성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막대한 황금을 뿌리면서 꾹꾹 질러 된 결과 예니체리 병사들은 반란을 일으켰다.

오직 콘스탄티노폴리스 주변만 방비하는 베이릭(Beylikler) 예니체리.

술탄의 호위병 겸 정원사인 아제미 오을란(Acemi Oğlan) 예니체리 훈련병들은 나서지 않았다.

하지만 봉급을 받고 싸우는 상비군 성격의 제마아트(Cemaat) 예니체리가 낮은 봉급에 불만을 품고 반란의 선봉에 섰다.

그러니 신성로마제국이 무너져가는데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이처럼 유럽을 동서로 양분하다시피 한 신성로마제국과 오스만제국이 망해가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조선과 거래로 부를 쌓고 있는 유럽 상인들.

조선 제국 박람회에서 사 온 기물들을 팔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것 보십시오. 여기 아라비아 숫자로 시간이 표시되지 않습니까?"

"이 숫자가 시간을 나타낸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저 해를 보십시오. 점점 기울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이 4시니까···? 맞구나. 맞아. 정말 신기하구나. 그런데 가격이 얼마라고?"

"얼마 안 합니다. 조선 돈으로 20원은 받아야 하는데 남작님께는 특별히 반값인 10원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10원? 몇 개나 있느냐?"

"제가 가긴 건 여기 있는 5개가 전부입니다."

"내 모두 사도록 하겠다."

조선에선 한 달에 1원을 버는 고소득자가 많았지만, 유럽은 아니었다.

아직도 농경 사회에 머무르고 있는 유럽에서는 1년에 1전조차 버는 사람도 드물었다.

조선에서 2원에 사 온 전자시계를 5배인 10원에 파는데도 남작은 50원이나 되는 큰돈을 선뜻 내놓았다.

아무리 봐도 신기했기에 가보로 남겨줘도 될 듯싶었던 거다.

하지만 남작은 몰랐다.

전자제품은 시간이 지날수록 값이 팍팍 떨어진다는 것을.

죽기 전에 사야 가장 싸다는 것을.

* * *

보헤미안 형제단이 이끄는 독립군이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인 비엔나를 점령했다는 소식을 들은 연은 한양으로 돌아왔다.

소양에 있어 봐야 독립운동을 뒤에서 지원했다는 의심을 살 수 있기에 소식을 듣자마자 바로 출발했다.

하지만 오래 있지 못했다.

"일식이가 상의할 게 있다고?"

-그래 너를 만나 묻고 싶은 게 있다더라."

"그래? 뭘 알고 싶은데?"

-일단 와봐. 참 가양주는 많이 가져와야 한다."

문식이와 통화를 끝낸 연은 다시 태자비에게 양해를 구해야 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태자비가 말했지만, 21세기 한국 남자였던 연은 그럴 수가 없었다.

'어떻게 얻은 인연인데 잘해야지.'

연은 유일하게 터놓고 말할 수 있는 문식이를 만나 한잔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젠 '신역'이라 부르는 아파치 왕국을 가고 싶었다.

하지만 21세기 한국 남자의 사고방식이 그대로 남아있는 연은 태자비에게 그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줬다.

"신역은 아파치 왕국의 영토이지만, 전부는 아니오. 신역 북쪽은 우리 조선이 가지기로 했소. 그러니 가서 살펴봐야 하오. 미안하오."

"아닙니다. 전하. 조선 백성들을 위해 영토를 넓히시는 일인데 어여 가십시오. 저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자주 홀로 있게 만들어 미안한 연은 태자비와 뜨거운 밤을 보낸 후 아파치 왕국으로 출발했다.

* * *

일 년 만에 다시 밟게 된 서울은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왕궁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도로 공사가 한창이었다.

북쪽, 도시 끝에는 발전소 건설이 진행되고 있었다.

일식시(베라크루즈)까지 가는 길도 도로와 철도 공사로 인해 북적였다.

"좀 기다려봐. 네가 온다고 일식시로 마중 나갔다 다시 돌아오고 있다고 하네."

"미리 말해 줄 것 그랬나 봐."

"아냐, 덕분에 너와 단둘이서 이렇게 한잔할 수 있잖아."

연은 대서양을 건너면서 멀미로 고생한 적이 있었다.

전에 태평양을 건너 돌아갈 때, 생각보다 태평양이 잔잔했기에 이번에는 태평양을 건너왔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말이 별로 없는 놈이라···."

"그래도 대충은 알 거 아니야?"

문식이는 연이 가져온 가양주를 들이기더니 '카'하고 소리를 내뱉었다.

"신경 쓰이나 봐."

"뭐가?"

"네가 말한 야코프란 자! 아파치 대륙에 있다는 거 맞아?"

"응?"

갑자기 문식이의 입에서 튀어나온 야코프란 이름.

연은 깜짝 놀랐다.

"야코프를 일식이가 알아?"

"내가 말해줬거든."

"뭐라고 했는데 일식이가 야코프에 관심이 있지?"

"뭐 별말은 안 했어. 네가 그자를 찾고 있다고만 했지."

"정말?"

연의 되물음에 다시 술잔을 넘긴 문식이.

머리를 끄적거리더니 씩 하고 웃었다.

"너에게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놈이라고 했지."

"이런!"

문식이만큼 고생하진 않았지만, 일식이도 참 고생을 많이 했다.

어릴 때부터 무기를 들고 싸웠던 일식이는 노력 끝에 최고의 전사가 되었고, 이젠 아파치 왕국군 사령관이 되었다.

고생한 만큼 애착이 간다고 일식이는 아버지와 함께 세운 아파치 왕국을 끔찍이도 사랑했다.

그런데 세상에 대적할 세력이 없다는 조선군의 수장인 연에게 대항할 수 있는 자가 있다는 말을 듣더니 혼자만의 고민에 빠졌다.

"너에게 대항할 정도면 위험하다고 생각했나 봐."

"그래 봤자지. 그래서 어떡하겠다는데?"

"남쪽은 정리됐고, 남은 것은 카리브해에 숨어 있는 해적들인데···. 놈들이야 그냥 둬도 사라질 거고, 그래서 북쪽으로 가보겠다고 하네."

"뭐?"

"너희가 빨리 움직였어야지. 아직 애팔래치아산맥도 넘지 않았다며?"

"그거야···!"

"알아, 안다고. 하지만 위험한 놈이라며?"

연은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인디언들을 살리려고 했지만, 할 수 없었다.

생각보다 북미에 사는 인디언들은 호전적이었다.

천연두 예방 접종은 알려줄 수도 없었고, 거래조차 아직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동부 해안을 따라 도시를 건설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섣불리 다가가 봐야 좋을 게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식이가 찾겠다고 한 거야?"

"응."

"이런···."

일식이를 만나 직접 말을 들어봐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겠지만, 단순히 판단해도 위험한 일이었다.

"보낼 거야?"

"간다는 데 보내야지."

"세자인데 보낸다고?"

"자식은 많잖아."

자식이 너무나 많은 문식이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겠지만, 연은 한숨이 나왔다.

저 넓은 북미 대륙에서 야코프를 찾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었는데, 일식이가 나선다고 하자 걱정이 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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