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197화 (197/275)

197. 범죄와의 전쟁(2)

대부분 박람회란 말을 처음 들어 봤지만, 이젠 박람회가 뭔지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라디오와 신문에서 매일 특집 기사를 내보내고 있기에 알고 싶지 않아도 알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모두에게 개방된 조선 제국 박람회.

새로운 관심사는 자수정 시계 경매였다.

"어이, 정 씨 같이 가자고."

"왜, 술 한잔하게?"

"당연한 것 아닌가? 저 아래 새로 생긴 생맥줏집이 있던데, 어때 시원하게 한잔하고 가세."

간단한 수준이지만 전자 제어회로에 이어 산소 센서까지 개발되자 기차 엔진뿐만 아니라 자동차 엔진까지 성능이 향상되고 있었다.

엔진 배기구에 설치하는 산소 센서.

백금을 이용하여 전압 또는 저항값을 측정해 배기가스에 포함된 산소 농도를 알아낼 수 있다.

배기가스에 산소가 많으면 불완전 연소다.

따라서 연료 공급을 줄이거나 공기 흡입량을 늘려야 한다.

또한 산소가 희박하면 완전 연소 되고 있다는 말이기에 추가로 가속 발판을 밟지 않는 한 연료 공급을 더 할 필요가 없다.

아무튼 이로 인해 동서역 간 이동 시간이 대폭 단축됐다.

그래서인지 보헤미아에서 만든 생맥주가 이젠 동역에서도 쉽게 맛볼 수 있게 됐다.

특히 이번 박람회에 출품되면서 체코 생맥주의 인기는 더욱 높아져 갔다.

매콤한 양념통닭을 곁들여 마시는 시원한 생맥주의 맛은 텁텁한 탁주만 즐겨 마셨던 동역의 조선인들에게 새로운 음주문화를 알려줬다.

"뭐 사준다면야 내 동참하지."

"좋아! 그럼 내가 생맥주를 살 터이니 자네가 통닭을 사게. 그 집 양념통닭 맛이 일품이라고 하네."

"살려면 확실히 하지 그게 뭔가?"

"미안하네. 내가 요즘 돈이 바닥났네."

정 씨는 같은 공장에 다니는 양 씨와 둘도 없는 술친구 사이였다.

그런데 1년 전부터 양 씨가 술을 끊었다.

이유는 사발이를 사기 위해 돈을 모아야 한다는 거였다.

"설마···?"

"낼 사러 갈 거네. 어때? 같이 갈까?"

"뭐, 통닭까지 산다면 내 따라가 주지."

"그러지 뭐. 어서 가세."

'보헤미안 형제들'이라 써진 생맥줏집의 문을 열고 들어선 두 사람.

실내에 가득한 바글바글한 손님들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생긴 지 얼마나 됐다고 이리 손님들이 많지?"

"그만큼 맛있기 때문이지 않겠나. 아쉽지만, 그냥 탁주나 한잔하고 가세."

그런데 돌아서는 두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 여기! 이리 와서 같이 한잔해요!"

먼저와 자리를 잡고 있던 이는 새로 들어온 신입 직원이었다.

"선배님들도 생맥주에 통닭을 좋아하십니까?"

"그러는 김 씨는 어찌 알고?"

"제가 조선군으로 3년 동안 복무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서역에 있었습니다."

"아···, 그래서 생맥주 맛을 잘 아는군."

"그랬구먼, 어쩐지 모르는 게 없더라니."

들어온 지 얼마되 지 않았지만, 젊은 김 씨는 인기가 많았다.

병사 출신이라 그런지 몸이 좋아 축구를 잘했고 아는 것도 많아서였다.

"저보다 연배도 높으신데 밖에서는 형님으로 부르겠습니다."

"무슨! 그냥 형이라 하게."

"그래도 되겠습니까?"

"뭐 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 아닌가?"

아직도 친족끼리는 손윗사람을 '언니'라 부르지만, 아는 사이라면 사회적 호칭인 '형'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라디오 연속극에서 그리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근데, 형들 아세요?"

"뭘 말인가?"

"어제 경매에서 1미터짜리 자수정 벽시계가 80만 원이 넘는 금액으로 낙찰됐다고 합니다."

"뭐?"

"그게 정말인가?"

"네, 그것 때문에 평양이 난리 났다고 합니다."

"난리 날 만도 하겠네. 80만 원이라니···."

젊은 김 씨는 조선군에 근무하면서 알게 된 병사들이 많기에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무척이나 빨리 알 수 있었다.

"낙찰에 떨어진 청나라 상인이 남명 상인의 멱살을 잡고 싸움까지 벌어졌다고 합니다."

"쯔쯔···,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다고 하던데 그 비싼 시계는 뭐 하려고 사려는 건지···."

"그거야 우리 같은 사람들은 알 수 없지요. 하지만 자수정은 보석 아닙니까? 그것도 1미터짜리 보석인데 색 번짐도 없고, 아주 끝내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디서 그렇게 큰 자수정을 캤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합니다."

직장 동료인 세 사람이 이렇게 잡담을 하며 통닭과 생맥주를 즐기고 있는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뚝 끊겼다.

-방금 들어온 소식입니다.

-행정부 경행식 장관께서 새로운 행정구역 개발을 발표하셨습니다.

-이번에 새로 발표된 법안에 따라 새로 제정된 특별 행정구역은 '오락(娛樂) 도시'입니다.

-배고픔에서 벗어난 백성들이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도시를 건설한다고 하는데···.

전에는 관공서 정문 게시판에 방을 붙여 정책을 홍보했다.

그런데 라디오 방송국이 많이 생기고, 수신 불가 지역이 거의 사라지자 이젠 라디오를 통해 정책을 알리는 일이 많았다.

특히 새로운 정책은 매우 중요한 정보이기에 라디오를 통해 빠르게 알렸다.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를 준다는 취지였다.

"아니, 놀이 공원 같은 유락 시설이나 공연장은 그렇다 쳐도 도박장을 만든다니 이게 뭔 말인가?"

"도박장이 아니라 가지노라고 했잖는가."

"그게 그거 아닌가? 이름만 다르지 돈 놓고 돈 먹기 하는 곳을 양성화하다니 이게 될 말인가?"

"아, 불법 도박장과 노상강도들 때문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래도. 아이들과 함께 가는 곳에 도박장이라니, 이건 아니지."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데다가 새로운 소식도 라디오와 신문을 통해서 빠르게 접하다 보니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백성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하필이면 저 먼 강릉에 오락 도시를 건설한다고 하지? 가까운 곳에 지어도 되는데."

"강릉이 멀긴 머가 멀다고? 기차 타면 반나절이면 가는데. 그리고 지역 발전을 위해 한적한 곳을 짓는다는데 잘 됐지."

동네 술꾼들의 관심사는 박람회와 경매에서 오락 도시로 옮겨갔다.

조선에서 도박은 분명 불법이지만, 즐기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특히 다가오는 추석 같은 명절에는 온 가족이 모여 화투와 윷놀이로 내기를 하며 놀았다.

물론 내기해 봐야 한 끼 식삿값 정도였다.

큰돈을 걸고 내기해 봐야 지키는 사람도 없고, 그걸 따져봐야 바보만 될 뿐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예맥 기병대를 투입하는 건 잘한 거야."

"그건 맞지. 감히 동방예의지국인 조선에서 노상강도라니, 말이 되는가? 이제 놈들은 탄광에 끌려가기 전에 죽겠군."

연이 생각한 세상은 다툼이 적은 세상이었다.

'행식아 정책을 시행할 땐 그 정책으로 인해 분쟁이 발생할 수 있는지 꼭 살펴봐야 한다.'

한반도를 뺀 조선의 전 영토를 황실 기업인 조선전력공사가 소유하고 있다.

한반도도 절반 이상은 황실 소유의 땅이었다.

그랬기에 조선전력공사는 건설사에 하청을 줘서 집과 건물을 짓고, 다시 백성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임대를 내주었다.

또한 개인 간 돈거래는 갚지 않아도 된다.

이로 인해 민사가 반이나 줄었다.

민사 소송은 대부분 돈에 관련된 일인데, 개인 간 돈거래를 법적으로 따지지 못 하게 하자 사람들이 알아서 조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범죄가 사라지지 않았다.

잠잘 곳과 배고픔을 면했다고 해서 사람들의 욕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새롭고 신기한 기물들이 쏟아져 나오자 그걸 사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서류를 조작하거나 감언이설로 사기를 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래서 사기죄를 살인보다 더 심하게 처벌했다.

'사람을 죽이는 끔찍한 범죄보다 더 나쁜 건 한 가정을 파탄시키는 사기다.'

사기 피해자는 심적으로 극한 배신감을 느낀다.

사라져버린 돈도 돈이지만, 믿었던 사람에게 당한 배신감은 결코 잊을 수 없다.

그로 인해 가정까지 파탄 나는 경우가 있었기에 연은 효종에게 요청하여 사기를 가장 흉악한 범죄에 올려놓았다.

'당한 놈이 병신이야'란 말은 이제 통하지 않았다.

'사기 친 놈이 진짜 나쁜 놈이다'는 인식이 퍼져나갔다.

그러자 형사 소송보다 5배나 많았던 민사 소송이 이젠 거의 없어졌다.

연과 효종이 합심하여 조선에서 범죄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 * *

100일간 열렸던 제1회 조선 제국 박람회도 막을 내렸다.

연구원들은 명성을 얻었지만, 숙수들과 공돌이 중에서는 이번 박람회로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여기에 태자비도 포함되어 있었다.

연은 자주 보지 못한 태자비에게 미안해서 같이 있을 때는 알고 있는 재밌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이야기들을 그림 솜씨가 좋았던 태자비가 각색해서 그림책을 펴냈다.

동글동글한 2등신 또는 3등신으로 표현된 사람과 동물들은 누가 봐도 귀여웠다.

그래서인지 박람회 한쪽에 전시된 출판물 중에서는 인기가 최고였다.

태자비는 두둑이 쌓여 있는 조선은행에서 발행한 지폐와 연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전하, 이 돈은···?"

"그대가 노력해서 번 돈이니 쓰고 싶은 곳에 쓰도록 하시오."

"그래도 되겠습니까?"

"아니 될 게 뭐가 있겠소? 그대는 추후 조선의 국모가 될 사람인데도 손에 물감을 묻혀가며 번 돈이지 않소?"

"어디 제가 다 했겠습니까? 궁녀들이 도와줬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면 그 돈의 일부를 궁녀들에게 상으로 내리는 건 어떻소?"

"이미 주었습니다. 그래도 이만큼이 남아서···."

"그래요? 그럼 따로 하고 싶은 일은 없소?"

연의 물음에 태자비는 한참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전하, 황후와 황비들께서 여인들과 아이들을 위해 자선사업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자선사업을 하고 싶으오?"

"네, 전하."

"그래요? 그럼 하면 되지 않소?"

"돈이···, 돈이 부족합니다."

수줍은 듯 고개를 숙이는 태자비.

연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에 출판 계약으로 태자비가 받은 돈은 10만 원이 넘는 거금이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색으로 예쁘게 칠해진 그림책.

출판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빨강, 노랑, 파랑 3도 인쇄를 할 수 있었기에 만들 수 있었다.

다 채색으로 만들어진 그림책을 처음 본 조선의 부모들.

자녀들을 위해 주머니를 열 수밖에 없었다.

1전이나 하는 비싼 책이었지만, 삶의 여유가 생기자 자식들을 위한 애틋한 마음이 돈을 쓰게 만들었다.

태자비가 출판한 그림책은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한 필수 도서가 되었다.

"얼마나 필요하오?"

"아가들을 위한 장소를 만들고 싶습니다."

"유아원(幼兒園)을 짓겠단 말이오?"

그러지 않아도 어머니들이 여인들과 아이들을 위해 유치원幼稚園)을 짓겠다고 했다.

"네, 전하. 요즘 일하는 여인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맞소. 그래서 조선전력공사는 아이가 있는 여인들을 위해 유아원을 운영하고 있소."

"하지만 다른 곳은 그렇지 못하다고 들었습니다."

"알겠소. 무슨 말인지. 내 돈은 무한정 지원할 터이니 전역에 짓는 건 어떻소?"

"네에? 전역이란 말씀은···?"

"그렇소. 이곳 한반도뿐만 아니라 중역과 서역까지 그대가 원하는 유아원을 지어 보시오."

연은 흥이 나서 말했지만, 태자비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무슨 걱정이 있소?"

"그렇지 않아도 그림책을 출판한 일로···."

"흥! 세상이 변했다는 걸 모른답니까?"

"어찌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걱정하지 마시오. 내가 어머니들께 잘 말해 두겠소."

"그러지 마십시오. 괜히 책망 들을까 무섭습니다."

"걱정 말라고 하지 않았소. 그러지 않아도 이번 박람회에서 열린 경매 수익이 무척이나 많소. 그 돈을 전부 유치원과 유아원을 만드는 데 쓸 생각이오. 그러니 그대는 그대가 생각하는 유아원을 한번 구상해 보시오."

지구 위에서 가장 풍부한 광물 중 하나인 석영.

결정성 이산화 규소인 석영으로 자수정을 만드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크롬명반을 물에 넣고 완전히 녹을 때까지 끓인 후 그 물을 반도체 잉곳을 성장시키는 것처럼 접시에 넣고 부어주면 증발하면서 자수정 결정으로 성장한다.

칼륨명반을 이용하면 루비.

인산 암모늄은 에메랄드.

명반만 물에 넣고 끓인 후 서서히 냉각하면 허접하지만 가짜 다이아몬드까지 손쉽게 만들 수 있다.

인조 보석을 만드는 더 간단한 방법은 열을 가하거나 방사선을 조사하면 된다.

이번 박람회 경매에 출품한 자수정 벽시계도 열을 가해 만든 인공 자수정이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상인들은 커다란 자수정으로 만든 시계를 보고 전 재산을 털어 경매에 참여했다.

경매에서 예상보다 10배나 많은 수익을 거두자 연은 이 돈을 어디에 쓸지 고민 중이었다.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거금이 생겼지만, 미리 쓸 곳을 정해 두지 않았기에 어찌 처리할지 결정할 수 없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과소비를 조장하고 있어서 은행에 넣어 둘 수도 없었다.

"고맙소. 덕분에 공돈을 처리할 수 있겠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전하."

연은 태자비에게 돈의 흐름과 경제에 관해 하나씩 친절하게 설명했다.

* * *

조선 제국력 2년(1660) 3월.

겨울철 농한기를 틈타 몰래 도박을 벌이던 도박꾼들을 검거했다는 소식이 쉬지 않고 방송을 탔다.

그와 함께 노상강도 짓을 벌였던 놈들도 잡히거나 검거 과정에서 사살되었다.

도시가 아닌 인적이 드문 곳에서 위험에 처했을 때 구세주 역할을 하는 예맥 기병대는 인정사정이 없었다.

검문에 불응하고 도주하면 그 누구라도 즉결 처분했다.

일부에서는 말이 많았지만, 조선 영토를 지키는 예맥 기병대를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누구라도 조선 영토에서는 안전하게 다닐 수 있게 한다'는 데 '인권'을 따지는 언론은 없었다.

단지 사람을 너무 쉽게 죽인다는 불평이 일부 있었을 뿐.

"내 급히 다녀오겠소. 미안하오."

"아닙니다. 전하. 저도 할 일이 많습니다."

태자비는 서역으로 떠나는 연을 밝은 미소로 배웅했다.

'태자가 이리 많은 돈을 보낸 게 태자비 때문이라 들었다. 덕분에 원 없이 돈을 써보겠구나. 고맙다 아가야.'

보살 같은 인선 황후는 관심을 두지 않았지만, 안비 이 씨, 숙의 김 씨, 숙원 정 씨는 연이 엄청난 거금을 보내주자 무척이나 기뻐했다.

정치적 문제를 막기 위해 그동안 내려왔던 내명부의 품계를 폐지했다.

아니 품계는 존재했지만, 전과 달랐다.

내명부의 품계는 내명부 내에서만 통용되도록 바꿔 버린 거였다.

그로 인해 실권은커녕 정치적 입지가 사라진 내명부의 여인들은 할 일이 없어 지루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정식으로 밖으로 나돌면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엄청난 거금까지 생겼기에 눈치보지 않고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태자비가 예뻐 보일 수밖에.

아무튼 서역으로 연이 떠났지만, 조선을 또다시 새롭게 발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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