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 범죄와의 전쟁(1)
효종이 건네준 창을 받아 든 연.
"아이쿠!"
그대로 창을 땅에 떨구었다.
무명천이 아니라 복슬복슬한 털이 달린 하얀 면수건으로 땀을 닦고 난 효종은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약관(弱冠)이 바로 앞인데 그리 힘이 없어서야···."
"제가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폐하께서 무시···, 아니 엄청나게 힘이 세신 겁니다."
"그건 핑계(避計)다. 내가 너 나이 뗀 저런 창을 서너 개씩 들고 휘둘렀다."
"설마요? 쇠 창이라면 모르지만 저건 금으로 된 창이 아닙니까?"
아파치 왕국은 과연 황금의 나라였다.
효종에게 보낸 창은 온통 황금으로 만들어졌고, 곳곳에 영롱한 색을 뽐내는 보석들이 다양하게 박혀 있었다.
철(비중 7.85)에 비해 금(비중 19.32)은 2.5배나 무겁기에 연은 땅에 떨어진 황금 창을 과연 누가 들 수 있을지 생각해 봤지만, 떠오르는 인물이 없었다.
그런데 효종은 피식 웃더니 한 손으로 가볍게 황금 창을 들어 수건으로 창에 묻은 흙을 털면서 한마디 했다.
"쇠던 금이던 이 정도 창도 못 든다면 친위대가 될 수 없지."
조선의 영토는 경찰과 조선군이 관리하고 있지만, 조선의 근본이 되는 황제가 기거하는 경복궁은 조선전력공사 경비대에서 뽑은 친위대가 보호하고 있다.
개혁과정에서 수많은 양반 귀족 세력이 몰락하고 있었고 불만이 많았기에 아무나 뽑을 수는 없었다.
또한 선발 과정에서 효종이 쓰는 창과 비슷한 무게의 창을 들고 무력을 발휘하는 시험이 있었기에 친위대 대원이 아니라면 그 시험을 통과하는 이가 아직까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랬기에 이 황금 창을 들 수 있는 자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연은 다시 한번 힘을 모아 창을 들어 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만두거라. 그러다 몸 다친다."
"하···! 진짜 폐하께서는 천하장사이십니다. 이렇게 무거운 창을 들고 휘두르다니···."
연은 효종에게 창을 힘겹게 넘기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앞으로 이 창을 우리 황실의 보물로 해야겠구나."
효종은 가볍게 황금 창을 휘두르더니 건장한 호위 둘에게 창을 넘겼다.
"들어가자. 할 말이 많다."
"네, 폐하."
연과 효종은 승강기를 타고 100m 높이에 있는 경복궁 꼭대기로 올라갔다.
그래봐야 30층 높이지만, 20층 이상 고층 건물이 없기에 한양이 한눈에 보였다.
"그런데 무슨 일입니까?"
"아무래도 너와 상의해야 할 것 같아서 부른 거다."
"제가 아니면 해결하지 못 할 일이라도 있습니까?"
"그러니 부른 게 아니겠느냐?"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연이 아니면 해결하지 못할까.
궁금했지만, 연은 효종이 다시 입을 열기만을 기다렸다.
시원한 냉커피를 단숨에 들이켠 효종은 팥빙수까지 한 그릇 뚝딱 해치우더니 연을 보고 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내명부의 일이지만, 사신들의 요청이 있었기에 먼저 너의 의향을 듣고 싶구나."
"네? 내명부의 일이라면···?"
"아무래도 혼인을 해야 할 듯싶다."
연은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내명부의 뜻입니까?"
"너 어머니들이야 한결같지 않으냐? 네가 문제지."
황손을 보고 싶어 하는 황후와 황비들은 연이 후처를 많이 얻길 원했다.
하지만 연은 그럴 시간이 없다며 정중히 양해를 구했다.
그럴 때마다 말이 나왔지만, 연이 워낙 바빴기에 잡아 놓고 혼을 내거나 다그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 박람회에서 사신들이 조선의 발달 된 모습을 보고 조선과 연(緣)을 맺고자 효종을 괴롭히고 있었다.
세계를 정복하고도 남을 정도로 비대칭 전력을 보위하고 있는 조선이지만, 조선이 좋아 따르겠다고 자국의 공주를 보내겠다는데 뭐라 할 순 없었기에 난감하기만 했다.
그래도 연이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었기에 효종은 연을 불러 의향을 물었다.
"무슨 상황인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태자비가 건강하니 좀 더 기다려 주십시오."
"언제까지 말이냐?"
"아버지, 제 나이 이제 19입니다. 어디 아픈 데도 없고요."
"그거야 알지만, 너 어머니들이 문제구나."
고대부터 지금까지 외척 문제는 모든 나라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중요한 문제다.
조선 또한 외척 때문에 얼마나 많은 난리를 겪었고, 끝내 외척 때문에 나라가 망해버리지 않았는가.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연이기에 효종과 상의해서 내명부의 정치적 개입을 원천 차단했다.
그런데도 내명부를 통해 정치적 입지를 굳히려는 세력은 존재했고, 그럴 때마다 효종은 과감히 그들을 탄광으로 보내 버렸다.
황후나 황비의 친척이라고 으스대며 까불던 이들이 하나둘씩 잡혀가자 더는 그런 자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내명부를 찾는 이조차 드물었다.
그러다 보니 할 일이 없어진 황비들이 연의 어머니인 황후를 찾아 연의 혼사에 관한 이야기를 늘여 놓기 시작했다.
"아버지. 이건 간단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참말이냐?"
"네, 아버지. 사람이란 뭐든 일을 해야만 성취감을 느끼고 살아갈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그러니 어머니들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을 만들어 주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런데 무슨 일을 말이냐?"
그러지 않아도 연은 태자비가 할 일을 계획하고 있었다.
"음···."
연의 말을 듣고 한참을 생각하던 효종.
"자선(慈善)사업이라···."
"네, 사랑 '자'자는 어머니 '자'이기도 하고, 착할 '선'자는 어질다는 뜻이 있습니다."
"어진 어머니라···."
"황제가 나라의 아버지라면 황후는 나라의 어머니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나라의 어머니께서 나라의 자식인 백성들의 아픔을 나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좋구나! 좋아!"
'짝' 소리가 나도록 허벅지를 내리친 효종은 뭔가 은밀한 눈빛으로 연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네가 말하는 자선사업을 하려면 돈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만?"
말을 끝내고 창밖을 바라보는 효종.
눈동자를 돌려 연을 슬쩍 훔쳐봤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한 표정인 연이 고심하더니 효종을 바라보았다.
눈을 마주치자 헛기침을 하는 효종.
연은 그런 아버지가 재밌다는 듯 웃으며 물었다.
"황실에 돈이 없습니까?"
"돈이야 많지. 하지만 이 돈은 황실의 재산 아니냐. 사사로이 쓸 수는 없다."
"그게 왜 사사로운 일입니까? 백성을 위하는 일인데···."
"네 말을 들으니 돕는 사람도 마음의 즐거움을 얻는 것 아니냐? 그러니 사사로운 일이지. 황실 재산을 넘보지 말거라."
"아···, 예···."
연의 목소리는 힘없이 낮아졌다.
따져봐야 서로 의지하는 부자 관계도 돈 앞에서는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더는 효종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한 연은 빠르게 결정을 내리고 입을 열었다.
"제가 어머니들께서 자선사업을 할 자금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역시! 너밖에 없구나. 그런데 얼마나···?"
연은 검지하나를 치켜들었다.
"뭐? 천 원? 안된다. 내 체면이 서질 않는다. 그리니 좀 더 쓰거라."
"천 원 아닌데요."
"그럼 만 원?"
고개를 도리도리 흔드는 연.
"설마, 십만 원?"
'네, 아버지. 이 돈이면 어머니들께서 자선사업을 하시기에 충분할 겁니다."
"그래도 십만 원이면 너무 큰 돈 아니냐?"
"큰돈 아닙니다."
"큰돈이 아니라고?"
21세기와 비교하여 1원은 1백만 원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백억 원의 가치를 지닌 1만 원이라면 조선 백성들을 위한 자선사업 자금으로 부족할 수 있다.
하지만 먹는 것과 지낼 곳이 무료 또는 싼값으로 제공하는 조선이기에 엄청난 거금임이 틀림없었다.
"네, 아버지. 아파치 왕국에서 선물로 보낸 창의 금 값만 해도 그보다 많은 겁니다. 그러니 내명부에서 하는 자선사업 대상은 여인들과 아이들로 한정했으면 합니다."
"사내들은?"
"그들이야 잘 먹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긴 하지."
조선에서 팔다리만 정상이면 일자리는 넘쳐났다.
연이 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사회 간접 자본인 철도와 도로를 놓고 소비를 조장했기에 사지만 멀쩡하면 일할 수 있는 곳은 널려 있었다.
하지만 여인들과 아이들은 아니었다.
칠거지악 같은 근본 없는 말은 없었지만, 뿌리 깊게 내리박은 남존여비 사상은 쉬 사라지지 않았다.
남자아이라도 15세 성인이 되기까지 사내 취급을 안 했고, 법으로 3시간 이상 일할 수 없도록 했기에 양질의 일자리는 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청소년기 아이들일수록 갖고 싶은 것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못된 손이 못된 짓을 하게 됐고, 적발되면 어린아이라도 가차 없이 처벌받았다.
"그러니 내명부 자선사업은 여인들과 아이들로 한정했으면 합니다."
"알았다. 내 그리 전하마. 그런데 도박 문제는 어찌해야 하느냐?"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도박은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사라지기는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단다."
내정을 담당하는 효종과 달리 연은 상업과 영토 문제를 맡고 있었기에 몰랐던 일이었다.
"그래요? 분명 도박 빚만 아니라 개인 간 돈거래는 갚지 않아도 된다고 법으로 정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그랬어···."
효종은 경찰청에서 보내온 보고서를 연에 넘겨주었다.
한 장씩 보고서를 넘기면서 수치만 대략 확인하던 연은 깜짝 놀랐다.
"아니, 무슨 강력 범죄가 이리 많습니까?"
"그게 모두 도박 때문이다."
"네, 도박 때문이라뇨?"
"도박 빚을 얻기 힘들어지자 강도 짓을 벌이는 놈들이 많아졌단다."
"그래요?"
조선의 법은 황실과 연이 있더라도 죄를 지으면 처벌받았기에 범죄가 줄어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정말 뜻밖이었다.
"일하지 않아도 살 곳과 먹을 것을 제공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더 큰 문제 아니냐?"
거대해진 조선의 영토를 고루 발전시키기 위해 연은 철도와 도로를 따라 도시를 조성하고 있었다.
도시 단위로 발전해야지만, 전 지역이 고루 번영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빈 공간이 많다 보니 이동 중에 노상강도를 당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경찰이 출동하여 그 지역 전체를 수색했지만, 범인을 잡기 힘들었다.
기차만 타면 빠르게 동역에서 서역으로 서역에서 동역으로 이동할 수 있기에 수색에 특화되지 않는 경찰로서는 사건을 해결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예맥 기병대를 출동시킬 수는 없지 않습니까?"
"왜 안 되느냐?"
"예맥 기병대는 전쟁을 치르기 위해 조직하고 훈련된 이들입니다. 그러니 투입되면 혼란이 올까 걱정됩니다."
"만주와 중역, 서역에서는 잘하고 있지 않으냐?"
"그거야 반항하면 무차별로···."
"음···. 문제가 될 수도 있겠구나."
청나라의 볼모로 전쟁터를 따라다닌 경험이 있었기에 효종은 말박이들이 얼마나 잔인한지 잘 알고 있었다.
연이 말하다 말았지만, 그 의미가 무엇인지 듣거나 보지 않아도 상상이 됐다.
"그럼 이 도박 문제를 어찌하면 좋겠느냐?"
"예로부터 도박꾼은 처자식도 팔아먹는다고 했습니다."
"그런 말도 있었느냐?"
"네, 아버지. 그러니 도박은 어떤 경우에도 막아야 합니다."
"그게 쉽다면 내 너를 불렀겠느냐?"
효종은 매일 같이 내무부 장관을 불러 해결하라고 호통쳤지만, 도박만큼은 어찌할 수 없다는 말만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도박꾼들은 으슥하고 깊은 산중을 찾아 도박판을 열었으니 적발하기에 쉽지 않았다.
신고를 받고 출동해도 어찌 알았는지 모두 사라지고 없었다.
보고서 마지막 장까지 넘긴 연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단순히 생각할 일이 아니네요."
"어렵겠느냐?"
"생각 좀 해봐야 할 문제 같습니다."
"음···. 너에게도 힘든 일이 있는 모양이다."
효종은 은근히 비꼬는 투로 연에게 말했다.
'나보고 알아서 하라고?'
이런 상황을 여러 번 겪어봤기에 연은 뜻하는 바를 알아챌 수 있었다.
하지만 쉬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편하게 걱정 없이 먹고 살게만 해주면 모든 것이 잘 될 거로 생각했던 연이기에 이런 일에 대한 대책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마천루(摩天樓, Skyscraper)라 부르기엔 다소 부족함이 있는 한양 도심을 내려다보는 연과 효종.
둘은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생각은 같았다.
'어떻게 하면 도박과 도박꾼들이 도박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노상강도 짓 하는 것을 차단할 수 있을까?'
아무리 고심해봐도 효과적인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럴 바엔 차라리 합법화해 버려?'
21세기에 미국은 마약과의 전쟁에서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그런데 마리화나를 합법화하자 끈질기게 살아남았던 중남미 마약 조직들이 무너져 버렸다.
마약 조직들은 마리화나를 팔 수 없게 되자, 마리화나 대신 아보카도를 훔치기 위해 농장을 급습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초록의 금(Green Gold)'이라 부르는 아보카도 농장을 급습했지만, 아보카도 농민들은 자위단(Self-Defense Groups)를 결성하고 무기를 들고 저항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국에는 자위단 또한 카르텔로 변해 버렸다.
독자적으로 출발한 자위단 조직들이 점차 통합하여 범죄조직으로 변해 버린 거였다.
'매춘과 마약, 도박, 사기, 도적질은 어쩔 수 없는 건가?'
합법화해도 사라질지 의문이었다.
그렇다 해도 그냥 둘 순 없기에 연은 효종에게 말을 꺼냈다.
"아버지, 그냥 합법화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응? 어떻게 말이냐?"
연은 효종에게 자신이 생각한 도박 합법화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