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 조선 제국 박람회(8)
박람회가 개최된 지 4일째 되던 날.
생각과 다르게 모든 사람들의 관심은 비행기와 불꽃놀이였다.
다른 출품 기물들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고 있었지만, 비행기와 불꽃놀이에 관한 관심은 폭발적이었다.
특히 비행기는 비행기뿐만 아니라 조종사인 창공이에게도 관심이 높았기에 라디오 방송에서는 특집으로 비행기와 창공이의 이야기를 주야장천(晝夜長川)하고 있었다.
상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중원(中原)을 4분하고 있는 청나라, 후금, 남명, 대명에서 온 상인 대표들은 연을 보자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사를 늘여놓기 시작했다.
"전하! 비행기라는 기물이 하늘을 나는 것을 봤습니다. 제 생각이지만, 그런 기물은 틀림없이 전하께서 만드신 것이 틀림없습니다."
"맞습니다. 천재 중의 천재라는 전하 아니고서야 그 누가 하늘을 나는 기물을 꿈이라도 꿔 봤겠습니까?"
"불꽃놀이는 어떻고요? 그렇게 화려한 불꽃놀이는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아마, 이것도 전하께서 만드신 거겠지요."
특히 남명에서 온 상인이 독보적이었다.
화려한 비단으로 감싼 배가 터질 듯하고, 얼굴에 번지르르한 개기름이 줄줄 흐르는 그는 쉬지 않고 연을 추켜세우기 바빴다.
목청까지 커서 그런지 그의 말은 귀가 울릴 정도였다.
"그건 우리 연구원들이 노력해서 개발한 기물들이오. 왜 마음에 듭니까?"
"이를 뿐이겠습니까? 그런데 전하, 설마 비행기도 파시는 건 아니겠지요?"
"왜 팔면 사겠소?"
"그럼요! 파신다면 제 전 재산을 정리해서라도 사고 말 것입니다."
남명의 상인은 흐르는 땀을 훔치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제 딴에는 비행기 가격을 나름대로 산출하고 있는 듯했다.
연은 상담실 상석에 몸을 묻고 약 올리듯이 말했다.
"이를 어쩌나···. 그대의 전 재산 정도로는 비행기의 날개도 살 수 없을 건데···?"
"그, 그 정도입니까?"
"그 정도 이상이지요. 개발비에만 백만 원이 넘게 들어갔으니."
"네에?"
조선 백성들의 소득이 올라가면서 돈의 가치가 떨어졌다고 하지만, 개발비만 백만 원이 넘다니.
남명의 상인은 믿을 수 없는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건 됐고, 특별 상담을 요청한 이유나 들어봅시다."
본론을 꺼내 보라는 연의 말에 중원의 상인 대표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눈짓을 오갔다.
역시나 입심이 좋은 남명의 상인이 나섰다.
"전하, 다름이 아니라 우리 남명 백성들이 굶주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발 쌀과 밀을 팔아주십시오."
"쌀과 밀을 팔아달라? 우리 조선 백성들이 먹기에도 부족하다는 걸 모르오?"
"하지만 조선에는 비축해 놓은 물량이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 물량이라도···."
연은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남명의 상인을 스쳐 지나가며 말했다.
"그건 내년을 위한 것이오. 작년처럼 올해도 흉작이 들지 모르는데 그걸 내다 팔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오."
"전하! 그래도 조선은 서역에서 생산되는 곡식이 있지 않습니까? 그곳은 괜찮다고 들었는데 어찌 안 되겠습니까?"
연을 졸졸 따라다니며 연신 굽신거리는 남명의 상인.
연이 확 돌아서자 순간 움칫하며 멈춰섰다.
"안될 건 없는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제가 다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래요? 잘 됐군요. 그럼 서역에서 직접 사서 가져가시오."
"네에?"
"그대는 우리 조선을 잘 알고 있군요. 그렇다면 말이 통하겠군요."
"그럼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조선에 대해서는 많이 공부했습니다. 무슨 말씀이시던지 하시면 제가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아요. 서역에서 동역까지 1만 5천 리나 되오. 그 먼 거리에서 쌀이든 밀이든 운반해 오려면 운송비가 많이 드오. 그 비용을 추가해 준다면 내 서역의 곡식들을 가져오라 하겠소."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튀어나온 배 때문에 고개만 숙이며 감사를 표하는 남명의 사신을 보고 연은 씩 웃으며 검지 손가락을 들어 흔들었다.
"하나, 조건이 하나 있소."
"무슨 조건입니까? 전하."
"청나라와 후금의 백성들뿐만 아니라 남명의 백성들 또한 산동반도로 몰려와 소란을 피운다는 말을 들었소. 이건 어찌할 생각이오? 설마 알아서 처리하라는 말은 아니겠지요?"
소빙하기가 다가오는지 이상 기변이 갈수록 심해졌다.
그러지 않아도 전쟁으로 지쳐 있는 중원의 백성들.
목숨을 걸고 고향의 떠나 산동반도로 몰려들었다.
'그곳은 쌀을 산처럼 쌓아 놓고 산데.'
'아니, 쌀보다는 고기를 더 많이 먹는다고 하더라고.'
'그곳에 먹은 것이 널려 있다고 하니 가보자고. 이리 죽나 저리 죽나 우리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게 없잖아.'
십여 년 전만 해도 굶주린 사람이 천지였던 조선인데, 어느 순간부터 조선은 넘볼 수 없는 대국이 되었다.
중원에서도 운 좋게 그런 조선의 백성이 된 사람들이 있었다.
명나라 때부터 소작농이었거나 청나라의 노예로 산동반도에서 농사를 짓고 있던 이들이 바로 그 운 좋은 사람이었다.
그들 중 조선인 노예들을 학대했던 이들은 산동반도가 조선의 땅으로 변함과 동시에 세상과 결별했다.
그리고 남은 사람들.
처음에는 불만이 많았다.
비천하기 짝이 없던 조선인 노예들이 이제는 지주나 다름없는 관리인이 되어 자신들을 관리하자 불만을 품고 산동반도를 떠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조선의 위상은 갈수록 커져만 갔다.
날로 승천하는 조선은 소작농에게도 번득한 집을 무료로 지어주고, 아파서 일을 못 할 때도 먹을 것을 챙겨주었다.
이런 소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 나갔다.
그러자 조선이 싫다고 산동반도를 떠난 이들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조선은 이들을 받아주지 않았다.
산동반도를 관리하고 있는 조선군.
주민증이나 거주증이 없는 사람은 매몰차게 쫓아냈다.
그런데도 갈수록 산동반도로 넘어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산동반도에만 도착하면 최소한 굶주림은 면할 수 있다는 소문이 퍼져서인지 필사적이었다.
중원의 네 나라는 지속된 전쟁으로 힘이 빠졌는지 전처럼 전면전을 치르진 않았지만, 이미 망가져 버린 농지에서 곡식을 키울 수는 없었다.
오래전 조선처럼 백성을 수탈의 대상으로 취급하던 중원의 왕과 귀족들.
이런 상황인데도 백성들을 위해 그 어떤 정책도 내놓지 않았다.
되려 농사를 지을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농지에 과도한 세금을 매겼다.
전처럼 농기구를 들고 민란을 일을 킬 수도 없는 열병기 시대라 농민들은 저항하기보다 삶의 터전을 버리고 몰래 도주했다.
상인 대표들은 이런 사정 잘 알고 있었기에 이번 기회에 조선에서 곡식을 사서 떼돈을 벌려고 하는 거였다.
한참 자기들끼리 상의 하던 상인 대표들.
결정이 났는지 남명의 상인이 연에게 다가왔다.
"전하, 그 문제는 돌아가는 즉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하오나, 근본적인 이유는 먹을 것이 부족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니 조선에서 곡식을 팔면 해결될 겁니다."
"그래요? 아닌 것 같은데···. 혹시 지금 산동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들어는 봤소?"
"네, 당연히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쌀과 밀을 사러 온 것 아니겠습니까?"
"알았소. 그럼 그대를 믿고 쌀과 밀을 팔도록 하지요."
"고, 고맙습니다. 전하."
땀을 뻘뻘 흘리며 연신 고개를 숙이는 남명의 상인.
연은 그에게 일침을 가했다.
"만약 또다시 넘어오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을 모아 무기를 줄 생각이오. 그러니 알아서 잘하리라 믿소."
"네에?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전하. 무기를···, 무기를 주다니요?"
-탁!
연은 탁자를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각해보시오. 그들은 그대들과 같은 나라의 백성이오. 그랬기에 국경을 넘어왔어도 죽이지 않고 돌려보냈소. 하지만 그들은 다시 또 넘어와 산동반도를 난장판으로 만들고 있소."
"죄, 죄송합니다. 전하."
미소를 머금던 연이 정색하며 말하자 남명의 상인은 눈을 내리깔며 손을 비볐다.
"돌려보내도 다시 넘어 온 이유가 뭔지 생각을 해봤소. 돌아가 봐야 죽을 게 뻔하니 살기 위해 다시 온 것이었소. 하나! 그들에게 무기를 준다면 상황이 달라질 것 아니오. 그러지 않소?"
"""전하!"""
"흥! 그럼 우리 조선만 당하란 말이오?"
"""전하!"""
연의 말에 상인 대표들의 안색이 급격히 굳어버렸다.
한마디로 우리가 당한 만큼 너희들도 당해보란 말이 아닌가.
상거지 떼나 다름없는 굶주린 농민들만큼 무서운 것은 없었다.
역사적으로 봐도 중원에서 농민들의 민란으로 얼마나 많은 나라들이 전복되었는가.
그걸 모를 수가 없기에 상인 대표들은 연 앞으로 바짝 다가와 온몸으로 호소했다.
"전하, 어떡해서든 우리 백성들이 조선의 영토를 침범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돌아가는 즉시 폐하께 말씀드려 문제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저 또한 그리하겠습니다."
침까지 튀기면서 떠들어대는 상인들.
연은 귀찮은지 귀를 휘적거리더니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알겠소. 이번 한 번만 믿어 보겠소. 그러니 잘들 해야 할게요."
"""고맙습니다. 전하."""
연은 뒷정리를 맡기고 상담실을 벗어났다.
그 뒤를 따르는 은쌍식.
표정 관리조차 하지 않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역시 사장님이십니다."
"왜? 네가 해도 나보다 잘했을 것 같은데?"
"에이, 제가 어찌···. 쌀값이야 더 받을 수 있겠지만, 산동반도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을 겁니다."
굶주린 난민들을 처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난민들은 주민증과 거주증이 없더라도 행색만 봐도 조선인이 아니라고 판단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잡아들였더니 이제는 숨어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예맥 기병대를 투입할까도 생각했지만, 굶주린 난민들에게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예맥 기병대는 명령을 받으면 사정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수록 늘어나는 난민들로 인해 곡식이 익기도 전에 망가져 가자 대책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준비하고 있었는데, 연이 상인들에게 말 한마디 협박으로 해결의 기미가 보이는 것 아닌가.
"그래도 준비한 예맥 기병대를 산동반도로 보내라."
"네?"
"그들은 예를 아는 우리 백성들과 달라. 남을 속이는 짓을 자랑하는 중원의 백성들이다. 믿을 수 없지. 그러니 준비해 놓거라."
"알겠습니다. 사장님."
은쌍식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예맥 기병대를 보낸다는 의미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 * *
한 달 동안 평양에서 박람회 관련 일을 처리하던 연은 효종의 부름을 받고 한양으로 향했다.
조선 제국 박람회는 공식적으로 8월 한 달 동안 열렸다.
그 기간에는 각국의 사신들과 상인들 그리고 고가의 입장권을 산 사람들만 출입할 수 있었다.
관심이 컸던 만큼 혼란이 올 수 있기에 그리한 거였다.
사신들과 상인들이 떠난 박람회.
이제 조선 백성들을 위한 장소가 되었다.
입장권 또한 누구나 살 수 있는 1전으로 낮춰졌다.
"사장님, 굳이 박람회를 10월 말까지 할 필요가 있습니까?"
"조선의 영토가 넓지 않으냐."
"그러긴 하지만 그래도 9월 한 달이면 충분한 거 아닙니까?"
"저기 좀 봐라. 미어터지지 않느냐."
일반인 입장이 허용되자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었다.
숙소까지 부족했다.
"그래서 준비해 두었잖습니까?"
박람회를 준비하면서 숙박업소를 많이 지었지만, 각국에서 몰려온 사신들과 상인들이 묵기에도 부족했다.
그래서 박람회가 열리는 두루섬과 대동강 건너 북쪽 보통 공원에 야영을 할 수 있는 텐트를 급히 쳐 놓았다.
"그것도 아마 곧 부족해질 것이다. 그러니 야영지를 더 조성하고 텐트도 더 많이 쳐 놓거라."
"사장님, 정말 사람들이 더 많이 올 거로 보십니까?"
"내기해도 좋다."
그러지 않아도 매일 같이 라디오와 신문에서 박람회 관련 내용을 알리고 있었다.
그런데 일반인 관람이 시작됐었다.
그러니 새롭고 신기한 기물들에 관한 이야기가 더 퍼질 게 틀림없었다.
하지만 이런 대규모 전시회를 경험해 보지 못한 은쌍식은 더 많은 사람이 온다는 걸 믿지 않았다.
"좋습니다. 내기. 이번에는 제가 이길 겁니다."
"그리 장담한다면 이번 내기는 한 달이 어떠냐?"
"한 달은···, 보름은 어떻습니까?"
"보름? 그래 보름으로 하자꾸나."
내기의 대상은 연구소 식당 출입이었다.
진 사람은 연구소 식당에 출입하지 않는 게 바로 둘이 자주 하는 내기였다.
"그나저나 이번 박람회에서 부자가 된 숙수들이 많이 나오겠습니다."
"그래?"
"네, 사장님. 연쇄점 계약이 벌써 2만 건이 넘었습니다."
"뭐? 2만 건이 넘어?"
"네, 사장님."
"이번에 참가한 숙수들이 얼마나 되길래 그리 많은 연쇄점 계약을 맺을 수 있단 말이냐?"
"30명이 조금 넘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냉장고를 더 많이 생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행도 그렇지만, 박람회 같은 전시장에서도 먹는 건 중요하다.
박람회 식당에는 30여 명이나 되는 숙수들이 자신의 명예를 걸고 음식을 만들어 팔았다.
또한 맛에 반한 사람들은 연쇄점 계약을 체결했다.
그렇다 해도 2만 건이라니.
"우리 조선에 부자들이 많은가 보는구나."
"다 사장님 덕분 아니겠습니까? 사장님께서 조선전력공사 분점을 타국에 세우지 않은 덕분에 중계 무역을 한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합니다."
"그래? 별일이구나."
타국의 일에 끼어들지 않으려고 했던 일인데 그것이 조선 백성들의 부를 채워주는 일이었다니.
"역시 사람이란 참으로 알 수 없구나."
"그렇습니까?"
"그러지 않느냐? 조선전력공사 분점을 세울 때 중계무역으로 돈을 벌 줄 생각이나 해봤느냐?"
"아닙니다.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
"그런데 그걸로 번 사람이 있으니···. 사람이란 정말 독특한 존재가 맞아."
21세기로 따지면 구매대행이었다.
그런데도 각 나라에서 힘깨나 쓰는 상인들을 상대하다 보니 그 수익은 장난이 아니었다.
하지만 길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구매대행을 하던 사람들은 모은 돈으로 이번 박람회에서 연쇄점 계약을 했던 거였다.
어느덧 연이 탄 열차가 경복궁 지하에 도착했다.
경복궁 내전.
효종이 있다는 뜰에 도착한 연은 깜짝 놀랐다.
"폐하! 그게 무엇입니까?"
"왔느냐? 잠시 기다리거라."
"네, 폐하. 그런데 그건···?"
"아, 이거 말이냐? 아파치 왕국에서 보내 준 것이다. 어때, 멋지지 않으냐?"
"멋지긴 하지만, 너무 눈에 띄는 것 아닙니까?"
"운동 삼아 가지고 노는 건데 내 손에 착착 감기니 정말 좋구나."
효종은 햇빛을 받아 더욱 빛나는 창을 휙휙 돌리더니 땅에 꽝하고 찍었다.
무장이라 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울긋불긋한 효종의 어깨.
쥐고 있는 창과 함께 눈이 부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