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194화 (194/275)

194. 조선 제국 박람회(7)

이번 제1회 조선 제국 박람회에 참가한 나라는 100여 개국이 넘었다.

조선이 예맥 대륙 북쪽을 완전히 장악하면서 수많은 나라가 사라졌지만, 세상에는 아직도 무수히 많은 나라가 존재했다.

중형 버스 크기의 황실 전용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뿌듯한 표정으로 은쌍식이 참가국 목록을 연에게 넘겨주었다.

"이렇게나 많은 나라들이 참가하다니, 문식이가 고생이 많았습니다."

"그러게 말이다. 혼자서 해내겠다고 큰소리치더니 칠만 하구나."

"그런데 사장님?"

"응?"

"신성로마제국만 하더라도 3백여 나라가 존재한다는데 50여 개국만 참가했습니다."

"그래? 다 참가한 것 아니었어?"

"네, 사장님. 신성로마제국에 소속된 나라 중 이번 박람회에 참가한 나라는 정확히 58개국입니다."

"음···, 무슨 이유가 있었겠지···."

전혀 신성스럽지 않은 신성로마제국.

로마와 지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그런데도 게르만족에 의해 막을 내린 서로마제국의 뒤를 잇는다며 새로운 로마제국이란 의미로 신성로마제국을 세웠다.

더구나 초대 황제는 게르만족 출신의 오토 1세였다.

"만나 봐야 알겠지만, 아무래도 분열이 시작된 것 같습니다."

"은진이가 그러더냐?"

"아닙니다. 그냥 제 생각입니다."

"네 생각이 맞을 거다. 분열될 때도 됐지."

연이 오스만제국과 신성로마제국이 서로 싸우게 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최종 목표는 두 제국의 분열이었다.

수많은 공국(Principalities), 공작령(Duchies), 지방의 영주령(Counties), 자유도시(Free Imperial Cities), 주교통치령 등 다양한 왕국과 영토로 구성되어있는 신성로마제국의 역량은 그리 크지 않았다.

이와 달리 예니체리를 중심으로 상비군을 운영하는 오스만제국 또한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말이 제국이지 중앙집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두 제국은 총력전에 가까운 전쟁을 지속할 수가 없었다.

아직 농경 사회였기에 지속된 전쟁으로 두 제국의 역량은 급격히 낮아지고 있었다.

그로 인해 수탈이 자행되고 있었고 농민 봉기의 조짐도 보였다.

"그럼, 무기 판매를 중단해도 되는 것 아닙니까?"

두 제국에 수석총과 화약을 팔고 있지만, 분열이 시작되면 바로 중단할 계획이었다.

"일단 말을 들어보고 판단하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사장님. 어? 다 온 것 같습니다."

아름답게 조성된 평양 강변 보통(普通) 공원.

무장 버스가 도착하자 대원들은 삼엄한 경계를 펼쳤다.

잠시 후, 대원들의 안내를 받고 다가오는 서역 사람들.

그들 중에는 교육부 부장관을 맡고 있는 코메니우스도 있었다.

신기한 듯 무장 버스를 살피던 그들은 코메니우스의 인솔하에 버스에 올랐다.

암막이 쳐진 버스 안은 대낮보다 밝은 불빛이 켜져 있었고 가운데에는 넓은 탁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어서들 오시오."

"""전하를 뵙습니다."""

조선의 예법에 따라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하는 서역인들을 보고 연은 손바닥을 아래로 흔들었다.

"일단, 자리에 앉으세요. 할 말이 많겠지만, 시간이 별로 없으니 중요한 내용부터 말해주세요."

박람회 개최 전부터 세계 곳곳에서 온 사신들과 상인들은 연을 만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만나고 싶다고 만날 수 있는 연이 아니었다.

빽빽한 일정에서도 연이 제일 중요시하는 것은 모두 은동리에 있었기에 은동리 밖에서 연을 보는 건 쉽지 않았다.

밖에서 연을 보더라도 예정된 일정이 있었기에 끼어들기는 어려웠다.

"먼저, 전하께 감사의 말을 꼭 하고 싶습니다. 전하께서 도움을 주지 않으셨다면, 우리 보헤미안 형제단은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전하! 보헤미안 형제단을 대표해서 저 안톤은 전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거야 여기 있는 코메니우스 부장관 때문이니 감사의 인사는 코메니우스 부장관에게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소. 그나저나 만나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는데···?"

신성로마제국 페르디난트 3세의 종교 탄압으로 뿔뿔이 흩어져버린 보헤미안 형제단.

코메니우스의 보살핌으로 근근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거기에 연이 조선의 교육 제도를 위해 코메니우스를 영입하면서 지원한 엄청난 자금으로 보헤미안 형제단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랬기에 보헤미안 형제단의 단장을 맡는 안톤은 연에 이어 코메니우스에게도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 후 바로 본론을 꺼냈다.

"전하···! 드디어 때가 되었습니다. 우리 보헤미아 형제단은 모라비아, 슐레지엔, 루지체와 함께 독립 전쟁을 치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요?"

"네, 전하."

"흠···, 문제는 없겠소?"

"모두 슬라브인들이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안톤은 말을 하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뒤에는 여기까지 함께 온 다른 지역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들 또한 결심했는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짧게 끄덕였다.

"독립을 선언하기에 앞서 무기 판매를 중단해주셨으면 합니다."

"염려 마시오. 그러지 않아도 준비하고 있었소. 다른 건 없소?"

"그거면 충분합니다. 전하."

"그렇다 해도 대포를 감당하기에는 부족해 보이는데···.?"

"그건 브라반트 공국이 담당하기로 했습니다."

"브라반트 공국이라···, 네덜란드 공화국에 포함된 곳이 아니오?"

"맞습니다. 하지만 아직 일부가 남아 있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을 구성하고 있는 나라들이 너무나 많았기에 연은 문식이에게 연락하여 물어봤다.

하지만 문식이도 자세한 내막은 알지 못했다.

단지 이름 있는 몇몇 공국의 사정을 알려주었는데, 브라반트 공국은 얼마 가지 않아 프랑스 혁명군에 의해 소멸한다고 했다.

"그럼 네덜란드에서 대포를 사 오겠다는 말이오?"

"그건 아닙니다. 전하의 추종자를 자처하는 칼 10세께서 도움을 주시기로 했습니다."

"그래요? 잘 됐군요. 브리튼 왕국의 대포가 내구성은 약하지만 가벼우니 독립 전쟁에 쓰기에 적당해 보이는군요."

"맞습니다. 전하. 이번 독립 전쟁이 끝나면 정식으로 대조선 제국의 우방국임을 선언할 것입니다. 그때까지 쓰기에는 아주 적당해 보여서 전하께 연락드리지 않고 결정했습니다."

"잘하셨소."

조선이 타국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철칙은 변함이 없었지만, 우방국이라면 달랐다.

정식으로 조선의 우방국이 된 다두 왕국, 준가르 왕국, 브리튼 왕국, 아파치 왕국에는 수석총은 물론이고 강철 대포까지 판매하고 있었다.

침략을 받으면 지원한다는 조약을 맺었기에 미리 강한 무기를 줘서 그런 일이 아예 발생하지 않게 조치한 거였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는 나라들이 조선의 우방국이 되고자 했지만,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받아 주지 않았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신분제도였다.

조선과 달리 거의 모든 나라에서 귀족이나 농노 같은 신분제도를 채택하고 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조선과 조선의 우방국 말고는 그 어떤 나라도 자국민을 위해 통치하지 않았다.

조선의 우방국이 되어 안전한 삶을 보장받는 것보다 신분과 기득권을 내세우며 자신들만의 권력과 부를 누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연은 보헤미안 형제단의 단장이자 이번 독립 전쟁의 대표로 나선 안톤과 심도 있게 대화를 나누며 작전계획을 수립했다.

"그럼, 내년 봄에 봉기하는 걸로 알고 있겠소."

"감사합니다. 전하."

"다른 건 몰라도 금전적 문제는 요청하는 대로 즉시 지원하겠소. 그러니 필요하면 언제든지 요청하시오."

"고, 고맙습니다. 전하."

연은 어떡해서든 유럽반도에 있는 나라들을 갈기갈기 찢어 놓을 생각이었다.

다양한 이름으로 나누어져 있는 크고 작은 공국들을 부추겨 독립하게 할 계획을 짜고 시행하고 있었다.

코메니우스와 안톤 일행이 돌아가자 은쌍식이 물었다.

"사장님, 지금까지 지원한 금액이 수십만 원이 넘습니다. 저들은 독립해도 우리에게 지원금을 갚지 못할 게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또 지원해 주실 생각이십니까?"

"미래를 생각한다면 그까짓 몇십만 원 정도는 아깝지 않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한두 푼도 아니고 수십만 원입니다."

연은 안톤과 독립 전쟁을 계획하면서 펼쳐 놓은 지도를 가리켰다.

"앞으로 우리 조선에 위협이 될 만한 세력은 중원과 이곳이다."

"설마요?"

"왜 믿기지 않느냐?"

"어찌 감히 놈들이 우리 조선을 넘볼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아니지만, 나중 일은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이곳을 조선과 분리하려고 하는 것이다."

"예?"

"중원도 그렇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수가 1억 명이 넘는다. 그러니 언젠가는 우리 조선에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그래요?"

은쌍식은 이해가 되지 않은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연은 피식 웃으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우방국을 사이에 두고 분리해버리면 이들은 낙후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아···, 아직 농경에서 벗어나지 못한 나라들과 교류를 단절해 버리면···."

은진이만큼 머리 회전이 빠르지 않았기에 눈알을 굴리며 한참을 생각하던 은쌍식.

연을 보고 묘한 표정으로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뽑아 먹을 만큼 뽑아 먹었으니 이제 내치시겠다는 말씀 아닙니까?"

"아직은 아니다. 박람회가 끝나면 우리 조선의 물품들이 더 많이 팔려나갈 것이다. 놈들이 가지고 있는 금은보화가 바닥날 때까지 긁어모은 다음에 무기 판매를 중단해도 늦지 않을 거야."

"알겠습니다. 사장님. 앞으로도 놈들에게 직접 물품을 팔지 말라고 하겠습니다."

단순한 은쌍식이지만, 연과 지내 온 세월이 있기에 연이 생각한 '유럽반도 텃밭 계획'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었다.

"싸우기 좋아하는 놈들끼리 싸우게 하되 발전할 수 없게 하고 평생 농사나 짓게 만들겠다는 말씀이시죠?"

은쌍식의 말에 연은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아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와 기술 격차는 줄어들 거야. 그 격차를 늦출 수 있게 하자는 거다."

"우방국을 활용하자는 말입니까?"

"그렇지. 직접 국경이 맞닿아 있는 것보단 한 발 떨어져 있는 게 아무래도 좋겠지."

연은 자신이 죽은 후에도 수백 년이나 앞선 조선의 기술이 타국에 넘어가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이번 박람회에 출품한 발전기는 열식 발전기뿐이었다.

이미 판매하고 있는 열식 발전기만으로도 전구에 불을 밝힐 수 있고, 라디오나 축음기를 들을 수 있고, 용량이 큰 것이라면 냉장고도 돌릴 수 있다.

또한 불을 밝힐 수 있는 등유를 아주 싸게 팔고 있었다.

'고래를 위해 어쩔 수 없지.'

17세기부터 시작된 유럽의 고래잡이는 고기를 얻는 게 주목적이 아니었다.

고급향수의 원료인 용연향(Ambergris)을 얻기 위한 이유도 있었지만, 양초를 만들거나 등불을 켜기 위한 용도로 고래기름을 많이 사용했다.

그런데 조선에서 싼값에 다양한 향수와 등유를 팔기 시작하자 고래를 잡는 포경 산업은 급속도로 위축됐다.

"아무튼 유럽반도로 기술이 유출되는 것은 최대한 막아야 한다. 또한 조선 내부도 잘 감시하고."

"알겠습니다. 사장님."

"우리 조선 내부에서도 불만이 많은 자들이 틀림없이 생길 거야."

"참말로요?"

은쌍식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연은 담담하게 이어 말했다.

"내가 몇 번이나 말했지만, 사람만큼 믿을 수 없고 다양한 존재는 세상에 없다. 그런 사람 중에서도 상식을 벗어나는 놈은 반드시 나타날 거고, 그로 인해 우리 조선도 곤욕을 치를 수밖에 없다. 그러니 너는 놈들만 따로 수용할 곳을 찾아보아라."

"탄광에 보내지 않고요?"

"언제까지 탄광에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연 때문에 전면 개편된 조선의 사법제도.

죄를 지으면 재판받는 건 전과 동일하지만, 형량을 정하지 않았다.

조선에서 죄를 짓고 죄가 확정되면 바로 탄광으로 끌려갔다.

노역하면서 죗값과 뉘우침에 따라 선별되고 다시 재판에 회부됐다.

이 재판에서 반성의 기미가 확실해야만 풀려날 수 있었다.

그것도 5개나 되는 심사단 중에서 4개 이상의 심사단이 승인해야만 가능했다.

'세상에 믿을 수 없는 게 사람인데 어찌 사람에게 사람을 판단할 수 있게 한단 말이냐. 그것도 단 한 사람에게.'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살았던 연이라 사법부를 믿지 않았다.

죄를 지어도 기소하지 않으면 처벌받지 않은 대한민국 사법제도.

죄가 없어도 기소하고 괴롭히면 없는 죄도 있다고 실토하고 감옥에서 삶을 포기하고 지냈던 무고한 사람들.

이런 상황인데도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은 자신들만을 위한 법만 통과시켰다.

국민이 따지는 것을 막기 위해 그 어느 나라도 시행하지 않은 한국만의 독특한 '명예훼손'이라는 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녹음까지 못하게 법을 제정하다니.

'비리를 들추는 사람에게 자갈을 물리고 싶은 거겠지.'

법에 관련된 모든 일이 썩어 문드러져 버렸지만, 그래도 21세기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정직한 나라 중 하나였다.

그래서였다.

연이 효종에게 '정치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따로 모아 놓자'고 말했지만, 아직 정치인들만의 무대를 만들지 않은 이유가.

하지만 언젠가는 정치인들에게 정치를 맡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거대한 조선 제국은 황제 혼자 다스리기에는 너무 넓고 광대했기에.

'연방제를 도입할 수밖에 없지.'

그에 앞서 연은 사법제도의 기틀을 확실히 세우고 있었다.

누구라도 죄를 지으면 그 죄를 뉘우치기 전에는 죽기 전에는 노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언제까지라뇨? 죄를 지은 놈들을 탄광에 보내는데 반대하는 자도 있습니까?"

"지금이야 없지만, 나중에 어찌 될지 모른다. 그러니 미리 대비하는 게 좋을 듯싶다."

"그래요?"

미래를 알지 못하는 은쌍식에게는 연의 말이 너무 어려웠다.

이해되지 않은 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은쌍식에게 추가로 설명하려 했지만, 어느새 무장 버스는 숙소에 도착했다.

"내일부터는 각국의 상인대표를 만나기로 되어 있던데, 어디부터지?"

박람회를 보고 난 사신들은 한양으로 돌아갔지만, 상인들은 평양에 남아 있었다.

신기하고 새롭고 다양한 기물들을 구입하기 위한 협상을 하기 위해서지만, 더 중요한 경매가 있었기 때문이다.

"낼은 중화 4개국 상인대표와 만나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참석하시겠습니까? 굳이 그러실 필요는 없는데···."

"아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 싶구나."

"그럼 아침에 모시러 오겠습니다."

"그래, 너도 어서 들어가 쉬도록 해라."

"네, 사장님."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지만, 연은 잠자리에 들 수 없었다.

논식이가 설계하다 만 제어용 집적회로를 마무리할 일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산동반도에서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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