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 조선 제국 박람회(5)
제1회 조선 제국 박람회 개최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황실 기업인 조선전력공사가 주최하는 행사이기에 많은 사람이 관심과 흥미를 보였다.
처음에는 박람회라는 게 뭔지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세상이었다.
오직 농사만으로 먹고사는데 급급했던 세상 아니던가.
그런데도 굶어 죽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소빙하기가 다가오는데도 쌀과 밀보다는 돈이 되는 작물 재배에만 투자하고 있으니 배를 채울 곡식이 갈수록 부족했다.
하지만 조선은 달랐다.
동역부터 서역까지 철도와 도로를 개설하고 콘크리트로 농수로까지 만들고 있었다.
농수로를 따라 개간된 넓고 광활한 대지에서는 쌀과 밀뿐만 아니라 온갖 작물들을 재배했다.
그렇다고 모든 곳에서 농사가 잘된 것은 아니었다.
농수로와 농지가 잘 정비 되어 있는 곳이라도 우박과 서리 같은 천재지변에 농사를 망치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의 농부들은 걱정하지 않았다.
불하받은 농지가 너무 거대했기에 대부분 협동조합 형태로 농사를 짓고 있었다.
망해도 같이 망하고, 흥해도 같이 흥할 것 같지만 그러지 않았다.
농민들이 직접 설립하고 운영하는 농업협동조합은 보험을 들었다.
한해 수확량의 1할을 보험료로 내면 흉작이 들어도 보상을 받았다.
그렇다고 대충 농사를 짓지는 않았다.
지난 3년 동안 재배량의 평균을 보험금으로 지급했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더 높은 소득을 올리기 위해 조합원들끼리 상의하고 노력했다.
"어이! 강 씨!"
"어! 조합장님 아니십니까? 그런데 어쩐 일이십니까?"
강촌마을에서 살아왔기에 강 강(江)자로 성을 지은 강 씨는 조합장을 보고 신기한지 고개를 가웃거렸다.
조합 일을 보느라 외부출입이 잦았기에 평소에도 조합장의 얼굴은 보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고 나타난 조합장이 품 안에서 뭔가를 꺼냈다.
"이리 좀 와보게."
"잠시만요. 물길 좀 막아 놓고요."
강 씨는 농수로 수문을 잠근 후에 땀을 훔치며 조합장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어쩐 일이십니까? 조합장 회의에 가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내 갔다 왔네. 이건 좀 보게나."
조합장은 휴대용 지도처럼 겹쳐 놓은 얇은 책자를 흔들며 자랑스러운 듯 어깨에 힘을 줬다.
"그게 무엇입니까?"
"뭐 같은가?"
"아니! 그건···?"
"맞네. 박람회 입장권이네."
강 씨는 조합장의 손에 들린 입장권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이건 금장 아닙니까? 어디서 나셨습니까?"
"어디서 나긴 우리 지역에 배당된 금장 입장권인데 내가 당첨됐지 않는가."
"우와! 대단하십니다. 돈 주고도 살 수 없다는 금장 입장권을!"
목에 걸어둔 수건으로 젖은 손은 닦은 강 씨는 조심스럽게 입장권을 받고 살펴봤다.
"첫날부터 입장할 수 있는 금장 입장권이라니···."
그러면서 침을 꿀꺽 삼키는 강 씨를 보고 조합장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어때? 가고 싶은가?"
"에이, 놀리지 마십시오. 저 같은 놈이 어찌···."
"자네가 어때서? 우리 조합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자네야말로 우리 마을의 자랑 아닌가?"
"쑥스럽습니다. 조합장님."
조합장의 칭찬에 강진만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손으로 만지고, 몸으로 하는 일은 자신 있었지만, 새로운 학문을 공부하는 재주가 없었다.
또한 호흡기 질환이 있었기에 손발만 달려 있으면 받아준다는 공장에 취직하지도 못했다.
포기하고 농업협동조합에 가입하여 농사를 짓고 있는 강진만이지만, 새로운 기물에는 관심이 많았다.
"아무튼 빨리 가서 씻고 평양갈 채비를 하게?"
"네?"
"우리 조합원들이 모두 자네를 추천해서 자네를 보내기로 했네?"
"저, 정말입니까?"
조합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선방송공사뿐만 아니라 지역 민영방송에서도 박람회 개체 소식을 매일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박람회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우리 지역에서는 자네와 옆 동네 정 씨를 보내기로 했네. 그러니 어서 서두르게나."
"고, 고맙습니다. 조합장님."
산업 발전과 진흥을 위해 농업, 공업에 필요한 새로운 기물들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박람회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이 보고 싶어 했기에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금, 은, 동, 철 4가지로 입장권을 나누었다.
"금장 입장권이면 언제든지 입장할 수 있다고 하지만, 첫날이 제일 볼 것이 많은 것 아닌가. 그러니 서두르게."
"알겠습니다. 조합장님."
"갔다 오면 설명도 해야 하니 꼼꼼히 잘 보고 오게. 참! 이것도···."
"그게 무엇입니까?"
"조합원들이 십시일반 걷은 것이네. 여비로 쓰게."
"아이구! 뭐 이런 걸 다···."
곳간에 인심 난다고 먹고살 걱정이 없어지자, 사람들의 마음은 너그러워졌다.
지주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어서 한 번 조합에 배정된 농지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빼길 일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여유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나 같이 늙은이들이 가봐야 뭐 하겠나. 자네같이 젊은 사람이 가야 많은 것을 보고 올 게 아닌가. 그래서 좀 모았네."
받아든 흰 봉투는 가벼웠지만, 강진만은 손이 떨렸다.
틀림없이 지전(紙錢)이 들어 있을 건데, 지전의 가장 작은 단위는 1원(약 백만 원) 아니던가.
쌀과 밀 그리고 라면값은 고정되어 있지만, 구입해 달라고 뽐을 내는 기물들이 너무나 많았기에 조선의 화폐가치는 떨어지고 있었다.
기물을 사고 싶은 사람들이 더욱 열심히 일했기에 소득이 올라간 만큼 풍부해진 현금 흐름으로 돈의 가치가 떨어졌다.
그러다 보니 21세기와 비교하여 천만 원의 가치를 지닌 1원은 어느새 백만 원의 가치밖에 되지 않았다.
그만큼 조선 백성들의 소득은 엄청나게 올라 있었다.
봉투를 열어 본 강진만은 '헉' 소리를 내더니 조합장에게 몇 번이나 다시 감사를 표했다.
봉투 안에는 1원짜리 지폐가 5장이나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자네는 우리 조합 대표 아닌가. 그러니 옆 동네 정 씨에게 책잡히지 말라고 두둑이 넣었네."
"고맙습니다. 어르신."
* * *
조선 제국력 1년(1659) 8월 1일.
밀짚모자처럼 생긴 평양 두루 섬은 콘크리트와 강철 그리고 유리의 향연장이었다.
연은 이번 박람회를 계기로 조선의 발전된 모습과 강인함을 온 세상에 보여 주고 싶었다.
두루 섬 한복판에 강철탑이 우뚝 솟아 있었다.
"저 탑의 높이가 300m가 넘는다고 했나?"
"여기 안내서에는 357m로 나와 있긴 한데 더 높은 것 같은데···?"
"바닥 기초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거 아닐까?"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개최된 파리 만국 박람회의 상징물로 건축된 에펠탑의 높이인 330m보다 훨씬 높아 보이는 평양탑.
공사를 진행하는 도중에도 말이 많았다.
도대체 무엇을 만들기에 저리 높이 올라가는지 모두에게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안전과 보안을 위해 공사하는 동안에 장막을 쳐 놓았기에 그 궁금함은 더해 갔다.
박람회를 며칠 앞두고 거쳐진 장막.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폭우가 내리면 대동강 물에 잠겨 버릴 수도 있기에 박람회가 열리는 두루 섬은 환골탈태 수준으로 변해 있었다.
5m 높이의 콘크리트로 기초를 다진 평양탑의 토대는 넓기도 넓었지만, 완만한 경사가 밖으로 퍼져 있었다.
-내외 귀빈 여러분. 곧 행사가 진행되겠습니다.
-모두 자리에 착석해 주십시오.
두루섬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나오자 강진만과 정찬구는 입장권에 적힌 번호를 찾아 이동했다.
파리의 에펠탑과 모양은 비슷하지만, 4각형이 아니라 5각형으로 되어 있는 평양탑 앞에 앉은 두 사람은 신기한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야! 세상이 넓고 다양하다고 하더니···."
"저기 좀 봐! 까만 사람도 있어."
피부색에 따른 인종차별이 없던 세상이지만, 에티오피아의 사신과 상인들처럼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어? 머리카락이 황금으로 된 사람도 있어!"
"어디! 어디!"
오늘 아침에 도착한 두 사람은 생김새는 물론 피부, 머리카락, 눈동자까지 다양한 색을 가진 사람들을 태어나서 처음 보는지 흥미로워했다.
-조선 제국 박람회에 참관하러 오신 내외 귀빈 여러분.
-이제 행사를 시작하겠습니다.
10시가 되자 박람회 개최 행사가 시작됐다.
-먼저 국민의례(國民儀禮)를 진행하겠습니다.
-참석해주신 내외 귀빈 여러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주십시오.
박람회에 참가한 사람들은 모두 조선말을 아는지 안내 방송에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연한 거였다.
이제 조선말을 모르면 무역조차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조선에서 생산한 모든 제품은 조선글인 한글로 적혀 있었다.
한글을 모르면 작동조차 할 수 없었기에 무역업을 하는 사람만 아니라 조선 상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글 정도는 읽고 쓸 줄 알았다.
-일송정, 푸른 솔은······.
-백두산 천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
윤해영이 작사하고 조두남이 작곡한 선구자를 연은 개사해 애국가로 만들었다.
장엄한 노랫가락에 진취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조선 제국 애국가는 매일 라디오 방송의 시작과 끝을 알렸기에 라디오 애청자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이번 박람회의 주체인 조선전력공사를 대표해서 연이 환영사를 끝내자.
각국 사신들이 차례로 등장하여 축하사를 낭독했다.
온갖 미사여구로 이번 행사를 축하하는 사신들의 말에 참관한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손뼉으로 답례했다.
갈수록 고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행사는 떠오르는 해와 함께 어느덧 최고조에 달했다.
-마지막으로 조선 제국 황제 폐하께서 이번 박람회 개최를 선언하시겠습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황제 폐하를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조선 전통 풍악과 함께 등장한 효종은 열열히 환호하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제1회 조선 제국 박람회 개최를 선언합니다.
"""우와와···!"""
축포와 함께 사람들의 함성으로 두루섬이 들썩거렸다.
-모두 진정하시고 동쪽을 바라보아 주십시오.
이제 행사가 끝났다고 생각한 사람들.
박람회를 구경하려고 이동하려 했다.
그런데 안내 방송이 나오자 동시에 동쪽을 바라보았다.
두루섬과 연결된 쑥섬에는 평양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대관람차가 있었고, 대관람차가 돌아가면서 화려한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우와아!"""
그런데.
-부우웅!
멀리 하늘에서 우렁찬 엔진 소리와 함께.
"저, 저건 뭐야!"
"새다! 붕새다!"
눈으로 보기에도 거대한 새가 굉음과 함께 평양탑을 향해 날라오고 있었다.
휴가를 받아 고향으로 가던 창공이는 기차 안에서 뜻밖의 말을 들었다.
'하늘 경비대가 창설된다는 데 지원할 거야?'
'에이, 그 위험한 걸 왜 해? 나는 땅이 좋아.'
'그래도 대우가 좋잖아?'
'아무리 대우가 좋아도 난 오래 살고 싶어.'
경비대 대원들만 타고 있는 전용칸이라 극비 사항만 아니면 대원들은 스스럼없이 말을 주고받았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하늘 경비대라니?'
'어, 듣지 못했소?'
'제가 서역에서 근무하고 있어서···.'
'아, 그랬군요. 여기 있으니 보고 지원하고 싶으면 지원하시오. 다른 건 몰라도 대우 하나는 최고일 거요. 고양이 목숨이라면 몰라도 너무 위험한 일이라 우리는 포기했소.'
조선전력공사에서는 비행기 개발과 함께 비행기를 조종할 조종사를 대원들을 상대로 모집하고 있었다.
하지만 응시자는 거의 없었다.
흥미를 느끼고 응시하러 온 대원도 하늘을 난다는 말에 겁을 집어먹고 포기하고 돌아갔다.
지옥 같은 전쟁터에서 실전을 겪은 대원들이지만, 하늘을 난다는 말은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두려움에 거짓부렁으로 치부했다.
그만큼 하늘은 땅에서 태어나 땅으로 돌아가는 인간에게는 아직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런데도 창공이는 지원했고, 합격했다.
11m 높이의 공포탑에서 뛰어내릴 때는 죽고 싶을 만큼 겁이 났지만, 뛰어내린 후 느껴지는 흥분과 감동은 너무나 달콤했다.
훈련을 마치고 처음 본 비행기는 놀라웠다.
잠자리처럼 생긴 비행기라는 기물이 하늘을 난다니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감동과 흥분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험 비행을 하면서 사고로 인해 지원자들이 하나둘씩 사라져 갔다.
운 좋게 오작동을 하는 비행기에서 낙하산을 메고 탈출 한 대원도 극심한 공포를 느꼈는지 포기하고 그만두었다.
결국 창공이 홀로 남게 되었다.
'잘 할 수 있나?'
'멸!'
'너는 우리의 마지막 희망이다. 운이 좋은 너라면 잘해 낼 수 있을 거다. 믿는다.'
'멸!'
박람회가 다가오고 있었지만, 남은 시험 비행사는 창공이밖에 없었다.
창공이까지 포기하면 이번 행사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다행히도 창공이는 포기하지 않았다.
오래전 지원군으로 왔던 무장열차의 감동을 잊지 않았기에 창공이는 꼭 해내고 싶었다.
조종간을 꽉 손에 준 창공이는 서서히 출력 조정기를 앞으로 밀었다.
"난! 해낼 수 있다! 난! 운이 좋은 창공이야!"
힘찬 엔진 소리와 함께 창공이가 탄 복엽기가 평양탑을 스치듯 지나가더니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우아···!"""
엔진 소음에 묻혀 함성은 들리지 않았지만, 창공이는 흔들리는 조종간을 꽉 붙잡고 잡아당겼다.
그러면서 연막기의 스위치를 올렸다.
꼬리 부분에 설치된 연막기에서 경유가 뿜어져 나왔다.
연막기로 사용되는 디젤유가 환경에 해롭다는 말이 있지만, 그걸 따지는 사람은 없었다.
복엽기가 지나가면서 그려지는 커다랗고 하얀 둥근 원.
사람들은 경악했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자 다시 함성을 지르며 열광했다.
삼발이에 이어 사발이까지 판매하고 있는 조선이기에 엔진에서 나는 연기는 엔진에 문제가 있어서 발생한다는 것쯤은 상식이었다.
그런데 처음 본 비행기란 기물은 흰 연기를 뿜어내도 문제없이 날아다녔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창공이의 복엽기.
둥근 원이 이어 '번개' 표시도 그려냈다.
조선 제국 박람회 개최 첫날.
창공이의 복엽기는 주인공이 되었다.
박람회 개최행사에서 가장 나중에 등장한 비행가를 본 사람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곳곳에 설치된 공중 전화통을 붙잡고 자신의 본 게 진짜라며 항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밤이 되자 평양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밝게 빛나는 평양탑을 지켜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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