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190화 (190/275)

190. 조선 제국 박람회(3)

조선 제국력 1년(1659) 7월.

박람회를 한 달 앞두고.

한양에서는 치열한 외교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사연이 없는 사람이 없듯이.

사연이 없는 나라가 없었다.

각양각색의 이유로 조선에 도움의 손을 내미는 사신들.

자국의 안정과 이익을 위해 필사적이었다.

원조를 바라는 나라가 대부분이었지만, 영토분쟁 때문에 전쟁을 벌이고 있는 나라도 있었다.

"폐하! 우리 무굴제국은 저 간악한 준가르 놈들의 침략에 피가 마를 날이 없습니다. 부디 가엽게 여기시어 도움을 주십시오. 저 더럽고 냄새나는 놈들을 혼내 주시고 저놈들이 제 조국을 두 번 다시 침략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냄새나다니? 어불성설(語不成說)이요. 냄새나고 더러운 건 무굴제국 아니오?"

"번듯한 왕궁도 없는 준가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소만."

"뭐, 뭐라고요?"

두 나라의 사신은 서로를 비방하며 설전을 벌이려 했다.

하지만 대신들이 가만있지 않았다.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폐하 앞에서 언성을 높이다니, 이곳은 동방예의지국인 조선이란 사실을 잊어버린 게요?"

"제가 잠시 실수했습니다."

"순간 자제를 할 수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준가르 왕국 사신이 재빠르게 사죄를 표하자, 무굴제국 사신도 고개를 숙였다.

그 틈에 말을 꺼낸 준가르 왕국의 사신.

"위대하신 대조선 제국의 황제시여···!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폐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우리 준가르 왕국은 맹수들이 득실거리는 아무도 살지 않는 빈 땅을 개척했습니다. 그런데 무굴 놈들이 우리가 개척해 놓은 땅을 노리고 침략을 해왔습니다. 이러니 어찌 우리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폐하! 우리 준가르 왕국은 대조선 제국처럼 평화를 사랑하고 인류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부디 현명한 판단을 바라옵니다."

조선말을 조선인보다 더 유창하게 하는 준가르 왕국의 사신이 속사포같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꺼내 들었다.

이에 맞서 무굴제국 사신도 열변을 토했다.

사신들은 서로 자국의 정당성을 호소하며 효종의 판단이 자국에 유리하게 내려지도록 간절히 호소했다.

예맥대륙 남역.

서쪽에 있는 무굴제국과 준가르 왕국.

서로 자국 영토를 늘리기 위해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고 있었다.

히말라야산맥 남쪽.

아삼 지역을 중심으로 세를 넓혀가던 준가르 왕국.

말박이 특유의 빠른 기동성과 조선에서 사 온 무기로 벵골지역을 점령했다.

하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벵골만 북쪽, 지구에서 가장 거대한 갠지스 삼각지를 넘어 캘커타(Kolkata)까지 점령했다.

이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무굴제국.

급히 병력을 모아 대응했다.

이걸 두고 준가르 왕국은 무굴제국이 자국을 침략했다고 우기는 거였다.

"진정들 하시오!"

묵직하고 준엄한 효종의 말에 사신들은 고개를 수그렸다.

호통에 목이 마른 지 입맛을 다셨다.

"우리 조선은 타국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오?"

"하오나 폐하! 준가르 왕국은 대조선 제국의 속국이옵니다. 부디 대조선 제국을 따르는 준가르 왕국을 내치지 마시길 바라옵니다."

조선의 예법과 궁중 말투를 흉내 내는 준가르 왕국 사신의 말에 효종은 발끈했다.

"속국이라니! 우리 조선에 속국이란 없소! 그러니 그대는 표현에 신중하시오!"

"황공하옵니다. 폐하. 두 번 다시 실수하지 않도록 하겠사옵니다."

효종의 호통에 무굴제국 사신의 눈꼬리가 가늘어졌다.

준가르 왕국의 사신이 효종에게 혼이 나자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한 거였다.

차마 대놓고 기쁨을 표현하지 않았지만, 무굴제국의 사신은 두 손을 붙잡으며 아주 공손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폐하! 우리 무굴제국도 대조선의 형제가 되고 싶습니다. 폐하!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

"그건 아니 될 일이오. 그대의 나라는 우리 조선에 빚이 있지 않소?"

"네? 빚이라니요? 우리가 무엇을 빚졌단 말입니까?"

"흠! 벌써 잊었단 말이오?"

"무, 무엇을 말입니까?"

"그대의 나라가 우리 조선을 침공하지 않았소? 얼마나 지났다고 모른 척한단 말이오?"

"그, 그건···."

장마가 다가오는지 높은 습도로 인해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계절이지만, 대전은 상쾌하기만 했다.

그런데도 비 오듯 땀을 흘리는 무굴제국의 사신.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는지 사신은 준비된 것을 꺼내 들었다.

"폐하,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 일은 정신이 오락가락하신 전 파디샤께서 행하신 일입니다. 그러니 노여움을 푸십시오."

"당하고도 가만히 있어라···? 좋은 말이군. 좋은 말이야."

효종은 한쪽에 서 있는 연을 보더니 살짝 미소를 지었다.

연 또한 효종의 미소에 한쪽 눈을 찡그려 응답했다.

"그렇담! 우리 조선이 귀국을 침략해도 된다는 뜻이오?"

"아, 아닙니다. 폐하. 새로 파디샤에 오르신 아우랑제브께서 사죄의 뜻으로 보상금을 가져왔습니다. 이 목록을 보십시오."

"흥! 어림도 없소! 그까짓 보상금으로 우리 조선군이 흘린 피를 감당하길 바라다니···, 그대의 파디샤는 우릴 뭘로 보는 게요? 금은보화 따위는 우리 조선에 태산같이 쌓여 있다는 걸 모르오?"

"아, 알고 있습니다. 폐하."

"알고 있다니 말해보시오. 우리가 그대의 나라를 침공하지 않아야 하는 이유를 말이오."

입을 열려다 다시 다물며 쩝쩝거리는 무굴제국의 사신.

가지고 온 두루마리 중 하나를 꺼내 들었다.

"폐하, 이 지도를 보십시오. 파디샤께서 사죄의 뜻으로 대조선에 이 땅을 넘기고 싶어 합니다. 부디 받아 주십시오."

"그래요? 어디 봅시다."

엄청난 영토를 확보한 상태인데도 땅이란 말에 효종의 눈이 커졌다.

이를 본 사신은 힘을 실어 대답했다.

"네, 폐하!"

하지만 지도를 살펴본 효종은 인상을 썼다.

"이곳이 어딘지 모르겠소. 그러니 잘 아는 태자와 상의해 보시오."

태자와 상의해 보라는 효종의 말에 썩은 표정으로 변한 무굴제국의 사신.

그와 다르게 준가르 왕국의 사신은 입이 찢어져라 밝게 미소 지었다.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

모든 게 전날 들었던 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은가.

각국에서 온 사신들이 중재를 원하며 호소한다는 말을 듣고 한양으로 온 연은 즉시 조서원의 보고를 받았다.

'무굴 놈들이 준가르가 점령한 땅을 우리에게 넘기려 한단 말이지?'

'네, 사장님. 정보에 의하면 새로 파디샤에 오른 아우랑제브가 휴전을 원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준가르 왕국이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곳을 조선에 넘겨 완충지대로 활용하고자 한다고 합니다.'

'이놈이 미쳤구나. 감히 우릴 방패로 삼으려 하다니.'

코끼리까지 동원하여 상병을 운영하는 무굴제국이지만, 말박이 준가르 용사들을 당해낼 순 없었다.

말을 타고 내달리며 총을 쏘고 창을 던지는 준가르 용사들은 거대한 코끼리를 보고 놀라지 않았다.

'우리는 저 코끼리도 먹어 치우는 호랑이를 수도 없이 잡은 준가르의 용사들이다! 오늘은 저 코끼리로 잔치를 벌이자!'

백성을 착취하는 데만 열을 올렸던 무굴제국의 병사들은 밀리고 밀리고 또 밀렸다.

어느새 갠지스강과 손강이 만나는 파트나(Patna)까지 빼앗긴 무굴제국은 아예 그곳을 조선에 넘길 계획을 짰다.

아버지인 샤 자한 1세를 몰아내고 파디샤에 오른 아우랑제브가 불안한 내정을 바로 잡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 * *

연을 사이에 두고 탁자 양쪽에 자리한 두 나라의 사신들.

서로를 바라보며 불꽃티듯 노려보았다.

그런 그들을 보고도 개의치 않고 내용을 검토하던 연이 눈을 감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말을 꺼냈다.

"우리 조선은 타국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으실 겁니다."

"전하, 우리 준가르 왕국은 대조선 제국의 우방국입니다."

"그건 우방국이라 해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하지만 전하! 적에게 침공을 받을 시에는 도움을 준다는 조약은 어찌 된 겁니까?"

"어허! 목소리 좀 낮추시오. 싸우자는 게 아니지 않소."

"죄, 죄송합니다. 전하."

연은 일부러 큰소리로 준가르 왕국 사신을 다그쳤다.

누가 보더라도 공정을 기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두 나라가 합의하고 중재를 요청했으니 평화를 원하는 조선이 나서기로 했습니다. 그리니 합의가 끝나면 지키겠다고 먼저 약조해주시오."

"약조하겠습니다. 전하."

"전하, 따르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이걸 잘 보시오."

연은 두 나라 사신들이 볼 수 있도록 탁자 위에 지도를 활짝 폈다.

"무굴제국 사신은 들으시오. 이곳은 이미 준가르 왕국이 점령하고 있는 지역인데 인제 와서 이곳을 조선에 넘긴다고 하는 연유가 무엇이오?"

"그건 백성들을 위한 것입니다. 지금처럼 전쟁이 지속되면 고통은 백성들이 받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파디샤께서 백성들을 위해 큰 결단을 내리셨습니다."

"그 결단이란 게 이곳을 우리 조선에 넘기는 것입니까?"

"네, 전하. 세상에 둘도 없는 곡창지대지만,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 백성들을 생각해서 포기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받아 주시고 전쟁에서 불쌍한 백성들을 구해 주십시오. 전하!"

무굴제국 사신의 간절한 호소에 연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지그시 눈을 감고 한참을 생각하던 연이 말을 꺼낸 건 차가 다 식은 후였다.

"하나 묻겠소."

"말씀하십시오. 전하."

"무굴제국이 이곳을 조선에 넘기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겠죠?"

"맞습니다. 전하."

효종이나 연이나 준가르 왕국 사신에게는 틈만 나면 호통을 쳤다.

그런데 다정하게 물으니 무굴제국의 사신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평화를 원하는 대조선이 이곳을 차지한다면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부탁합니다. 이곳을 조선의 영토로 삼으시고 평화를 지켜주십시오. 전···하···!"

"알겠소. 그대의 파디샤가 원하는 게 평화란 말이지요?"

"네, 전하. 우리 무굴제국이 원하는 게 바로 그것입니다. 백성들이 안전하게 살 수 있도록 어서 빨리 전쟁을 끝내야 합니다."

"전쟁만 끝내면 되는 거요? 다른 건 없소?"

"그것 말고 바라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휴전이든 종전이든 어떡해서든 당장 전쟁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무굴제국 사신은 몇 번이고 다시 말했다.

전쟁을 끝낼 수만 있다면 영원히 조선을 따르겠다고 말하는 무굴제국의 사신.

그만큼 무굴제국의 사정은 좋지 않았다.

샤 자한 1세가 세상을 떠난 아내의 무덤을 짓는다고 엄청난 국고를 수십 년에 거쳐 낭비해버린 상황.

아버지인 샤 자한이 할아버지인 자한기르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듯이 아우랑제브도 아버지를 쫓아내고 제위에 올랐다.

다른 게 있다면 샤 자한은 반란에 실패했지만, 아우랑제브는 반란에 성공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티무르 제국의 전통 때문이었다.

칭기즈칸의 후손임을 자처하는 티무르 제국은 장자 계승 원칙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황제가 바뀔 때마다 후계자들끼리 서로 싸우며 황위 계승 전쟁을 벌였고 이긴 사람이 다음 황제에 올랐다.

티무르 제국을 계승한 무굴제국이기에 수도 없이 계승 전쟁을 벌여왔고, 그럴 때마다 제국의 백성들은 죽어 나갔다.

그런데도 백성들 때문이라니.

연은 잘 됐다고 생각하며 마지막 일침을 가했다.

"다시 묻겠소. 전쟁만 끝낼 수 있다면 이곳은 필요 없는 것 맞습니까?"

"네, 전하. 맞습니다."

"그럼, 이곳은 그냥 준가르 왕국에 넘기도록 하시오."

"네? 뭐, 뭐라고 하셨습니까? 전하!"

"이곳을 준가르 왕국에 넘기라고 했습니다. 뭐가 잘못되었습니까?"

"아니, 어찌···?"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원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긴 했지만···."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판단한 무굴제국 사신은 땀을 훔치며 간절한 눈빛으로 연을 바라보았다.

"우리 조선은 이곳을 관리할 여력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비워두자니 백성들이 고통받을 게 뻔해 보입니다. 그러니 차라리 준가르 왕국에 넘기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어차피 우리가 조선에 준다고 했으니 우리가 준가르 왕국에 다시 넘겨도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 전하!"

"뭐, 잘못된 것이라도 있습니까?"

"잘못돼도 크게 잘못되었습니다. 붙어 있다 보면 또 싸우게 될 것 아닙니까?"

연은 실실 웃고 있는 준가르 왕국 사신에게 물었다.

"우리 조선이 중재에 나섰는데, 어떡하시겠습니까? 약조를 지키겠습니까?"

"어찌 감히 대조선에서 정해준 약조를 어길 수 있단 말입니까? 당연히 지키겠습니다."

"이곳을 경계로 국경을 정하고 더는 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다는 말이죠?"

"그렇습니다. 전하. 우리 준가르 왕국은 언제나 대조선을 섬기고 따랐습니다. 그러니 이런 물음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만족한 듯 환하게 웃는 준가르 왕국의 사신.

그와 다르게 '당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똥 씹은 얼굴을 하고 있는 무굴제국의 사신.

희비가 엇갈리는 가운데 연은 빠르게 상황을 정리했다.

중재를 원하는 나라가 이들 두 나라만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빠르게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연이 정한 국경선을 인정하고 평화 조약에 서명하는 두 나라의 사신들.

표정은 달랐지만, 합의된 조약에 만족했다.

어차피 현재 세력권을 보장받았기에 딴소리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끝난 게 아니었다.

"무굴제국이 조선을 침략했던 일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다시 생각해 보세요."

"네? 보상으로 땅을 넘기지 않았습니까?"

"그건 준가르 왕국이 점령하고 있는 지역이잖습니까? 그러니 넘겼다고 할 순 없는 것입니다."

"저, 전하···! 이러시면, 저는, 저는 어쩌란 말입니까?"

다급히 외치는 무굴제국 사신의 말에도 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대의 파디샤가 설마 그대를 어찌하겠습니까? 우리 조선을 앞으로도 그대와 협상을 할 것이라고 그대의 파디샤에게 전해주세요."

"감사, 감사합니다. 전하."

연신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마워하는 무굴제국의 사신을 두고 연은 다른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곳에는 자칭 '지팡구 왕국'이라는 곳에서 온 사신이 대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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