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187화 (187/275)

187. 중남미 자원 탐사와 개발

의외로 태양전지판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했다.

단순히 구리판을 철판 위에 놓고 구워 이산화 구리판으로 만들면 되는 거였다.

양극재는 그냥 구리판을 사용하면 되고.

음극재는 이산화 구리판으로 변환된 판을 쓰면 된다.

전해질은 물과 소금을 3:1로 섞어 만든 소금물이면 충분하다.

반도체 특성을 갖게 된 이산화 구리판은 태양 빛을 받으면 전자를 방출한다.

방출된 전자는 소금물로 된 전해질을 따라 이동하면서 배터리처럼 전류를 내보낸다.

따라서 두 극재 사이에 소금물만 채워 넣으면 간단한 태양전지판이 완성된다.

하지만 이대로는 쓸 수가 없다.

출력이 마이크로 암페어 정도로 너무 낮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배터리는 이산화 구리 태양전지판처럼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만 있으면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이것도 출력이 너무 낮아서 용량과 출력을 높여야 한다.

양극재와 음극재를 촘촘히 끼워 넣고 직렬로 연결하면 해결되지만, 두 극재가 합선되지 않게 분리막이란 것을 집어넣어 차단할 필요가 있다.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그리고 출력을 높이기 위해 추가된 분리막.

이 4가지가 배터리의 4요소이다.

아무튼 연은 문식이가 지켜 보는 가운데 구리를 이용한 태양 전지판을 만들어 보여 주었다.

"어때? 간단하지?"

"그럼 뭐하냐? 전구에 불이 안 들어오는데."

"그거야 판을 여러 개 붙이면 해결돼."

"알았으니까 빨리 만들어 줘. 우리 백성들도 문명의 혜택 좀 누리자."

"어? 이건 너희들이 직접 만들어 쓰라고 이렇게 보여 준 건데. 이 정도는 너희들도 만들 수 있잖아?"

"그래?"

"응. 일단 이걸 만들어서 쓰고 있어. 진짜 좋은 건 지금 공장을 크게 짓고 있으니 조금만 기다려."

"알았다. 그런데 배터리는 어떡하고? 어차피 전구는 밤에 쓰는 거잖아."

공식이와 함께 수다를 떨었던 세월이 길었던 문식이라 원리는 모르지만,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걱정 마! 왕창 가져왔으니. 저 뒤에 싣고 오는 것들이 모두 태양전지와 배터리야."

"그래? 고맙다."

"임시로 쓰라고 가져온 거니 너무 기대하지는 말고."

연은 아크릴로 짜 만든 이산화 구리 태양전지와 배터리 그리고 10w 저전력 전구를 왕창 가지고 왔다.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고산 지대에 위치한 아파치 왕국의 도시들.

햇볕이 따갑고 선선한 곳이기에 태양광 발전으로 전기를 쓰기에는 최적이었다.

빛 투과율이 93%나 되고, 유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아크릴로 만든 태양 전지판의 출력은 형편없었다.

하지만 낮에 태양광으로 배터리를 충전하면 밤새도록 10w 전구에 불을 밝히는 데 충분했다.

* * *

일식이는 내친김에 유럽의 침략자들을 모두 몰아내기로 했다.

병수가 타고 온 함선으로 살바도르까지 이동한 일식이는 그곳을 점령하고 원주민과 흑인 노예들을 해방했다.

그러는 사이.

광식이와 연구원들은 연이 준 지도에서 표시해둔 위치로 이동하여 광물들을 조사하고 있었다.

"팀장님. 이것 보십시오. 저기서부터 저어기까지 그 어느 곳을 파도 전부 구립니다. 함량이 좀 낮긴 하지만 노천 광산이나 다름없기에 생산성은 충분합니다."

21세기에도 세계 구리 매장량 중 30%가 묻혀 있다는 칠레.

그곳은 자원의 보고였다.

"좋아! 이곳은 진철이 네가 전담하여 개발 계획을 세우도록 해라. 난 다른 곳으로 가봐야 한다."

"리튬 때문입니까?"

"그렇지. 차세대 배터리를 만들려면 리튬이 필요한데 사장님 말씀으로는 이곳에 있는 염호(소금호수)를 이용하면 쉽게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예맥 대륙에서도 리튬 같은 희토류는 곳곳에 묻혀 있었다.

하지만 분리해 내기 위해서는 엄청난 물이 필요했고, 그에 따른 환경 오염을 피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우유니 사막 주변에 있는 소금 호숫물을 농축하면 소금과 함께 수산화리튬을 어렵지 않게 얻을 수 있다.

마그네슘 같은 불순물 농도 또한 낮아 생산성이 좋았다.

"그럼, 앞으로 전기차를 생산해서 팔 수 있는 겁니까?"

"그렇지. 리튬으로 배터리를 만들면 용량과 출력, 효율이 높으니 굳이 덜덜거리고 냄새나는 삼발이를 탈 필요가 없지."

"판매되면 저부터 사야겠습니다."

"왜? 폭주 뛰게?"

"에이, 제가 어디 폭주족입니까? 단지 차를 좋아할 뿐입니다."

고대부터 젊은이들의 특이한 행동은 말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청소년기에 겪는 사춘기가 인류 발전의 원동력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돌발 행동은 창조와 연결되어 있었기에 무조건하지 말라고만 할 수도 없었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만 않으면 그냥 모른 체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제 경찰로 불리는 포졸들의 눈을 피해 삼발이를 구입한 젊은이들은 따로 모여서 폭주를 일삼고 있었다.

눈 딱 감고 2년만 노력하면 삼발이를 살 수 있는 2원을 모을 수 있기에 젊은이들은 놀고먹어도 되지만, 열심히 일했다.

그래서 모은 돈으로 삼발이를 사서 방방 거리고 다녔다.

처음 출시된 삼발이는 10원이나 했다.

하지만 조선전력공사에서 엔진만 달린 기본구조를 1원에 팔기 시작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일부 손재주가 탁월한 사람들이 뼈대만 달린 삼발이를 사서 취미 삼아 개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너도나도 자동차 상사를 차려 독특한 모양의 삼발이를 만들어 싼값에 팔았다.

그래도 50전(약 500만 원) 이상 남았기에 삼발이 개조 회사들은 갈수록 많아졌다.

그와 더불어 선반과 밀링 등 공작기계를 갖추고 가공해주는 공업사들이 호황을 누리고 있었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단단하지만 잘 부러지는 무쇠로 된 농기구를 쓰던 백성들.

이제는 무녹쇠(스테인리스)로 만든 밥그릇과 수저, 젓가락이 아니면 쓰지를 않았다.

발전해 가는 조선의 과학 기술과 함께 백성들 또한 삶의 질을 따지기 시작했다.

"아버지! 얼마 하지도 않는 칫솔 다 달았는데 버리고 새것 쓰세요."

"아직 솔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아깝게 왜 새 걸 써?"

"다 누웠잖아요. 그러다 충치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요?"

"그런가?"

"사탕을 끊든지 아니면 이빨을 자주 닦으세요. 그래야 충치가 생기지 않는다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알았다. 잔소리 좀 그만해라. 어찌 된 게 너는 너희 어머니보다 더하냐?"

평양에서 박람회가 개최를 위한 일꾼을 모집한다는 소식에 온 가족을 이끌고 평양으로 이사 온 김돌손은 어이가 없었다.

춘궁기인 봄만 되면 피죽도 없어 굶기가 일쑤였던 시절이 바로 엊그제 같았다.

그런데 먹을 것은 물론이고 각종 기물들이 싼값에 쏟아져 나오자 사람들은 아낄 줄 몰랐다.

먹고 살 집이 걱정 없는 세상.

하루만 일해도 생필품 따위는 쉽게 살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낭비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힘든 세상을 살아온 김돌손은 그럴 수가 없었다.

"잔소리를 할 만하니까 하는 거죠."

"이놈이!"

"아버지가 고생해서 번 돈이니 좀 쓰고 사세요. 아껴봤자 똥 된다는 말 못 들었어요?"

"에이! 귀찮다 저리 가거라."

신세대(新世代)라 불리는 큰딸의 잔소리가 짜증이 난 김돌손은 손을 휘익 저었다.

자신과 다르게 아는 것이 많은 자식들.

어리다고 무시할 순 없었다.

"우리 땐 안 그랬는데···."

어디 감히 어른에게 말대꾸를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집 걱정이 없기에 버는 족족 쓰기 바빴다.

전구로 인해 대낮처럼 환한 밤이 되면 식사를 마친 가족들은 라디오 방송을 들으며 웃고 즐기다가 하루를 마쳤다.

더는 굶주리는 사람이 없어진 세상.

모두가 자신의 삶을 위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 두루섬에 탑이 세워지고 있잖아요?"

"그런데 왜?"

"그곳 아래 상점들을 분양한다고 하던데···."

"걱정마라. 내가 서두른 덕분에 한 칸 분양받기로 계약해 놓았다. 그것만 얻으면 앞으로 나도 좀 쓰고 살련다."

"참말입니까? 아버지."

"그럼!"

"아버지, 제가 안마해 드릴게요."

고사리 같은 자식들의 손에 몸을 맡긴 김돌손은 껄껄 웃으며 행복한 하루를 마무리했다.

* * *

아파치 왕국 서울에 도착한 연 일행은 화려하게 준비한 환영 행사를 마치고 각자 맡은 일을 찾아 곳곳으로 이동했다.

아파치 전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지형을 조사하던 연구원들은 연신 감탄을 내뱉었다.

"이곳은 수력발전소를 만들 곳이 넘쳐나네."

"그렇다고 너무 서두르진 마. 최적의 위치를 찾아야 해. 그게 우리가 할 일이잖아."

"이미 찾았잖아. 그곳에 수력발전소를 지으면 한동안 전력 걱정은 없을 거야."

"그러긴 하지만 더 좋은 곳은 없을까?"

"일단 그곳만 한 곳은 없으니 그곳에 발전소를 짓기로 하고, 더 좋은 곳이 있으면 추가로 지으면 돼."

"건설비가 추가로 들어가잖아?"

"아파치 왕국에 있는 건 돈뿐이잖아. 그러니 네가 걱정할 일이 아니야. 그리고 우리와 같은 예맥 민족인데 많이 만들어 주면 좋은거 아냐?"

연도 느꼈지만, 연구원들이 조사한 서울의 지형은 아주 독특했다.

평평한 판상형으로 된 지반 위에 자리 잡은 서울.

남쪽에 거대한 서울 호수(Lake Chapala)가 있기에 물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도시 끝 북쪽에는 깊은 계곡을 따라 흐르는 강이 있기에 도시에서 쓰고 남은 물을 이용해 수력 발전을 하기에도 용이했다.

연에게 서울 발전 계획을 들고 있던 문식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하수돗물을 이용해 발전을 한다고?"

"맞아. 북쪽에 흐르는 서울 강이 도시보다 무려 400m 이상 낮잖아. 그러니 굳이 아까운 물을 낭비할 필요가 없지. 그냥 하수돗물을 걸러서 발전하면 돼."

"그래도 되나?"

"안 될 게 뭐가 있어?"

전체 인구가 500만 명뿐이 안 되는 아파치 왕국이지만, 서울에 사는 사람만 무려 50만 명이나 되었다.

한양과 비슷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 사는 곳이지만, 풍부한 수자원과 농지가 있기에 먹고 사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이렇다 할 관개시설이 없기에 도시 전체가 엉망이었다.

스페인 침략자들이 살았던 곳 말고는 원시 상태 그대로였다.

불규칙하게 들어선 나무집들은 보기에도 좋지 않았다.

"먼저 상수도와 하수도부터 만들자. 구리가 넘쳐나니 상수도는 구리관으로 공사해도 될 거야."

"그래도 돼?"

"어차피 모든 땅이 네 거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그러니 상하수도를 만들면서 전기와 가스관도 묻어 버리자. 그러면서 도시를 새롭게 다시 구성하면 보기에도 좋을 거야."

"흠···."

연의 말에 문식이는 이마를 짚고 생각에 빠졌다.

한참 고심하던 문식이가 물었다.

"우리가 가진 것 가지고 되겠어?"

"남지!"

"정말?"

"그럼. 이곳은 자원의 보고잖아."

"그래도···."

조선에서 가져온 기물들이 얼마의 가치로 책정된 지 모르기에 문식이는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공식이와 친하다고 하지만, 나라 대 나라의 일이라 헐값에 달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알아서 캐갈 테니 너는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대신 길도 내주고 농지도 조성해 줄게. 물론 철도도."

"고맙다."

연의 손을 덥석 잡은 문식이의 눈에서 눈물방울이 맺혔다.

석기 시대와 같은 북미 인디언 마을에서 태어난 문식이.

아파치 부족을 괴롭히는 다른 부족을 피해 남하하면서 부모를 모두 잃어버렸다.

생을 마감하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그만큼 미래의 지식을 가진 문식이가 살기에는 힘든 세상이었다.

어찌어찌 강철을 만들 수 있어 왕국까지 세웠지만, 공허하기만 했다.

그러던 중 들려 온 공식이의 소식.

친형제보다 더 살갑게 지낸 사이여서 그런지 바리바리 싸 들고 나타났다.

하지만 무턱대고 손을 벌릴 수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알아서 해주다니.

고마웠다.

정말 고마웠다.

연이 웃자 문식이도 따라 웃었다.

"너 그러다 똥꼬에 털 난다."

"털 나도 좋아."

눈물을 훔친 문식이는 환하게 웃었다.

이미 수도 없이 해본 도시 개발.

연구원들의 설계에 따라 계획이 세워졌다.

5년 단위로 계획된 '서울 개발 계획'은 총 5단계였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경제 개발 5개년 계획과 많은 부분에서 달랐다.

"어때? 괜찮겠어?"

"물론이지. 우리가 겪었던 일을 생각하면 이게 맞아."

연의 물음에 문식이는 고개를 끄덕여 승낙을 표했다.

"그러긴 하지."

"불타는 금요일이 진짜 불에 탈 정도로 더웠으니···."

"덥기만 하면 다행이었지. 세상이 망한다고 별별 사이비 종교들이 난리까지 쳤잖아."

"맞아! 그랬었지."

"그래서 너와 나를 보낸 건지도 몰라."

문식이는 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바뀌지 않았구나."

"그러는 너는?"

"나야 많이 바뀌었지. 이 손에 사람 피를 얼마나 많이 묻혔는데···."

손바닥을 펴 바라보던 문식이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어떤 세상을 살아왔는지 짐작이 갔기에 연은 그런 문식이의 손을 마주 잡았다.

"앞으로 너와 내가 잘해나가면 될 거야."

"그럴까?"

"그렇게 되도록 해야지. 다시 사는 인생인데 뭔가는 하고 떠나야 하지 않겠어?"

"맞아! 잘 부탁한다."

"나에게 떠맡겨 놓고 너는 아방궁에서 지내려고? 어림도 없지."

"좀 봐주라!"

"하는 것 봐서."

연은 문식이 덕분에 생각한 세상을 훨씬 빠르게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단지 걱정되는 게 있다면 어디에 숨어 있을지 모를 야코프뿐이었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만 알아도 되는데···.'

야코프 덕분에 엄청난 영토와 백성을 얻었지만, 그가 생각하는 바를 모르기에 안심할 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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