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182화 (182/275)

182. 아파치 왕국(3)

공식이가 야코프에 관해 이야기하는 동안 감탄과 놀라움을 동시에 표하며 듣고 있던 문식이가 물었다.

"틀림없네. 그러니까 네가 생각하기로는 그자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넘어왔다는 말이야?"

"가정이긴 한데 그것 말고는 설명이 안 돼."

"왜 설명이 안 돼? 초자연적 현상으로 넘어 올 수도 있는 거잖아?"

문식이의 말에 공식이는 난감하다는 손짓을 했다.

"그럴 수도 있지만, 왜 우리 둘에게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우린 아무것도 한 게 없잖아?"

"그러긴 한데···, 그래도 그자가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게 한 원인 제공자라 보긴 힘들지 않아?"

"물론 단정 짓는 건 아니야. 그래서 계속 추적하고 있는데···."

"아직 찾지 못한 거야?"

"응. 신대륙으로 넘어간 것까진 확인했는데 그 뒤로 행적을 놓쳤어."

팔짱을 끼고 묵묵히 뭔가를 생각하던 문식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물었다.

"그러니까 오대호를 건너 북서쪽으로 간 것 같단 말이지?"

"응. 그래서 북쪽 해안에서부터 수색하며 내려오는 중인데 흔적 비슷한 것도 발견하지 못했데."

"당연한 거 아니야?"

"뭐가 당연해?"

"로키산맥이 막고 있잖아! 넘어갈 수 있는 통로를 알고 있다면 모르지만, 모른다면 포기하지 않겠어? 아니지. 넘어갈 이유가 없지. 네가 뒤쫓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굳이 무리해서 산맥을 넘어 서해안으로 갈 이유가 없지. 내 생각에는···."

"다코다나 몬태나에 정착한 것 같다고?"

"아니. 아마도 이곳에 자리 잡은 것 같은데."

문식이가 가리키는 지도의 위치는 한참 남쪽인 콜로라도였다.

"생각해봐. 한두 명도 아니고 수백 명. 어쩌면 수천 명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무작정 이동하겠어?"

"그러진 않았겠지."

"틀림없이 강을 따라 이동했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 부족도 남하할 때 제일 신경 썼던 게 물이었거든. 식수가 확보되지 않는 상태에서 본거지를 옮긴다? 그냥 집단 자살행위지."

문식이가 아파치 대륙이라 부르는 북미대륙은 아직 훼손되지 않았다.

빽빽한 숲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수천 명이 될지도 모를 사람들을 이끌고 이동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현지 원주민들을 포섭했다고 해도 어려운 일이야. 그래서 나도 정략 결혼을 한 거고."

은근슬쩍 부인이 많은 이유를 정당화하는 문식이를 보고 공식이는 씩 웃었다.

"그건 그렇고.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

"모르겠어. 일단 살아남기 위해서 남쪽으로 내려왔는데···."

농사를 짓고 싶어도 옥수수 말고는 작물의 씨앗을 구할 수 없던 곳에서 태어난 문식이는 며칠을 고민하다가 이주하기를 결심했다.

야생에서 자라는 쌀을 얻을 수 있었지만, 낟알이 몇 개 달리지 않았다.

또한 농사를 지어 본 적이 없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래서 문식이는 부족민들을 이끌고 남하했던 거였다.

한때 농사로 삶을 이어나갔던 아즈텍 사람들이 남쪽에 거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였다.

하지만 스페인 침략자들이 문제였다.

"그래도 용케 강철을 주조해 냈네."

"다 너 덕분이지."

대체역사 소설을 보다가 궁금한 게 있으면 공식이에게 물어봤던 문식이.

그때 들었던 지식으로 역청탄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었다.

역청탄을 가열하여 코크스로 변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생산해낸 철괴.

품질이 좋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철에 들어 있는 불순물,

특히 황을 어떻게 제거해야 하는지 모르기에 무기 제조에 쓰는 철 말고는 그냥 썼다.

"코크스로 제선하는 방법을 몰랐어?"

"대충 아는 지식으로 어떻게 고로를 만드냐? 거기에 바람을 강하게 불어 넣어야 하는데···."

"그래서 코크스를 석탄 대용으로만 쓴 거야?"

"난방용으로도 쓰고 있지."

공식이와 달리 석기시대에서 태어난 문식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되어 있었다.

이만큼 아파치 왕국을 키워낸 것도 기적에 가까웠다.

"대단하네."

"대단하긴. 너에 비하면 엉터리지."

기계식 자동화로 강철을 대량 생산하는 조선과 달리 아파치 왕국은 아직도 두드려서 소량의 강철을 얻어 내고 있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스페인 침략자들을 물리칠 순 있었다.

농기구는 그냥 불순물이 많이 포함된 주철을 주조해서 사용했기에 생산된 강철은 모두 무기 만드는 데 쓸 수 있었다.

"제철소, 지어 줄 거야?"

"음···."

"무슨 고민하는지 아는데 보수는 확실히 챙겨 줄게."

"보수 때문이 아니란 것 알잖아?"

"그래서 못 해주겠다는 거야?"

대놓고 째려보는 문식이의 눈빛을 피해 공식이는 딴청을 부렸다.

개인적 친분을 생각하면 뭐든 다 해주고 싶었지만, 공식이가 아닌 연의 입장에서 판단해보면 절대 해줘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러지 말고 나랑 합자 회사 하나 만들자."

"회사를 만들어?"

"응. 너희는 아직 왕실 기업이 없지?"

"그런 게 뭐가 필요해. 전부 내 건데."

스스로 왕이 되어 왕국을 키우고 통치하는 문식이의 입장에서는 공식이의 말이 뜬금없었다.

"너 죽으면?"

"일화나 일식이가 물려받겠지."

"그래? 음···, 둘 중 하나가 물려받아서 잘 이끈다고 해. 그런데 후손 중에 미친놈이 나온다면?"

"저주를···. 아니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고민이네."

심각한 표정을 짓는 문식이를 보고 공식이가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가 죽고 난 후가 문제야. 네가 더 잘 알겠지만, 미친놈은 반드시 나타날 거고, 그럼 어떻게 되겠어?"

"죽으면 끝이긴 한데···."

말끝을 흐리는 문식이.

심각한 표정이 풀리지 않았다.

자신이 만든 왕국이 사라질 수도 있는 중요한 문제였기에 문식이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그래서 어떻게 하잖은 거야?"

"너와 내가 합자 회사를 만들고 그 회사에서 제철소와 발전소, 도로와 철도를 만들고 운영하는 건 어때?"

쓸데없는 말까지 수도 없이 나누었던 사이라 문식이는 공식이가 원하는 뜻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 방법이 좋긴 하겠네. 근데! 우린 아직 사유재산이란 게 없어. 이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사유재산이 없다고?"

"있긴 한데, 개인 소지품 정도지."

"그럼 세금도 없겠네?"

"당연하지."

북미 원주민인 아파치 부족의 관습을 그대로 이어 왔기에 아파치 왕국에서 생산하는 모든 건 왕인 제로니모의 소유였다.

백성들은 생산된 것에서 필요한 만큼만 배급받고 나머지는 모두 왕국 창고에 보관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이상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사회주의 방식은 인간의 욕망과 대척되기에 나중에 변질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두 사람.

머리를 맞대고 심각한 대화를 나눴다.

"고맙다. 너 아니었으면 큰일 날 뻔했네."

"그러기야 하겠어. 혹시 모르니 미리 방지하자는 거지. 문제는 사람이 너무 없네."

콜럼버스가 남미 원주민들과 처음 만났을 때.

카리브해 연안에 살고 있는 원주민의 수만 약 1,500만 명이나 되었다.

하지만 그 많은 사람들이 50년 만에 모두 사라져 버렸다.

가혹한 착취와 전염병으로 몰살해 버린 거였다.

고산 지역에 고립되어 살아가던 잉카 문명은 스페인의 침략자들에 의해 멸망했다.

멕시코 남동 지역에서 번성했던 마야 문명은 어떻게 사라졌는지 21세기에서도 알 수 없었다.

다른 부족이 번성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잡아다 인신 공양을 했던 아즈텍문명은 이미 망해버렸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이제 아파치 왕국민이 되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남쪽까지 다 차지하면 500만 명은 넘을 거야. 나도 이정도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흠···."

공식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살아남은 원주민의 수가 너무나 적었다.

"이렇게 하자. 아까 말했지만, 철도와 도로를 깔면서 도시를 만들고 도시 위주로 발전해 나가면 될 거야."

"알았어. 그 방법이 최선이라는 거지?"

"응. 자금이야 넘쳐나니 그 돈으로 도시를 건설하고 집을 지어 너희 백성들이 살아가게 하면 될 거야."

"소유는 모두 아파치전력공사로 하고?"

"그렇지. 그래야 나중에라도 문제가 없을 거야."

공식이는 자신이 조선전력공사 이름으로 했던 일들을 다시 한번 자세히 설명해줬다.

한참 진지하게 듣던 문식이가 정색하며 물었다.

"완전 일사 독재인데?"

"그러긴 한데 그것 말고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봐."

"정말이야?"

"내가 고민 끝에 결론 내린 거야."

"통치하진 않지만, 군림하며 목줄은 쥐고 있겠다? 이게 너의 최종 목표야?"

"최종 목표는 아니지. 최종 목표를 빠르게 달성하려는 효과적인 과정이지."

"그렇군···."

공식이가 원하는 세상을 눈치챈 문식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왕실 기업이 모든 것을 쥐고 군림한다···. 좋아! 아주 좋아!"

둘 다 신자본주의가 세상을 개판으로 만들어 버린 시대에서 살았었다.

땀 흘려 노력하는 사람보다 눈치와 권모술수로 판을 짜서 돈놀이로 세상의 부를 움켜쥔 자들이 큰소리치며 살았던 세상.

그런 세상이 아예 나타나지 않게 하려고 택한 방법이 왕실 기업이었다.

"너도 잘 알겠지만, 세상은 원 역사보다 더욱 빠르게 변해 갈 거야."

"그러겠지."

"결국은 돈 아니냐?"

"맞아. 그래서 그 돈을 움켜쥐고 있겠다는 거구나?"

"응. 사람 사는데 정치가 없을 순 없으니 정치 좋아하는 놈들에게 정치는 맡기고 감시해야지."

"투기는 원천 봉쇄하고?"

"그치! 부동산 투기만 없어도 세상은 각박하지 않을 거야."

"맞는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문식이.

한참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그랬을 경우 발전이 늦지 않을까?"

"무슨 발전? 공해로 가득 찬 세상을 만드는 발전?"

"그건 어쩔 수 없는 거 아냐?"

"어쩔 수 없긴. 환경에 영향을 주는 플라스틱. 즉 염화비닐 같은 것만 안 만들어도 세상은 좋아질 거야."

"그게 가능해?"

"지금까지 내가 한 일 잘 생각해봐."

"뭐야!"

소리를 빽 지르고 난 문식이가 씩 웃더니 이어 말했다.

"이 새끼 유전을 다 처먹었네. 처음부터 생각하고 한 거야?"

"그건 아닌데. 하다 보니 그렇게 됐지."

"전 세계 유전 지역을 장악하고 관리한다? 와···! 장난 아닌데.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한 거야?"

"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했잖아."

"정말이야? 진짜 그런 거야? 세상을 정복하려는 맘은 한 개도 없었어?"

"골치 아프게 그런 짓을 왜 하냐? 그냥 우리 한민족이 땅에 한이 맺혀 있어 좀 욕심을 냈는데···, 그놈의 야코프 때문에 일이 커진 거지."

"오···! 야코프가 조선에는 영웅이었네. 야코프 아니었으면 너랑 이렇게 빨리 만나지도 못했을 거고."

"그건 그렇지."

공식이는 야코프의 도움을 인정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네 제국의 도전에 임했기에 조선의 과학 기술이 더울 빨리 발전할 수 있었다.

청나라를 치고 난 후로 대척할 세력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수십만 명이나 되는 대군을 몰고 쳐들어온 네 제국.

그들을 물리치기 위해 만반도에 있는 모든 생산시설이 완전히 가동되었다.

은동리의 연구원들과 옹진반도의 공돌이들은 쉬지 않고 노력했다.

송림, 무순, 무수의 제철소.

발해만과 서맥의 정유시설은 쉬지 않고 가동되었다.

한시라도 빨리 지원군을 보내기 위해 기차를 개조해서 무장열차를 만들었다.

무기 또한 개선되었고 발전했다.

만약 현두와 서맥 요새가 넘어갔다면 반자동 소총인 조4 소총이 아니라 전자동인 조5 소총을 지급해 쓸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조4와 조5 소총은 이미 개발해 놓았기에 명령만 내리면 언제든지 생산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침부터 시작된 둘의 이야기는 점심이 지나서도 계속 되었다.

삼엄한 경계 속에 둘만 있는 예배당.

어제에 이어 계속되는 하역 작업으로 시끄러웠지만, 그게 더 나았다.

시끄러운 선착장 주변의 소음으로 둘의 대화를 엿들을 사람은 없었다.

"좋아! 우리 공식이 하고 싶은 데로 다 해. 이 형아가 팍팍 지원해 줄 테니."

"지원은 내가 해주는 거잖아."

"알았어. 그럼 팍팍 지원받을 께. 그나저나 미안하지만 야코프 찾는 일은 도울 수 없을 것 같다."

"왜?"

"나도 우리 아파치족을 몰아낸 놈들을 찾아가 혼 내주고 싶지만, 여기서 너무 멀어. 인원이 적어서 그곳까지 보내긴 힘들어."

"북미는 어떡하고?"

북미라는 말에 고개를 들어 공식이를 바라보던 문식이.

자리에서 일어나 해변을 바라 보았다.

"관심 없어. 너 다 가져."

"뭐라고?"

"난, 이곳과···."

손가락을 들어 남쪽을 가리키는 문식이.

"저곳만 있으면 돼. 네가 있다고 욕심내다가 가랑이 찢어질 거야. 그러니 북미든 뭐든 네가 다 가져."

"정말? 그래도 되겠어?"

"왜 나눠 주고 싶어? 어디를 어떻게 나누려고?"

"그건···."

"너도 골치 아프잖아. 어차피 세상은 우리 손안에 있어. 그러니 욕심부리지 않을 거야. 능력도 안 되고···."

말을 마친 문식이의 표정은 평온했다.

공식이가 온다는 말에 생각이 많았던 문식이는 욕심을 버리기로 했다.

자신의 힘이 아닌 공식이의 도움으로 북미를 얻고 싶지 않았다.

얻는다고 해도 관리 능력이 되지 않았다.

21세기와 비교해도 뒤질 게 없는 조선의 행정이다.

우수한 인재가 널려 있고, 나라의 체계도 잘 갖춰져 있다.

문제가 될 x선비들은 사라졌고, 거의 모든 백성이 한글을 읽고 쓸 줄 알았다.

물론 아파치 왕국민도 그랬지만, 급이 달랐다.

"아무튼 난 관심 없으니 국경선은 적당히 그어줘. 참 부탁이 있어."

"뭔데?"

"혹시라도 저곳에 사는 원주민들을 보내줄 수 있으면 보내줘. 내가 필요한 것은 땅이 아니라 사람이니."

"알았다."

문식이는 야코프란 자가 어떤 자인지 모르지만, 공식이에게 맡기기로 했다.

대신 이제 커나가고 있는 아파치 왕국을 발전시키는 데 힘을 쏟기로 했다.

"그런데 데리고 왔어?"

"응."

"고맙다. 꼭 만나 보고 싶었거든."

"그런데 송시열은 왜?"

"성리학의 대가 아니냐?"

한국사 선생님이었던 문식이라 그런지 공식이와 달랐다.

17세기 조선의 대학자였던 송시열을 꼭 만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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