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179화 (179/275)

< 179. 조선 제국력 >

다시 겪을 멀미에 신경이 쓰인 연은 조선 기함 1호 함장인 갑수를 보러 함교에 들어섰다.

"힘드시면 이걸 써보십시오. 사장님."

"그거···, 생강 아니냐?"

"생각 맞습니다. 사장님. 생강을 코에 대고 있으면 멀미가 좀 나아질 겁니다."

"그래?"

"네, 사장님. 우리 대원들도 처음 배를 타고 고생할 때 많이 쓰는 것입니다. 이걸 갈아서 한 수저만 드시면 효능이 더 좋습니다."

매운맛을 내는 진저롤(Gingerol)과 쇼가올(Shogaol) 성분이 들어 있는 생강은 중추신경계를 진정시키고, 소화기관을 편하게 하기에 웬만한 멀미약보다 효과가 좋다.

멀미가 심한 사람은 차나 배를 타기 30분 전에 2~4g 정도 생강을 섭취하면 도움이 된다.

그런 생강을 이제야 주다니.

연은 갑수를 슬쩍 째려봤다.

"이거 갈아서 그냥 마시면 돼?"

"그냥 드시면 속이 상할 수 있으니 차나 죽으로 만들어 드시는 게 좋습니다."

"그래? 진작 알려주지 그랬냐?"

"사장님께서 워낙 건강하셔서 신경 쓰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다. 이제라도 알려줘서 고맙구나."

연은 급한 대로 생강을 코에 붙여 냄새를 맡았다.

생강 특유의 톡 쏘는 냄새로 속이 한결 편안해진 연은 항로에 관해 갑수에게 물었다.

"이대로 대서양을 건너갈 생각이냐?"

"아닙니다. 사장님. 남쪽 카나리아 제도까지 항해한 다음 건널 계획입니다."

"해류 때문이냐?"

"네, 사장님. 해류와 편서풍이 상시 불기에 이 항로가 최적입니다."

연은 차마 더 남쪽으로 내려가 무풍지대를 항해하자고 말하지 못했다.

생각보다 적도는 한참 남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칼레를 떠나온 지 5일째.

제주도처럼 가운데가 불룩 솟은 커다란 화산섬이 보였다.

"저 섬들이 카나리아 제도구나."

"맞습니다. 사장님. 저기 보이는 설산이 화산 봉우리인 테이데 봉(Pico del Teide) 인데, 백두산보다 높다고 합니다."

"멋지구나."

생강차로 멀미가 진정되자 이제야 아름다운 주변 경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북두칠성처럼 커다란 7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카나리아 제도는 모나코 서쪽 바다 건너에 있었다.

제주도보다 약간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제도이지만, 가운데 있는 산타크루스데 테네리페섬은 제주도만큼 컸다.

눈이 덮인 테이데 봉우리는 해발 3,718m로 백두산보다 약 1천m, 한라산보다는 약 2천m나 더 높았다.

고산지대로 이루어진 스페인 본토와 비교해도 가장 높은 산이기에 멀리서도 잘 보였다.

콜럼버스 또한 이곳 카나리아 제도에서 출발하여 신대륙을 발견했다.

스페인이 최초로 정복한 식민지이자 마지막까지 쥐고 놓지 않았던 식민지인 카나리아 제도.

사납고 큰 개들이 많이 살았기에 인술라 카나리아(Insula Canaria)라 부른대서 유래했다고 한다.

"지금 저곳은 스페인령이 맞나?"

"네, 사장님. 우리 조선의 해양 영토로 삼기에 최적인 곳입니다. 명령만 내리시면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음···."

타국의 일에 관여하지 않은 조선이라 신대륙으로 건너가는 기착지인 카나리아 제도를 건들지 않았다.

아니 건들고 싶지 않았다.

"저곳을 우리 손에 넣게 되면 아프리카 대륙의 일에 관여해야 한다. 그러니 모른 체하거라."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예맥 횡단 철도가 활발해진 후로 더는 유럽 놈들이 신경을 쓰지 않는 곳입니다."

"그래?"

"네, 사장님. 수십만 리 위험한 바닷길을 항해해서 향신료를 가져와 봐야 이젠 소용이 없습니다. 함부르크에 있는 분점에서 사는 게 훨씬 이득입니다."

조선전력공사 분점 중 가장 발전하고 있는 곳은 함부르크였다.

예맥 횡단 철도의 서역 종점인 함부르크는 북해 바다와 인접해 있기에 유럽반도에 있는 거의 모든 상선은 함부르크로 모여들었다.

그로 인해 갈수록 발전해가는 함부르크는 서역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더는 아프리카에 진출하지 않는다는 말이냐?"

"그렇습니다. 사장님. 그곳에 가봐야 사람 죽이는 모기밖에 더 있습니까?"

"그렇지만 이곳은 노예무역의 중심지 아니더냐?"

"그것도 옛말이 되었습니다. 상선들이 다니지 않자 해적들도 사라지고 노예무역선도 이제는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연으로 인해 틀어져 버린 세계선(世界線, Worldline)은 모기와 함께 아프리카를 보호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프리카에서 원주민을 잡아 노예로 팔고 있는 놈들은 아프리카 원주민들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 때문에 해안가 말고는 아프리카 내륙으로 접근이 어려웠던 이유가 가장 크다고 한다.

말라리아를 옮기는 매개체는 ‘얼룩날개모기(Anopheles)’이다.

일반 모기와 달리 앉아 있을 때 꽁지를 들고 있고, 비행 시 '윙' 소리가 나지 않은 얼룩날개모기는 인류를 오랜 세월 동안 괴롭혀 왔다.

'빌어먹을 모기를 다 멸종시킬 수도 없고···.'

조선에서 학질(瘧疾)이라 부르는 말라리아 때문에 준가르 왕국의 왕 호토고친과 다두 왕국의 왕 카마찻의 방문 요청에도 가지 않았던 것 아닌가.

그런데 조선에는 개똥쑥이 있었다.

손으로 뜯어 비비면 개똥 냄새가 나고, 개똥처럼 흔히 볼 수 있고, 개똥같이 외진 곳에서 자라서 개똥쑥이라 부르지만, 개똥쑥은 탁월한 말라리아 치료제였다.

의식이가 이끄는 은동리의 생화학연구소.

그곳에서 개똥쑥을 가지고 연구에 들어갔다.

학질에 걸린 사람이 수시로 나타났지만,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

운이 좋기만 바랄뿐.

그러던 중 연이 의식이에게 개똥쑥을 건네줬다.

'이 풀이 학질에 특효가 있다고 하니 연구해 보거라.'

연은 개똥쑥을 우연히 얻었다.

말로만 들었던 개똥쑥.

말라리아에 특효라고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생겼는지 몰랐기에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길가에 놓인 풀을 보고 아이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연은 개똥쑥이 뭔지 알았다.

'야! 그거 개똥쑥 아니야. 그건 돼지풀이야.'

'정말?'

'그래! 그거 먹으면 죽어.'

개똥쑥과 달리 돼지도 먹지 않은 돼지풀이 어떻게 소양에서 자라고 있는지 모르지만, 돼지풀과 비슷하게 생긴 개똥쑥을 발견한 연은 즉시 개똥쑥을 의식이에게 보냈다.

봄철 쑥은 조선인에게 참으로 고마운 식물이다.

쑥이 없었다면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

아무거나 먹던 조선인들은 버틸 수 없었을 거다.

그런 시절을 겪었던 부모의 영향으로 풍요로운 세상으로 바뀌었지만, 아이들은 길가에 널린 쑥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래서 얻게 된 개똥쑥으로 의식이는 연구에 들어갔다.

다른 건 몰라도 사장님인 연의 말이라면 믿고 따르는 게 답이었으니.

의식이는 동의보감까지 찾아보며 개똥쑥에서 아르테미시닌을 분리해 낼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개똥쑥을 달린 물을 마시면 학질에 걸린 사람들이 차도가 있었던 거다.

하지만 끓여서는 유효성분만 제대로 추출할 수 없었다.

끝없은 노력 끝에 의식이는 화약을 만들 때 썼던 에테르(Ether)라 부르는 2개의 알킬기와 연결된 물에 유효성분이 반응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중국 투유유 교수팀이 개발한 청호소(靑蒿素)가 바로 이 방법으로 만든 아르테미시닌(Artemisinin)이다.

말라리아뿐만 아니라 기생충병에도 효과가 좋은 약을 개발한 의식이.

'학질을 끝낸다'는 뜻으로 '학종(瘧終)'이라 이름 지었다.

학종이 있었기에 연은 안심하고 문식이를 보러 떠날 수 있었다.

* * *

연이 떠났지만, 은동리는 바빴다.

새로 시작된 조선 제국력에 맞춰서 해야 할 일이 태산처럼 많았다.

그중 제일 시급한 일은 새로운 화폐 발행이었다.

조선은행의 부탁을 받은 은동리의 연구원들.

할푼리(割分厘)로 표현되는 '문' 단위를 '전'과 '푼'으로 바꾸었다.

"100전이 1원이고 100푼이 1전이라 했습니까?"

"네, 그리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냥 문으로 써도 되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원하는 건 사라지는 동전을 줄이는 방법입니다."

조선의 화폐인 황동으로 만든 동전은 아무리 많이 찍어내도 줄어만 갔다.

조선처럼 강철 대포를 만들고 싶어도 만들 수 없었던 유럽과 중원의 나라들.

전쟁이 지속되자, 조선의 동전을 황동 대포 만드는 데 쓰고 있었다.

구리와 주석 또는 아연을 구해 대포를 만들거나 대포를 사는 값보다 훨씬 저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꾼 겁니다. 크기를 작게 만들어도 되지만, 사장님께서 큰일 날 일이라 말씀하시며 새로운 방법을 연구해 보라 하셨습니다."

"아···, 그런 거였습니까? 그렇다면 진작 말해 주시지 그랬습니까?"

연을 들먹이자 조선은행 담당자는 바로 꼬리를 내렸다.

사장님이 하시는 일은 항상 옳다고 보기에 태세 전환을 한 거였다.

"아무튼 사장님께서는 새로운 동전을 만들어 백성들의 오해가 없도록 하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백동(白銅)화였다.

구리에 니켈 30%를 섞어 만든 백동화는 보기에도 좋았다.

은처럼 빛나기도 하지만 전성과 연성이 풍부하고 공기 중에서도 변하지 않았다.

"보기에는 마치 은화 같군요."

"그래 보입니까?"

"네, 모르는 사람은 속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데···. 니켈을 좀 빼야겠네요."

"네? 빼다니요?"

"너무 은처럼 보이면 혼란이 올 것 아닙니까?"

"에이, 그럴 일이 있겠습니까? 처음 황동화를 보았을 때도 금화인 줄 알았지만, 표시된 숫자가 있어서 정착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니켈을 좀 빼서 광을 죽여야겠습니다."

니켈이 30%가 혼합된 백동화는 너무 화려했다.

그래서 연구원은 함량을 20%로 줄였다.

더 줄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광택이 죽어버렸다.

"이 정도면 백성들도 좋아할 것 같습니다."

"오, 더 커졌습니다."

"커지긴 했는데 얇아졌습니다."

"그래요? 두께가 전과 같은 것 같은데···."

"테두리만 그렇고 안쪽은 윤곽이 깊지 않습니까?"

"아···, 맞습니다. 이렇게 만들면 눈에도 확 띄겠습니다."

지금까지 조선은행에서 발행한 동전을 위조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다만 동전을 다른 용도로 써버렸을 뿐.

그래서 새로 만든 동전은 함량과 가치에 신경 썼다.

동전을 녹여서 딴짓을 못 하도록 실질적 가치를 낮춘 거다.

또한 푼으로 쓸 동전은 알루미늄으로 대체했다.

조선에서 알루미늄을 만들기 전까지는 알루미늄은 황금보다 더 값진 금속이었다.

하지만 풍부한 전력으로 생산해내는 알루미늄은 공짜나 다름없었다.

알루미늄뿐만 아니었다.

대부분 광산은 조선전력공사 소유였기에 인건비만 빼면 생산비와 재룟값이라 할 만한 게 없었다.

그랬기에 엄청난 영토를 확보한 조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조선 제국력 1년(1659).

5일이 추가된 12월 연휴를 보낸 조선 백성들.

새로 산 설빔을 입고 새해 인사를 다녔다.

"이제 관청도 이름이 싹 바뀌는 건가?"

"그래야지. 제국이 됐는데 아직도 '조'를 쓸 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 이름이···."

"왜? 한자를 몰라도 이해하기 쉬운데?"

"그런가? 난 원래 까막눈이라서 이것도 어렵기만 한데···."

조선방송공사와 민간 방송에서 수시로 새로 변경된 관공서의 이름과 역할을 알려주고 있었지만, 듣고 바로 이해하는 이는 드물었다.

자라나는 아이들이라면 몰라도 나이 든 사람들은 배운 게 별로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라에서 하는 일에도 관심이 없었다.

관심을 보이는 이들은 거의 젊은이들이었다.

왜 그러지 않겠는가.

먹고 살기도 힘든 시절이 바로 얼마 전이었다.

그런데 세상이 달라져도 너무나 달라졌다.

먹고 사는데 걱정이 없는 세상.

백성들은 나랏일보다 인생을 즐기는데 바빴다.

"빨리 서두르거라. 외삼촌네가 기다리고 있지 않으냐?"

설날 성묘하러 선산을 찾은 정식이 아버지는 산을 오르는 데 힘이 들어 꾸물대는 정식이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그리 꾸물대다가는 네가 그토록 가고 싶어 하는 대만으로 가는 배를 놓칠 수 있다."

"다리에 힘이 없어요."

"그러길래 책만 보지 말고 운동도 하라 하지 않았느냐."

정식이 아버지는 골골대는 정식이를 보고 혀를 찼다.

몸이 약한 정식이 때문에 추운 겨울을 피해 대만으로 여행을 떠나려는 게 아닌가.

은동리 연구소의 숙수 중 한 명이었던 정식이 아버지.

연의 부탁으로 호떡을 만들어냈다.

그 후 한양에 호떡집을 차린 정식이 아버지.

호떡집에 불이 난 것이 아니라 돈에 파묻혀 버렸다.

정식이 아버지 같은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함께 대만 여행을 하기로 한 외삼촌네도 벼락부자였다.

무언가 남과 다르게 새로운 물품이나 음식을 만들어내면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그만큼 조선 백성들의 삶에 여유가 있었다.

왜 그러지 않겠는가.

처음 하루 일당이 1문이었던 시절이 바로 얼마 전인데 이젠 하루 5문이나 했다.

집 또한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적게는 1년에 100문이면 도심지에서 연립 주택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돈이 넘쳐나는 정식이 아버지와 외삼촌네는 시 외곽에 땅을 빌려 집을 지었다.

부자들만 산다는 시 외곽 주택단지.

그곳에는 '방방'거리며 다니는 개조된 삼발이 천지였다.

도심까지 출퇴근하는데 전철이나 이제는 버스라 부르는 여객용 차를 타고 가도 되지만, 젊은이들은 삼발이부터 샀다.

말을 타고 다니는 젊은이들도 있었지만, 기름만 넣어주면 신나게 달릴 수 있는 삼발이를 사서 개조하는 게 유행이었다.

아무튼 이 모든 일은 연이 만든 조선전력공사 때문이다.

스페인과 다르게 들어온 수익을 전부 조선 영토 개발에 투자하고 있는 조선전력공사.

그로 인해 일자리는 넘쳐났고, 사람은 귀했다.

특히나 세계 제일 도시라 말하는 한양은 더했다.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해 새로 개발한 강남 택지까지 포화 상태가 된 한양.

효종은 그냥 두지 않았다.

'앞으로 한양은 행정 수도로 삼고 경제 수도는 평양으로 한다.'

처음에는 물류의 중심지인 신의주를 경제 도시로 키우려 했다.

하지만 확장할 수 있는 땅이 적었고, 겨울에 너무 추웠기에 평양으로 바꾸었다.

새로 경제 수도로 지정된 평양으로 상사들이 본사를 옮기는 가운데.

조선 제국력 1년을 맞이하여 박람회 준비가 한창이었다.

'제1회 평양 박람회'가 열리기로 예정된 평양 양각도.

곳곳에 거대한 건축물들이 완공을 앞두고 있었다.

이러는 가운데 연은 태운 조선 기함 1호는 대서양을 건너 베라크루즈를 눈앞에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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