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 열도 재편(2) >
예맥 기병대가 모두 모이기만 기다리던 기수는 연의 연락을 받고 상황을 설명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러지 않아도 대원들의 불만이 쌓여가고 있었습니다.
"그럴 만도 하지. 그래도 단단히 주의시켜야 한다. 이제 시작인데 말썽이라도 일어난다면 수습하는 데 큰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니 명심하고 절대 강압적으로 행동하지 말라고 단단히 교육한 후 내보내거라."
-명심하겠습니다. 사장님.
드디어 대원들의 외출이 허락됐다.
교육을 받고 외출증을 받은 대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마을 구경에 나섰다.
그러자 주둔지 앞에 진을 치고 호소하던 열도의 여인들이 사라졌다.
주둔지와 마을이 한 참 떨어져 있기에 대원들을 마차에 태워 보내면서 창문을 모두 가렸기 때문이다.
외롭다고, 혼자 살기 싫다고 하소연하는 여인들을 강제진압 하기보단, 아예 주둔지 주변에서 대원들과 접촉을 차단해 버렸다.
아무리 주둔지 주변에 서성거려도 보이지 않던 젊은 대원들이 마을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은 여인들.
시위 비슷한 호소를 중단하고 전부 마을로 돌아갔다.
그로 인해 뜻하지 않게 일본 열도의 경제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조선군 병사들의 씀씀이가 호방하다는데 들었어?'
'그래서 고민 중이야.'
'뭘 고민하는데?'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지. 생각나는 것 없어?'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배급받으며 살아가던 열도 백성들.
경비대원들이 외출 나와 뿌린 돈을 노리며 모여들었다.
대원들이 쓴 돈이 100문이면, 유통되는 돈의 총량은 몇 배나 되었다.
돌고 도는 게 돈이라 대원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은 여기저기 굴러다니며 상업 활성의 촉진제가 되었다,
그로 인해 다시 일어서는 열도의 경제.
처음 조선이 발전한 것처럼 열도 또한 빠르게 변해갔다.
그러자 민심도 달라졌다.
은진이로부터 정보를 받은 은쌍식이 연에게 내용을 보고했다.
-사장님. 이제 조선군과 상사를 투입해도 될 듯싶습니다.
"그래도 되겠느냐? 아직 철도 놓을 곳조차 확정되지 않았는데."
-굳이 철도를 놓을 필요가 있겠습니까? 생각보다 도로가 잘 닦여 있습니다.
"그래?"
-네, 사장님. 그러니 이미 만들어진 길을 넓히고 포장만 해도 여객용 차와 화물차가 다니기에 충분합니다.
"그렇단 말이지."
-네, 사장님. 철도는 나중에 놓아도 될 것 같습니다.
새로 개발된 디젤 터보 엔진을 탑재한 버스와 화물차.
힘이 넘쳤다.
승객과 화물을 가득 싣고도 가파른 산길조차 거침없이 올라갔다.
그러니 오랜 시간이 필요한 철도 공사보다 있는 길을 넓히고 다듬어 도로부터 만드는 것이 더 효과적이란 의견이었다.
일본 열도는 교토에서 도쿄(에도)까지 가는 길이 두 개나 있었다.
도카이도(東海道)라 말하는 해안도로와 나카센도(中山道) 또는 기소가도(木曾街道)라 부르는 내륙도로가 바로 그것이다.
약 500km에 이르는 두 도로는 모두 돌로 만든 돌길이었지만, 사람들이 이용하기에는 불편하지 않았다.
크기가 다른 돌을 깔아 만든 길이기에 마차를 타고 다닐 수는 없지만, 걷거나 가마를 타고 다니기에는 충분했다.
조선처럼 사람을 잡아먹는 맹수가 거의 없는 일본 열도.
태평양 연안을 따라 만들어진 도카이도 도로보다 산을 따라가는 나카센도 도로를 사람들은 더 선호했다.
해안가일수록 강이나 하천이 많고 폭이 넓었지만, 편하게 건너갈 수 있는 다리가 없었다.
나룻배를 기다렸다 타고 건너거나, 얕은 곳을 찾아 건너야 했다.
그러다 보니 해안도로보다 내륙도로가 더 발달 돼 있었다.
"알았다. 그리하도록 하거라."
-알겠습니다. 사장님.
통화를 끝내려는 순간 연은 생각나는 게 있었다.
"그곳에서 날 신으로 모시는 사람들이 있다며?"
-네, 사장님. 그러지 않아도 그 문제 때문에 상의하고 싶습니다.
"상의할 게 뭐 있느냐. 날 신으로 섬기는 것은 날 죽이려는 짓이다. 그러니 당장 그만두지 않으면 모두 광산으로 보내버려라."
-그러지 않아도 그리할 생각이었습니다.
온갖 잡신을 다 믿는 일본 열도.
신토(神道)라 부르는 일본 고유의 종교는 열도 백성들의 정신세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다신교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어릴 때부터 종이를 만들고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기를 개발한 연을 신으로 떠받들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신이라 말하는 자는 일단 칼로 찌르거나 총으로 쏘고 보라'는 경비대의 철칙이 있었기에 그냥 둘 수는 없는 일이다.
'까딱하다가는 비명횡사할 수도 있지.'
물론 연에게 충성을 다하는 경비대원들이 그러진 않겠지만, 세상일이란 어찌 될지 모른다.
그래서 연은 은쌍식에게 몇 번이나 강조했다.
이로 인해 뜻하지 않게 단군을 모시는 사당이 일본 열도에서 빠르게 자리를 잡아갔다.
관공서가 들어서고 조선군이 주둔하면서 초등학교도 곳곳에 세워졌다.
유학을 공부하던 선비들이 대부분이던 초등학교 예절 과목 선생님들.
괴력난신(怪力亂神) 같은 허무맹랑한 초자연적 현상을 비판했지만, 단군신화는 자세히 설명했다.
조선어와 같은 어순을 사용하는 민족은 모두 같은 예맥족이라 말하며 한민족임을 강조했다.
뭔가를 섬겨야만 마음의 안정을 취할 수 있는 열도의 백성들.
잡신 대신 단군을 섬기는 사당을 짓고 매일 같이 공을 들였다.
'그러다 광산으로 끌려가면 어쩌려고 그러나?'
'에이, 설마. 단군께서는 우리 예맥족의 첫 번째 왕이신데, 더구나 하늘에서 내려오신 분 아닌가.'
이제 조선인보다 더 조선을 따라고 섬기는 열도 백성들.
이렇게 변한 이유가 있었다.
조선군이 열도로 들어오면서 세상이 확 달라졌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기분 나쁘다고 쳐다봤다고 목을 쳐도 다이묘의 보호를 받았던 사무라이들과 조선군은 완전히 달랐다.
외출증을 받고 마을로 구경 나온 조선 병사들.
항상 존댓말을 썼고, 예의가 발랐다.
물건을 강탈해가지도 않았고, 부르는 대로 돈을 주고 사 갔다.
또한 마을에서 행패를 부리는 자가 있으면 나서서 처리했다.
몽골족의 등장으로 학살과 약탈, 강간과 살인이 끊이지 않았던 열도에 조선군이 상륙하자 굶주림이 사라지고 평화가 찾아왔다.
이러다 보니 조선군의 인기는 갈수록 높아져 갔다.
그와 더불어 조선의 문화가 일본 열도를 점령해 나갔다.
이러는 가운데 위기에 몰린 몽골족은 북쪽으로 도주했다.
길이 잘 닦여 있는 도쿄까지 쉽게 점령한 조선군은 그들을 쫓지 않았다.
도쿄 북쪽은 다수의 병력이 동시에 이동할만한 도로가 없었기에 진격이 잠시 멈췄다.
발달 된 무기와 군장으로 무장된 조선군이라 하지만, 길도 여의치 않은 곳으로 무작정 밀고 들어가기에는 위험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기수는 도쿄 북쪽에 주둔지를 짓고 열도 서쪽이 모두 정리되기를 기다렸다.
점령한 지역을 조선군에게 넘긴 후에 예맥 기병대를 모두 모아 다시 진격하기 위해서이다.
"참,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어찌했느냐?"
-모두 모아 북해도로 보내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농사와 축산 교육을 받으며 자유롭게 뛰어놀도록 했습니다.
"잘했다."
계획했던 대로 열도를 재편하는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그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고아가 된 아이들이었다.
이 아이들이 잘 자라야만 조선의 앞날이 밝기에 최적의 장소를 찾다가 북해도를 선정했다.
역사에 등장했다 사라진 수많은 제국들.
그들은 오로지 점령하고 약탈하기만 바빴다.
그러다 보니 원한이 쌓였다.
쌓인 원한은 언젠가 터질 수밖에 없었고, 제국들은 그로 인해 무너졌다.
연은 고심 끝에 결정을 내렸다.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겠느냐? 너무 먹지 못해 굶어 죽기 직전이라는데 잘 먹여야 한다'며 기수에게 당부했다.
기수 또한 부모 없이 자랐기에 열도에서 부모를 잃고 비참한 꼴로 사는 아이들을 챙겼다.
열도에 처음으로 발을 딛은 경비대원들은 깜짝 놀랐다.
말은 들었다.
열도에 사는 사람들은 왜소하다고.
그런데 작아도 너무 작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경비대원들은 조선인 중에서도 큰 축에 속했기 때문이다.
잘 먹고 자란 경비대원들.
그들 중 많은 이가 부모 없이 자랐기에 경계심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아이들이 너무 측은했다.
저절로 주머니에 들어간 대원들의 손에는 양갱(羊羹)이 들려 있었다.
주둔지로 복귀하면 먹으려 산 것이지만, 아낌없이 아이들의 손으로 전해졌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양고기와 피를 이용해 선지처럼 굳혀 만든 먹거리인 양갱.
고기를 먹지 않은 일본 열도로 건너오면서 단팥과 한천으로 새롭게 만들어졌다.
'이제 그들도 조선의 백성이니 고기를 먹게 하라.'
문식이에게 들었던 말이 떠오른 연은 고기를 입에도 데지 않은 열도 백성들에게 고기를 먹일 방법을 찾으라고 했다.
1872년 메이지 정부가 고기 먹는 것을 허용하기 전까지 먹지 않았던 고기를 먹이려고 하니 문제가 많았다.
인류는 사냥을 통한 육류 섭취를 농사보다 먼저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고기 굽는 냄새만 맡아도 열도 백성들은 구역질을 했다.
21세기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식이 갈비, 삼계탕, 닭한마리, 육회, 간장게장, 곱창이지만, 19세기 말까지는 그러지 않았다.
675년, 덴무 천황이 내린 명령이 천년 가까이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덴무 천황은 소, 닭, 말, 개, 원숭이를 먹지 말라고 하면서 사냥 또한 못 하게 했다.
항상 그랬던 건 아니다.
4~9월 사이에는 덫을 놓아 사냥하는 것도 금지했지만, 이 시기가 지나면 뭐라하지 않았다.
고기를 먹지 말라 했다고 안 먹는 사람도 있지만, 몰래 먹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차례 반복된 명령으로 열도 백성들은 점점 고기를 먹지 않았다.
게다가 9세기부터 열도 귀족 사이에 고기를 먹지 않은 문화가 퍼지면서 10세기에는 육식을 기피 하는 문화가 모든 백성에게 퍼졌다.
아무튼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아마도 불교와 농업 정책 때문에 그런 건 아닌지 추측할 뿐이다.
고심 끝에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모두 북해도로 보냈다.
그곳에서 아무 걱정 없이 잘 자라기를 희망하며···.
악연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 21세기.
일본 정치인들은 수시로 대한민국을 도발했다.
그런 일을 겪은 연이지만, 새롭게 조선의 백성이 된 열도 아이들을 생각했다.
그들을 위해 소와 말, 돼지와 닭이 자유롭게 방목되는 북해도로 보냈다.
'전쟁을 겪은 세대는 몰염치하다'는 연구 논문 기사를 봤기에 아이들에게 평화롭고 자유로운 세상에서 살도록 한 거였다.
'아이들이 밝게 자라야 조선의 미래가 밝다.'
청나라에 끌려갔다 돌아온 조선의 아이들은 연과 함께 자랐기에 큰 문제가 없었다.
옹진반도에서 그들끼리 생활했기에 눈치를 보지 않고 바르게 자랐다.
이처럼 열도 아이들도 북해도에서 자기들끼리 지낸다며 핍박받는 일은 없을 거라 봤다.
갑자기 너무나 켜져 버린 조선.
효종과 신하들은 만반도라 말하는 동역을 관리하는데도 정신이 없었다.
행정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이야 기준을 정해 선발하면 되지만, 정치적 결정이 필요한 일에는 이들을 활용할 수 없었다.
'정치는 서로 간에 이익을 나눠 먹는 행위'이기에 다양한 경험과 유연한 사고가 있어야만 했다.
그래서 일본 열도 재편 작업은 조선전력공사의 주도로 시행되고 있었다.
조선전력공사의 직원들과 대원들은 이런 일을 자주 해봤기에 열도는 점차 안정되어 갔다.
* * *
일본 열도 재편 문제를 은진이와 은쌍식, 기수에게 맡겨 놓고 소양으로 온 연은 배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조선의 조선 기술을 모두 쏟아부어 만든 새로운 함선.
90문 이상 화포를 장착한 유럽의 1급 전열함보다 3배나 긴 150m에 달했다.
조선 기함 1호로 명명된 이 함선은 연이 아버지 효종의 순례를 위해 공들여 만든 거였다.
그런데 문식이와 연락이 닫았다.
문식이를 보고 싶은 마음에 연은 이제 막 완성된 기함과 호위함 3척, 보급함 2척을 묶어 급히 함부르크로 보냈다.
거친 대서양을 건너 베라크루즈까지 가는 길에 쓰고자 한 거였다.
거대한 기함은 선체를 구성하는 강판의 두께만 해도 10mm나 되었다.
21세기 컨테이너선의 최소 두께와 같은 것이다.
점점 발달하고 있는 조선의 용접기술.
이제 10mm 강판 정도는 완벽하게 이어 붙였다.
선박의 아래쪽 물에 닿는 부분도 따개비, 굴 같은 해양생물이 붙는 걸 방지하기 위해 '방오도료(防汚塗料)'를 칠했다.
배 바닥에 딱 달라붙은 해양생물은 운행 속도를 느리게 하고 연비 또한 엉망으로 만든다.
해경으로부터 이런 보고를 받은 연구원들은 해양생물이 달라붙지 못하게 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연구원들은 노력 끝에 조개류나 해조류 같은 해양 생물체의 신진대사를 방해하는 물질을 찾아냈다.
'아산화동(Cu₂O)을 도료에 첨가하여 칠하면 더는 붙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산화된 구리를 첨가했기에 붉은색을 띠는 방오도료는 21세기에는 거의 모든 대형 선박에 필수적으로 칠해졌다.
그대로 놔두면 선박의 속도와 연비가 40% 이상 나빠질 수 있기에 방치할 순 없는 일이다.
아무튼 아래는 붉은색이지만, 위는 하얀색으로 칠해진 조선 기함 1호를 탄 연은 함부르크를 떠났다.
효종을 위한 화려하고 우아한 선실 대신 함교 옆 전망 좋은 곳에 마련된 사령관실을 차지한 연은 문식이를 만날 생각에 가슴이 두근 거렸다.
그런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라."
사령관실로 들어 온 민삼이가 예를 올린 후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전하, 아무래도 칼레를 들려야 할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
"칼 10세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래?"
"네, 전하."
민삼이의 보고를 들은 연은 인상을 찌푸렸다.
"지들끼리 알아서 하지. 나를 왜 끌어들이고 그래."
"죄송합니다. 전하."
"아니다. 너에게 하는 말이 아니니 신경 쓰지 마라."
어차피 가는 길이라 생각한 연은 칼레로 항로를 변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