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175화 (175/275)

< 175. 열도 재편(1) >

일본 열도를 재편하기 위해 제일 먼저 나선 건 조선전력공사 해양경비대였다.

해경 또는 해경대라 줄여 부르는 해양경비대의 임무는 국토방위가 아니었다.

해외 영토 개척과 관리, 상선 대행 및 보호가 주 임무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해경은 아직도 황실 기업인 조선전력공사 소속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토 수호를 위해 별도로 해군을 창설했고, 그동안 조선 수군이었던 이들이 그 자리를 맡았다.

"오메! 죽이게 나가네. 물개보다 더 빠른 것 같은데···?"

"에이, 아무리 그래도 물개보다 빠를라고!"

"저기 좀 보란 께. 저기 돌고래도 못 쫓아 오지 않는가?"

"못 쫓아 오는 게 아니라 그냥 우릴 따라오는 것이 제. 아무리 이 배가 빠르다고 해도 물괴기보다 빠르겠나."

조선이 제국이 되면서 발표된 법령이 있기 전에도 해경 대원들은 돌고래들을 좋아했다.

해경 대원들이 바다에서 훈련하는 중에 가끔 등장했던 돌고래들.

죽을 정도로 심한 물속 훈련에도 악으로 깡으로 버티던 해경 대원들을 멀리서 구경하더니 어느 순간 가까이 다가와 주위를 맴돌았다.

그러다 해경 대원들과 친해지게 된 돌고래들.

조경함이 등장하면 어김없이 달려와 따라왔다.

돌고래뿐만 아니었다.

물개, 해달, 점박이물범, 바다표범을 보아도 해경 대원들은 먹을 것을 던져주면 던져줬지, 창을 던지거나 총을 쏘지 않았다.

휴가 때 마을의 돈 많은 호색가들이 물개의 거시기를 구해 달라는 부탁을 들어도 단호히 거절했다.

'사람을 해치지 않는 동물은 죽이거나 포획하지 말고 그냥 그대로 살게 놓아둬라'는 연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이 그런 말을 했다는 소식을 들은 어부들.

'태자께서 하시지 말라고 한 이유가 분명 있을 거야?'

'당연하지. 그분이 하신 일은 모두 우리 같은 백성들을 위한 것 아닌가?'

'맞아! 그러니 우리도 앞으로 잡지 말자고.'

'그래, 그게 좋겠어. 태자께서 말씀하셨는데 당연히 따라야지.'

그러다 보니 서해안, 남해안, 동해안에 있는 모래사장에 배를 깔고 일광욕을 즐기는 해양 포유동물들이 많아졌다.

연이 공식이였을 때.

실리콘밸리라 부르는 산호세로 출장 간 적이 있었다.

전에는 출장비를 날짜로 계산해서 챙겨주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세상이 갈수록 각박해지면서 출장비를 따로 지급하지 않고 회사 카드를 주고 업무에만 쓰도록 했다.

그래도 먼 곳으로 출장을 나왔으니 쉬는 날 짬을 내어 샌프란시스코로 구경 갔다.

그때 보았던 수많은 바다사자들.

조선에서 강치라 부르는 바다사자들이 샌프란시스코 항구를 점령하고 여유롭게 놀고 있었다.

배를 타기 위해 다가가도 선착장에 누워 길을 막고 있는 바다사자들.

사람이 쫓아도 '꺼억! 꺼억!' 소리를 지르고 항의하며 움직이지 않았다.

길 위에 퍼져 누워서 일광욕을 즐기는 데 여념이 없었다.

신기해 물어봤을 때.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저 못돼 먹은 놈들도 해양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줄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냥 두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

'백 년 전만 해도 이곳 캘리포니아 해안은 죽음의 바다였어요. 물고기조차 살지 않았죠.'

무분별한 포획으로 사라져버린 해달(Sea Otter).

그로 인해 성게가 무한 증식했고, 물고기들의 안식처였던 켈프 숲이 사라졌다.

성게들이 대형 갈조류인 켈프를 깡그리 먹어 치워 버린 것이다.

그 후로 미국 캘리포니아 해안은 무엇도 살지 않는 죽음의 바다가 되었다.

그러던 중.

1938년, 캘리포니아 빅서에서 50마리 정도의 해달 무리가 모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데이트 중이던 연인들이 망원경으로 해안을 관찰하던 중 해달이 몰려 있는 것을 본 것이다.

그 후, 보존 노력으로 해달의 개체 수는 서서히 증가했다.

점점 늘어나는 해달들.

해양 생태계의 가장 기본이 되는 다시마의 일종인 켈프를 먹어 치우는 성게들을 사정없이 포식했다.

성게가 줄어들자 켈프 숲은 다시 풍성해졌고, 물고기들은 돌아와 산란을 시작했다.

식물이 아닌 조류로 분류되는 켈프 숲은 물고기만의 보금자리가 아니다.

약재로도 쓴다는 전복의 먹이다.

해달이 늘어나고 켈프 숲이 우거지자 전복 또한 많아졌다.

하지만 전복을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해 전복도 서서히 씨가 말라갔다.

이때 미국 대통령 직속 기관인 '낚시와 사냥(Fish and Game)이 나섰다.

7인치(약 18cm) 이하의 전복은 잡지 못하게 하고, 한 사람당 채집할 수 있는 수량 또한 연간 한도를 정해 보존에 힘썼다.

이런 일을 기억하고 있는 연은 일본 열도를 재편하면서 똑같이 써먹었다.

몽골족들을 생태계를 교란하는 성게로 보고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대마도에 1차 집결한 해경과 예맥 기병대원들.

시모노세키와 기타큐슈에 상륙한 후,

남쪽 규슈와 동쪽 혼슈를 정리해 나갔다.

-원칙은 전과 같다!

-무기를 든 자는 무조건 사살하라!

-무기가 없더라도 반항하는 자는 사살하라!

-하지만 저항하지 않는 민간인은 쳐다도 보지 말고 관심도 두지 말라!

조선군은 몰라도 경비대원들은 일절 전쟁범죄를 일으키지 않았다.

경비대원들은 전시가 아닐 때는 자유롭게 지냈지만, 명령이 떨어지면 이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임금은 높았고, 대우가 좋았기에 이를 어기는 이는 없었다.

이랬기에 21세기와 달리 연이 있는 17세기 조선에서는 경비 대원들뿐만 아니라 조선군 병사에 대해서도 백성들은 존경을 표했다.

백성들은 자신들이 평화롭고 풍요로운 세상에서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건 모두 이들 덕분이라는 걸 인지 하고 있었다.

돌만이가 이끄는 제7 예맥 기병대는 규슈까지 내려와 분탕을 치는 몽골족들을 진압해 나갔다.

기병대 사령관인 기수가 앞장서서 히로시마를 거쳐 고베, 오사카, 나고야, 요코하마, 도쿄로 이동하면서 가차 없이 몽골족들을 제거해 나갔다.

폴리카보네이트로 만든 안면 가리게까지 부착 한 군모를 쓴 예맥 경비대원들.

몽골족들의 화살 따위는 무시하고 그동안 익힌 실력으로 말을 몰아 조3 12연발 소총을 난사했다.

말 잘 타기로 소문난 몽골족이지만, 예맥 대륙을 순회하면서 익힌 대원들의 승마 실력도 보통이 아니었다.

무법천지가 되어버린 열도에서 악행을 저지르던 몽골족들은 빠르게 진압되며 사라져 갔다.

"""만세! 만세!"""

예맥 경비대원들이 지나는 마을마다 기뻐 외치는 환호성이 울려 퍼졌지만, 대원들은 마을에 얼씬거리지 않았다.

마을에서 떨어진 벌판에 진을 치고 주둔하며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그런데도 열도 백성들은 불안에 떨었다.

"저들이 어쩌려고 저러지?"

"그러게 말이야. 이러다 나중에 우리까지···?"

"에이, 설마 그러겠어?"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 못 들었나 봐?"

"이제 우리도 대조선 제국 백성인데 그러진 않겠지···?"

평생을 농노로 살아오며 다이묘와 무사들의 눈치만 보고 살아왔던 일본 열도의 백성들.

몽골족을 물리치러 온 예맥 기병대의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의심했다.

하지만 조경함을 타고 나타난 해경들이 쌀을 나누어 주자 급격하게 생각을 바뀌어 나갔다.

"자, 자! 이쪽으로 줄을 서시오. 조선인이 되려면 질서부터 잘 지켜야 합니다."

"""네, 나리."""

조경함을 타고 온 조선의 관리들은 열도 백성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고 일자리도 만들어 그들을 고용했다.

해안 도시부터 관공서를 짓고 백성등록을 시작했다.

"움직이지 말고 여길 잘 보시오."

"아, 아. 그렇게 인상 쓰지 말고 웃으세요. 밝게 웃어야 예쁘게 나옵니다."

조선 제국을 선포하면서 신분증 또한 변경하고 있었다.

드디어 양산하기 시작한 사진기로 사진을 찍어 신분증에 붙여 발행했다.

"이게 정말 나란 말이야?"

"어, 잘 나왔네."

"그래? 어디 네 것도 보여줘 봐."

관공서에 신분증을 발급하는 곳.

그곳에는 커다란 목욕탕이 있었다.

목욕탕에서 깨끗이 씻고 나오면 새하얀 천으로 만든 옷을 지급했다.

때 빼고 광내고 새 옷까지 입은 열도 백성들.

어색한지 행동이 부자연스럽지만, 그들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역시 천조선이야. 이거 보라고 조선 비단 아닌가."

"세상에나 그 좋다는 조선 비단으로 옷을 만들어 공짜로 주다니. 역시 천조선이 최고군!"

열도 백성들은 조선 제국을 '천조선'이라 불렀다.

하늘이 내려준 조선이란 의미다.

이처럼 일본 열도가 순조롭게 재편되는 가운데 문제가 있었다.

그건 바로 남녀 성비였다.

몇 년 동안 쉬지 않고 전쟁을 치렀던 일본 열도.

젊은 남자는 보기조차 힘들었다.

결혼을 못 한 젊은 여인들만 득실거렸다.

도쿄 외곽 북쪽에 주둔지를 짓고 작전을 지휘하던 기수에게 정보참모가 곤란하다는 얼굴로 뭔가를 설명했다.

"여인들이 입구에 와서 진을 치고 있다고?"

"네, 사령관님. 첩이라도 좋으니 데리고 가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크흠···."

평생 경비대에서만 살아왔던 기수는 난처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두꺼운 작전 안내서를 찾아봤지만, 없었다.

기수는 즉시 소양에 가 있는 연에게 연락했다.

"두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여인들 문제고 다른 하나는 몽골족들이 남긴 아이들입니다."

-그래?

"네, 사장님.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알았다. 생각해보고 다시 연락하마. 그동안 문제 되지 않도록 잘 대해 줘라.

"알겠습니다. 사장님."

* * *

연 또한 이런 일은 예상해 본 적이 없기에 해결책이 떠오르지 않았다.

서역에서 네 개나 되는 제국과 동시에 전쟁을 치르고 그곳을 조선의 영토로 만들었어도 이런 문제는 없었다.

"무엇이 다른 거지?"

서역 또한 쉬지 않고 일어난 약탈과 전쟁으로 젊은 남자들이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이처럼 첩이라도 좋으니 혼인하게 해달라는 일은 없었다.

고민해 봤지만, 답을 얻을 수 없었던 연은 문식이에게 연락했다.

"어떡하면 좋겠냐?"

-뭘 어떡해. 열도만 일부다처제를 허용하면 되지.

"뭐야? 그렇게 하면 나중에 어떻게 하려고?"

-뭐, 나중에 다시 일부일처제로 변경하면 되는 거 아냐?

"너무 쉽게 말하지 마. 골치 아프단 말이야."

-그러니 쉽게 생각하라고. 우리도 성비가 맞지 않지만 일부다처제라 아무 문제 없어.

"정말이야?"

-그럼. 나부터 아내가 몇 명인데.

문식이가 자랑스러운 목소리로 말하자 연이 급히 물었다.

"몇 명인데?"

-음···, 몇 명이더라···. 하도 많아서 정확하진 않지만 30명은 넘어.

"뭐어! 30명이 넘는다고?"

-응. 부족을 흡수할 때마다 정략결혼을 하다 보니 그렇게 됐네.

알 수 없는 패배감에 사로잡힌 연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럴 줄도 모르고 문식이는 계속 떠들었다.

-어차피 세상 모든 일은 시장의 원리가 지배하잖아. 그러니 수요가 많은 쪽이 손해 보는 건 어쩔 수 없어. 꼭 손해라고 할 순 없지. 또한 한창때인데 금욕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고. 그러니 원하는 사람끼리 원하는 대로 하라고 나 둬. 그런 것까지 관여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지내는 세상 아니야?

"그게 무슨 말이지?"

-네가 말했잖아. 유럽에서는 문제가 없었는데 일본에선 시위한다고. 잘 생각해봐.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문식이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다르게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관여한 것이 문제였구나."

-그치! 그러니까 모른 체하고 넘어가. 그럼 알아서들 잘할 거야.

문식이의 말은 백성들의 삶에 일일이 관여하지 말라는 요지였다.

-세상 모든 일은 순리대로 흘러가는 거야.

"일일이 관섭하게 되면 오히려 꼬인다는 말이지?"

-맞아. 너 생각과 달리 조선 백성도 다르지 않아. 후기면 몰라도 지금은 자유로운 시대야. 유교가 뿌리를 내리기 전에 네가 박살 내버렸잖아.

조선 초기만 하더라도 재혼하지 않은 여인을 절부(節婦)라 부르고, 남자는 의부(義夫)라 부르며 상을 내렸다.

그러던 것이 성종 때 경국대전에 '여성의 재가 금지'가 실리면서 오직 여인들에게만 정조를 강조했다.

-잘 생각해봐? 왜 상을 줬겠어? 그만큼 상을 받을 사람이 적었던 거지.

"그런 거야?"

-그랬지. 그랬는데 시대 상황에 따라 바뀌었지.

"그래?"

-응. 왜란 때 죽은 남편들이 얼마나 많았겠냐? 하지만 여인들은 재혼하지 못했어. 할 사람이 적었거든. 그러다 보니 갈수록 엽기적인 일이 있을 때만 열녀문을 세우고 상을 주게 됐지.

많아진 절부들에게 더는 상을 내리지 않았다.

영조의 딸 화순옹주처럼 굶어 죽거나, 남편 따라 자살하는 여인에게만 상을 내렸다.

-그런 세상을 원하지 않으면, 그냥 순리대로 살아가게 놔둬. 말 들어보니 유럽에서는 문제가 없었다며. 왜 그랬겠어. 자유롭게 병사들이 마을로 왕래하게 뒀기 때문이지 않겠어?

"알았다. 고마워."

-그나저나 언제 올 거냐? 아니면 내가 갈까?

"아니야. 너랑 같이 가서 확인해 볼 곳이 있어. 그러니 조금만 기다려. 준비되는 대로 바로 출발할게."

-발전기 때문에 그러냐?

"응. 그곳에 강이 많다며."

-많지.

"그러니 그곳에 수력발전소를 세울 계획이야."

-고맙다.

"고맙긴. 그보다 칠레까지 길을 내야 할 거야."

-페루가 아니라 칠레까지?

"응. 그곳에 필요한 광물이 넘쳐나거든."

-그렇단 말이지. 알았어.

문식이와 통화를 마친 연은 바로 기수에게 무전을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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