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171화 (171/275)

< 171. 열도 문제(2) >

연은 열도 자체를 무지 싫어했다.

직접적인 피해를 본 적은 없지만, 수시로 도발하는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 때문이다.

'후안무치한 놈들이지.'

공식이였을때 일본에 출장도 가고 일본인과 협업도 해 봤다.

그러나 TV에 나오는 정치인 같은 일본인은 본 적이 없었다.

사회 관습 때문에 경직되어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을 자주 봤지만, 인간성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열이 치밀었다.

'일부러 때리려고 한 것이 아니더라도, 실수로 부닥쳤다면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니야?'

그래서였다.

일본을 직접 상대하지 않고 몽골인들을 풀어 놓은 이유가.

'증오보다 더한 게 무관심이다'란 말처럼 연은 일본에 관해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일본으로 오 갈 수 있는 모든 길만 차단해 버렸다.

그로 인해 열도는 다시 센고쿠 시대(戦国時代)로 돌아가 버렸다.

연이 들어서자 대기하고 있던 다이묘들이 보낸 십여 명의 사신들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올렸다.

"""전하를 뵙습니다."""

연은 손을 흔들어 그들이 자리에 앉도록 했다.

"반갑소. 그런데···, 전부요?"

연이 알기로 다이묘의 수는 200이 넘었다.

그런데 이곳에 있는 사신의 수는 12명뿐이었다.

"네, 전하. 그동안 몽골 놈들과 싸우면서 많이 떠나기도 하셨고, 대항하기 위해 힘을 합쳤습니다."

"그렇군요."

연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서로 눈치를 보더니, 누군가 벌떡 일어나 연을 향해 예를 표한 후 입을 열었다.

"전하, 위대하신 폐하께서도 그러시지만, 전하께서도 백성들을 위한다 들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간청을 받아 주시고 부디 일본 백성도 함께 보살펴 주십시오."

"""전하, 보살펴 주십시오."""

미리 연습한 것처럼 절도있게 일어나 외치는 사신들.

연은 그들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영주를 뜻하는 다이묘 대접을 받으려면 적어도 쌀 1만 석 이상 산출할 수 있는 영지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었다.

1만 석 가지고는 많아야 250여 명 정도의 병력을 고용할 수 있다.

그 병력 가지고 미쳐 날뛰는 몽골인들을 상대할 순 없는 법.

다이묘들끼리 뭉치고 뭉쳤다.

그러다 보니 이제 일본의 다이묘 수는 12로 줄었다.

"그대들의 마음을 알겠으나 우리 조선은 그대들의 제안을 들어 줄 수 없소."

"왜 안 됩니까? 전하. 이미 대조선은 제국을 선언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일본을 속국으로 받아들여도 되는 것 아닙니까?"

"그건 아니요. 비록 조선이 제국을 선포했지만, 기존의 제국과는 개념이 다르오."

"무엇이 다릅니까? 그러지 않아도 관리들이 그런 말을 하는 데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전하."

사신 대표가 답답한지 인상을 찌푸리며 따지듯이 물었다.

그러자 검수가 나섰다.

연은 손을 내저어 검수를 말리고 물었다.

"그대들의 주군이 원하는 건 단지 조선의 도움뿐이오. 만약 조선이 도와 그대들의 나라에서 악행을 저지르고 있는 몽골 놈들을 쫓아내면 그 후로 어찌할 것이오?"

"그거야···."

말을 하려다 만 사신 대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신의 말 한마디에 일본의 운명이 걸렸기에 신중해야 했다.

그가 입을 다물고 있는 사이, 연이 씩 웃으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몽골 놈들을 쫓아낸다고 해도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 같소만?"

"네? 무슨 말씀이십니까? 전하."

"그러지 않소. 지금이야 12명의 다이묘가 합심하여 몽골 놈들에게 대항하고 있지만, 몽골 놈들이 사라지면 다이묘들끼리 쇼군의 자리를 놓고 다시 싸울 것 아니요."

"전하, 그건 아닙니다. 이미 다이묘들께서는 합의하셨습니다."

"흥! 그게 말이 된다고 보시오."

"전하···!"

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거닐며 말했다.

"그런 생각이 없다면 왜 조선의 속국이 되고자 하오?"

"아닙니다. 전하···!"

"진정 백성들을 생각한다면 쇼군의 자리를 놓고 끝없이 싸우는 것보다 조선으로 들어오는 것이 좋지 않겠소?"

"맞습니다. 전하. 그래서 다이묘들께서는 조일병합(朝日倂合)을 원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대조선에서 거부하고 있으니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건 조선으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조선의 속국이 되고자 하는 것 아니오? 조선은 제국을 표명했지만, 그렇다고 속국을 두고 있진 않소."

"전하, 조선은 속국이라 하지 않고 우방국이라 부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그거 아닙니까?"

연은 몸을 확 돌려 사신 대표를 째려봤다.

사신 대표의 주군 도쿠가와 요리후사.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11남인 그는 운 좋게 폭발 속에서 살아남았고, 12명의 다이묘에 포함되었다.

그것도 가장 윗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쇼군에 오를 순 없었다.

다른 다이묘들이 견제하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연은 화가 났다.

"나에게 정치질을 하려는 것이요? 그게 그거라니, 우리 조선은 그런 식의 정치질은 용납지 않으니 돌아가시오."

"전하···!"

"""전하···!"""

사신들이 전부 일어나 연을 불렀지만, 연은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전하! 그럼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제발 가르침을 주십시오."

"""가르침을 주십시오. 전하···!"""

연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섰다.

"마지막으로 말하겠소. 우리 조선은 황제 폐하 말고는 모두 똑같소. 황실 기업인 조선전력공사도 나라에 세금을 내고 있다는 말이오. 그런데 그대들이 원하는 대로 한다면 조선이란 나라 안에 또 나라가 있는 것 아니겠소. 그럼 어떻게 되겠소. 그대들의 주군은 하등 조선에 도움이 안 되는데."

"""전하···!"""

조선이 합방을 거부하는 이유를 사신들도 알고 있었다.

말만 합방이지 도움만 원하는 게 아니던가.

하지만 우길 수밖에 없었다.

주군의 명령이니 따를 수밖에, 사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가서 전하시오. 다이묘니 쇼군이니 다 포기하고 조선의 품으로 들어오라고 하시오. 그리한다면 10년 치를 주리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전하."

"다이묘가 얻을 수 있는 1년 세수의 10배를 현금으로 주겠다는 말이오. 그 금액이면 조선 땅 어느 곳에서나 떵떵거리며 살 수 있지 않겠소?"

"저, 전하. 그런 조건이라면 당장 주군께 상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연의 제안에 사신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이런 조건이라면 자신들의 주군인 다이묘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조선 돈으로 쌀 한 1석이 20문 정도이니 1만 석이면 200원이다.

10배면 2천 원이나 된다.

현재 남아있는 다이묘들이 가진 영지에서 산출되는 쌀은 적게는 30만 석이지만, 요리후사의 경우에는 100만 석이 넘는다.

적게 잡아도 20만 원이나 되는 엄청난 거금이다.

그런 거금을 분할도 아닌 일시에 준다니 동할 수밖에 없을 터.

사신들은 연에게 예를 올리고 바로 일본으로 돌아갔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은쌍식이 소처럼 커다란 눈알을 돌리며 물었다.

"사장님, 굳이 돈을 줄 필요가 있습니까?"

"돈거래가 가장 깔끔하다. 증거도 확실히 남고."

"아···, 맞습니다."

그동안 전쟁으로 영토를 넓혀왔기에 오래전 있었던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은쌍식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옹진반도부터 전주 주변 평야와 습지까지 모두 정당한 돈을 주고 매입하지 않았는가.

그랬기에 지금까지 문제가 된 곳이 전혀 없었다.

"그럼, 앞으로 열도는 어찌 관리하실 생각입니까?"

"어찌하긴, 똑같이 하면 되지 않겠느냐?"

"그러긴 하지만···."

일본에 악감정이 없는 은쌍식이지만, 아쉬운지 입을 쩝쩝거렸다.

"걱정 말거라. 그곳은 자연 그대로 남겨둘 생각이니."

"그러시다면 저도 마음에 듭니다."

"왜? 다른 생각이라도 있었더냐?"

"아닙니다. 지금 개발할 곳도 많은 데 굳이 그런 곳까지 지원해야 하는지 의문이었습니다."

연은 걸음을 옮기며 설명했다.

"쌍식아, 어찌 됐건 일본이 저렇게 된 건 우리 때문이지 않으냐? 그런데 그냥 둔다면 그 원한이 어디로 향하겠느냐? 지금이야 알면서도 모른 체하고 있지만, 세월이 지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길 것이다. 그러기 전에 조선의 품으로 받아들여 조선인으로 살아가게 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런데 전혀 개발하지 않으실 생각이십니까?"

"먹고 살게는 만들어 줘야지. 그거면 충분할 것 같다."

"그리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순종적이라는 일본인.

하지만 연은 믿지 않았다.

그래서 두고 보기로 했다.

'그러다 보면 섞이겠지···.'

* * *

열도 문제의 답을 던져 놓고 은동리로 돌아온 연에게 은진이가 찾아왔다.

"제로니모라 했느냐? 아파치 왕국이라 했고?"

"네, 사장님. 서울이란 곳에 터를 잡고 세운 원주민 왕국이라 합니다."

"흐음···."

은진이의 보고를 받은 연은 고심에 빠졌다.

역사를 잘 모르지만 아파치와 제로니모는 모를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혼란스러웠다.

'그때 그 빛이···, 그렇다면 문식이가 틀림없은데···.'

오래전 문식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 제로니모가 왜 제로니모가 되었는지 아냐?'

'그게 무슨 말이야? 제로니모가 제로니모지 다른 뜻이 있어?'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고 웃겨서.'

한국사 선생님이지만, 세계사에도 관심이 많았던 문식이는 역사 관련 책이 나오면 무조건 사서 봤다.

'역사라는 게 사실과 다른 게 너무 많거든.'

'그건 나도 들었어. 승자의 기록이라 그렇다는 하데.'

'그래서 찾아봤어.'

'제로니모를?'

'아니 미국 역사책을. 그런데 재밌는 게 있어서 말하는 거야.'

'너야 재밌다고 하지만···, 아니다. 말해봐 내가 박장대소는 못 해도 웃어는 줄게.'

문식이는 미국 역사 관련 서적을 보다가 우연히 제로니모에 관해 알게 됐다.

'그렇게 된 거였어? 재미나군.'

'그치? 웃기지 않냐?'

'그래 웃기다.'

문식이의 말은 웃기기보단 어처구니없었다.

멕시코와 미국을 상대로 투쟁했던 아파치족의 주술사 제로니모는 뜻하지 않게 이름을 얻게 되었다.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뉴멕시코주.

그곳에서 태어난 고야틀레이는 부족의 전사들을 이끌고 카스키예를 습격했다.

마침 그날은 카스키예의 수호성인인 성 제롬을 기념하는 날이었기에 성당에서는 성 제로니모를 위해 연극까지 준비해 놓았다.

그런데 아파치 전사들이 쳐들어오자 멕시코군 펠리페 대장이 장난으로 외쳤다.

'성 제로니모 만세!'

사람들도 따라 외쳤다.

그 후 고야틀레이는 제로니모가 되었다.

항상 똑같았던 둘만의 술자리에서 들은 제로니모의 이름에 관한 이야기.

그 이야기가 떠오르자 연은 확신했다.

"은진아, 지금 뉴스웨덴에 누가 있지?"

"복만이가 있습니다."

"기병대 말고 해경 말이다."

"병수가 있습니다."

"병수에게 즉시 연락하거라."

연은 급히 태극기를 그려 은진이에게 넘겨줬다.

"이 모양대로 그린 깃발을 달고 바로 베라크루즈로 가라고 해라. 그곳에서 아파치 왕을 만나면 바로 나에게 무전을 치라고 하고."

"알겠습니다. 사장님."

연이 뜬금없는 지시를 자주 내렸기에 은진이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 * *

조선전력공사 서역 함대에서 3척을 가지고 북미 동해안을 샅샅이 뒤지고 있던 병수는 명령을 받고 즉시 배를 돌렸다.

그동안 야코프를 찾기 위해 북미에 있던 기병대와 해경은 쉴 틈이 없었다.

크리스티나 요새를 불태운 것을 빌미로 네덜란드로부터 뉴암스테르담을 얻어냈다.

잉글랜드 정착민들을 조선인으로 받아들이고 관리도 해야 했다.

브리튼 왕국과 전쟁으로 프랑스 병사들이 빠지자 그곳까지 진출하여 조선의 영토로 선언했다.

하지만 플로리다를 점령하고 있는 스페인은 건들지 않았다.

타국의 일에 관여하지 않고 침략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베라크루즈로 가라니.

병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명령이 내려지자 바로 행동을 취했다.

해적들이 득실거리는 멕시코만을 지나 바로 베라크루즈로 향했다.

1주일을 쉬지 않고 배를 몰아 도착한 베라크루즈.

그곳에 무수히 많은 함선들이 정박해 있었다.

해도가 없기에 멀리 떨어져서 정박한 서역 함대로 원주민들의 카누가 다가왔다.

내려준 밧줄 사다리를 타고 올라온 원주민 전사들.

그들은 거대한 철선을 보고 감탄을 뱉었지만,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혹시 조선에서 오셨습니까?"

"그렇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따라오시죠."

병수는 너무나도 유창한 조선말에 놀랐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미리 준비한 물품들을 상륙정에 가득 싣고 카누를 따라 베라크루즈 항구로 들어갔다.

"어서 오시오. 나는 아파치 왕국의 총사령관 일식이라 합니다."

"환영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나는 조선 서역 함대 부사령관인 병수입니다."

"그러시군요. 반갑습니다.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바로 출발 해야 합니다."

"네?"

"대왕께서 그대들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 네."

병수와 대원들은 일식이가 이끄는 아파치 전사들을 따라 서울까지 이동했다.

말을 타고 갔지만, 힘에 겨웠다.

배를 타고 바다에서 살다가 1천m가 넘는 고지대로 올라가니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하지만 조선군 총사령관이자 조선전력공사의 사장님이신 연의 명령이라 군말 없이 따랐다.

생각보다 잘 닦여있는 길이지만, 베라크루즈에서 서울까지 800km나 되는 여정은 보름이 지나서야 끝났다.

가는 길에 들렸던 테노치티틀란도 대단했지만, 아파치 왕국의 수도라는 서울은 더욱 끝내줬다.

피라미드 모양으로 지어진 아파치 왕국의 왕궁.

단단한 돌을 정교하게 깎고 쌓아 만들었다.

하지만 기존의 피라미드와 다르게 경사가 완만했다.

경사를 따라 위로 올라가는 병수의 눈에 강인해 보이지만, 인자한 웃음을 짓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그의 옆에는 무수히 많은 여인들과 아이들이 있었다.

병수와 대원들이 오는 모습을 보고 그가 옆에 있는 여인에게 말했다.

"저들이 바로 내가 말한 조선인들이다. 어떠냐? 대단하지 않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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