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0. 열도 문제(1) >
조선 제국 선포식이 있던 다음날.
온 백성들이 흥겨운 기쁨을 누리며 잔치를 지속했다.
그와 달리 조선 관리들은 무척이나 바빴다.
세계 곳곳에서 몰려온 왕들과 사신들을 만나 협상하며 조율하고 있었다.
"영토분쟁은 두 나라의 일입니다. 조선에서는 관여할 순 없습니다."
"아니, 그러는 게 어딨습니까? 대조선 제국은 세계 최강국 아닙니까? 그런 대조선에서 나서 준다면 우리나 저쪽이나 받아들일 겁니다."
"그거야 표면적으론 그럴 수 있지만, 결국 당사자인 양국의 합의가 제일 중요합니다. 우리 조선에서 나섰는데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화살은 우리 조선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조선은 절대 타국의 영토분쟁에는 관여하지 않는 게 원칙이고, 이 원칙을 깰 수는 없습니다."
조선은 이미 확보한 영토를 관리하는 데 원 힘을 쏟고 있었다.
무선 통신이 발달했기에 가능했지만, 곳곳에서 문제가 지속해서 튀어나왔다.
가장 큰 문제는 생활 습관, 즉 문화였다.
기본적으로 흰 것을 좋아했던 조선인들.
삶이 좋아지자, 위생과 청결을 중요시했다.
그런데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이제 막 중세 암흑기를 벗어난 17세기 중엽이다.
조선 영토 중에서 만반도가 있는 동역의 경우 짧은 기간에 20세기 초반 같은 환경이 구축되었다.
동역 곳곳은 도로와 철도가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전 지역이 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다른 곳은 그러지 못했다.
21세기에도 몽골초원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런 것처럼 동역과 남예맥 기차역 주변, 연이 지냈던 소양 말고는 발전된 문명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안전이었다.
기차역이 있는 도시는 이미 조선의 관청이 들어섰기에 포졸들이 치안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반도 말고는 전부 황실 기업인 조선전력공사 소유의 땅이기에 예맥 기병대가 수시로 돌아다니며 치안을 담당했다.
그래서인지 산적이나 마적 같은 약탈로 삶을 연명하는 폭력집단은 발붙일 곳이 없어졌다.
사소한 일이라도 폭력집단의 약탈이 보고되며 예맥 기병대가 출동하여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주변을 이 잡듯이 뒤졌다.
백성들의 삶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 예맥 기병대.
더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훈련을 멈추지 않았다.
폭력집단을 상대로 강도 높은 실전을 쌓고 있었다.
"차관을 더 달라고 하시는데 이미 귀국의 재정으로는 변제(辨濟)가 힘든 상황입니다."
"그럼 어떡하라는 말입니까? 당장 백성들이 굶고 있습니다. 이번 한 번만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허 참···."
관리는 혀를 차며 쓸쓸한 입맛을 다셨다.
조선은 제국을 선언하면서 '조(曹)'로 되어 있는 행정조직을 '부(府)'로 바꾸었다.
그래서 이제 외교부 소속이 된 관리는 알고 있었다.
앞에서 하소연하는 사신의 나라인 남명이 어떤 처지인지.
한때 세상의 중심이라 말하며 대제국의 유세를 떨쳤던 명나라.
그 명나라가 망하고 그곳은 네 나라가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조선의 땅이 된 산동반도를 기준으로.
북쪽과 서쪽은 순치제가 돌보는 청나라가.
남쪽은 도르곤이 이끄는 후금이 차지하고 있다.
양자강 남쪽으로는.
동쪽은 영력제가 통치하고 있는 남명이.
서쪽은 정성공이 지배하고 있는 대명이 있다.
다시 살아난 도르곤이 호기(呼氣) 있게 나섰지만, 자체 수석총을 생산하는 남명의 도발에 움직임이 제한됐다.
남명을 치려고 하면 청나라가.
청나라를 치려고 하면 남명이 달려드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전선이 고착되었고, 고착된 전선은 국경으로 변해가는 중이었다.
연 때문에 운 좋게 명맥을 유지하고 있던 남명 또한 도르곤이 이끄는 후금이 무서워 정성공이 설치는 대명을 치지 못하고 있다.
후금의 남하를 막기 위해 양자강에 배치된 병력을 빼는 순간 어찌 될지 모르기에 꼼짝할 수가 없었다.
청나라 또한 사정이 좋지 않았다.
남명의 주유랑과 손을 잡고 도르곤을 견제하고 있지만, 그것뿐이었다.
이미 조선의 땅이 되어버린 북쪽으로 진출을 포기한 청나라.
그렇다고 드넓은 평야 지대인 화중 지역에서 도르곤을 상대할 순 없었다.
확보한 화북 지역을 지키는 데 급급했다.
네 나라 중 조선과 관계가 좋은 정성공의 대명만 꿀을 빨고 있었다.
도르곤 때문에 꼼짝 못 하는 남명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발전을 추구하는 대명.
각지의 특산물을 조선에 수출하면서 빠르게 힘을 기르고 있었다.
특히 운남에서 생산되는 대리석과 보이차는 생산량이 달릴 정도였다.
조선의 대리석과 달리 옅은 무늬를 띤 운남의 대리석은 조선 여인들이 선호했다.
독특한 향과 색을 가진 보이차는 숙취 해소에 좋다는 이유로 술을 좋아하는 남자들이 즐겨 찼았다.
아무튼 대명이 커나가자 불안해진 남명은 수시로 조선에 사신을 보냈다.
조선 제국 선포식을 한다는 말에 영력제가 직접 참가하려고 했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한때 속국이었던 조선이 제국 선포식을 한다니.
참여하여 뭐라도 얻어 오려 했지만, 가서는 안 된다는 신하들의 반발이 너무나 거셌다.
그러지 않아도 불안한 남명의 민심.
그 민심을 지키고자 천자의 존엄을 내세워야 한다는 사신들의 말만 없었더라면 주유랑은 조선을 방문했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던 쌀을 가지고 가야만 했다.
굶주려 성난 민심을 달래는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한때 조선에 쌀을 수출했던 남명이지만, 수년간 지속된 전쟁으로 인해 상황이 좋지 않았다.
수석총이야 조선에서 수입해 쓰는 것보다 성능이 떨어지고 조잡하지만, 그래도 전쟁을 치를 수 있었다.
하지만 화약은 수입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원시적으로 화약을 생산하기에 그 사용량을 감당해 낼 순 없었다.
그래서 늘어나게 된 차관.
이제는 남명의 1년 예산을 넘어 섰다.
울며 짜며 하소연하는 남명의 사신을 바라보던 외교부 관리.
책상 밑에서 둘둘 말린 지도를 꺼내더니 사신 앞에 폈다.
"우리 조선이 파악한 바로는 귀국의 문제는 바로 이곳에 있다고 봅니다."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이곳에 있다니?"
사신은 지도와 관리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궁금해했다.
"이곳을 서로 차지하기 위해 두 나라의 병력이 녹아내리고 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래서 이곳을 아예 우리 조선에 파십시오."
"네? 팔다니, 이곳을 조선에 넘기란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넘기란 말은 아닙니다. 지금까지 쌓인 차관과 조금 전 요청한 금액을 얹어 주겠습니다. 아···, 물론 확정된 건 아닙니다. 제가 귀하의 백성을 위한 충심에 감동해서 위에 보고는 해보겠다는 말입니다. 될지 안 될지는 위에서 결정할 겁니다."
"크흠···."
남명에서 온 사신은 지그시 눈을 감고 침음을 뱉었다.
어찌 모르겠는가.
조선의 관리가 위를 운운하지만 이미 확정하고 통보한다는 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
사신이 아무 말 없이 눈을 감고 있자, 관리가 나섰다.
"이곳을 넘기면 이곳을 자유무역지역으로 개발할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더는 후금과 전쟁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군요."
관리의 말에 놀라 눈을 번쩍 뜬 사신이 물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더는 전쟁이 없다니?"
"그러지 않겠습니까? 이곳은 지리적으로 보나 후금과 남명의 교역 장소가 될 겁니다. 교역하면서 친해지다 보면 싸움을 지속할 순 없겠지요."
"크흠···!"
사신은 인상을 찌푸렸다.
조선 관리의 말은 이치에 맞지 않았다.
수년 동안 싸워왔는데 단순히 교역한다고 그 원한이 풀어지겠는가.
하지만 조선이 중간에 끼어든다면 가능할지도 모를 일이다.
"폐하께 여쭤보고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아무튼 우리 남명을 위해 이렇게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나는 귀하의 충심에 감동했을 뿐입니다."
이렇게 해서 조선은 산동반도에 이어 상해를 얻어 냈다.
상해 서쪽 100km 지점에 있는 태호(太湖).
그곳 중심을 경계로 북쪽은 상주(常州) 동쪽에서 양자강까지, 남쪽은 항주 동쪽에서 전단강(錢塘江)까지 새로운 국경선이 그어졌다.
도르곤의 반발이 있었지만, 크지 않았다.
양자강 북쪽 곡창 지대를 차지한 후금이라 하지만, 지속된 전쟁으로 상황이 좋지 않았기에 받아들였다.
조선이 남명으로부터 넘겨받은 곳은 두 강 사이에 끼인 화중의 곡창 지대이다.
하지만 수시로 일어난 전쟁으로 이미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 되어버렸다.
그런 곳을 남명이 차지하고 있다면 몰라도 조선으로 넘어간다면 나쁠 게 없다고 판단한 거였다.
아무튼 연이 상해 주변을 차지하라고 지시한 이유가 있었다.
"저러다 남명이 망하기라도 하면 조선에 좋을 것이 없다."
"망해야 좋은 것 아닙니까?"
이해가 되지 않아 은쌍식이 물었을 때 연이 돼 물었다.
"남명이 망하면 그곳이 어찌 되겠느냐?"
"어찌 되긴요. 후금이나 대명이 차지할 것 아닙니까?"
"그리된다는 보장도 없지만, 그렇게 되면 우린 거래 상대를 하나만 잃는 것이 아니다. 잘못하면 모두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장님."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지 않으냐? 남명에서 주유량의 자리를 노리는 자들이 많다. 그러니 주유량이 망한다 하더라도 다른 자가 그곳을 차지할 것 아니냐? 어찌 됐든 남명은 명나라의 전통을 이어받은 가장 인구가 많은 곳이니까 난리가 날 거다."
이제 연이 없어도 조선전력공사를 잘 이끌어 가고 있는 은쌍식이지만, 국제 정세를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음모와 모략이 판치는 정치는 젬병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여차하면 목이 잘려 나가는 곳이 정치판이기에 은쌍식은 발을 디밀 생각조차 하지 않으며 살아왔다.
"그럼 변한 게 없지 않습니까?"
"왜 변한 게 없겠느냐? 누군가 망하면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 자가 있지만, 그 자리를 팔아먹으려 하는 놈도 틀림없이 나타난다. 그러다 보면···."
"개판이 되겠네요."
"그치! 개판이 벌어지고 혼란이 가속되면 지금까지 조성해 놓은 교역로를 새로 짜야 한다. 그럴 때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곳이 바로 조선의 상사들이다."
"역시 사장님이십니다. 사장님께서는 항상 백성들을 염두에 두고 생각하시는데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아니다. 너는 직원들을 잘 챙기지 않느냐?"
"그렇긴 하지만, 아직 배울 게 많습니다."
연은 겸양을 떠는 은쌍식을 보고 씩 웃었다.
조선전력공사의 직원이라면 누구나 우러러보고 존경하는 은쌍식이지 않은가.
그런 은쌍식이지만, 항상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지 않아도 조선에 남아도는 게 쌀과 밀 같은 식량이기에 수급 조절을 잘해야 한다.
거기에 조선전력공사에서 생산하는 물품들을 직접 또는 가공해서 파는 상사들의 이익까지 챙겨야 한다.
21세기에서 살다 온 연이기에 개인이나 상사의 경제 활동이 나라 살림에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상해를 자유무역지역으로 키울 생각이었다.
"그러지 않아도 그곳의 인구가 너무 줄었다."
"줄면 좋은 것 아닙니까? 아, 아니다. 고객이 적이지는 군요."
1억 명이 넘던 중원의 인구가 이제는 8천만 명 이하로 쪼그라들었다는 조서원의 보고가 있었다.
왜 그러지 않겠는가.
네 나라가 서로 견제하면서 수시로 전쟁을 벌이며 살육이 끊이지 않으니 인구가 늘어나려야 늘어날 수 없었다.
"이제 우리 조선의 인구가 8천만 명을 넘어섰으니 자체적으로 나라 살림이 돌아갈 수 있겠지만, 모두가 잘 먹고 잘살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부를 끌어와야 한다. 그렇다고 일방적이면 좋을 게 없지."
"우리 조선 백성들을 위해서라도 받쳐줄 시장이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사장님."
"맞다. 내부에서 잘 돌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계가 존재한다. 그러니 외부도 신경 써야 한다."
"아···, 이제 알겠습니다."
연과 함께 조선전력공사를 키워 온 은쌍식이기에 연의 의도를 깨달았다.
전과 다르게 급격히 늘어난 생산량을 소비할 곳이 필요했다.
하지만 조선인만으론 그 수요를 감당할 순 없었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수출만 해서는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
그래서 연은 나라마다 특산품을 수입해서 유통하는 상사들을 지원하고 있었다.
조선에서 사줘야 그 돈으로 다시 조선의 물품들을 구입할 것 아닌가.
아무튼 세계의 경제는 연의 계획대로 조선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연은 준비하고 있는 것을 물었다.
"쌍식아, 지폐 발행은 어찌 돼가고 있느냐?"
"이미 조선은행에서 충분히 찍어 놓았습니다. 말씀만 하시면 바로 유통할 수 있습니다."
"그래, 고생했다. 조선은행에 연락해서 상사들에게 알리고 먼저 유통을 시작하라고 해라."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런데 저쪽에서 온 사신들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흐음···."
이번 조선 제국 선포식에 생각지도 않았던 사신단이 몰려왔다.
그들은 바로 동해 건너 일본인들이었다.
10만 명이나 되는 몽골인들을 풀어 놓은 열도.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농사를 지을 줄 모르는 몽골인들.
살인과 약탈을 자행하면서 열도를 휩쓸었다.
이에 대항하던 다이묘들.
처음에는 각자 자기 지역을 방어하며 싸웠지만, 어느 순간 한계를 깨닫고 뭉쳤다.
조선이 대만을 차지하고, 다두 왕국이 필리핀을 점령하면서 세상과 단절된 열도는 고립되었다.
그런 와중에 말박이 몽골인들이 설치니 죽지 못해 사는 곳이 되어버렸다.
다이묘들은 서로 연합했다.
어떻게 해서든 몽골 말박이들을 몰아내려고 했다.
하지만 도저히 자신들의 힘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았다.
그래서 조선에 단체로 사신들을 보내 도움을 요청했다.
"어디까지 진행됐느냐?"
"우리 조선을 상국으로 섬기고 조공을 받치겠다고 했습니다."
"그건 전에도 그랬던 것 아니냐?"
"맞습니다. 그래서 다 내려놓으라고 했습니다."
"음···."
몇 번이나 조선의 품으로 들어오라고 했지만, 그때마다 다이묘들은 쥐고 있는 권력을 놓지 않았다.
백성들이 살해당하고 약탈과 겁탈에 시달리고 있지만, 괘의치 않았다.
자신들의 삶과 무관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참지 못한 백성들이 들고일어난 건 아니지만, 몽골 쪽에 붙어 버린 수가 갈수록 늘어났다.
예맥 대륙 북쪽을 전부 차지한 연은 벽에 걸린 지도에서 물끄러미 열도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쌍식아, 아무래도 내가 그들을 만나봐야겠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시간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은쌍식은 열도 문제로 귀찮아했다.
조선 밖의 일.
그것도 군사적 개입이 필요한 일이라 관리들은 수시로 은쌍식을 찾아왔다.
하지만 은쌍식이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일이었고, 관여하고 싶지도 않았다.
청나라야 직접 겪어 봤기에 찢어 죽이고 싶었지만, 일본과의 은원관계는 잘 모르기에 짜증만 났다.
그런데 연이 나서겠다고 하자 은쌍식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