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9. 조선 제국 선포식 >
새로 재건된 경복궁은 입구부터 대단했다.
‘임금의 큰 덕(德)이 온 나라를 비춘다’는 의미를 가진 광화문(光化門)은 태조(太祖) 4년(1395)에 세워졌지만, 임진왜란 당시 경복궁과 함께 왜놈들의 방화로 소실되었다.
그래서 새로 설계된 광화문은 조선의 첨단 기술이 전부 투입됐다.
'두 번 다시 광화문이 소실되지 않도록 단단히 지어야 한다'는 효종의 어명에 따라 지어진 광화문은 그 자체가 요새였다.
원래 30m 정도였던 광화문은 3배 이상 큰 100m로 지어졌다.
정면 가운데 큰 중앙 문이 있었고, 양옆으로는 같은 크기로 두 개의 문이 있었다.
그런데 원래 크기의 중앙 문보다 옆문이 두 배 이상 컸다.
중앙 문은 넓이만 30m였고, 강철판에 알루미늄을 덧댄 후, 불에 강한 방화수로 알려진 은행나무를 붙여 만들었다.
조선 제국 선포식에 참가한 근처에 사는 초등학생들.
선생님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저 광화문은 터지는 포탄을 맞아도 끄떡없다고 한다.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아는 사람 있나?"
선생님의 질문에 똘똘해 보이는 아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오, 그래. 순식이 말해 보거라. 아버님께 들은 거냐?"
"아닙니다. 선생님. 집에 놀러 온 삼촌에게 들은 겁니다."
"그렇구나. 순식이가 학우들을 위해 설명해 보거라."
"네, 선생님."
행식이와 미순이 사이에서 태어난 순식이는 은동리에 살지 않았다.
아버지인 행식이가 조선의 행정을 도맡아 일할 수밖에 없기에 한양, 그것도 사대문 안에 살고 있었다.
"폐하께서는 두 번 다시 광화문이 불타 소실 되지······. 은행나무-강철판-알루미늄-강철판-은행나무로 이루어진 10m 간격으로 조립된 3개의 중앙 문은 기관에 의해 밑에서 위로 올라가는 식으로 개폐되도록 구성되어 있고, 양쪽 문 또한 10m로 된 문이 좌우로 이동하면서 개폐되는 방식입니다."
순식이의 설명에 선생님이 손뼉을 치자 다른 학생들도 따라 쳤다.
"그런데, 순식이는 저 문의 기관 설계를 누가 한 건지 아느냐?"
"죄송합니다. 선생님. 그건···, 듣지 못했습니다."
선생님은 순식이가 눈을 깜빡이며 난처해하자 온화하게 웃으며 설명했다.
"저 광화문의 기관 장치를 설계한 분이 바로 순식이의 어머니인 강미순님이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조선의 다리와 댐은 강미순님께서 만든 공식으로 설계가 되고 있다. 그분께서 집필한 산수 교과서를 우리가 배우고 있고."
성을 가지란 말에 행식이는 '경'이란 성을 썼고, 미순이는 '강'이란 성을 지었다.
둘이 경강 대교를 구경하다가 눈이 맞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숙제를 풀지 못해 물어봐도 미소만 짓던 어머니가 '수학의 어머니'라 부르는 강미순이라니.
경강 대교 밑에서 태어난 줄만 알고 있던 순식이는 뜻밖의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버지야 워낙 유명하기에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어머니는 집에서 살림이나 하던 분 아닌가.
그 사실을 알게 된 순식이는 옆에서 경외의 눈빛으로 쳐다보는 학우들의 시선을 느낄 수 없었다.
선생님의 설명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에 가면 어머니에게 무엇부터 따질지 고민 중이었다.
"광화문 지하에는 기관 장치만 있는 것이 아니단다. 차량이 통과할 수 있는 도로와 철길이 우리가 앉아 있는 이곳 한양 광장 아래로 이어져 있단다."
"""와···!"""
"이처럼 지하로 운행하게 한 이유를 아는 사람 있나?"
또다시 시작된 질문에 학생들은 손을 번쩍 들었다.
경복궁을 재건하는 일은 조선에서 가장 큰 사건이라 설계할 때부터 라디오에서 매일 같이 전문가들의 토론이 있었기에 관심이 없는 초등학생이라도 한 번쯤은 들어 보았다.
"이곳 한양 광장과 공원은 한양에 사는 시민들을 위해 차량 통행을 금했습니다."
"경복궁에 필요한 물품은 모두 지하를 통해서 운반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은동리에서 연구하시는 과학자님들이 석 달 동안 함께 연구한 결과물입니다."
어린 학생들의 말을 선생님과 백성들이 흐뭇한 모습으로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둥'하고 북소리가 울렸다.
"모두 조용히 하거라. 이제 시작하려나 보다."
선생님의 말씀에 입을 다문 어린 학생들.
그들의 눈에 기이한 장면이 들어왔다.
30m 중앙 문이 아래로 내려가고 양옆 10m 문이 옆으로 이동하며 3개의 광화문이 활짝 열렸다.
"""와···!"""
어린 학생들이 신기한 모습에 환호성을 지르자 백성들도 눈치를 보더니 따라 외쳤다.
백성들은 활짝 열린 광화문을 통해 근정전(勤政殿) 볼 수 있었다.
전 같으면 흥례문(興禮門)과 근정문(勤政門)에 막혀 내부를 볼 수 없었던 근정전 앞 광장.
뚫린 길을 따라 각국에서 온 왕들과 사신들 그리고 조선의 관리들과 초대받은 백성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근정전에서 덕수궁 앞까지 뻥 뚫린 한양 광장.
조선의 기상을 보여주는 듯했다.
조선 제국 선포식을 보려고 한양 광장에 모여든 백성들은 어림잡아도 20만 명은 넘어 보였다.
광화문 위에 설치된 커다란 북에서 다시 '둥'하고 북소리가 울리고 가로등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선식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늘 있을 조선 제국 선포식에서 우리 조선의 중심이자 기둥이신 폐하께서 발표하실 내용이 많습니다.
-매우 중요한 내용이니 잘 들으시고 조선의 앞날에 이바지하시길 바랍니다.
이제는 라디오 생방송을 진행하지 않는 선식이의 안내 방송이 계속되는 가운데 연과 태자비도 자리를 잡고 앉았다.
"명화는 이리 주시오. 내가 안고 있겠소."
"아닙니다. 전하. 어찌 전하께서···."
"아니요.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좋을 듯해서 그러오. 그러니 명화를 이리 주시오."
연은 이제 갓 돌이 지난 큰딸 명화를 품에 안았다.
그 모습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잘 보였다.
웅성거리는 백성들.
그래도 연은 신경 쓰지 않고 명화를 보고 밝게 미소 지었다.
평생 여자를 사귀어본 적이 없던 연인데, 딸까지 생기자 딸바보가 되어 버렸다.
제일 먼저 우방국이 된 다두 왕국의 카마찻 왕의 축하사를 시작으로 최근 우방국이 된 브리튼 왕국의 칼 10세를 대신하여 온 라르스 카그 재상의 축하사가 끝났지만, 아직도 진행할 것이 많았다.
10시부터 시작된 선포식은 정오가 가까워지자 정점에 달했다.
-마지막으로 조선의 폐하께서 조선 제국을 선포하겠습니다.
-내외 귀빈 여러분.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폐하를 맞이하십시오.
효종이 나타나자.
"""폐하, 만수무강(萬壽無疆)하십시오."""
백성들은 전처럼 '만세'를 외치지 않았다.
대륙이라 할 수도 없는 좁은 땅덩이에 살면서 대륙이니 중원이니 외치는 그들의 인사법을 따라 하지 않고 간략하게 바꾼 것이다.
아직도 넓고 강한 어깨를 지니고 있는 효종.
근정전 앞 단상에 오른 후 입을 열었다.
-이 나라 조선은 3991년 전 단군조선(檀君朝鮮)부터 시작된 긴 역사를 가진 나라이다.
효종은 조선 제국 선포식에 쓸 연설문을 작성하는데 1년이 넘도록 고심해왔다.
이미 조선은 인종의 용광로가 되어버렸기에 문구 하나하나 신경 쓰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조선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 단군조선을 끌어들였다.
-하지만 뭉치지 못한 단군조선의 백성들은 흩어져 살며 서로가 서로의 적이 되었다.
어린 학생들은 효종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라 알고 있었지만, 스피커를 통해 들려 오는 묵직하니 근엄한 효종의 목소리에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낀 거였다.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
이제는 굶주리거나 아파도 치료를 받지 못하는 백성이 없지만, 자기들이 태어나기 전만 해도 세상은 지옥 같았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으며 자랐다.
그런데, 이제 조선은 세상에서 가장 크고 위대한 나라가 되었다.
그런 나라의 중심이 되는 왕.
이제 황제라 불러야 할 폐하께서 말씀하시는 걸 현장에서 직접 들을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어린 학생들뿐만 아니라 선포식에 참가한 모든 백성들은 격양되었는지 눈물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앞으로 조선은 연호(年號)로 예기(濊紀)를 쓰기로 한다.
-예맥 대륙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내년 1월 1일을 기점으로 예기(濊紀) 1년으로 한다.
-이는 조선 제국이 사라질 때까지 지속하도록 한다.
효종의 말에 각국에서 온 왕과 사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않아도 나라마다 다른 연호 때문에 문제가 많았다.
조선을 따르지만, 조선의 연호를 따라하기는 뭔가 아쉬웠고, 그러다 보니 나라마다 연호를 제각기 써왔다.
그런데 예맥 대륙을 통틀어 하나로 보고 예기를 쓴다니.
그것도 단군조선부터 시작하는 게 아닌 내년을 기점으로 1년으로 한다니.
아쉬울 필요도 없고 불만을 가질 이유도 없었다.
그들 또한 모두 예맥 대륙 사람들 아닌가.
-또한, 예기는 1년을 365일로 정하고, 한 달을 30일로 하고, 마지막 달은 35일로 한다.
효종은 천문관의 연구를 토대로 1년을 365일로 정하고, 4년마다 12월을 36일로 하루 더 늘리기로 했다.
달의 움직임에 따라 정해진 음력.
로마의 황제에 따라 30일이 되었다가 31일이 되었다가 복잡해진 서양력.
그 모든 걸 폐기하고 간략해 버렸다.
-한 주를 5일로 하고 매주 마지막 날은 쉬는 날로 정한다.
"""와···!"""
효종의 말에 한양 광장에 모여 있던 백성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동안 관공서는 주 4일 근무 후 하루를 쉬었지만, 백성들은 그러지 못했다.
한 주라는 개념조차 있는 곳보다 없는 곳은 더 많았고, 쉰다는 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런데 정식으로 효종이 발표하자 백성들은 환호성과 함께 누군지도 모를 옆에 있는 사람을 껴안고 방방 뛰었다.
"이제 5일마다 정식으로 쉬는 겨?"
"그럼! 폐하께서 방금 어명을 내리지 않으셨는가?"
"어명이라니, 황명이지."
"맞아, 맞아. 황명을 내리셨으니 이젠 맘 놓고 축구 경기 보러 갈 수 있겠네."
선식이와 행식이 그리고 대신들은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많은 것을 고려했다.
특히 백성들이 가장 좋아할 만한 것을 마지막 연설문에 넣었다.
-조선 제국의 초대 황제인 짐은 선언하겠다.
-예맥 대륙의 번영과 평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하며 조선 제국 탄생을 선포한다.
"""와···!"""
"""만세, 만세, 만만세!"""
사람들의 습관은 편한 쪽으로 이동하기 마련.
'만세' 대신 '만수무강'으로 바뀌었지만, 너무 기쁜 나머지 다시 만세를 외쳤다.
광화문 일대에 축포가 터지고 꽃잎이 휘날리는 경사스러운 날.
라디오로 선포식을 듣고 있던 백성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역시 한민족은 음주·가무에 특화된 민족이었다.
이를 익히 알고 있기에 연은 이번 선포식에 막대한 돈을 풀었다.
조선전력공사 이름으로 준비된 잔치 음식들.
선포식이 끝나자마자 한양 광장 지하에서 미리 준비한 잔치 음식들이 등장했다.
광장 한쪽에 마련된 무대에서 조선의 명가수 예은이와 동서 화합의 상징인 카순이 자매의 공연이 시작됐다.
이곳뿐만 아니었다.
조선전력공사 분점이 있는 곳은 전부 3일 동안 잔치가 지속됐다.
먹고 마시며 즐기는 조선 백성들.
'오늘 같기만 해'라는 카순이 자매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덩실덩실 춤을 췄다
하지만 세상 모든 곳이 이러지는 않았다.
* * *
스페인 제국의 펠리페 4세의 사생아였던 돈 후안 호세.
황제인 아버지와 제국의 영광을 위해 반란을 일으킨 아파치 왕국을 단죄하기 위해 나섰다.
베라크루즈 북쪽 해안에 상륙하여 숲으로 발길을 옮기던 콩키스타도르들.
폭폭 빠지는 벌 썩인 모래야 강인한 체력으로 벗어난다지만, 곳곳에 파묻혀 있는 철질려로 인해 아비규환이 벌어졌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지 않고 뭐 하느냐!"
"어서 힘을 내 말을 끌어내라!"
"그 말은 포기하고 당장 움직여!"
육지에서 정찰 또는 식수나 음식을 조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상륙정을 타고 내린 병사들은 처음에는 안도했다.
둥근달은 아니지만, 덩실 떠 있는 달빛의 인도로 상륙하고 난 후부터 일이 터졌다.
물이 빠졌기에 단단해진 모래밭이라 생각했던 집결지.
각자 자신이 소속된 부대를 찾아 이동하는 중에 '쿠꽝!' 소리와 함께 모래밭이 들고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무차별로 날아온 철질려.
사람이건 말이건 가리지 않았다.
놀라 미쳐 날뛰는 말들의 난동에 혼란이 가증된 상태.
그런데 다시 터지기 시작한 비격진천뢰.
판금 갑옷을 입은 콩키스타도르에게는 악몽이었다.
모래 속에 묻어 놓은 대나무 통을 따라 도화선이 타들어 갔기에 스페인 병사들은 이런 암습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다시 돌아간다!"
"후퇴하라!"
하지만 이조차도 할 수 없었다.
어디에 숨어 있다 나타났는지 모를 수많은 아파치 왕국의 전사들.
창을 던지고, 총과 쇠뇌를 쏘면서 달려들었다.
또한 상륙정만 겨냥해서 포탄이 날아왔다.
멀리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돈 후안 호세 사령관.
어찌나 꽉 물었는지 입술 사이로 피가 흘러나왔다.
"저런 미개한 놈들에게 당하다니. 그나저나 저놈들이 화약을 쓸 줄 알다니,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자체적으로 총과 대포를 만들었다고 전에 보고를 드렸습니다."
"설마 저 정도일 줄은 몰랐지."
"어찌하시겠습니까? 포격할까요?"
"아군과 뒤엉켜 있는 데다, 어두운 밤이다. 무적의 콩키스타도르를 믿는 수밖에···."
수많은 전투에서 불굴의 강인함으로 전세를 수도 없이 역전시켰던 콩키스타도르를 후안은 믿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달려들던 아파치 왕국의 전사들은 긴 창을 앞으로 내밀며 공격을 저지하던 콩키스타도르에게 동그란 쇳덩이를 던지고 달아났다.
여기저기서 '쾅! 쾅!' 소리와 함께 터지는 비격진천뢰.
판금 갑옷 채 콩키스타도르들을 날려 버렸다.
수류탄처럼 만들어진 비격진천뢰는 해변 전투에서만 쓰는 게 아니었다.
아파치 왕국 전사 중 헤엄에 능한 자들이 카누를 타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큰 배는 만들지 몰라도 지지할 나무와 가죽만 있으면 카누 정도는 뚝딱 만들 줄 아는 게 북미 원주민들 아닌가.
쉴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카누들이 50척이나 되는 스페인 함선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하지만 견시들은 보지 못했다.
그들은 해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투에 정신이 쏠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