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167화 (167/275)

< 167. 제로니모(5) >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특허료 수입만으로 '조' 단위의 매출을 올리는 연구소의 연구원이었던 연은 특허법에 대해 다르게 생각했다.

'국제 특허까지 출원하다 보면 몇억씩 깨지는데, 말도 안 되지.'

단순히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특허로 출원하는 사람이 있지만, 대부분 각고의 노력 끝에 원리를 구현하고 완성한 후, 그걸 특허사무소에 등록을 맡겨야 한다.

물론 자신이 작성할 수 있지만, 법이란 게 그렇듯 법을 잘 모르는 일반인이 작성하기는 쉽지 않다.

특허협력조합(PCT, Patent Cooperation Treaty)이라 말하는 국제출원제도를 이용해도 절차만 간소화될 뿐 비용은 줄어들지 않는다.

'이것뿐이면 다행이지.'

돈이 많거나 어떻게 해서든 투자자들을 끌어들여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특허 출원과 달리 특허 소송은 특허 출원인들을 나락으로 몰고 갔다.

무단 도용하거나 특허가 등록되지 않은 나라 또는 말로만 특허를 인정하는 나라에서 제품을 생산해 팔면 막을 방법이 없었다.

막기 위해 경고장을 보내고 소송에 들어가 이긴다 해도 남는 것은 빈 주머니뿐이었다.

특허를 무시하고 도용한 업체는 대부분 영세했기에 이겨봐야 소용이 없었다.

연은 공식이였을 때 특허 초안을 작성하고, 출원 등록을 하고, 소송에 필요한 자료를 조사하는 업무를 해 봤기에 문제점을 잘 알고 있었다.

'변호사와 변리사들의 배만 불려 주는 제도였지.'

그랬다.

엄청난 돈을 들여서 변호사와 변리사들을 고용해 소송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해도, 양쪽에서 고용한 변호사와 변리사들의 합의로 끝나는 게 대부분의 특허 소송이었다.

판사와 검사는 특허에 관련된 내용에 무지할 수밖에 없으니, 양쪽 변호인단의 변론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판사나 검사 또한 서로 합의 하여 재판을 끝내기를 바랐다.

'이런 식으론 내가 생각하는 세상을 만들 순 없어.'

연은 자신이 생각한 세상을 죽기 전에 완성하기 위해서 특허법을 자신이 생각한 대로 입법화시켰다.

물론 효종의 적극적 지원이 있었고, 조선전력공사라는 쉬지 않고 황금을 생산해 내는 왕실 기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앞으로 새로운 방법과 원리를 구현해내면 특허청에 등록하도록 하라. 그리하면 그에 따른 상금을 주겠다.'

유럽 반도에서 시행되고 있는 특허제도와 달리 조선의 특허법은 모든 것을 나라에서 운영하는 특허청에서 관리했다.

물론 뒷감당은 조선전력공사에서 맡았다.

조선특허청에 특허를 신청하고 등록되면, 전문 심사원들이 판단해서 가치를 매기고, 그 가치를 조선전력공사에서 상금으로 지급했다.

등록된 특허는 즉시 공개됐다.

이용을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특허청과 협상하여 특허료를 지불하고 특허를 사용할 수 있었다.

이를 어기고 무단 도용하면 특허청에서 수사하고 엄하게 벌했다.

특허를 도용하여 조선 밖에서 제품을 생산해 가지고 오는 자는 즉시 탄광으로 끌려갔다.

이 방식은 대단한 호응을 얻었다.

출원자는 출원만하면 모든 것을 알아서 조선의 관청인 특허청에서 알아서 다 처리해줬다.

그랬기에 조선의 개발자들은 안심하고 연구와 개발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또한 상인들도 좋아했다.

굳이 원천 출원자와 협상하지 않아도 된다.

특허청에서 특허를 관리했기에 특허청에 비용을 지불하고 생산하여 팔면 된다.

특허청은 얻은 이익에서 비용을 빼고 출원자와 조선전력공사에 나눠 보냈다.

그런데 이앙기를 개발한 정남이처럼 출원자가 직접 생산을 원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럴 땐 조선은행에서 창업을 도와줬다.

세상을 이롭게 하고 특허를 등록한 출원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조선의 특허법.

관리 주체가 개인이 아닌 특허청이기에 무시하고 도용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새로 제정된 특허법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오직 벼농사만으로 굴러가던 조선이 급격하게 바뀌어 갔다.

특허만 등록되면 떼돈을 번다는 말이 퍼지면서 수많은 도전자들의 시도가 끊이지 않았다.

그로 인해 다양한 기물들이 속속 등장했고 그중에는 삼발이 자동차와 관련된 내용이 많았다.

그래서 연은 생각을 바꿨다.

'안 되겠군. 엔진과 변속기만 팔아야겠어.'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은동리 연구원들과 옹진반도의 공돌이들.

그들이 개발해 내는 것은 안전을 위한 실험이 필수였기에 오랜 시일이 필요했지만, 민간에서 만들어 내는 것은 그러지 않았다.

참신한 아이디어로 개발한 제품들이 세상에 미친 듯이 쏟아져 나왔다.

안전을 무시한 제품까지 판매되고 있었다.

연은 엔진과 변속기처럼 안전에 가장 중요한 것만 조선전력공사에서 판매하기로 했다.

나머지는 민간에서 생산하여 판매할 수 있게 지원했다.

그와 동시에 제품 인증 제도를 시행했다.

'미국처럼 민간에 맡기지도 한국처럼 국가에 맡기지도 않을 거야.'

전기 안전 인증 제도인 UL(Underwriters Laboratories)을 관리하는 곳은 1894년에 윌리엄 헨리 메릴이 설립한 민간 회사다.

그런데 전 세계 131개국에서 운영하고 있지만, 강제성은 없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것처럼 굳이 UL 인증을 받아야만 미국에 수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UL 인증이 없어도 미국에서 제품을 생산하거나 미국에 수출할 수 있었다.

단, 제품에 문제가 생겨 소송이 발생하면 제조사가 불리할 뿐이다.

UL 인증은 '한국산업표준'이라 말하는 대한민국에서 시행하는 KS 제도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와 달리 국가에서 강제성을 가지고 주도하는 KC 마크(Korea Certification Mark)가 있지만, 인증만 받고 생산은 엉터리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피해를 본 소비자가 대항할 순 없었다.

막대한 소송비용 때문에 개인이 하기에는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이 나섰다.

'앞으로 '전'자(한글 '전'자에 '번개' 표시가 새겨진 문양) 인증을 받지 않은 제품을 팔거나, 인증을 받았더라도 다르게 생산해서 사고가 난 제품의 제조사는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연이 오랫동안 생각해 온 것이 있었다.

'나라에서 해준 게 뭐가 있어.'

이런 말이 나오지 않는 조선을 만들고 싶었다.

'쉽지 않은 일이지.'

하지만 국민이 모여 국가가 되는 세상에서는 그게 쉽지 않았다.

아직 국가라는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은 세상.

그런 세상에서 연은 바뀌는 것이 아니라 개념부터 새로 정립하고 시행하기로 했다.

* * *

효종 10년(1658) 5월.

강원도에 눈이 내리고, 충청도에 서리가 내리고, 전라도에 큰비와 우박이 내리고, 대낮에도 어두운 날이 많았던 봄날.

연은 태자비와 함께 첫째 딸 명화(明華) 공주를 데리고 한양을 방문했다.

밝고 화합하라는 뜻에서 효종이 지어준 이름답게 조선의 모든 백성의 축복 속에서 태어난 명화 공주는 조선 왕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

그동안 소양에서 깨가 쏟아지는 신혼을 함께 보냈던 태자비를 내명부에 보낸 연은 효종을 찾았다.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그들 모두를 만족시키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 해도 노력은 해봐야 하지 않겠느냐?"

"그보다는 조선이라는 나라와 조선 왕실을 분리하여 경영하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비록 아들은 아니지만, 왕손을 효종에게 안겨줬기에 연은 그가 꿈꾸는 세상을 효종에게 꺼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나라와 왕실을 분리하다니?"

"지금까지는 왕이 있어야 나라가 존재했지만, 앞으로는 그러지 않을 겁니다."

"뭐?"

"아버지도 아시다시피 세상은 빠르게 변해가고 있습니다."

"그야 너 때문이 아니냐?"

효종의 말처럼 연 때문에 세계 최초로 조선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그것도 증기기관이 아닌 전기를 이용하는 산업혁명이라 그 속도가 어마무시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세상.

그 중심인 예맥 대륙 동쪽 끝 한양.

경강 위에는 5개나 되는 대교가 세워졌고, 한양에 포함된 강남지역은 눈부시게 변해갔다.

그런 빠른 변화에도 한양은 혼란스럽지 않았다.

강남을 개발하면서 모든 땅을 조선전력공사가 사들인 후 먼저 계획하고 개발했기 때문이다.

또한 특색에 따라 여러 곳으로 분산시켜 도시를 개발했기에 한양으로만 집중되지 않았다.

상업의 중심지 평양, 신의주, 목포, 여수, 부산, 산해관, 둔황, 함브르크.

광공업의 중심지 심양, 무수, 기수.

화학공업의 중심지 발해, 서맥.

기계공업의 중심지 송림, 대련,

이처럼 각지에 특화된 중심지역을 만들고 한양과 소양은 행정과 교육에 중점을 두었다.

그러다 보니 배우고자 하는 이들은 한양과 소양으로 몰려들었다.

배운 것을 토대로 꿈을 실현하고자 하는 이들은 각지로 퍼져나갔다.

"이들이 많아지면 힘을 갖게 되고 그러다 보면 왕도 우습게 보는 자들도 나타날 겁니다."

"그거야 지금도 그러지 않느냐?"

세상을 어지럽히는 강력범이나 사기꾼들은 체포한 후, 죄가 확정되면 이젠 탄광이 아니라 세상에서 사라지게 했다.

더는 함께 세상을 살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죄에 따라 다르지만, 초범의 경우 대만 서쪽에 있는 팽호도(澎湖島)로 보내 수용했다.

인륜을 저버릴 정도나 재범의 경우 가차 없이 목을 매달았다.

왕족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니 조선에서 사기를 치는 건 목숨을 거는 짓이었다.

그렇지만, 말로 지껄일 때는 경범죄로도 처벌하지 않았다.

'없는 곳에서는 임금님 흉도 본다'는 말이 있기에 그냥 두었다.

연과 효종이 상의하여 이렇게 한 이유가 있었다.

'아버지, 될 수 있으면 소송이 없게 법을 제정해야 합니다.'

'그게 말은 쉽지 가능하겠느냐?'

'쓸데없는 법을 만들지 않고 누구나 읽으면 이해할 수 있게 법을 제정하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개인 간 돈거래는 갚을 필요가 없다는 법이 있기에 조선에서 민사재판은 거의 열리지 않았다.

법조인조차도 이해하기 힘든 법조문 때문에 법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조차도 의견이 갈리는 21세기의 법.

그런 거지 같은 법은 조선에서 퇴출되었다.

이 소식은 조선 밖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들은 조선의 법 제도를 무시했다.

이익은 없고 왕과 귀족, 영주, 지주들에게 불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비난하는 말을 꺼내진 않았다.

이제 지구상 유일한 초강대국이 된 조선.

그런 조선의 왕이 하는 일을 따지는 간이 부은 타국의 왕이나 귀족들은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짜증을 내고 싫어했을 뿐.

대놓고 조선을 욕하거나 비판하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이 소식을 듣고 크게 웃는 이가 있었다.

* * *

열기구를 이용한 정밀 포격으로 테노치티틀란과 베라크루즈에서 스페인 침략자들을 끝장내버린 아파치 왕국의 제로니모.

파나마까지 점령한 후 남미를 틀어막았다.

남미에 있는 페루 부왕령의 규모와 전력을 모르기에 설불리 나서지 않았다.

워낙 은밀하게 진행했기에 이런 사실을 모르는 스페인에서 베라크루즈로 지원군을 보냈지만, 그때마다 제로니모의 뒷주머니는 두둑해졌다.

그와 달리 본국과 연락이 끊긴 스페인령 페루 부왕령은 반란에 시달렸다.

역사를 잘 아는 문식이는 유럽 여러 나라에서 식민지 각축전을 벌이고 있는 북미를 포기하고 남하했다.

"한 놈만 패면 되는데 쓸데없이 나설 필요는 없지."

스스로 왕이 된 자 제로니모.

그는 엄청나게 넓어진 왕국을 통치하기 위해서 무수히 많은 자식들을 활용했다.

복속한 부족장의 자식들과 정략결혼을 시킨 왕자와 공주들을 각지로 보내 교육과 재정을 담당하게 했다.

그것도 2년 단위로 담당 지역을 바꾸도록 했다.

하지만 군사력만큼은 일식이가 전담했다.

'개 같은 꼴은 불 수 없지.'

역사를 잘 알고, 수많은 대체역사 소설을 보고, 공식이와 술자리에서 나눴던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언제나 한결같은 것이 있었다.

'정복 군주가 세운 나라는 후세 때문에 개판이 날 수밖에 없어.'

그래서 문식이도 효종처럼 군권을 단 한 명에게 일임했다.

효종과 달리 문식이는 자식이 너무 많았기에 말썽이 일어날 수도 있었지만, 문식이가 지필하고 배포한 역사 교과서의 영향으로 도발하는 왕자와 공주는 없었다.

단군신화부터 각색한 문식이가 만든 역사 교과서.

*

먼 옛날 사람이 살지 않았던 세상.

호랑이와 곰들이 살았다.

무리를 짓지 않고 홀로 살았던 호랑이와 곰들은 무리를 짓고 사는 늑대와 들개 떼에게 쫓겨났다.

그러는 동안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던 호랑이들은 늑대와 들개 떼에게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가장 힘이 센 곰을 중심으로 뭉친 곰들은 살아남았다.

그 곰들의 후손인 아파치 왕국에 사는 모든 원주민은 명심해야 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

곰으로 표현되는 아파치 왕국의 원주민들.

늑대와 들개로 묘사되는 스페인의 침략자들.

침략자들을 물리치고 원주민들을 위한 왕국을 세웠지만, 다시 전처럼 분열되어 싸운다면 망한다는 교훈이 담겼다.

이런 식의 근거 없는 창작으로 시작된 문식이의 아파치 왕국 역사 교과서는 대단한 설득력을 발휘했다.

엄청난 위세를 자랑하던 마야, 잉카, 아즈텍이 어떻게 멸망했는지 자세히 나와 있기 때문이다.

흩어지면 다시 비참한 노예 생활을 할 수도 있다는 내용과 함께 서로 돕고 의지해야만 잘 살 수 있다는 아파치 왕국의 역사 교과서.

왕국민만 아니라 왕자와 공주들도 믿고 따랐다.

아무튼 문식이가 만든 다양한 교과서로 인해 아파치 왕국의 문화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인신 공양과 인육을 즐기던 문화에서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문화로 바뀐 아파치 왕국에서 창작열은 불타 올랐다.

오늘도 새로 나온 소설과 시를 보던 제로니모에게 일식이가 찾아왔다.

"폐하, 이 기물이 바로 조선전력공사에서 만든 전기를 생산하는 기물이라 합니다."

"뭐라고?"

전기라는 말에 눈이 휘둥그레진 문식이는 벌떡 일어나 열식 발전기를 살폈다.

'이건 공식이가 말하던 스털링 엔진이 틀림없군.'

만들려고 수도 없이 시도했지만, 실패했던 스털링 엔진을 본 문식이는 '껄껄' 소리 내어 크게 웃었다.

"이것을 만든 이가 조선의 태자 연이라 했나?"

"네, 폐하. 스페인 놈들 말로는 그랬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베라크루즈 항구로 들어온 스페인 지원군 함선은 미리 대기하고 있던 아파치 전사들에게 탈탈 털렸다.

"연이라···."

문식이는 연이 공식이라 생각했다.

'현종이 바로 공식이었군.'

손가락 마디를 짚어 보던 문식이.

'음···, 나보다 15년 뒤에 태어났는데···.'

아무리 다시 계산해봐도 똑같았다.

'그런데 어떻게 기차까지 운행할 수 있지? 그것도 한양에서 함부르크까지···.'

아파치 왕국에서 연에게 사람을 보낼 방법은 없지만, 수시로 찾아오는 스페인 놈들을 통해서 들려오는 조선의 소식.

그 소식의 중심에는 태자 연의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설마, 효종이 공식이는 아니겠지?'

자신보다 7년 먼저 태어난 효종이 공식이라면 말이 되지만, 15년이나 늦게 태어난 현종이라면 절대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이 현종이라니.

"빨리 만나보고 싶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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