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165화 (165/275)

< 165. 제로니모(3) >

21세기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

12세기 중반 아즈텍 부족이 차지하면서 '테노치티틀란'이라 불렀다.

아즈텍이란 말을 누가 만들었는지 몰라도 자신들을 '메시카'라 부르던 아즈텍 부족.

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었다.

최소 7만 명에서 최대 30만 명이 살았다고 추정되는 아즈텍 인들의 수도 테노치티틀란.

단, 660명의 스페인 침략자들에게 털털 털렸다.

기병 15기와 대포 15문.

13정의 머스킷과 33개의 석궁으로 무장한 보병 600명.

그리고 스페인 침략자들에게 동조한 원주민 전사와 일꾼 수백 명.

그들을 이끌고 나타난 에르난 코르테스는 테노치티틀란으로 가는 동안, 주변 원주민들과 동맹을 맺었다.

오직 660명의 스페인 병사들만 데리고 테노치티틀란을 공격한 건 아니었다.

아무튼 그리스 시대처럼 연합국가였던 테노치티틀란 왕국은 멸망했다.

둘레 10여 km의 장방형 섬으로 건설된 아메리카 대륙 최대 도시인 테노치티틀란이 역사 속에 사라진 것이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문식이는 과달라하라까지 진격하면서 서두르지 않았다.

'나는 하늘의 뜻을 받드는 위대한 신의 손 제로니모다. 나를 따른다면 그대의 전사들에게 이 강철 검과 창을 주고 그대의 부족민들에게는 굶주림이란 말이 사라지게 할 것이다.'

울창한 숲과 험한 산길을 피해 코르테스 해를 따라 왕국민들을 데리고 남하하던 제로니모.

소수로 이루어진 부족의 부족장이라 해도 정중하게 대했다.

그러면서 하나씩 하나씩 흡수해 나갔다.

어느덧 10만 명 이상으로 불어난 아파치 왕국민,

과달라하라 점령을 앞두고 제로니모는 전략회의를 가졌다.

"지금까지 에스파냐 놈들에게 들키지 않고 이곳까지 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러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일식이 너는 전사들을 이끌고 테노치티틀란으로 넘어가는 길목을 지켜라."

"아버지, 아니 폐하. 소자에게도 기회를 주십시오. 저도 싸우고 싶습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30세를 앞두고 있는 제로니모는 자식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나가는 부족마다 끌어들이면서 부족장의 딸과 정략결혼을 하다 보니 어느새 부인만 10명이 넘어서 버렸다.

연이 된 공식이가 꿈꾸던 일을 연은 하지 못했는데 문식이가 해낸 거다.

제일 큰아들인 일식이.

처음엔 '신의 손에서 태어난 자'로 불렸지만, 자식이 많아지자 문식이가 조선식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멋진 이름을 선사하고 싶었지만, 아버지인 자신조차 이름이 헷갈렸기에 편의상 그렇게 했다.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무슨 놈의 말이 이리도 다른 게 많아.'

문식이가 속한 서부 아파치족만 해도 떨어져 있는 부족과는 쓰는 단어가 매우 달랐다.

그런 와중에 다른 부족까지 흡수하다 보니 아파치 왕국 내에서도 정상적인 대화를 하려면 복잡한 통역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그래서 스스로 왕위에 오른 문식이는 공용어로 조선어를 도입하고 조선말과 한글을 가르쳤다.

태어나면서부터 이상하게 느꼈지만, 다행히도 북미 원주민들의 언어 구조는 조선어와 같았다.

조선말과 비슷한 단어도 많았기에 아파치 왕국에서 조선말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강철 검과 창 그리고 쇠뇌까지 만들고, 남쪽 침략자들에게만 있다는 총과 대포까지 만든 신의 손인 제로니모.

아파치 왕국의 최정점에 있는 그의 말을 배우고자 왕국민이 노력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문식이와 그의 아들 일식이의 대화는 조선어였다.

"협상에 응 하지 않으면 칠 수밖에 없지만, 지금까지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만약 에스파냐 놈들에게 정보를 흘리는 놈이 있다면 어찌할 것이냐?"

"알겠습니다. 폐하. 제가 전사들을 이끌고 단 한 놈이라도 산을 넘어 동쪽으로 가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세상에 어디에는 있는 부역자들.

아파치 왕국의 왕이 된 문식이가 걱정하는 것은 바로 그런 자들이었다.

"가장 무서운 것은 내부의 적이다. 그러니 그런 놈은 발견하는 즉시 목을 잘라라."

"네, 폐하. 염려 마십시오. 그 누구라도 산을 넘으려 한 놈은 가차 없이 처단하겠습니다."

과달라하라를 완전히 포위한 아파치 왕국 병사들은 대포를 앞세우고 총과 쇠뇌를 들이밀며 과달라하라를 점령했다.

1천여 명이 넘는 스페인의 침략자들이 거주하고 있었지만, 이들은 모두 몰살당했다.

이제 아파치 왕국민이 된 과달라하라 주변 부족민들.

그들은 참지 않았다.

그동안 노예 취급을 받으며 짐승 이하의 삶을 살아왔던 한풀이를 침략자들의 목을 베는 것으로 풀었다.

그와 중에 살아남은 몇몇 스페인들.

그들을 심문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문식이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조선을 루스 차르국과 폴란드-리투아니아, 사파비제국, 무굴제국이 연합하여 공격하고 있다고 했느냐?"

"그, 그렇습니다. 폐하."

자신들도 가지지 못한 강철 대포를 앞세우고 나타난 아파치 왕국의 왕 제로니모.

여느 인디오나 인디언들과 달랐다.

스페인말은 할 줄 몰랐지만, 미개한 섬나라인 잉글랜드 말을 할 줄 알았다.

자신들보다 스페인의 역사뿐만 아니라 유럽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크흠···."

문식이는 조선이 공격당한다는 말에 당장이라도 뛰어가 돕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이라면 모르지만, 공식이라면 문제없겠지.'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제일 먼저 발전기부터 만든다고 했던 공식이라면, 동시에 4대 제국의 공격을 받더라도 충분히 이길 것 같았다.

'청나라가 어찌 되었는지 모르지만, 이놈들도 잘 모르는 걸 봐서는 공식이가 처리한 게 틀림없어.'

그렇게 믿고 싶은 문식이는 당장 눈앞에 닥친 일을 처리 하기로 했다.

'어느 세월에 이들을 가르치고 키워나갈 것인가···?'

스페인으로 유출되는 중미의 황금과 남미의 은 덩어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베라크루즈를 점령해야 하지만,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얼마나 많이 와 있는지도 모르고, 지금쯤이면 원주민 부역자들도 문제지.'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잡아 백인들에게 팔아넘긴 자들은 흑인이었다.

그처럼 스페인 침략자들에게 충성을 바치며 같은 원주민들의 피를 빨아먹는 자들도 원주민이다.

그들에게 대포를 주지는 않겠지만, 수에 따라서 힘들어질 수 있다.

특히 테노치티틀란 동쪽에 사는 틀락스칼텍 원주민들이 문제였다.

'메소아메리카의 배신자', '스페인의 창녀 말린체와 그 아들들'이라 평가받는 그들은 현명한 외교술이라 말하지만, 그들로 인해 스페인은 중미 지역을 쉽게 점령하고 지배할 수 있었다.

다른 원주민들과 달리 말 탈 권리와 총기 휴대 권리, 귀족 신분을 유지할 수 있는 권리까지 챙기며 스페인 왕으로부터 자치권을 보장받았던 틀락스칼텍인들.

스페인의 지원하에 치치멕이 지배하던 구역을 자신들의 식민지로 만들기도 했다.

그들이 있기에 문식이는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확실히 파악하기 전에는 조심해야 해.'

비록 총과 대포를 만들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섰지만, 아직 많은 것이 부족했고 가르칠 것이 너무 많았다.

문식이 또한 대한민국 육군 병장 출신이다.

제식 훈련과 전략과 전술, 작전 등을 가르치고 있지만, 모든 걸 본능에 맡기려고 하는 원주민 전사들을 통제하는 것은 힘에 겨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행정반에만 처박혀 있지 않았을 건데···.'

글씨를 잘 쓴다는 이유로 '만고땡 보직'이라 부르는 행정반에 차출되어 편하게 군 생활을 한 것이 이제야 후회됐다.

그나마 문식이가 잘하는 것이 있었다.

바로 문서를 만들고 규칙화시키는 서류 작업이었다.

군 생활 중에도 워낙 똑소리 나게 잘했기에 간부들도 터치하지 않았던 문식이.

나무판과 가죽에 한글로 적은 '왕국민 행동 지침'을 만들어 배포 했다.

'아파치 왕국은 왕 이외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내용으로 시작되는 왕국민 행동 지침.

기독교의 십계명을 본떠 만든 것이지만, 간략하고 이해하기 쉬웠다.

주변 부족을 흡수하면서 부족장에게는 '장군'이라는 칭호를 내리고 그들의 딸들과 정략결혼을 했지만, 모든 왕국민은 동등하다는 원칙은 고수했다.

'노예는 전사가 될 수 없다. 그러니 노예를 두는 것 자체가 낭비다.'

피정복 인들을 인신 공양과 식인하는 풍습은 사라졌지만, 노예로 두는 버릇이 남아있던 다양한 부족들.

제로니모와 그를 따르는 전사들의 힘에 굴복하여 따를 수밖에 없었지만, 삶 자체가 나아지다 보니 모두가 당연시했다.

지나온 곳마다 농지를 개간하여 옥수수와 감자를 심고, 칠면조를 길들이면서 풍족해진 식생활이 모두를 너그럽게 만든 거였다.

과달라하라를 점령한 문식이는 그곳을 '서울'이라 이름 붙이고 본격적인 개발에 들어갔다.

처음 계획은 수경 농사를 할 수 있는 테노치티틀란을 수도로 삼으려 했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제 서울이라 부르는 과달라하라 남쪽에는 동서 길이가 80km나 되는 거대한 차팔라 호수가 있기 때문이다.

문식이는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강물을 따라 농지를 개간하면서 세를 불려 나갔다.

전사 중의 전사들을 뽑아 각지로 보내 흩어져 사는 원주민들을 긁어모았다.

어느덧 30만 명에 육박하게 된 아파치 왕국의 수도 서울.

제로니모의 통치하에 빠르게 발전해 나갔다.

* * *

1521년 테노치티틀란을 정복하고 '누에바에스파냐 왕국'에서 1535년 정식으로 스페인의 부왕령이 된 중미 식민지 '뉴 스페인'.

그곳의 총독이 된 에르난 코르테스는 멕시코와 쿠바에서 왕이나 다름없었다.

하급 귀족이었던 코르테스는 넘치는 입담과 배짱으로 후작에 이어 도독의 직위를 받았지만, 스페인의 국왕 카를로스 1세에게 버림을 받은 후 화병으로 죽었다.

그 후 1653년 뉴 스페인의 총독이 된 '프란시스코 페르난데스 데 라 쿠에바와 엔리케스 데 카브레라'는 앨버커키 공작 가문의 후계자였다.

21세기 미국 뉴멕시코주에 있는 큰 도시인 앨버커키가 바로 그의 가문 이름에서 따온 도시이다.

전임 '루이스 엔리케스 데 구즈만' 총독이 페루의 총독으로 발령 나자 이제 34살인 그가 뉴 스웨덴의 총독이 되면서 테노치티틀란에 입성했다.

카탈루냐와 시칠리아 총독 권한이 있는 대단한 가문의 출신인 앨버커키 공작.

산티아고 기사단의 기사였던 만큼 강한 무력의 소유자였다.

그래서인지 그는 매일같이 자신의 거주지인 총독 궁에서 대성당까지 걷는 걸 좋아했다.

솔레다드 예배당에서 기도하는 도중에 습격을 받아 칼에 찔리기도 했지만, 며칠 만에 다시 산책에 나섰다.

이처럼 용맹하고 건장했지만, 최근 들어 일어나 사건으로 인해 잠을 이루지 못한 뉴 스페인 총독 앨버커키 공작.

자칭 '정복자'라 말하는 콩키스타도르(Conquistador)의 대장을 호출 했다.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고 거칠어 보이는 대장에게 거침없이 삿대질하며 침을 튀기는 총독.

"도대체 뭐가 문제야? 왜 정찰 나간 병사들이 돌아오지 않는 거야?"

"죄송합니다. 총독님. 그게···."

"흥! 조사를 보낸 병사들까지 돌아오지 않아서 모르겠다는 말이겠지."

"맞습니다. 총독님."

"그럼 당장 너라도 가봐야 하는 것 아냐?"

"그리하겠습니다. 총독님."

대장이 나가자 앨버커키 공작은 거칠게 물병을 들어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꿀 빠는 자리인 줄 알았던 누에바에스파냐 총독 자리.

괜히 맡았나 싶었다.

이곳 말고도 앨버커키 가문에서 지배하는 곳이 많았기에 괜히 이곳에 왔나 싶었다.

"시칠리아로 갈 걸 그랬어."

30년 전쟁에 참여한 후로도 수많은 전쟁에서 전공을 세웠던 그이기에 원하기만 하면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위치였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짓기 시작한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을 자신의 임기 동안 완성하고 싶었다.

고귀한 가문에서 태어났는데도 전장에서는 그 누구보다 용맹했던 앨버커키 공작.

그에게 있어 신앙심을 증명해줄 대성당 공사만큼 중요한 건 없었다.

그랬기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대성당까지 호위도 없이 걸어가서 보고 오는 것 아닌가.

"무슨 일이 있는 거지···?"

조용히 읊조리는 앨버커키 공작.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곳에서 스페인에 대항할 세력은 떠오르지 않았다.

"플로리다라면 잉글랜드 놈들이 설치고 있으니 그렇다지만, 이곳은 아니잖아···!"

이곳에 부임 받아 오면서 펠리페 4세가 경비로 쓰라고 준 12,000페소는 바로 돌려주었다.

금과 은덩이가 넘쳐나는 곳이기에 그 돈은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필리핀으로 보낼 금괴를 수송하는 병사들이 사라져 버렸다.

수차례에 거쳐 조사대를 보냈지만, 그들마저 연락이 끊겼다.

"틀림없이 뭔가 있어."

수십 년 동안 전장에서 구른 앨버커키 공작이기에 불길한 예감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곳에서 서쪽으로 내려가기만 하면 연락이 끊기는 데 말이 되지 않지."

앨버커키 공작은 아무래도 자신이 직접 병사들을 이끌고 가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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