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 브리튼 왕국(7) >
조선에 또 하나의 우방 왕국이 탄생했다.
다두 왕국, 준가르 왕국에 이어 이번에는 브리튼 왕국이었다.
연이 보내준 강철 대포를 앞세운 칼 10세.
호전적인 성격과 달리 서두르지 않았다.
완벽한 준비를 한 후 진격하는 조선군을 보고 따라 했다.
"우리 바이킹은 개인의 무력도 뛰어난데 그 수도 많다. 그러니 급히 서두르지 마라."
누구보다 성질 급한 칼 10세의 말에 병사들은 웃어 버렸다.
하지만 조선군에게 대차게 당한 적이 있기에 철저히 준비했다.
조선에서 받은 10문의 강철 대포를 이용해 템스강 위에서 방어진을 형성한 잉글랜드 전함을 하나하나씩 박살 내 버렸다.
수십 문의 함포를 장착한 잉글랜드 전함이지만, 사거리와 위력에서 강철 대포와 상대가 되지 않았다.
곳곳에 구멍이 뚫린 잉글랜드 전함.
제대로 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템스강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은 무적의 전사들아! 강을 건너 놈들을 몰살하라!"
칼 10세의 명령이 떨어지자.
그동안 준비해 둔 수백 척의 뗏목이 템스강 위에 띄워졌다.
뗏목을 이어 만든 급조한 다리를 타고 웨스트민스터에서 워털루로 건너갔다.
둥근 방패를 앞세우고 그 뒤를 조선에서 지원해준 수석총을 들고 따라가는 바이킹들.
조선군에게 일방적으로 깨진 분풀이로 잉글랜드 연합군을 무참히 박살 냈다.
수적 열세는 물론 화력까지 딸린 잉글랜드 연합군.
도주를 감행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에서 온 영주들을 습격하여 처단한 아일랜드 농민군이 대기하고 있었다.
더블린에서 고깃배를 타고 브리스톨로 건너온 아일랜드 농민군은 인정사정없었다.
그동안 당한 만큼 처절하게 보복했다.
큰 쇠망치와 농기구로 무장한 이들은 도망쳐 오는 잉글랜드 연합군을 쳐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옷을 모두 벗겨 바다에 던지고 돌과 쇳조각을 던지며 깔깔댔다.
소리치며 우는 이도 있었다.
드로이다 성에서 올리버 크롬웰에게 당한 복수를 하고 나자 감정이 복받쳐 오른 것이다.
프랑스에서 지원군이 오기만을 기다리던 올리버 크롬웰 잉글랜드 연합 호국경.
한때 잉글랜드 연합국 왕이 되려 했지만, 자신을 지지해준 병사들의 반대로 이루지 못했다.
작은 시골에서 지주로 살았던 올리버 크롬웰.
하원의원이 된 후, 잉글랜드 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찰스 1세의 목을 자르고 왕이 없는 공화국을 세웠다.
호국경에 취임 후 군사독재로 잉글랜드 연합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권력을 쥐고 휘둘렀다.
그런데 재앙이나 다름없는 바이킹들의 침략으로 모든 것을 잃었다.
대대로 양성되온 장궁병은 조선의 수석총을 이길 수 없었다.
자신이 만든 철기군 또한 힘도 써보지 못하고 바이킹의 도끼에 쓰러져 갔다.
올리버 크롬웰은 도버 성까지 도망갔다.
프랑스와 가장 가까운 도버 성은 해안 절벽 위에 세워진 천연의 요새이다.
하지만 크롬웰은 그곳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동쪽 도버해협을 바라보며.
"다음은 네놈들 차례가 될 거다!"
외친 후, 포격과 함께 무너진 성벽에 깔려 죽었다.
15일 동안 지속된 전투는 정말 치열했다.
잡히면 무조건 죽였기에 잉글랜드 연합군도 사력을 다해 싸웠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사정거리가 두 배나 차이 나는 조선의 강철 대포.
정확한 조준 사격이 가능한 조선의 수석총.
이길 수가 없었다.
급습 또한 통하지 않았다.
지리적 정보를 이용해 습격했지만, 되려 처참하게 당했다.
등에 둥근 방패와 도끼를 맨 바이킹들이 난전에서 더 큰 힘을 발휘했던 것이다.
* * *
"누가 온다는 거지?"
바벨 성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서성거리는 연.
효종과 전화 통화 중 들었던 말이 생각나는지 안정을 취하지 못했다.
'조선의 앞날을 생각해서 너에게 사람을 보냈다. 그러니 대기하고 있거라.'
의미심장한 웃음과 함께 전화를 끊어버린 효종.
그래서인지 연은 더욱 궁금했다.
도대체 누굴 보내기에 조선의 미래를 운운하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떠 오르는 인물이 없었다.
"설마, 김육 대감이 오시는 건 아니겠지."
기차를 타고 온다지만, 10일이나 걸리는 초장거리 여행이다.
낼모레면 80이 되는 김육 대감을 보낼 일은 없다고 봤다.
"그러면 누구지···?"
연이 내려놓은 수화기를 바라보며 생각하는 사이.
민삼이가 집무실로 들어왔다.
"전하, 칼 10세로부터 전갈이 왔습니다."
"그래? 무슨 내용이냐?"
런던을 점령한 후 브리튼 왕국을 세운 칼 10세.
한동안 아무 소식이 없더니 한 달 만에 연락이 왔다.
"여기 서신이 있습니다."
연은 독일어로 써진 서신을 보며 씩 웃었다.
"잘하고 있군."
연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는 문구가 대부분인 첫 장을 넘기자 그동안 한 일이 적혀 있었다.
'전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귀족제도를 없애 버렸습니다. 또한······.'
연은 서신을 읽다가 혀를 찼다.
"헐! 내가 가르치긴 뭘 가르쳐."
잉글랜드를 통치하는 것에 대해 연은 칼 10세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가르치다니.
"이놈 봐라!"
칼 10세의 행동이 괘씸했지만, 웃음이 나왔다.
"반발하는 자들을 모두 죽여 버렸다고···, 이런···."
나름대로 연이 한 행동을 조사한 칼 10세는 하던 대로 했다.
연이 모스크바에서 차르와 귀족들을 처형했다는 말을 듣고 따라 했다.
"그건 전범들이라서 그런 건데···."
토지는 전부 브리튼 왕국의 소유로 바꾸었다.
"그건 잘했군."
아일랜드 농민 지도자와 스코틀랜드 클랜 협회장을 불러 지역 의회 구성권을 주고 초대 총독으로 임명했다.
"뭐야? 독립시켜주는 것 아니었어?"
고개를 갸웃거리며 쭉 읽어 내려가던 연.
"그럼 그렇지! 역시 욕심이 많은 놈이 틀림없었어."
신교인 루터교를 믿는 칼 10세지만, 종교의 자유를 공식으로 발표했다.
'전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똑같은 신을 믿는데 서로 싸운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제가 따르는 대조선에서 하는 것처럼 종교의 자유를 천명했습니다.'
연은 침음을 내뱉었다.
"뭐, 알아서 하겠지."
조선의 예를 들며 종교의 자유를 내세우면서 칼 10세는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를 독립시켜주지 않았다.
"아주 철저히 연구해 갔구나."
서식에 적힌 내용에는 억지가 많았지만, 끝까지 읽어보니 헛 웃음이 나왔다.
"결국 자신이 한 일을 이해해 주고 잘 봐달라는 내용이잖아."
"그렇습니까?"
"그렇다."
옆에서 지켜보던 민삼이가 걱정이 되는지 연에게 물었다.
"전하, 그럼 어찌하실 생각입니까? 그냥 둬도 되겠습니까?"
"그냥 안 두면?"
"지금이라도 당장 불러오라고 할까요?"
"아니다. 잘하고 있는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전하께서 하신 말씀이 아닌데···."
"상관없지 않느냐? 앞으로 고객이 될 곳인데."
"예에?"
민삼이는 깜짝 놀랐다.
모든 것을 잃고 브리튼섬으로 떠난 칼 10세와 바이킹들.
상거지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들이 고객이라니.
고객이란 말은 다두 왕국과 준가르 왕국처럼 자원이나 금은보화가 넘쳐나는 곳을 말하는 게 아닌가.
양질의 농지가 널려있는 브리튼섬이라 하지만, 곡식은 남아돌기에 받을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내년에 준비되는 대로 프랑스를 치겠다고 한다. 그래서 총과 화약, 대포를 외상으로 달라고 하는구나. 거기에 식량까지 말이다."
"주실 겁니까?"
"줘야지."
갈수록 쌓여가는 궁금함에 민삼이는 참지 못했다.
"전하, 돈도 받지 않고 그렇게 지원해주시는 이유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이유랄게 있느냐? 이미 받을 만큼 충분히 받았다."
"그건 전리품이지 않습니까?"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북미의 식민지를 넘겨받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아···, 죄송합니다. 전하. 그새 잊어버렸습니다."
연은 머리를 긁적이는 민삼이를 보고 말했다.
"내가 사람 볼 줄 안다고 말하지 못하지만, 칼 10세는 배신할 인물은 못 된다."
"어떤 점에서 말입니까?"
"야망이 대단한 자인데 우리와 척을 지겠느냐?"
"아···, 맞습니다. 얼굴에 욕심이 더덕더덕 붙어 있었습니다."
"그런 만큼 신용은 확실히 지킬 거로 본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면 뭔 짓이든 할 자이다. 그러니 염려 말고 이 서신 내용대로 지원해주도록 해라. 꼭 문서에 브리튼 왕국 인장과 칼 10세의 서명을 받도록 하고."
"네, 전하.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연은 차마 민삼이에게 말하지 못했다.
칼 10세가 프랑스와 스페인을 뒤흔들어 놔야 유럽이 엉망이 될 거라는 걸.
민삼이가 나가자 연은 혼자 중얼거렸다.
"뿌린 대로 거두게 해주지."
처음엔 조선이 자주독립국이 되는 것만 희망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일이 잘 풀리자,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건 바로 유럽의 몰락이었다.
하지만 직접 나서고 싶진 않았다.
'아무리 역사가 승자에 의해 기록된다고 하지만, 만약을 위해서 조선이 나설 필요는 없지.'
그러던 와중, 칼 10세가 나타났고 그를 이용할 방법 또한 떠 올랐다.
'원한 만큼 마음껏 싸우게 해주지.'
르네상스 이전만 해도 동양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낙후된 유럽이다.
그런데 총과 화약과 앞선 선박 건조기술로 세계를 휘졌으며 노략질을 하고 있다.
'21세기에도 변함없었지. 세상에 모든 나쁜 짓은 다 해 놓고 하지 말라니···. 지들은 다 해봤으니 상관없다는 말 아닌가.'
그래서 연은 유럽이 다시는 일어설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오스만 제국과 신성로마제국을 싸우게 만든 후.
칼 10세를 이용해서 프랑스와 스페인까지 혼란에 휩싸이게 만들 계획을 짰다.
'이제 편하게 북미를 점령하면 되겠군.'
연이 묘한 미소를 띠며 소양강을 바라보고 있는데 집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전하, 큰일 났습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냐?"
"을수 사령관으로부터 긴급 무전 연락이 왔습니다. 뉴스웨덴에 있는 크리스티나 요새가 불타 사라졌다고 합니다."
"뭐라고! 어찌 된 일인지 아느냐?"
"그건, 지금 조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크흠···."
칼 10세로부터 전해 들은 뉴스웨덴.
그곳에는 스웨덴인들만 살고 있지 않았다.
네덜란드인, 핀란드인, 덴마크인, 독일인들도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
1626년, 스웨덴의 구스타브 2세는 프랑스와 영국 상인을 피해 북미에서 담배와 모피를 얻을 목적으로 스웨덴 남부 회사(Swedish South Company)를 설립했다.
설립을 주도한 빌렘 우셀린크스(Willem Usselincx)는 플랑드르(벨기에) 네덜란드 상인으로 '네덜란드 서인도 회사'도 창립한 전적이 있었다.
그랬기에 뉴스웨덴을 세우면서 네덜란드와 독일인의 자본도 끌어들였다.
'설마 네덜란드는 아니겠지?'
연은 투자자 중에 네덜란드인도 포함되어 있기에 그럴 일은 없다고 봤다.
'그럼 누구지?'
을수는 7,000km나 되는 바닷길을 조경함을 타고 15일 만에 건너갔다.
거친 대서양이라 하지만, 강철 골조와 5mm 강판으로 제작된 120m나 되는 조경함은 거침없었다.
더욱 정밀해진 조선 시계와 지도를 바탕으로 델라웨어 윌밍턴까지 헤매지 않고 찾아갔다.
그런데 델라웨어강 서쪽 강변에 자리 잡은 크리스티나 요새가 불탄 흔적만 남고 사라져 버린 게 아닌가.
사안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을수는 즉시 무전을 때렸다.
"가보자."
"네, 전하."
연은 아침부터 알 수 없는 효종의 말에 답답했다.
그런데 북미를 개척하러 떠난 을수로부터 불행한 소식을 들으니 참을 수 없었다.
무전이 연결되자 바로 을수 사령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장님, 크게 걱정하실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담 다행이구나. 도대체 뭔 일이 있었던 거냐?"
-그게······.
1624년, 네덜란드가 북미 허드슨강 하구에 건설한 식민지가 뉴네덜란드 또는 뉴암스테르담이다.
맨해튼을 중심으로 세력을 넓혀 가고 있던 뉴네덜란드.
영토 문제로 수도 없이 잉글랜드와 부닥쳤다.
그러던 중 남쪽에서 세력을 키우고 있던 뉴스웨덴이 눈엣가시였다.
뉴암스테르담 식민지 총독인 페터르 스타위베산트.
개신교인인데도 스웨덴인들이 믿는 루터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그는 7척의 배와 700명의 병사를 이끌고 작년 여름에 크리스티나 요새를 공격하고 뉴네덜란드 식민지에 포함시켰다.
"음···, 그랬단 말이지."
-네, 사장님. 다행히 죽은 사람은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그곳 사람들에게는 설명했나?"
-네, 사장님. 라르스 카그가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의 부하였던 요새 사령관이 죽었는데도 그를 아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정식으로 인계받기로 했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정리가 끝나면 빨리 돌아오도록 해라."
-네, 사장님. 그런데···, 그냥 두실 겁니까?"
"그냥 두긴. 두고두고 써먹어야지."
-알겠습니다. 사장님.
을수는 묘한 웃음을 남기며 무전을 끝냈다.
연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하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연은 집무실로 돌아가는 길에 무엇이 그리도 좋은지 싱글거렸다.
"그렇게 혼나고도 못된 짓을 버리지 못했구나."
대만에 있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몇 번이나 대만에 다시 진출하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필리핀을 점령한 다두 왕국 군에 의해 그대로 갈려 나갔다.
동쪽 진로가 막힌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보다 서인도 회사를 키우기로 마음을 바꿨다.
1650년 잉글랜드 식민지와 하트퍼드 조약으로 국경을 정했지만, 잉글랜드인들은 그것을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 네덜란드는 전력을 보강하고 잉글랜드와 일전을 불사할 생각이었다.
오스만제국이 가로막는 통에 대항해 시대가 열리면서 엄청난 부를 창출 할 수 있었던 향신료 제도.
남예맥 횡단 철도가 완공된 후 더는 꿀이 흐르는 곳이 아니었다.
그와 달리 북미야말로 새로운 부를 창출 할 수 있는 곳으로 본 네덜란드는 동인도 회사 대신 서인도 회사에 집중했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나에게 명분을 주다니, 고맙기 그지없군.'
묘한 미소가 연의 얼굴에서 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