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156화 (156/275)

< 156. 브리튼 왕국(4) >

효종 8년(1656) 3월 1일.

세계에서 가장 크고 웅장한 용산역 앞 광장에서 행사가 열렸다.

조선방송공사의 사장이자 라디오방송으로 모르는 이가 없는 선식이가 사회를 맡았다.

-참석해 주신 귀빈(貴賓) 여러분, 자리에서 일어나 주시기 바랍니다.

-폐하께서 방금 도착하셨습니다.

"""만세! 만세! 만만세!"""

드디어 예맥대륙 횡단 철도가 완공됐다.

부산에서부터 시작한 대륙 횡단 철도는 함부르크까지 연결됐다.

길이가 지구 둘레의 1/4이 넘는 11,000km나 되는 남예맥 횡단 철도.

아직 복선화가 되지 않는 구간이 있었지만, 운행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100km마다 교차할 수 있는 역을 만들어 놓았기도 하지만, 아직 운행량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쉬지 않고 달린다면 예맥대륙 동역과 서역을 10일 안에 이동할 수 있다.

그 소식에 가장 기뻐한 사람은 서역에 나가 있는 조선전력공사 대원들과 조선군 병사들이었다.

아직 어두운 밤인 서역에서 행사 내용을 라디오로 듣고 있는 병사들.

세상이 뒤집힐 만큼 대단한 소식이 나온다는 말에 모두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한양까지 10일이면 갈 수 있다니.

병사들은 침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 년 근무하면 2달 휴가라고 했지?"

"맞아, 그러니 고향에 갔다 오기 충분하고도 남아."

중역으로 진출하면서 시작한 대륙 횡단 철도.

서역까지 5년 만에 완공했다.

이처럼 단기간에 철도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은 건설기계(建設機械)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중장비(重裝備)라 부르는 굴삭기과 굴착기, 땅판차와 땅밀차, 땅트럭과 지게차.

모두 송림 제철소 옆에 있는 조선중공업에서 만들고 있다.

사람 100명이 온종일 할 일은 단 1시간 만에 해내는 중장비의 위력은 엄청났다.

벌처럼 푹푹 빠지는 서역의 초원지대를 단숨에 단단하게 다지고 그 위에 철도와 도로를 개설했다.

토지 보상 같은 건 신경 쓸 필요가 없기에 모든 노선은 최적의 경로를 따랐고, 곳곳에 역이 세워졌다.

선식이는 효종이 등장하자 예를 올린 후 마이크를 잡았다.

-뜻깊은 날을 맞이하여 폐하께서 친히 사륜(絲綸) 하시겠습니다.

-모두 경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단상에 올라선 효종은 손을 흔들어 모두 자리에 앉게 했다.

굳이 권유를 내세우지 않았다.

조선 백성이라면 모두가 따르는 효종이기에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직도 변함없는 어깨 깡패 효종.

그의 말을 기다리느라 광장은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했다.

-조선의 왕인 짐은 오늘 무척 기쁘기 한량없도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우리 예맥족은 예맥대륙 동쪽 끝에 모여 살았다.

-수많은 외세의 침략과 간섭에도 굳건히 버티었던 우리 예맥족.

-한때는 서로를 죽이고 죽였지만, 이제 그럴 일은 없을 것이고 있어서도 안 된다.

-그때야 먹을 것이 귀한 시절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세상이 아니지 않는가.

효종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굶주림이란 말이 사라진 지 벌써 5년이 넘었다.

그러지 않아도 착하기만 한 조선인들.

여진족도 같은 민족으로 받아들였다.

-예맥족은 아니지만, 새로 조선인이 된 사람들 또한 모두 조선의 백성이다.

-철길이 동역에서 서역까지 연결된 거처럼 모두가 하나 되어 이 나라 조선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 차별하는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히 다스릴 것이다.

모두가 선량하기만 한 조선인이지만, 게 중에는 못된 자가 꼭 있었다.

그때마다 효종은 친히 어명으로 다스렸다.

'아버지 앞으로 화합이 가장 중요합니다.'

'음···, 나도 그렇게 보고 있다. 네가 이룬 것을 지키려면 차별부터 없애야겠지.'

'맞습니다. 아버지. 차별하기 시작하면 분열되고 그러다 보면 공든 탑 무너지듯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번 행사에서 공론화했으면 합니다.'

며칠 전 연과 전화 통화로 의견을 나눈 효종은 아예 법으로 재정하기로 했다.

그동안 차별을 처벌할 수 있는 법 조항이 없기에 왕명으로 다스렸지만, 법으로 명시해 놓으면 그럴 필요가 없다.

그에 앞서 모두가 들을 수 있는 라디오방송으로 효종은 의지를 표명하기로 했다.

몇 가지 칭찬과 덕담을 말하고 난 효종.

굵직한 목소리로 다시 사륜을 내렸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경복궁이 완성되면 이 나라 조선은 조선 제국으로 다시 탄생할 것이다.

-그에 앞서 제국의 백성이 될 이들이 성조차 없어야 하겠느냐?

-그리니 서둘러서 성을 만들고 등록하도록 하거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단상 아래 있는 이들은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주변에 서서 듣고 있던 백성들이 모두 자리에 엎드려 만세를 부르며 환호했다.

라디오를 듣고 있던 사람들도 동시에 만세를 외쳤다.

더는 양반과 양인의 구별이 없고, 노비 또한 무명무실(無名無實) 해진 조선이지만, 성을 함부로 가질 수는 없었다.

조선 후기로 가면 양반도 사고파는 것이 되어 성이 있는 양인이 있었지만, 지금은 가문이란 게 있는 양반 출신 아니면 성이 없는 무성층(無姓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성을 만들어도 좋다니.

이 어찌 아니 기쁘겠는가.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다.

-따라서 백성 모두가 튼튼한 기둥이 되야한다.

-그래야만 이 나라 조선이 영원토록 반석(盤石) 위에 자리 잡을 것 아닌가.

-짐이 나라의 근본인 백성에게 말하노라.

-모두가 성을 만들어 가문을 빛내도록 하라.

-그것이 바로 이 나라 조선에 애국하는 길이다.

엄청난 만세 소리와 함께 퍼져나간 소식.

그로 인해 작명소는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이름이 아니라 성을 만들어 달라니.

그것도 대대로 쓸 수 있는 깊은 뜻이 담긴.

아무튼 성을 만들려고 고민하는 조선 백성과 달리 잉글랜드 연합의 국민은 참지 못하고 들고 일어났다.

* * *

런던 화이트홀 궁전에서 잠을 청하던 올리버 크롬웰.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일어났다.

"폐하! 폐하! 큰일 났습니다."

잠결에 일어난 호국경은 물을 한잔 마시고 난 후에야 문을 열었다.

큰일이 났다고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크롬웰이기에 서두르지 않았다.

"무슨 일인데 이리 소란을 떠는 거냐?"

다급한 표정으로 그를 바로 보고 있는 시종은 꿀꺽 침을 삼키더니 입을 열었다.

"폐하, 트래펄가 광장에서 첼시까지 폭도들이 점령하고 있다고 합니다."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냐? 폭도라니?"

"그게···."

"어서 말하지 않고?"

"빵 아니 감자라도 달라고 아우성칩니다."

"이잇! 당장 바이킹 놈들이 쳐들어올 건데···, 내분이라니."

프랑스 재무장관 장바티스트 콜베르의 말에 크롬웰은 사람을 풀어 정보를 수집했다.

그런데 정말이었다.

칼 10세는 오슬로에서 잉글랜드를 치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해적질과 식민지에서 걷어 들이는 세금으로는 부족하기만 한 잉글랜드 연합의 재정.

어쩔 수 없이 메디치 가문에서 돈을 빌리고, 그것도 부족해 런던 시민들까지 둘 쑤셔 놓았다.

당황함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올리버 크롬웰.

그 앞에 아들인 리처드 크롬웰이 나타났다.

"그러니 시민들보다 귀족 놈들 재산을 빼앗는 게 낫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크흠···."

첫째와 둘째 아들이 죽은 후 애지중지하게 키웠던 셋째 리처드는 올리버와 의견이 달랐다.

'군을 동원해서 귀족 놈들을 쳐야 합니다.'

'그건 안 된다. 바다 건너에 있는 놈들의 친지들이 가만있겠느냐?'

귀족 대부분은 혼인 관계로 서로 얽혀있기에 함부로 건들 수는 없었다.

그러지 않아도 찰스 1세를 처형하고 귀족원을 폐지한 것으로 불만을 품고 있는 유럽의 귀족과 왕들.

연합해서 쳐들어올 수 있는 명분을 줄 수 있기에 귀족들의 재산은 건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시민들에게 세금을 더 추징할 순 없습니다. 지금도 굶어 죽어 가고 있는데 여기서 더 하다가는 폭동이라도 일어날까 두렵습니다.'

아들의 예상대로 진짜 폭동이 일어나자 올리버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늦었다. 그러니 즉시 진압하라고 말해라."

"아버지!"

"그럼 어찌해야 한단 말이냐? 너에게 해결책이 있느냐?"

"그, 그건···."

"당장 메이저에게 연락해 진압하라고 해!"

"큼, 알겠습니다. 아버지."

사실 리처드 크롬웰은 귀족들을 치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여 군부와 나눠 갖고 싶었다.

잉글랜드 연합의 재정이 엉망이었다.

따라서 크롬웰이 집권한 후에도 그를 따라 반정을 일으켰던 군부 세력은 얻은 게 없었다.

군부의 불만은 쌓여만 가고 있었다.

그걸 알고 있는 리처드는 자신의 앞날을 위해 군부와 손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청교도를 맹신하는 올리버는 그런 짓을 용납하지 않았다.

리처드가 보기에는 양민을 학살하고 과도한 세금을 걷는 것보단 귀족을 치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은데 말이다.

* * *

런던에서 폭동을 일으킨 시민들은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있는 순간.

뉴캐슬어폰타인 남쪽 타인강으로 바이킹 전함들이 들어왔다.

줄여서 뉴캐슬이라 부르는 뉴캐슬어폰타인은 로마 시대부터 성채가 지어진 요새 도시이다.

그런데 그곳에 바이킹들이 있었다.

30년 전쟁 시절에 구스타프 아돌프를 따라 종군하던 병사들이 전쟁이 끝난 후에도 스코틀랜드 캠벨 가문의 용병으로 남아 있었던 거였다.

전함들을 안전하게 접안시킨 바이킹들은 칼 10세를 보고 급히 예를 올렸다.

"어서 오십시오. 폐하. 그러지 않아도 예정보다 늦어서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고맙구나. 이리 환영해줘서."

"당연한 것 아닙니까? 이제 더는 용병 짓을 하고 싶지 않았는데 폐하께서 기회를 주시지 않았습니까?"

"그리 생각한다니 장하다 비욘. 나를 따라 이곳을 점령할 준비가 된 것 같구나."

"폐하의 명이라면 기꺼이 발홀에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5척의 전함을 보고 비욘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칼 10세는 씩 웃었다.

"걱정하지 마라. 롱 샌드 비치와 샌드헤이븐 비치에 우리의 전사들이 상륙하고 있으니."

"아, 그렇습니까?"

"그렇다."

칼 10세는 굳이 말하지 않았다.

50척 가까이 되는 바이킹 전함들이 모두 조선군에 의해 침몰했다는 사실을.

대신 조경함에 타고 온 바이킹 전사들이 타인강 입구 양쪽에 있는 해변에 상륙하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3척의 조경함은 잉글랜드 섬으로 가길 원하는 스웨덴인들을 모두 실어 보내주기로 했다.

언제 말썽을 일으킬지 모를 바이킹들을 모두 잉글랜드로 보내버리는 것이 좋으니.

다두 왕국이 대만에서 필리핀으로 정착지를 옮길 때처럼 수고를 감수하기로 했다.

"몇 명이나 됩니까? 폐하."

"걱정되느냐?"

"그러진 않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이 700만 명이나 됩니다."

"음···. 많긴 많군. 하지만 우린 전사만 20만 명이나 된다."

"네?"

"우리 바이킹 전사들은 모두 이곳으로 이주해 오기로 했다."

"그렇습니까? 폐하. 그런데 어찌 저에게는···."

"굳이 말할 필요가 있겠느냐?"

"그건 아니지만···."

"서운한가 보구나. 하지만 우리 바이킹의 운명이 걸린 일이다. 조심해서 나쁠 게 없지 않으냐?"

"알겠습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폐하."

이번에 잉글랜드를 치기 위해 모인 병사만 20만 명이나 된다.

남녀 구별 없이 전투에 나설 수 있는 바이킹이지만, 여자들을 빼고도 그만큼 되었다.

스웨덴 바이킹만 아니라 노르웨이와 덴마크 바이킹까지 싸움을 좋아하는 모든 바이킹이 오슬로로 찾아왔다.

조선의 최신 수석총을 준다는 말에 환장한 것이다.

거기다 총 쏘는 연습까지 알려준다니, 발홀을 맹신하는 자들만 아니라 총에 관심있는 모든 바이킹은 다 모여들었다.

"전부 도착하려면 한 달 정도 걸릴 거다. 그에 앞서 주변부터 정리해 나가자."

"명에 따르겠습니다. 폐하."

비욘은 입맛을 다시며 씩 웃었다.

중년을 넘어 노년에 접어든 나이지만, 언제나 전장에서 죽기를 꿈꿔온 비욘이기에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그나저나 클랜의 수장들이 날 만나고 싶다고 했나?"

"네, 폐하. 캠밸 가문을 중심으로 한 언약파들입니다."

"그들 또한 신교도 아닌가? 그러니 상관없겠지."

아일랜드와 브리튼.

두 섬으로 이루어진 잉글랜드.

같은 신을 믿지만, 종파 때문에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스코틀랜드 또한 왕당파와 언악파 사이에 내전이 벌어졌고, 최후의 승자는 엉뚱하게도 올리버 크롬웰이었다.

"그들이 무얼 요구하는지 아느냐?"

"아무래도 독립을 요구하지 않겠습니까?"

"음···, 골치 아프군."

"그렇다면 그냥 그들도 쳐버리는 건 어떻게 씁니까?"

"그럴 수는 없다."

"우리에게 20만 명이나 되는 바이킹 전사들이 있지 않습니까?"

"정예는 아니다. 노인과 아이도 많다."

"에예?"

"걱정하지 마라. 모두 총을 쏠지 아니까."

"그렇다면야···."

칼 10세는 손가락을 펴서 동쪽을 가리켰다.

"이곳을 점령하고 나면 저곳을 치러 가야 한다. 그러니 많을수록 좋지 않겠느냐?"

"당연히 많을수록 좋습니다. 폐하."

늙은 바이킹 비욘은 입맛을 다시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

전쟁이 커질수록 발홀에 갈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지기에 그의 심장은 젊은이 못지않게 힘차게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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