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선전력공사-155화 (155/275)

< 155. 브리튼 왕국(3) >

영국 역사상 '왕이 없던 시대'를 만든 올리버 크롬웰 호국경.

그의 지지기반은 같은 젠트리 출신인 의회 의원들이다.

교수, 상공인, 시골 지주가 대부분인 잉글랜드 연방의 의회 의원들.

그런데 내전 기간에 피를 본 군대가 이들을 따르지 않았다.

그러자 크롬웰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항명하는 병사들을 가차 없이 처벌했다.

주동자는 죽이고, 도망간 반란군이 숨어 있는 마을은 포격으로 초토화해버렸다.

이처럼 확 바뀐 그의 인성이지만, 바이킹이 올지도 모른다는 프랑스 재무장관 장바티스트 콜베르의 말에 안절부절못했다.

"칼 10세가 이끄는 바이킹들이 이곳을 노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혼자 단독으로 결정한 건 아닌 것 같소."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증거가 없습니다. 그저 떠도는 소문일 뿐인데 증대 사안이라 제가 이곳까지 와서 전해 드리는 겁니다."

조선 말고는 통신이란 것이 발달하지 않은 세상.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정보이기에 믿을 순 없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순 없었다.

"증거는 칼 10세가 조선의 무기를 산다는 것이면 충분하지 않소? 그걸로 우리 잉글랜드를 공격한다? 그럼 조선이 관여하는 것 아니오? 조선은 타국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이러면 관여하는 것이잖소?"

"폐하,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관여한 것은 아닙니다. 단지 무기를 팔았을 뿐입니다."

"그런 말이 어디 있소!"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지르는 호국경.

그 모습을 보고 프랑스의 재무장관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같아도 이런 일을 당하면 그럴 것 같았으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약소국의 외침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게 현실 아닌가.

"폐하, 저에게 소리 쳐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이미 조선은 오스만제국과 신성로마제국 양쪽에 무기를 팔고 있습니다. 하지만 두 제국은 조선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소.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것 아니요."

"맞습니다. 조선이 팔던 무기를 팔지 않으면 그것은 패전이나 다름없기 때문이죠."

"크흠···."

세상을 속일 순 없는 법.

조선이 오스만제국과 신성로마제국 양쪽에 수석총을 팔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하지만 두 제국은 따지지 못했다.

조선의 태자에게 당한 것 같다는 의심이 강하게 들었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두 제국은 조선에 항의하지 못했다.

이미 벌어진 전쟁.

인제 와서 조선의 심기를 건들 순 없었다.

"칼 10세! 무식한 바이킹이라고 봤는데···."

"그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주 영악한 자였습니다. 조선에 대항하는 척하면서 조선과 협상을 했으니···."

"하아···!"

올리버 크롬엘 호국경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만만히 봤던 칼 10세가 그런 자였다니.

앞으로 벌어질 일이 끔찍했다.

정열적인 싸움꾼이 칼 10세.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졸지에 대단한 전략가가 되었다.

* * *

효종 8년(1656) 1월 1일.

설날을 맞이하여 경복궁 앞 넓은 광장에 백성들이 모여들었다.

전날부터 눈이 내려서 그런지 그리 심하지 않은 북풍을 맞으며 사람들은 설빔을 입고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주변과 다르게 쌓인 눈이 보이지 않는 한양광장.

사람들은 윷놀이, 연날리기, 널뛰기, 팽이치기를 하며 흥겨워했다.

덕수궁(德壽宮)이라 말하는 경운궁(慶運宮)까지 쭉 뻗은 한양광장은 폭 100m에 길이가 1km나 되었다.

한양광장 양옆에는 우거진 숲으로 된 한양시민 중앙공원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곳에서는 눈사람을 만들거나 눈싸움을 하는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다.

어느새 거주 인구만 30만 명이 넘어선 한양시.

세계에서 제일가는 도시이자 조선의 수도이다.

용산방에 사는 친구를 따라 한양광장에 놀러 온 정범이 아버지.

넓은 광장에 있어야 할 눈이 보이지 않자 깜짝 놀랐다.

"이게 뭐여? 다른 곳은 눈이 쌓여 있는데, 이 광장에는 눈이 하나도 없네그려."

"거 뭐냐? 열선인가를 깔아 놓아서 그런다고 했어."

"열선? 그거 전기난로에 들어가는 거 아녀?"

이제 전기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선풍기에 이어 온풍기라 말하는 전기난로를 쓰는 사람도 많았다.

"맞을 거야. 그런 열선을 이 바닥에 깔아 놓았다고 하네."

"그래···? 그럼 전기가 엄청나게 들 건데 그게 말이 되는가?"

"앞으로 세워질 경복궁은 우리 대조선의 기상을 알리는 곳이라 하네. 그런데 그 앞마당인 이 한양광장이 지저분해서 되겠는가? 눈이 오더라도 항상 청결하게 유지하기 위해서 남아도는 전기를 쓴다고 하네."

"전기가 남아돌아?"

"이 사람 좀 보게. 돈 벌겠다고 홍콩에 가더니 세상 돌아가는 걸 하나도 모르네. 팔당수력발전소가 완공된 지가 언제인데. 그래서 이젠 전기가 남아돈 다네."

사실 도로 아래에 깔아 눈을 녹이는 전기 열선의 전력량은 그리 크지 않다.

요리를 해먹을 만큼 뜨거운 온도로 올리는 것이 아니라, 눈이 녹을 정도인 영상 1~4도 정도만 높이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많은 눈이 내리면 눈이 쌓이기에 눈을 치워 줘야 한다.

열선에서 발열되는 열량보다 차가운 눈이 쌓이는 속도가 빠르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한양광장을 관리하는 조선전력공사는 달랐다.

다른 곳은 아니더라도 한양광장만큼은 눈이 많이 오면 더 많은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경복궁에서 한양시청까지 쭉 뻗은 1km 광장은 조선의 기술을 상징하는 또 하나의 핵심이다.

그래서 연은 조선전력공사 직원들에게 말했다.

'다른 곳도 아니고 경복궁 앞 한양광장은 언제나 깨끗하고 뽀송뽀송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또한 경강대로와 경강대교까지는 아무리 추운 날이라 해도 빙판길이 되지 않게 잘 관리하도록 하라. 혹시라도 폐하께서 이동하시다가 사고 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겨울이라 강수량이 적어 발전량도 적지만, 그래도 전기가 남아돌았다.

전기 먹는 하마인 컴퓨터가 없는 세상이라 무슨 짓을 해도 팔당수력발전소에서 발전하는 발전량을 능가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곳곳에 추가로 수력발전소를 건설하고 있으니, 저기 따위를 아낄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남아도는 전기.

연의 말이 있었기에 조선전력공사 직원들은 아낌없이 전기를 쓰고 있다.

"내가 떠난 몇 년 사이에 한양이 완전히 바뀌어 버렸네. 그려···."

"그러니 자네도 홍콩에서 번 돈으로 강남에 집이나 한 채 사두게나. 그곳이야말로 새로운 부촌 아닌가. 동내도 깨끗하고 그곳에 고등학교도 짓는다고 하더군."

"참말인가? 그곳에 고등학교를 짓는다고?"

"그렇다고 하네. 용산방과 함께 강남에도 고등학교를 짓는다고 이미 소문 다 났네. 그러니 놓치지 말게. 용산방이야 전부 조선전력공사가 지워 놓은 집에서 살아야 하지만, 그곳은 땅만 임대고 집은 마음대로 지을 수 있다고 하네."

"그래? 얼마나 하는데?"

홍콩에서 남명을 상대로 장사를 한 정범이 아버지는 눈이 확 돌아갔다.

돈은 엄청나게 벌었지만, 아들인 정범이의 교육이 걱정됐다.

홍콩에도 초등학교가 있지만, 고등학교는 언제 생길지 알 수 없었다.

"50년 사용 조건으로 보증금은 10평당 1원이고, 연세는 평당 1문이라 하네."

"그래? 보증금 말고는 부담이 전혀 되지 않는 금액이네."

"그거야 본인이 집을 짓고 사는 거라 그러는 것 아닌가. 조선전력공사에서는 전기와 수도만 연결해 주고 도로만 관리해 준다고 하네."

"그래도 거저 아닌가. 자네도 거기로 이사 갈 텐가?"

"내가 돈이 어디 있다고? 돈 많은 자네나 그곳에 땅 얻고 멋진 집을 짓게나. 내 놀러 감세."

"그러지 말고 같이 가세. 내가 돈을 빌려줄 터이니."

"개인적으로 빌린 돈은 갚지 않아도 된다는 걸 자넨 모르는가?"

"그거야 알지만, 자네는 내 어릴 적부터 동무 아닌가. 떼어먹어도 좋으니 같이 가세. 내가 홍콩까지 가서 돈 번 이유가 달리 있겠나. 동무들과 함께 잘 살라고 한 것 아닌가."

도박 돈은 갚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빌린 돈을 도박으로 탕진했다고 말하며 갚지 않는 양심 불량한 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끝없는 송사에 지친 관리들은 효종에게 하소연했다.

효종은 깊이 생각한 끝에 개인 간 빌린 돈도 갚지 않아도 된다고 법령을 제정했다.

'당장 돈이 없어 굶어 죽거나 아파서 죽을 일이 없는 조선이다. 그러니 돈을 빌릴 필요가 전혀 없다. 따라서 앞으론 개인 간 빌린 돈은 갚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관리들의 일은 줄지 않았다.

그전에 빌려준 돈을 가지고 송사를 걸어 놓은 건이 산처럼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효종이 특단의 조처를 내리지 않았다면, 개인 간 금전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러울 뻔했다.

아무튼 금전 문제와 함께 발표된 교육제도는 백성들의 큰 관심사였다.

14세까지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15세부터 17세까지 3년 동안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는 새로운 교육제도가 발표됐다.

연에게 포섭된 코메니우스가 한양에 와서 만든 제도였다.

유럽 전역을 다 돌아봤던 코메니우스.

기차를 타면서부터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런데 세계 제일이라는 한양에 도착했으니 어찌 되겠는가.

남산 위에 우뚝 솟은 한양 탑을 보고 코메니우스가 말했다.

'저 탑이 무너지지 않는 한 대조선의 기상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밤에 밝게 빛나는 한양 탑을 보고.

'저 탑처럼 교육이야말로 대조선의 앞날을 밝혀줄 등불이다.'

연의 추천도 있었지만, 경험 많고 매력 넘치는 코메니우스는 단숨에 조선의 관리들과 선비들을 사로잡았다.

'예절 교육은 악이 사람의 마음을 점령하기 전에 일찍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 이유는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장 흉한 잡초만 자라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을 했으니 관리들과 선비들이 넘어갈 수밖에.

그중에 항상 백성을 생각하는 참선비 김육도 있었다.

효종에게 찍혀 죽을 때까지 영의정을 해야 하는 김육.

가장 중요한 교육 문제를 옆에서 지켜만 보고 있지 않았다.

'태자께서 추천하신 분이라 기대했지만, 정말 대단한 학자이십니다.'

'아닙니다. 영상 대감. 전하에 비하면 저는 헛 산 겁니다.'

'그거야 모두 같은 입장 아닙니까?'

코메니우스의 말에 김육은 허망하다는 듯 웃었다.

조선 관리들 중 코메니우스와 같은 생각을 해보지 않는 이가 있겠는가.

어릴 때부터 천재라 불리던 태자 연.

그 누가 그의 지식을 넘볼 수 있겠는가.

어림도 없다는 듯 김육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태자는 제쳐 두고 우리 범인(凡人)끼리 논의합시다.'

'그래야겠습니다.'

자칭 범인이 된 김육과 코메니우스.

그들이야말로 진짜 천재가 아닌가.

두 천재는 조선의 교육에 대해 깊이 있는 의견을 나누었다.

'초등학교는 누구나 배워야 하는 기초적인 상식선에서 교육합니다. 그리고 전문 교육기관인 대학교는 분야별로 세분되어 핵심을 연구합니다. 하지만 뭔가 부족하지 않습니까?'

'그래 보이는군요. 중간을 연결해 줄 뭔가가 필요해 보입니다.'

'그렇습니다. 둘 사이를 메꿔줄 교육기관이 필요합니다.'

'별도로 세우자는 말입니까?'

'네, 영상 대감.'

'음···, 그게 좋겠습니다. 그런데 수준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배우는 학생들에게 어떤 수준의 학문을 가르쳐야 하는지 정하는 것이었다.

'전문 교육을 받기 전에 더 수준 높은 상식을 배웠으면 합니다. 그런 교육을 받은 후에 전문 교육을 받는 것이 인성에도 좋을 듯합니다.'

'아···, 맞습니다. 대학교에 가기 전에 신병 훈련도 받아야 하니 굳이 전문 교육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네, 영상 대감. 고등 상식을 교육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교육기관을 고등학교라 하겠습니다.'

'고등학교라···, 좋습니다. 좋아요.'

코메니우스의 의견을 받아들인 김육은 효종에게 즉시 정리된 내용을 알렸다.

'고등 상식을 가르치는 고등학교라 좋은 생각이오. 영상.'

'그렇습니다. 폐하. 그런데 어떻게 진행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무엇을 말이요?'

'초등학교는 누구나 입학하여 배울 수 있고 무료입니다. 하지만 고등학교까지 부담을 지우기가···.'

'음···. 경의 뜻은 잘 알겠소. 그런데 나라 살림이 풍족하지 않소? 굳이 조선전력공사에 부담을 지우지 않아도 될 것 같소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아니요. 영상. 당연히 나라에서 해야 할 일이오. 왕실 기업인 조선전력공사에서 초등학교 교육을 책임지고, 그중에 인재를 뽑아 고등교육을 하는 일은 나라에서 하면 될 것이요. 그 정도 여유는 충분하고도 남을 것 같소. 또한 그것이 보기에도 좋을 듯하오.'

'폐하의 은덕에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조선전력공사에서 수출하는 품목은 총과 화약만 아니라, 곡물, 종이, 옷감 등 셀 수 없이 많았다.

또한 조선전력공사는 정확히 계산한 수익의 10%를 세금으로 꼬박꼬박 냈다.

왕실 기업이라 말하는 조선전력공사이기에 솔선수범을 보일 필요가 있어서였다.

연은 세금을 억지로 내면서 효종에게 말했다.

'왕실도 세금을 내야 다른 곳도 세금을 내게 할 수 있습니다.'

백성이 낸 세금으로 호의호식하던 왕과 종친들.

더는 조선에서 그런 모습은 볼 수 없었다.

태자가 운영하는 왕실 기업인 조선전력공사가 세금을 내는데, 감히 종친 따위가 면세를 외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왕가의 종친도 세금을 내는 세상에서 탈세나 절세를 하려는 백성이나 상사가 있겠는가.

그러다 보니 나라의 재정이 갈수록 풍족해졌다.

이처럼 모두가 잘살게 하려고 노력하는 조선의 왕실과 달리 서양의 왕가와 귀족들은 달랐다.

영주나 지주들은 농민과 농노들을 쥐어짰고, 왕은 그런 영주와 지주들을 탈탈 털었다.

지속되는 전쟁.

끝을 모르고 확산하는 전쟁.

처음은 왕 개인의 감정이었고, 이제는 왕 개인의 명예욕 때문에 그만 둘 수 없었다.

자체적으로 생산하던 화약과 총알이 떨어지자, 그러지 않아도 힘든 국민을 더욱 괴롭혔다.

그래서인지 천국 같은 조선으로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하지만 그것 또한 쉽지 않았다.

곳곳에 검문소가 세워지고, 탈주한 농민과 농노들을 잡으러 다니는 추노꾼들이 유럽반도에 등장했다.

그건 잉글랜드 연합을 구성하고 있는 브리튼섬과 아일랜드섬도 마찬가지였다.

바이킹들이 쳐들어올지도 모른다는 말에 올리버 크롬웰 호국경은 더 많은 세금을 걷고 더 많은 수탈을 자행했다.

이제는 아일랜드뿐만 아니라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도 악마라 부르는 올리버 크롬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자신도 모르지만, 그를 노리는 칼 10세는 잘 알고 있었다.

"역시 전하의 부하들은 전하만큼 최고군!"

조서원의 요원들이 하라는 대로 선동꾼 몇 명을 잉글랜드로 보냈을 뿐이다.

그런데 쳐들어가기도 전에 폭동이 일어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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