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 작전명 토벌(4) >
이번 작전에 덴마크인들도 참전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연은 단호히 거절했다.
'너희들이 당했다고 하지만, 먼저 너희들이 한 짓을 생각해 보거라.'
사실 원조 바이킹은 덴마크였다.
지리적으로도 스칸디나비아반도 남쪽에 있는 덴마크.
영국은 물론 멀리 지중해까지 약탈을 나선 이들이 바로 덴마크 바이킹이었다.
칼마르 동맹으로 스웨덴, 노르웨이 그리고 핀란드까지 지배했던 덴마크.
하지만 1523년 구스타프 바사가 스웨덴의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그는 스웨덴의 독립을 외치며 되레 덴마크를 공격했다.
역사를 감추고 피해자인척하는 꼴을 연은 두고 보지 않았다.
'어디서 개수작이야.'
르네상스 이후 서유럽 국가들은 중앙 집권 체계가 가속되었다.
그런데 북유럽과 동유럽은 중세 봉건 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덴마크는 스웨덴과 전쟁으로 국력이 쇠퇴하자 귀족들이 득세했다.
그래서인지 덴마크 왕은 조서원의 공작으로 주민이 들고일어나자 영국으로 도망갔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지배하고 있던 왕과 귀족들 대부분이 덴마크 바이킹 출신이기에 여생을 보내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하지만 남아있던 덴마크 귀족들은 그동안 해온 데로 연을 구워삶으려 했다.
물론 통하지 않았다.
'스웨덴을 토벌한 후에 덴마크도 정리할 것이다. 그러니 알아서 도망가던지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허튼수작을 하려거든 목을 깨끗이 씻고 기다리도록 해라.'
연은 소양으로 찾아온 덴마크 귀족들에게 일침을 가했다.
조선은 귀족을 인정하지 않았고, 자신들의 잇속만 챙기면서 나라를 좀먹는 놈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아무튼 연은 휘발유 엔진이 개발되자 본격적으로 자동차 시대로 넘어가고자 했다.
하지만 차가 다닐만한 도로가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아직 조향장치는 완벽하지 않아.'
생각보다 조향장치는 구조가 복잡했다.
원하는 방향으로 정확하게 조정하는 데는 많은 기술이 필요했다.
그래서 연은 단순한 구조인 외바퀴 조향장치부터 보급하기로 했다.
'삼륜차 정도면 충분해.'
개발된 휘발유 엔진 출력이 낮아 빠르게 달릴 수가 없다.
'잘해야 시속 50km나 나오려나?'
전복 위험이 있지만 빠르지 않으니 삼륜차라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 삼륜차를 이번 작전에 써먹을 줄이야.
연은 휘발유 엔진을 개발하면서 알루미늄 블록으로 바로 넘어갔다.
'무거운 주철로 실린더 블록을 만들 필요 없지.'
압록강에 수풍 수력발전소.
한강에 팔당 수력발전소가 완공되자 대량으로 알루미늄을 생산해 낼 수 있었다.
'굳이 주철로 엔진 블록을 만들지 않아도 돼. 하지만 알루미늄으로만 엔진 블록을 만들 수 없어.'
알루미늄 합금 기술이 부족했기에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
알루미늄 엔진 블록에 실린더 라이너라 말하는 강철 통을 끼워 넣는 형식이다.
이렇게 만든 휘발유 엔진은 생각 이상으로 좋았다.
야코프가 머스킷을 만드는 방법과 같은 형식이지만, 완전 달랐다.
머스킷은 외부가 무거운 주철이지만, 새로운 엔진은 가벼운 알루미늄이다.
내면이 무른 구리지만, 강한 강철이다.
그러니 훨씬 가볍고 튼튼했다.
'그래도 전장에 투입할 정도는 돼야지.'
그래서 연은 아주 튼튼하고 안정적인 삼륜차를 다시 설계했다.
몬스터 트럭 같은 겉모습을 가진 새로운 삼륜차.
커다란 바퀴만 빼면 처음 구상한 삼륜차와 다를 게 없었다.
철봉으로 뼈대를 만들었다.
뼈대 사이는 알루미늄과 강철을 붙여 만든 방탄 철판으로 막고 수나사와 암나사로 고정했다.
유리창 대신 폴리카보네이트(Polycarbonate, PC)와 아크릴을 결합하여 새로운 방탄유리를 만들어 끼웠다.
탄산칼슘을 중합하여 만든 폴리카보네이트는 같은 두께의 유리보다 250배나 강하다.
그랬기에 교황에게 선물로 준 마차의 방탄유리보다 몇 배나 강했다.
하지만 단가가 무척이나 비쌌다.
일반 삼륜차를 만들 때보다 비용이 거의 100배나 더 들어갔다.
'어쩔 수 없지. 안전이 최우선이니.'
21세기 보병분대차량(Infantry Squad Vehicle, ISV) 만큼 대단하진 않지만, 거북함만큼 단단하기에 지상을 누비고 다니기에는 충분했다.
기동타격대 대원들은 이 특수 차량을 '삼발이'라 불렀다.
2기통 2,000cc 휘발유 엔진을 단 삼발이가 항구를 벗어나 마을로 진입했다.
-부릉! 부우릉!
거침없이 두려움 없이 마을로 들어서는 삼발이들.
-탕! 탕! 탕!
곳곳에서 총탄이 날아왔다.
그와 동시에 즉시 반격이 시작됐다.
두께가 무려 5cm나 되는 새로운 방탄유리를 믿고 기동타격대 대원들은 거침없이 삼발이를 몰았다.
그래봐야 최고 시속 60km 정도지만, 웬만한 경주마보다는 훨씬 빨랐다.
"뭐해! 빨리 갈겨! 흠집이 너무 많이 나면 위험할 수도 있다고 했어."
"알았어! 자, 시작해 볼까?"
-두두둥! 두두둥!
삼발이 뒤에 탄 기관총 사수가 방아쇠를 당겼다.
조103 기관총의 단점을 개선한 조104 기관총에서 발사된 탄환은 벽돌 따위는 가볍게 뚫어버렸다.
"으악!"
"크흑!"
벽돌집에 숨어 머스킷 총으로 공격하던 놈들.
즉시 벌집이 되어 그토록 원하던 발홀로 떠났다.
거북함마다 10대씩 실고 온 삼발이.
총 30대의 삼발이가 휩쓸고 지나간 마을은 메뚜기 떼를 만난 들판처럼 초토화되었다.
그러는 사이 핀란드인들이 상륙했다.
"이젠 우리 차례군."
"당한 만큼 갚아 주자고."
"그래, 꼭 당한 만큼만 해주자고."
지금까지 조선군이 싸우던 모습을 지켜만 봤던 핀란드인들은 항구에 내리면서 표정이 변했다.
그동안 훈련받은 대로 조1 소총의 장전 손잡이를 잡아당기고 종이 탄피를 꽂아 넣었다.
"소총을 점검했으면 빨리 분대별로 모여라!"
얼떨결에 핀란드인들의 대장이 된 타피오가 높은 곳에 올라가 깔때기를 들고 크게 외쳤다.
"너무 차이 나는군."
타피오는 우왕좌왕하는 핀란드인들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제식훈련까지 받은 핀란드인들이지만, 조선군에 비하면 엉성했다.
"해가 떨어지기 전까지 마을을 수색하라!"
"반항하는 자는 일단 죽이고 봐라!"
"앞으로 4시간 남았다!"
"명심하라!"
"그때까지 마을을 점령해야 한다!"
그러자 누군가 외쳤다.
"못하게 되면 어찌합니까?"
그 말에 타피오는 인상을 쓰며 깔때기를 들었다.
"어떡하긴 뭘 어떻게 해!"
"하지 못하면 횃불을 들고서라도 해야지."
"우린, 이곳에 놀러 온 것 아니다!"
"우린, 우리가 그동안 받았던 치욕을 씻기 위해 이곳을 온 것이다!"
"그러니 치욕스럽지 않게 최선을 다하자!"
연속으로 외치다 보니 호흡이 가빴는지 타피오는 헉헉거렸다.
그래도 타피오는 힘을 내서 더 크게 외쳤다.
"핀란드인들이여···!"
"용기를 내자!"
"자유와 희망을 위해!"
"대조선과 함께 영광을!"
"나서자!"
"가자!"
"""와···."""
배운 게 없어 멋진 문구가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진솔한 외침에 핀란드인들은 항구에 정박한 갤리온들이 흔들릴 정도로 우렁차게 함성을 외쳤다.
전쟁은 기세이다.
노예나 다름없던 핀란드인들의 외침에 숨어있던 스웨덴인들은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조선과 일전을 불사하자던 칼 10세와 귀족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부앙'거리는 말도 없이 달리는 마차는 아서왕의 전설에 나오는 붉은 용 '드레이그 고흐'같이 불을 품고 다녔다.
담벼락에 숨어도 소용없었다.
숭숭 뚫려버린 담벼락 구멍으로 햇살이 들어와 어둠을 물리치고 밝게 빛을 산란시켰지만, 그 모습이 더 괴기스러웠다.
-꽈당!
현관문이 부서지며 활짝 열렸다.
-탕! 탕!
도끼를 꼬나쥐고 있던 아버지와 오빠가 힘없이 쓰러졌다.
미천한 것들이라 말했던 핀란드인들은 거침없이 집 안으로 들어와 헤집어 놓았다.
"모두 마을 광장으로 가라!"
"숨어있다 걸리면 죽음뿐이다!"
항상 비굴해 보이던 이들이 당당하게 말했다.
따르지 않으면 죽일 것 같았다.
엄마와 손을 꼭 잡고 흐느끼며 마을 광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와 달리 하녀였던 카티와 피아는 기쁨에 찬 환호성을 지르며 놈들의 품에 안겼다.
세상이 바뀌었다.
이곳 스톡홀름은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할 거라고 어른들이 말했지만, 아니었다.
'나도 카디와 피아처럼 노예로 끌려가겠지···.'
핀란드인들이 마을로 진입하자, 스웨덴인들은 싸우기를 포기하고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어찌해볼 수 없다는 무력감이 온몸을 적시었다.
어째서 조선군이 아닌 핀란드인들이 나타났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손에 든 총을 보니 두려웠다.
거친 표면이 아닌 매끄럽게 빛나는 총신.
그걸 보는 순간 국왕인 칼 10세와 귀족들이 속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뭐해! 빨리빨리 움직이지 않고!"
자신이 핀란드 놈들에게 자주 했던 말인데···.
기분이 묘했다.
그래도 밥을 주지 않는다는 뒷말은 듣지 않았다.
왕궁을 중심으로 널려 있는 14개의 섬에서 이와 같은 일이 무수히 벌어졌다.
* * *
연은 두 번째 작전 수행이 시작되자 소양의 바벨 성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철저히 준비했지만, 모를일이다.
"지금쯤 끝났을 것 같은데···."
어느덧 해가 저물었다.
하지만 훨씬 북쪽에 있는 스톡홀름의 여름은 해가 무척이나 길기에 연은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봤다.
'뎅뎅'거리며 마을 광장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쩐하!"
벌컥 문을 연고 들어오는 민삼이를 보고 연은 인상을 썼다.
'쌍식이도 저렇게 부른 적이 없는데···.'
각국에서 자주 사신들이 찾아오자 민삼이는 '사장님' 대신 '전하'라고 불렀다.
혹시라도 실수할 까봐 아에 고정시킨 거였다.
"그래 무슨 일이냐?"
"스톡홀름을 완전히 점령했다는 소식입니다."
"그래? 좀 늦었군."
"그게 섬이 많은 지역이라 정보를 모으는데 애로가 많았다고 합니다."
"흠···."
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새로운 기물을 떠올렸다.
'수륙양용차도 만들어야 하나?'
휘발유 엔진을 개발하고 나자 만들고 싶은 게 너무나 많았다.
급히 송림 제철소 근처에 '조선자동차'를 설립했다.
한반도 남북으로 이어지는 철도가 지나는 곳이라 최적의 입지였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삼륜차만 대량으로 생산할 계획이었다.
"계획을 바꿔야겠군."
"네?"
"아니다. 다른 생각 좀 했다."
"네···."
이제 조선의 인구는 4천만 명을 넘어서 곧 있으면 5천만 명이 될 게 틀림없다.
'그래도 믿을 사람은 한반도에 있는 조선 백성뿐이야···.'
표면적으로는 차별을 두고 있지 않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라온 문화가 달랐기에 생각하는 것도 달랐다.
이제 동역이라 말하는 만반도는 국가정보원에서 모두 관리하고 있다.
그러면서 많은 이들을 적발하여 탄광으로 보내고 있다.
조선인이건 여진족이건 아니면 일자리를 찾아 서쪽에서 온 사람이건 자신이 하는 일을 발설하는 자들이 있었다.
예외 없이 모두 탄광으로 보내고 있지만, 끊이지 않았다.
그중 조선인의 가장 적었고, 다음은 여진족이었다.
하지만 수가 적은 데에도 적발 건수가 가장 많은 자는 예맥족이 아니었다.
'어디 가나 일확천금을 노리는 인간은 있기 마련이지.'
옹진반도는 처음부터 철저히 관리했기에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곳에 선 기술자들이 퍼져나가면서 심심치 않게 정보가 유출됐다.
세상에서 가장 발달한 도시가 된 한양.
수많은 외교 사절과 상인들이 진을 치고 있는 한양.
바로 이곳이 정보거래가 이뤄지는 핵심 지역이다.
밤에도 환한 한양의 거리.
활기차 보이지만, 그만큼 치열했다.
어떻게 해서든 조선의 기술을 염탐하려는 자들은 많았다.
그들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민삼아?"
"네, 사장님."
"삼륜차 생산 공장을 대련으로 옮기라고 해라."
"네?"
"아니다. 내가 말하겠다."
시차 때문에 대부분 민삼이를 통해 전달하고 있었다.
이번 일은 중요한 내용이기에 직접 통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연은 무전실로 걸음을 옮겼다.
* * *
며칠 전, 오슬로에 있는 아케르스후스 요새에 도착한 칼 10세는 바쁘게 움직였다.
"폐하, 전쟁이 어떻게 됐는지 듣지도 못했는데 이리 서두를 필요가 있겠습니까?"
"보나 마나 뻔한 것 아니냐? 조선 놈들이 오랫동안 준비하고 쳐들어온다는데 결과야 뻔하지."
스웨덴군 사령관이었던 칼 10세.
전력의 차이가 어떤 결과를 내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총과 대포가 도입되면서 병사의 수는 허울 좋은 지표라는 것도 모르지 않았다.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듣고 움직이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러다 내가 이곳에 있다는 걸 들키기라도 한다면?"
"그건···."
이제 조선군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전파라는 것을 이용하여 연락을 주고받는다는 것쯤은 알만한 이들은 모두 알고 있다.
그러니 칼 10세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라도 하면 조선군은 바로 이곳으로 올 것이다.
"서둘러라! 한시라도 빨리 떠나야겠다."
"네, 폐하."
칼 10세의 마음을 읽었는지 심복은 밤을 새워 금은보화와 예술품들을 배에 실었다.
다음 날 새벽.
아케르스후스 요새 남쪽.
항구에 정박해 있던 전함 5척이 출항했다.
하지만 오슬로피오르 해협을 통과하기가 쉽지 않았다.
북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중 하나라고 하는 오슬로피오르 해협.
여름이라 남풍이 해협 사이로 세차게 불었다.
"빌어먹을! 이곳을 통과하는 데 10시간이나 걸리다니···."
50km 정도인 오슬로피오르 해협을 통과하자마자 칼 10세는 선실에서 밖으로 나왔다.
그 모습을 본 함장이 함교에서 뛰어 내려와 예를 올렸다.
"얼마나 더 걸리지?"
"폐하, 아직 벗어나려면 멀었습니다. 역풍이 심하지만, 해협을 빠져나왔으니 6시간 정도면 대양에 도달할 겁니다."
오슬로 또한 스톡홀름처럼 천혜의 요새였다.
대서양에서 접근하려면 북쪽으로 100km 나 올라가야 한다.
그것도 깎아지르는 듯한 절벽이 양쪽에 있는 오슬로피오르 해협을 지나가야 한다.
무턱대고 들어서다가는 대포의 밥이 될 수밖에 없는 곳이다.
"대서양에만 들어선다면 해류만 잘 타면 한 달 안에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크흠! 이게 무슨 꼴인지···."
후회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칼 10세는 스웨덴의 왕좌를 포기하고 떠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갑자기 나타난 조선이 꼴 보기도 싫었다.
야코프가 한 말이 있었다.
-뎅! 뎅! 뎅! 뎅! 뎅!
돛대 위에 올라가 있는 견시가 급히 종을 흔들며 외쳤다.
"전방에 배다."
돌아선 칼 10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불안감이 심장 깊숙한 곳까지 밀려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