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 작전명 토벌(3) >
울창한 나무숲 안으로 몸을 던진 에베.
부들거리며 몸에 박힌 나무 파편을 뽑아냈다.
"시발! 발홀이고 뭐고 이건 상대할 수 없잖아."
얼마 전 조선과 전쟁을 앞두고 국왕인 칼 10세가 병사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우리가 두려워할 적은 우리뿐이다!'
그때 얼마나 가슴이 떨렸는지 심장이 폭발할 듯 두근거렸다.
아무리 강한 조선군이라고 하지만 바이킹의 전사들이라면 충분히 물리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막상 조선군의 공격을 받고 나자 생각이 달라졌다.
"저런 놈들과 어떻게 싸운단 말이야? 말도 안 돼!"
진짜 용이 나타나서 불을 뿜는다고 해도 이 정도는 아닐 것 같았다.
아직도 머리가 띵할 정도로 폭발음이 계속 들렸다.
커다란 나무 뒤에 숨어서 한숨을 돌린 에베.
땅바닥에 딱 붙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도망칠 수도 없으니 이대로 숨어 있을까?'
총이고 도끼고 모두 버리고 튀었다.
다시 가서 가져올 수도 없는 일이다.
가장 친했던 코리는 싸워보지도 못하고 죽었다.
"발홀에 가면 틀림없이 발할라로 갈 거라 큰소리쳤는데···."
입에서 계속 욕이 나왔다.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에 처한 에베는 세상 모든 것을 원망하며 저주했다.
순간 귀가 뚫리면서 '징'하니 골이 울렸다.
세차게 머리를 흔들고 나니 괜찮아졌지만, 사방이 조용했다.
포격이 멈추었는지 불타는 소리와 목조건물이 무너지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
바람에 연기가 흩어진 후 포대를 바라본 에베는 눈을 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걸 어떻게 하지? 빨리 알려야 할 건데···.'
기이하게 생긴 조선의 전함 모습이 선명하게 파악될 정도로 다가왔다.
운이 좋아 피격당하지 않았지만, 아침 햇살에 반사되는 은빛 전함은 말로만 들었던 해룡과 똑같아 보였다.
에베는 부들거리며 이를 탁탁거렸다.
"하, 한 척이 아니네!"
동쪽 발트해에서 다가오는 거북함은 3척이나 되었다.
5mm 무녹강판을 리벳으로 고정하고 용접까지 한 거북함은 은빛 찬란했다.
최고 속도가 50km/h 이상 나가는 거북함이지만, 안전을 위해서 20km/h로 항해 하고 있었다.
어느덧 거북함들은 에베가 숨어 있던 카펠스카르를 지나 스톡홀름으로 향했다.
"휴···! 다행이다."
혹시라도 상륙할까 봐 두려웠다.
그냥 지나가자 에베는 온통 피로 범벅된 손으로 나무를 짚고 일어섰다.
"이런 젠장! 이건 뭐야!"
연이어 동쪽에서 다가오는 갤리온선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도 수십 척이나.
돛대 끝에 휘날리고 있는 '번개' 표시 깃발.
틀림없었다.
"저, 저게 왜?"
그중 한 척이 카펠스카르 정박장으로 다가오자 에베는 뒤 돌아 다시 뛰기 시작했다.
이러다 곰이라도 만난다면 죽은 목숨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시 돌아가 도끼라도 챙겨와야 하나 생각했지만, 에베는 모든 걸 포기하고 숲속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 * *
이번 작전에 핀란드인도 동참했다.
70년 동안이나 스웨덴의 노예로 생활을 했던 핀란드인들은 연을 찾아와 간곡히 부탁 했다.
'전하, 우리도 이제 조선 사람입니다. 그동안 악마 같은 스웨덴 놈들에게 핍박받으며 살아왔습니다. 부디 이번 전쟁에 동참할 수 있도록 허가해 주십시오.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연은 그들의 마음을 알기에 들어 줬다.
그러지 않아도 점령 후 뒤처리가 부담됐다.
그런데 자진해서 나서겠다니.
'허락하마! 하나, 조선군이 지휘하는 대로 따라야 할 것이다. 그것이 너희들에게도 좋다.'
'명심하겠습니다. 전하!'
연은 이번 기회에 조선의 품으로 들어 온 핀란드인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얼마나 조선군이 강력한지.
얼마나 조선군이 절도 있게 움직이는지.
그래야만 시간이 지난 후에도 딴소리하지 않을 거로 봤다.
연은 핀란드인들이 이번 작전을 통해 경외심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작전 계획을 수정했다.
'어차피 이들도 18세가 되면 신병교육대에 입대해야 한다. 그러니 조선군이 어떻게 전쟁하는지 보여 주도록 해라.'
전쟁에 투입되면 평소와는 완전히 다른 경비대와 조선군.
백문이 불여일견!
그들에게 조선군이 벌이는 전쟁이란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 주고 싶었다.
은빛으로 빛나는 거북함 3척은 거침없이 진격했다.
조서원의 요원들이 만든 해도를 따라 빠른 속도로 섬 사이를 빠져나갔다.
그 뒤로 핀란드인들을 태운 갤리온선들이 따랐다.
거북함은 해도를 따라 지나가면서 이미 파악해 놓은 포대를 공격했다.
흔적도 없이 초토화시켰다.
하지만 가죽 대포 자체가 이동성이 좋아서 다 파악할 수 없었다.
-퉁!
"제길!"
-기관총 사수는 뭐하나? 우측 언덕이다.
거북 1호 함장 진만이가 360도로 주변을 관찰할 수 있는 용머리 안에서 마이크를 잡고 연신 명령을 내렸다.
좁은 해로를 통과할 때마다 사방에서 포탄이 날아왔다.
그에 대한 대응으로 기관총탄이 빗발치듯 쏟아져 나갔다.
전후 각각 4문, 좌우로 각각 8문씩 조303 곡사포가 배치되어 있지만, 쓰지 않았다.
거북함 양쪽으로 100m도 안 되는 곳에 놈들의 포대가 있기에 굳이 포탄을 날릴 필요가 없었다.
거북함 뒤를 따라오는 갤리온선들.
갑판 위에서 조1 소총을 꽉 쥐고 있는 핀란드인들.
눈이 동그라지게 커지고, 입이 쩍 벌어진 채로 '와! 와!' 하며 구경하고 있었다.
전쟁하러 온 건지 관광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거북함에서 발사된 포탄이 스웨덴 놈들의 포대를 박살 낼 때마다.
기관총 난사로 놈들이 추풍낙엽처럼 푹푹 쓰러질 때마다.
핀란드인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주먹을 휘두르며 응원했다.
조선에서 군함을 새로 만들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출전하기 전까지 그게 어떤 배인지 소문만 무성했다.
그런데 전체를 철갑으로 두른 배라니.
상식을 초과하는 기술이었다.
"저 배가 조선에서 이순신이라는 대장군이 단 한 척으로 수백 척의 왜놈들을 물리쳤다는 그 배라며?"
"맞아! 나도 들었어. 그 배는 거북선이라고 했고, 그걸 본떠 만든 저 배는 거북함이라고 한다고 그러더군."
"동방의 끝에 있다는 조선이란 나라가 정말 대단한 나라였나 봐."
"당연하지 않아? 그러니 저런 배도 만들 수 있겠지."
정체를 모르는 무성한 소문은 과장으로 심하게 부풀어졌다.
그와 동시에 조선에 대한 경외심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이렇게 장장 6시간 동안 80km를 이동한 끝에.
"함장님 저곳이 바로 스톡홀름입니다."
"이제야 도착했군."
"노, 놈들의 전함이 오고 있습니다."
"뭘 그리 놀래?"
"함장님! 놈들이 학익진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래 봤자지. 과녁이 눈에 쫙 들어오니 보기 좋지 않냐?"
"그러긴 합니다만···."
"뭐해, 공격 준비하지 않고?"
"넵! 함장님."
작전 참모는 무전기 마이크를 잡고 2호 함과 3호 함고 교신하면서 각자 처리할 분량을 분배했다.
"아 참! 2호 함과 3호 함에 전하라. 저 함선들을 파괴하고 나면 우린 정면에 있는 본진으로 갈 거니, 2호 함은 남쪽, 3호 함은 북쪽을 맡아 달라고."
"넵! 함장님."
"그리고 갤리온에 연락해서 신호가 있을 때까지 대기하라고 하고."
"알겠습니다. 함장님."
한 척당 조303 대포가 총 24문이 장착된 거북함이 놈들이 만든 학익진 안으로 돌진했다.
-구가가과꽈꽝!
연신 쉬지 않고 발사되는 포탄에 마중 나오던 바이킹의 전함들이 박살 나기 시작했다.
50척 가까이 되는 스웨덴의 전함 또한 포격으로 반격했다.
한쪽 면에 3열로 24문이나 되는 포가 있는 놈들의 전함.
포구에서 발사된 무수히 많은 포탄이 연속으로 거북함을 때렸다.
그러나 거북함은 끄떡없었다.
강철보다 질긴 무녹강판은 놈들이 쏜 포탄을 튕겨냈다.
내부 구조물로 사용된 참나무 강목은 충격을 흡수했다.
놈들이 쏜 대포로 인하여 하얀 연기가 해상을 가득 메웠다.
연기가 걷히자 멀리서 지켜보던 핀란드인들이 환호성을 외치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바로 이 맛이야'하는 것처럼 입맛을 다시는 이도 있었다.
난파선이나 다름없이 망가진 놈들의 전함은 괴상한 소리를 내며 수면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거북함 3척 대 50척 가까이 되는 스웨덴 전함.
단 10분 만에 해상 전투가 끝났다.
지금까지 써왔던 무쇠 덩어리 포탄이라면 좀 더 오래 버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폭발하는 포탄이기에 적중되는 즉시 커다란 구멍이 뚫려 버리며 불길이 치솟았다.
동시에 보관하고 있던 화약까지 터지면서 자체 유폭으로 놈들의 전함은 갈가리 찢기며 흉측한 몰골로 변해 버렸다.
용두에서 적진을 관찰하던 함장 진만이는 망원경을 놓고 마이크를 들었다.
-기동타격대가 상륙해야 하니 먼저 포대로 의심되는 곳은 모두 날려버려라!
이곳까지 오면서 초토화한 포대만 100여 곳이 넘었다.
그런데도 남아있는 포대가 아직도 많았다.
"이래서 까불었나 보군."
거북함이 아니었다면 접근하는 즉시 벌집이 될 것 같았다.
그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많은 포대를 설치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끽해야 3~4발을 발사할 수 있는 가죽 대포라 하지만, 그래도 무시하면 안 된다.
거북함 3척이 한 시간이 넘도록 섬 사이를 이동하면서 포격했다.
혹시라도 남아있는 포가 있을지도 모르기에 꼼꼼히 살피며 의심되는 곳은 무조건 박살 내버렸다.
대기하고 있던 핀란드인들은 놀랍기만 했다.
"치밀하다 못해 지독하네."
"그러게, 우리 같으면 벌써 상륙해서 싹 쓸어 버렸을 건데."
"에이, 그러다 보면 죽을 수도 있잖아. 못 들어 봤나? 조선군은 단 한 명의 병사라도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했어."
"그래도 마을을 점령하려면 희생은 어쩔 수 없지. 그러지 않나?"
"음···, 그러긴 하지."
열병기가 도입된 이후, 전쟁에서 가장 힘든 전투가 벌어지는 곳은 다름 아닌 시가전이다.
그 정도는 농노출신인 핀란드인들도 알고 있었다.
한양과 비슷한 기후지만, 수시로 급변하는 날씨기에 스톡홀름은 단단한 벽돌로 지어진 건물들이 많았다.
핀란드인들은 리가로 도망 온 후로 닥치는 대로 일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라면 일자리가 넘쳤다는 것이다.
조선소와 발전소가 들어선다는 소식에 조선에서 상사들이 리가로 진출했다.
상사들은 조선인만큼 빠릿빠릿하지는 않지만 시키는 대로 일하는 그들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조선인처럼 알아서 하지 않았기에 답답하긴 했지만, 하루에 2문만 줘도 황송해하는 그들의 표정에 즐겁기만 했다.
인건비가 반 이상 작았기에 조선전력공사에 납품하거나 내다 팔아도 이익이 훨씬 많았다.
평생 쥐어 보지 못한 동전을 받게 된 그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루 일당으로 받게 된 2문.
그 돈이면 5인 가족이 먹을 하루 식량을 사고도 남았다.
그것도 푸짐하게 먹을 정도였다.
자식들이 많은 경우에는 더 많은 소득을 올렸다.
첫째나 둘째 또한 함께 일할 수 있었는데, 임금 자체에 차별을 두지 않았기에 소득이 배나 늘어났다.
그래서인지 남는 돈으로 선술집을 찾았다.
그곳에선 매일 같이 조선에 관한 이야기가 중심이었다.
어쩌다 동역에서 온 조선인이라도 만나게 되면 궁금한 걸 물었다.
그런데 들었던 말을 선술집에 풀어 놓으면 끝도 없이 부풀러 졌다.
그러다 보니 많은 이들이 꿈과 희망을 찾아서 동쪽으로 이동했다.
게 중에는 가다가 들린 마을에서 자리를 잡은 이들도 있었다.
만반도에서 서역으로 온 조선인들.
힘 좋은 그들을 보고 일자리를 주며 정착하라고 권했다.
아무튼 스톡홀름에 쫙 깔린 포대를 정리한 거북함은 작전대로 각자가 맡은 항구로 조심스럽게 진입했다.
진만이는 출동 준비를 마친 기동타격대 앞에 섰다.
"해가 지기 전에 끝내야 한다. 알았나?"
"""멸!"""
"우린 이곳에 진지를 구축하고 있을 터이니 어두워지면 즉시 돌아와라."
"""멸!"""
"좋아! 즉시 출동하도록, 놈들을 쓸어 버려라!"
"""멸!"""
거북함 옆 출입구가 열리자 '부르릉' 소리와 함께 기동타격대가 출동했다.
"저건 뭐야?"
"와! 멋진데."
거북함 안에서 밖을 내다보던 해경 대원들이 기동타격대가 타고 떠나는 기물을 보고 주먹을 움켜 주었다.
"앞으로 육경 놈들에게 꿀릴 일이 없겠군."
"그건 아니야."
"왜? 저거면 우리 해경도 육상 작전을 펼칠 수 있잖아."
"내가 궁금한 건 못 참잖아?"
"알긴 아는군."
"그래서 아래에 내려가 담배 한 갑을 주고 물어봤거든."
"뭐라고 하든?"
"육경에도 지원한다고 하더라."
"이런, 제길. 육경 놈들이 더 설치겠네."
"그러게 말이야. 정말 육경 놈들은···."
"밥맛이지."
이번 작전을 겨냥한 건 아니지만, 2기통 휘발유 엔진이 개발되자 연은 새로운 기물을 구상했다.
개념을 정리하고 일일이 설계도까지 그려 넘겼다.
그런데 완성된 기물을 보자 연은 활짝 웃었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끝내주게 만들어 보낸 것 아닌가.
'이젠 내가 굳이 설계도까지 그릴 필요가 없겠구나.'
어느덧 은동리 연구소에 근무하는 연구원들만 2천 명이 넘었다.
옹진반도에 거주하는 공돌이들은 3만 명이나 되었다.
그곳에선 웬만한 실적과 기술 가지고는 버틸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중역과 서역으로 연구원들과 공돌이들이 많이 빠져나왔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발하는 조선전력공사의 연구원들과 공돌이들.
이들이 있기에 연은 안심하고 소양에서 지낼 수 있었다.
'부···릉, 부···릉' 거리며 튀어 나가는 새로운 기물을 보고 항구로 들어오는 갤리온선에서 거대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